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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화. 스톤의 교활함 (75/155)


75화. 스톤의 교활함
2022.10.21.


방으로 들어온 아델은 모자와 파우치를 마호가니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외투를 벗어 의자에 걸쳐놓았다.

순간 저도 모르게 쭈뼛 소름이 돋아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

침대 위에 시선이 머문 그녀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안녕, 아델 양. 외출은 잘했어?”

화려한 캐노피가 달린 그녀의 침대 위에 스톤이 앉아 있었다. 재킷을 벗고 하얀 리넨 셔츠 차림으로 다리를 꼬고 앉은 모습이 자신의 침실인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당신이 어떻게 여기에……?”

아델은 침착하려고 애를 쓰며 테이블 위의 파우치를 힐끔 보았다.

그 안에 피스톨이 들어있었다. 하지만 눈치 빠른 그가 파우치를 열어 피스톨을 꺼낼 때까지 얌전히 보고만 있을 리가 없었다.

어떻게든 자연스럽게 보여서 그의 경계를 늦춰야 했다.


“아델, 네가 너무 보고 싶어서 이렇게 찾아왔지.”

“근위대들이 들여보냈을 리 없었을 텐데.”

“그러게. 경비가 하도 삼엄해서 힘들게 들어왔지 뭐야. 봐, 다치기까지 했다니까.”

그는 까진 손등을 내보이며 아프다는 듯 엄살을 부렸다. 마치 아델이 걱정해주길 바라는 것처럼.

어이가 없었다.


“침입자에게 동정이라도 해주길 바라? 어서 꺼져. 안 그러면 근위대를 부를 거야.”

그렇게 말하면서 아델은 스톤과 테이블 사이에 섰다. 손을 조심스레 뒤로 뻗어 테이블에 놓인 파우치를 더듬어보았다.

하지만 소매에 파우치의 줄이 걸렸는지 가방의 입구에 손을 넣을 수가 없었다.


‘젠장! 어떡하지?’

그동안 스톤이 침대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뚜벅뚜벅.


“너무하네. 차 한 잔 정도는 같이 마실 수 있잖아. 우리 사이에.”

어느새 놈은 아델의 코앞까지 가까워졌다.


“차를 얻어 마시고 싶거든 정식으로 방문해, 스톤 오스월드.”

아델은 미칠 것만 같았다. 스톤은 너무 가까웠고, 그가 눈치채지 못하게 파우치의 줄을 푸는 건 쉽지 않았다.

저도 모르게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왜, 날 찌를 단검이라도 찾나?”

순간 아델은 얼음이 되어버렸다.


“무슨 소리야?”

스톤은 눈짓으로 파우치를 가리켰다. 그녀가 무기를 찾고 있는 걸 이미 눈치챈 것이다. 그게 피스톨인 줄은 몰랐겠지만.


“모를 줄 알았어? 네년이 늘 칼을 품고 다니는 거.”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는 아델의 양 팔목을 뒤로 움켜쥐었다. 그리고 사납게 머리채를 잡아챘다.


“아!”

아델은 팔이 뒤로 꺾이고 고개가 홱 젖혀졌다.

너무나 엄청난 완력에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만일 늑대 일족이라면, 사람들을 죽인 범인이라면, 이대로 그녀를 단숨에 죽일 수도 있으리라.

내 엄마처럼…….

공포감과 분노로 아델은 거친 숨을 들썩이며 죽일 듯 노려보았다. 두 눈이 붉게 충혈되고 어느새 눈물이 차올랐다.


“살인자…… 네 짓이지? 네가 사람들을 죽였어! 내 엄마도 네놈 짓이지? 죽여버릴 거야! 가만 안 둬!”

분노로 덜덜 떨며 이를 가는 아델을 스톤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가고 눈동자에 열기가 스쳤다.


“앙칼진 내 고양이. 이래서 내가 널 못 버린다니까.”

그는 입맛을 다시며 혀끝으로 제 입술을 핥았다.


“이 개자식! 죽여버릴 거야!”

“진정해 아델. 넌 여전히 내 손끝 하나 건드릴 수 없어. 널 범하든, 죽이든, 그건 내 의지에 달린 일이지.”

퍽!

아델은 무릎으로 스톤의 다리 사이를 힘껏 쳐올렸다.


“커흑!”

그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아델을 놓치고 말았다.

그 사이 아델은 재빨리 파우치 안에서 피스톨을 꺼내 겨눴다.

철컥!


“네놈과 같이 죽는 건 할 수 있어!”

예상외의 반격에 그는 조금 당황한 기색이었다.


“이거, 이거…… 꽤 위험한 물건을 가지고 있었군.”

“셋 셀 때까지 꺼져! 안 그러면 머리통에 구멍을 내줄 테니까! 하나!”

“잠깐, 그러지 말고 대화로…….”

“둘!”

그는 하는 수 없이 양팔을 들어 올렸다.

그러나 여전히 여유로운 표정.


“타냐가 잘못돼도 상관없겠어?”

타냐의 이름이 나오자 아델의 표정이 흔들렸다.


“무슨 개수작이지?”

“내일까지 내 연락이 없으면 타냐는 포주들에게 넘어갈 거야. 충성스러운 네 하녀가 잘 못 돼도 괜찮겠어?”

바네사를 매음굴에 팔아넘긴 게 스톤이라고 했던가?

생각만으로도 끔찍해서 아델은 미칠 것만 같았다.


“개자식! 타냐에게 무슨 짓을!”

흥분하는 아델을 보며 스톤은 다시 즐겁다는 듯 웃어 재꼈다. 하지만 피스톨을 의식해서 들어 올린 양손을 내리지는 못했다.


“내일 아침 마차를 보낼 테니까 타고 와. 그럼 돌려보내 줄게.”

“그 말을 믿으라고?”

“난 네가 필요하지, 타냐가 필요한 게 아니거든. 이참에 백작을 속이고 밀회를 즐기는 기분도 내고 좋잖아?”

아델은 느슨해진 경계를 다잡고 매섭게 피스톨을 겨눴다.


“닥쳐! 타냐는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찾을 거야!”

“그럼 이건 어때? 날 만나러 온다면 은빛 늑대도 보게 해줄게.”

“뭐?”

“그래, 네 어머니를 죽인 그 짐승 말이야. 만나면 그 총으로 단숨에 쏘라고.”

“내 엄마를 그렇게 만든 건 네놈이잖아!”

“글쎄, 은빛 늑대를 보면 생각이 달라질걸?”

“내 대답은 이거야, 스톤!”

타앙!


 
아델의 피스톨에서 불꽃이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총알은 스톤의 귀 옆을 스치고 벽에 틀어박혔다.

피스톨을 쥐고 있는 아델의 손이 덜덜 떨고 있었다. 그걸 보며 스톤이 픽 웃었다.


“사람은 아무나 죽이는 게 아니라고. 그럼 내일 만나, 내 고양이.”

스톤은 순식간에 창밖으로 사라졌다.

벌컥!

곧이어 핸리와 근위대들이 놀라서 뛰어 들어왔다.


“무슨 일입니까? 총소리가 난 것 같은데!”

아델은 떨리는 손으로 피스톨을 감추며 가까스로 말했다.


“백작님을…… 불러주세요…….”

창밖에서 불어 드는 바람에 테이블에 놓인 하얀 손수건이 팔락거렸다.

어느새 스톤은 자신의 머리글자가 새겨진 손수건을 두고 간 것이다. 그 위에는 타냐의 머리핀이 놓여 있었다.
 

***



“크리스!”

말에서 내리는 크리스틴에게 아델이 달려왔다.

도저히 안에서 침착하게 기다릴 수가 없어서 정원을 서성이며 기다렸던 것이다.


“무슨 일이야?”

아델의 방에서 총소리가 났다는 보고를 전해 들은 그는 놀라서 한달음에 달려왔다.


“타냐를, 타냐를 좀 찾아줘!”

“타냐가 왜?”

아델은 스톤이 두고 간 손수건과 타냐의 머리핀을 내밀었다.


“놈이 데려갔어! 내가 내일 아침 놈을 만나러 오지 않으면 타냐를 팔아넘길 거래!”

크리스틴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감히 자신의 영역에 들어와서 사람을 납치하고 아델을 협박했다니 용서할 수 없었다.

그러니 반드시 놈을 잡아야 했다. 물론 그 뒤에는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없앨 생각이었고.


“걱정하지 마, 아델. 곧 황제가 오스월드 저택의 수색을 승인할 거야. 그러면 놈을 체포하고, 타냐도 금방 찾을 수 있어.”

크리스틴은 안심하라며 아델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정말이지?”

“그래, 당신이 말한 지하 묘지에서 백골이 나오고, 희생자들의 신원을 알아내면 놈은 발뺌조차 할 수 없어.”

아델은 겨우 한시름 놓았다.


“다행이다. 증거가 확실하면 귀족회에서도 쉴드가 불가능하겠지?”

“물론. 그리고 놈이 교황청에 제기한 이의 신청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거고.”

이런 걸 불행 중 다행이라는 건가?


“얼른 폐하의 승인이 떨어지면 좋겠다.”

“시간 문제야. 그러니 들어가서 차라도 마시며 조금만 기다리자.”

아델의 붉은 입술이 어느새 바싹 말라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고집스럽게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아무것도 넘어가지 않을 것 같아.”

“그럼 내가 먹을 다과라도 준비해줘. 그래야 힘내서 놈의 영혼까지 탈탈 털어버리지.”

그제야 아델이 힘없이 웃었다. 그가 자신을 위해 일부러 그런다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알았어. 응접실로 가자.”

 

***



“오늘도 사격 연습을 했어?”

“응? 아…….”

크리스틴에게 차를 내놓던 아델은 그의 시선이 손목에 머문 걸 깨달았다. 스톤이 움켜쥐었던 손목은 벌겋게 붓고 멍까지 든 것이다.


“어제보다 더 형편없는걸.”

“그러게…….”

아델은 드레스의 소매를 길게 늘이며 손목을 감췄다. 크리스틴이 속상해할까 봐 스톤의 짓이라는 걸 새삼 알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를 속일 수가 없었다.


“스톤의 짓인가?”

아델은 쓴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래도 당신이 준 피스톨이 있어서 다행이었어.”

“머리통을 쏴버리지.”

“빗맞았어.”

속을 꿰뚫는 것 같은 그의 시선과 마주치자 아델은 한숨을 쉬며 고백했다.


“그래, 사실은 쏠 수가 없었어. 놈의 머리통을 겨눴지만 쏘는 순간 무의식적으로 총구를 돌렸어.”

“그래 갖고 잘도 죽이겠군.”

크리스틴의 목소리에 비난이 섞여 있었다.


“알아. 네가 보기에는 한심하다는 거. 하지만 사람을 쏘는 게 쉽지는 않으니까.”

“그러다 당신이 당할 수도 있어.”

아델은 어두워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뭘 걱정하는지 알아. 하지만 다음엔 실수 안 할 거야.”

아델은 차를 홀짝이며 그의 시선을 피했다.

사실 제일 한심하다고 생각한 건 자신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스톤을 죽이는데 머뭇거리다니.

그래도 오스월드 저택을 수색하고 그를 체포할 수만 있다면 한시름 놓을 것 같았다. 죽이는 건 그 뒤에 얼마든지…….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짐머가 들어왔다.


“폐하께서 보내신 전갈입니다.”

크리스틴은 짐머가 내민 봉투를 받아서 재빨리 읽어보았다.


“승인이…… 났어?”

초조하게 그의 표정을 살피며 아델이 물었다. 굳어진 얼굴을 보니 좋은 소식이 아닌 것 같아서 불안했다.


“젠장!”

그녀의 예감이 맞았나 보다.

크리스틴은 손에 들고 있던 종이를 무참하게 구겨버렸다.


“설마…… 승인이 안 난 거야?”

아델이 울 것 같은 얼굴로 묻자, 그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황제를 만나야겠어!”

 

***

황제의 침실 앞.


“폐하께선 몹시 편찮으셔서 알현이 불가합니다.”

황제의 시종장은 몇 번째 계속 같은 대답이었다.


“내가 근위대장이란 걸 잊었나?”

“죄송합니다. 그러나 오늘은 아무도 들이지 말라는 어명이셨습니다.”

“어서 열게. 어명을 어긴 책임은 내가 지지.”

“안 됩니다…….”

스릉!

크리스틴이 레이피어를 빼 들자, 주변에 경계를 서던 근위대들도 일제히 긴장했다.

보통 황제의 명을 어기고 칼을 뽑는 것은 모반으로 간주해 체포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유일하게 황제의 앞에서 칼을 뽑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며, 자신들의 상관이었기 때문이다.

시종장은 허옇게 질린 얼굴로 부들부들 떨었다. 크리스틴이 검을 들고 서 있기만 할 뿐인데도 엄청난 살기에 숨이 막히는 것 같았으니까.

벌컥!

그때 황제가 문을 열고 나왔다.


“내 시종을 죽이고 문을 부술 작정인가?”

“필요하다면.”

“하, 건방진…….”

비틀거리며 문가에 기대선 얀에게선 지독한 술 냄새가 풍겼다.

그는 일부러 크리스틴을 피해 침실에 틀어박힌 것이다. 그리고 술의 힘에 기대 도망치려 했다.

비겁하고 겁 많은 배신자!

크리스틴은 비난을 담은 표정을 얼굴에 그대로 드러내며 물었다.


“오스월드 저택의 수색이 거절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얀은 주변을 돌아보더니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들어오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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