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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화. 이 짐승은 밤잠이 없다 (51/155)


51화. 이 짐승은 밤잠이 없다
2022.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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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델?”

놀란 그가 보드라운 뺨을 톡톡 두드리자 아델의 입매가 살며시 올라가며 고른 숨소리가 들려왔다.

어느새 깊은 잠에 빠져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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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 앞에서 이토록 무방비하게 잠들다니.’

크리스틴은 한쪽 팔에 머리를 괸 채 잠든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델의 새근대는 숨소리가 들리는 침실은 고즈넉하고 고요했다.

간혹 탁, 탁, 소리를 내며 장작이 타올랐고, 창밖에는 눈이 내렸다.

그랬다. 밖에는 눈이 한창 내리는 중이었다.

열일곱.

그녀와의 첫 번째 입맞춤.

그날도 이렇게 눈이 내렸었다.

처음으로 이성에게 욕망을 느끼고, 제 안에 늑대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던 날.

그래서였을까?

지난 전쟁터에서조차 이렇게 눈 내리는 밤이면 그녀와의 기억이 떠오르곤 했다. 그날 그녀에게서 나던 달큼한 체향이 떠오르면 욕망을 억제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리고 이토록 길고 긴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갖게 되었다.

아델, 너를 이렇게.

그의 음란한 욕망 따윈 모른다는 듯 미소를 머금은 채 잠든 그녀는 순진하고 사랑스러웠다.

실핏줄이 비칠 만큼 얇은 눈꺼풀 위에 가지런히 뻗은 속눈썹과 은빛으로 돋아난 솜털이 꼭 아기의 얼굴 같았다.

하지만 눈이 밝은 크리스틴은 똑똑히 보았다.

침대 위에서 사랑을 나누던 그녀가 얼마나 요염하고 유혹적이었는지.

순진무구하고 해맑게 웃던 그 여자가 그의 품에서 어찌나 뜨겁게 무너지던지.

생각만으로 다시 잇몸이 근질대고 몸에 힘이 들어갔다.

잠든 그녀의 머리카락을 천천히 쓸어넘기며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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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델, 계속 잘 거야?”

그 손길이 간지러운지 아델이 몸을 뒤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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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응, 크리스…….”

웅얼거리며 그녀는 크리스틴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허리를 끌어안았다.

그러자 아델의 긴 머리카락이 침대로 흘러내리며 등에 있는 문신이 드러났다.

순간 크리스틴의 심장이 지끈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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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좀 기묘한 분위기였어요. 침실이 멀쩡했죠. 술 냄새 같은 게 조금 났지만, 그 여자는…… 겁탈을 당했다기엔 너무 침착했고, 밀애를 즐겼다기엔 안색이 너무 파리했죠.”

 
바네사라는 여자가 해준 얘기가 떠올랐다.

아마 그날 스톤은 아델에게 이 문신을 새겼으리라.

놈의 소유물이란 표식을 몸에 새긴 후였으니 아델이 그런 참담한 표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스톤이 오스월드 후작을 살해한 걸 알면서도 그 죄를 뒤집어쓰고 살아왔으리라.

자존심 강한 아델은 그 일이 알려지느니 차라리 악녀라고 손가락질받는 쪽을 택한 것이다.

지금까지 아델이 얼마나 끔찍한 기분으로 살았을지 생각하는 것만으로 크리스틴은 참을 수가 없었다.

스톤, 네놈은 반드시 갈가리 찢어주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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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델이 움찔하며 눈을 떴다. 크리스틴의 품에 안긴 채 고스란히 등을 보이고 있다는 걸 깨달은 그녀는 허겁지겁 일어나려고 했다.

그러자 그가 날렵하게 등 위로 올라와 허리 옆에 양 무릎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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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어 크리스…… 보지 마…….”

아델은 돌아누우려고 몸을 비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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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잘못이 아니야, 아델.”

크리스틴이 그런 아델의 등 위에 가만히 손을 올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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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 하지만 네가 이걸 보는 게…… 너무 끔찍해.”

다른 사람도 아닌 그에게 스톤의 소유물이라는 표식 따윈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의 동정도, 질투도 원하지 않았으니까.

이 침실에선 온전히 둘만이길 바랐으니까.

크리스틴은 아델의 하얀 등 위에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C R I S T I N 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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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 스틴……?”

그의 손가락 움직임에 집중하던 아델이 나직하게 읊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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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내 이름에도 이 철자가 들어가. 그러니까 아델, 이제부터 이건 스톤의 이름이 아닌 내 이름의 일부야. 더이상 끔찍한 게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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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그러네…….”

안도하듯 그녀가 몸에서 힘을 풀며 엷게 웃었다.

크리스틴은 작고 보드라운 손등 위에 제 손을 포개며 움켜쥐었다. 그 순간 야릇한 위기의식을 느끼며 아델은 긴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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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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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이…….”

이내 가느다란 척추 위를 그의 입술이 천천히 스치며 내려왔다.

초옥, 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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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간지러워. 그만…….”

아델이 몸을 비틀며 벗어나려 했지만, 그는 농밀하고 나른하게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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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시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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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순간 그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가녀린 목덜미를 살며시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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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델이 움찔하며 고개를 젖히자, 크리스틴은 묘하게 더 흥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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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제대로 안을 생각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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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 돼. 그럼 조금 전 그건……?”

그는 아델의 귓불을 살며시 핥으며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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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풀기 정도?”

아델은 등줄기에 오싹 소름이 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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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어! 죽는 줄 알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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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 오늘은 정말 어쩔 수가 없거든.”

그 무시무시한 속삭임이 어찌나 달콤하고 상냥한지 아델은 귀가 다 녹아버릴 것만 같았다. 그리고 등 뒤에서 사르르 눈웃음을 치고 있을 그의 얼굴이 떠오르자 저절로 몸에 힘이 풀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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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짐승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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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 맞아.”

아델은 본능적으로 침대 시트를 꽉 움켜쥐었다. 그와 동시에 그는 다시 욕망 가득한 짐승이 되어 그녀를 삼켜갔다.

그동안의 시간을 보상받기에는 오늘 밤이 너무 짧았다.

***

이틀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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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델은?”

집무실로 들어오는 짐머에게 크리스틴이 물었다.

짐머가 혀를 차며 나무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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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걱정되면 그냥 들어가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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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다. 주치의와 타냐가 어련히 알아서 잘 보살필까.”

첫날밤을 보낸 후 아델은 며칠째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왕진을 온 의사의 말로는 심신의 피로가 누적되어 깊이 잠든 것뿐이라고 했다. 그 말대로 아델은 평온한 표정으로 잠이 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고 이틀째 오후가 되어도 깨어나지 않자 크리스틴은 불안이 밀려왔다.

그녀를 안는 도중 이성을 잃고 본모습이라도 드러낸 게 아닐까?

제일 큰 걱정은 그거였다. 늑대화가 진행됐을 때의 일은 그도 거의 기억하지 못했으니까. 그래서 아델을 다치게 했거나, 그녀가 충격으로 깨어나지 못하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그런 속마음을 눈치 빠른 짐머가 모를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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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습니다. 아무리 무심남 코스프레를 하셔도 안절부절못하시는 거 다 티가 나거든요. 오죽하면 폐하께서도 물어보시더군요. 마블 궁에서 무슨 일이 있었느냐며. 단장님께서 정신이 다른 곳에 가 있는 것 같다고 하셨죠. 그러게 아무리 굶주리셨더라도 적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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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아델의 소식은?”

짐머는 포기했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은 아무리 떠들어봐야 아무 소리도 귀에 들어오지 않을 게 분명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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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셨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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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군.”

담담한 목소리와 달리 책상 위에 쌓인 서류들을 정리하고, 겉옷을 집어 드는 크리스틴의 손길이 분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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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그만 들어가 볼 테니, 나머지 일은 부대장과 네가 나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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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궁의 일은 염려 말고 얼른 가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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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부탁한다.”

짐머는 귀를 의심했다. 크리스틴의 입에서 부탁이라는 정중한 단어가 나올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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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성격이 괴팍했던 건 역시 욕구불만이었던…….’

집무실을 나가던 크리스틴이 홱 돌아보자 짐머는 자동으로 움찔하며 한발 뒤로 물러났다.

설마 마음의 소리까지 들리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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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이번 승마대회 참가자가 한 명 더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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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이제 와서 갑자기 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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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스 백작.”

짐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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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십니까? 폐하께서 권하실 때도 그리 사양하시더니…….”

하지만 그 이유는 금방 짐작할 수 있었다.

역시 질투보단 돌진이라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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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우승해서 가문의 위상을 드높이는 것도 나쁠 건 없겠지.”

시치미를 떼는 크리스틴에게 짐머는 능청스럽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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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오스월드가의 코를 납작하게 만드시면 가문의 위상이 드높아지긴 하겠지요. 더불어 아델 양에게 사랑도 듬뿍 받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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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없는 소리 말고, 차질없이 준비하도록!”

그리고 다시 황급히 나가는 크리스틴을 짐머가 얼른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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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만요, 단장님.”

그는 복도를 장식한 꽃꽂이 화병에서 장미 몇 송이를 뽑아 얼른 꽃다발을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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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라도 들고 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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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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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이죠. 오늘 같은 날엔 꽃만 한 무기가 없답니다. 그리고 오늘은 절대로 짐승이 되시면 안 됩니다. 오늘은 그저 담백하게…….”

평소였다면 화를 냈을 크리스틴은 순진한 얼굴로 장미 꽃다발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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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해보지.”

그리고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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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이 아니라 당연히 그러셔야 합니다. 그러다 아델 양이 도망이라도 치면 어쩌시려고요!”

등 뒤에서 짐머의 잔소리가 들려오자 크리스틴은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하지만 지금은 시간이 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아델을 봐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았으니까.

***

똑똑.

문이 열리며 향긋한 내음과 함께 거대한 꽃다발이 불쑥 나타났다. 잠옷 차림으로 침대에 앉아 있던 아델은 어리둥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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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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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좀 어때?”

그는 자연스럽게 아델에게 거대한 꽃다발을 안겨주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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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그런데 이 많은 꽃을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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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가 주웠어.”

틀린 말은 아니었다. 기왕 꽃다발을 줄 거라면 큰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마블 궁을 장식하고 있던 꽃까지 모조리 긁어모아 가져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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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짐머 경 만큼 꽃을 좋아하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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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리가. 당신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는 거지.”

크리스틴은 아델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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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효과 있었네.”

아델도 그의 뺨에 입을 맞춰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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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군.”

정말로 다행인 것은 아델의 반응이 평소와 똑같다는 것이다.

그녀를 안는 동안 늑대화가 진행되지 않았거나, 그랬더라도 보지 못했나 보다.

하기야 침실에 불을 꺼놓았으니 완전히 변해서 폭주만 하지 않았다면 들킬 가능성은 적었다.

물론 크리스틴은 언제까지 정체를 숨길 생각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절대로 밝혀져선 안 될 것이다. 적어도 그녀의 어머니를 죽인 것이 은빛 늑대가 아니라는 확실한 증거는 찾아야 했다.

그래도 아델이 쉽게 받아들여 줄지는 고민 되는 문제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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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뭣 좀 먹었어?”

그는 침대 옆에 의자를 끌어다 앉으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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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맛이 없어서 수프만 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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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돼. 잘 먹어야 몸이 회복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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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피곤했던 것뿐이야. 요새 여러 가지 일로 신경을 많이 쓰기도 했고.”

그때 크리스틴은 아델의 하얀 목덜미에 빨갛게 생겨난 잇자국을 보았다. 흥분한 그가 이를 박아서 생긴 자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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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그날 내가 당신을…… 다치게 하거나 그랬던 건 아니지?”

아델은 발그레해진 얼굴로 눈을 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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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아니지만, 당신만큼 체력이 좋지는 못하니까.”

크리스틴은 풀 죽은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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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 그날은 절제하지 못했어. 첫날밤 좋은 기억을 남겨줬어야 했는데, 어느 순간 내 욕심이 앞서 버렸어. 이렇게 첫날밤을 망쳐버리다니…….”

그토록 무시무시하던 바이스 백작이 지금은 커다란 강아지 같았다. 주인에게 혼날까 봐 눈치만 살피는.

아델은 조용히 웃으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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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사랑을 나눈 거잖아. 그러니까 나만 좋은 건 나도 싫어. 당신도 좋았던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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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버리도록.”

아델이 깜짝 놀라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멈추자, 크리스틴은 그녀가 쓰다듬기 좋도록 더 가까이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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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줘, 아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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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어리광부리는 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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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광 맞아. 당신이 이틀 동안 계속 안 깨어나서 조금 무서웠거든.”

아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그가 아이처럼 속내를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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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내가 잘못되기라도 할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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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날 두려워하고, 미워할까 봐.”

머리 위에서 아델의 나직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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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다른 사람도 아닌 크리스 당신인데.”

정말 두려웠었나 보다. 아델의 이 웃음소리와 이 따뜻한 목소리에 이토록 안심되는 걸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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