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사실 나는 질투가 났어
(81/155)
81화. 사실 나는 질투가 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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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화. 사실 나는 질투가 났어
2022.11.11.
크리스틴은 2층 침실로 안고 들어온 아델을 세면대 앞에 앉혔다.
“술 깨게 얼굴 좀 씻어.”
“헤, 당신이 씻겨주면 좋겠다.”
아델이 고개를 들어 배시시 웃었다. 장밋빛으로 발그레한 뺨이 잡아 흔들어 주고 싶게 귀여웠다. 마치 천진한 소녀 같은 얼굴이었다.
“정말 가지가지 하는군.”
기가 막혀서 웃던 크리스틴은 갑자기 짓궂은 기분이 들었다.
쪼르륵.
그녀의 머리 위에서 물병을 주르륵 들이붓자,
“앗, 차가워!”
아델이 소리를 지르며 허우적거렸다.
물에 빠진 생쥐 같은 모습을 보며 그가 악동처럼 씩 웃었다.
“어때, 이제 술이 좀 깨셨어?”
“난 몰라! 다 젖었잖아! 너무해!”
아델이 젖은 머리와 옷을 탈탈 털며 항의했다.
그 모습을 보며 장난스럽게 웃던 크리스틴의 얼굴이 서서히 굳어졌다.
발그레하게 젖은 얼굴과 젖은 옷자락 사이로 비치는 홍조를 띤 살결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왠지 모를 갈증이…… 밀려왔다.
꿀꺽.
“나 없는 데서 취한 벌이야. 다음엔 이 정도로 안 끝날 줄 알아.”
서늘하게 경고하자 아델은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갑자기 쿡쿡거리며 웃었다. 그러더니 양팔을 들어 그의 목에 둘렀다.
“뭐야, 설마 질투?”
“말도 안 되는 소리.”
“난 질투 날 거 같은데. 당신이 나 없는 데서 잔뜩 취해 재미있게 놀면.”
술 냄새가 뒤섞인 아델의 숨결은 달큼하고 뜨거웠다.
그 열기에 크리스틴의 감정도 조금씩 달아오르는 기분이었다.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키스하고 싶어져서 얼른 고개를 돌렸다.
“늦었어. 그만 자.”
하지만 아델은 오히려 더 가까이 얼굴을 들이대며 속삭였다.
“그럼 약속해. 앞으로 절대 다른 여자들 앞에서 취하지 않을 거라고.”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오늘 취한 건 당신인데? 취해서 그것도 잊었나?”
“알아. 하지만 난 질투 나거든. 여자들이 당신을 볼 때마다, 당신에 대해 얘기할 때마다. 어쩔 땐 조금 불안하기도 해.”
“뭐?”
크리스틴이 어이없어하며 바라보자, 두 입술이 금방이라도 맞닿을 것처럼 가까워졌다.
“그러니까 당신이 여자들이랑 함께 취하도록 마시면 가만 안 둘 거야!”
“이제보니 아델 양은, 질투의 화신이었군.”
“맞아. 사실 당신이 황녀님이랑 결혼한다는 얘길 들었을 때도 얼마나 질투가 났는지 알아?”
“그게 무슨……?”
아델은 씩 웃으며 비밀스럽게 속삭였다.
“그래서 스톤의 이름이 나올 때 당신이 질투하는 표정을 짓는 게 좋았어.”
“……!”
“짜릿했지. 질투하는 바이스 백작님을 보는 건…….”
아델의 목소리는 유혹하는 악마처럼 달콤하고 위험스러웠다.
꿀꺽.
거칠어지는 숨을 달래며 그는 입안에 고이는 침을 삼켰다.
이성의 끈이 실낱처럼 가늘어지고 있었다.
아주 미약한 자극에도 속절없이 끊어지고야 말리라.
할짝.
순간 아델이 그의 입술을 살며시 핥고 물러났다.
목덜미에서 등줄기까지 찌릿한 전율이 스쳤다.
“취했다고 봐줄 것 같아?”
마지막 경고.
“흐응, 안 봐주면……?”
아델은 요염한 미소를 머금고 그를 더욱 도발했다.
몽환적인 초록빛 눈동자가 사람의 혼을 쏙 빼놓는 것 같았다.
잠시 잊고 있었다. 평소에는 청순하기만 한 저 얼굴이 침대 위에서 얼마나 관능적으로 변하는지. 사람을 얼마나 애타고 미치게 만드는지.
이제 이성 따윈…….
아델의 뒷머리를 감싸며 크리스틴은 얄밉도록 유혹적인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아……!”
붉은 입술이 살며시 열리며 흘러나오는 가느다란 신음마저 달큼했다.
그는 사납게 밀고 들어가 허겁지겁 집어삼켰다. 호흡이 얽혀들고, 뒤섞이는 숨결이 뜨거워져서 이성 따윈 금방 휘발되어 버렸다.
점점 더한 갈증이 파도처럼 몰아치고, 미치도록 잇몸이 근질거려왔다.
여린 입술을 더 바싹 밀어붙이며 가느다란 허리를 날렵하게 안아 올렸다.
자연스럽게 아델이 양팔과 양다리로 매달려왔다.
그대로 탁자 위에 눕히고 치맛자락을 정신없이 걷어 올리자,
“너무 급해, 크리스……!”
아델이 몽롱하게 취한 얼굴로 키득거렸다.
성급한 속내를 들킨 크리스틴은 인상을 썼다.
“경고했어. 취했다고 봐주지 않을 거라고!”
아델은 겁을 먹기는커녕 오히려 그의 뺨을 감싸며 자신을 똑바로 보게 했다. 유혹하듯 초록빛 눈동자를 반짝이며, 새빨갛게 젖은 입술을 달싹여 속삭였다.
“봐주지마, 크리스. 오늘 밤은 당신 원하는 대로 가져.”
“……!”
“특별한 날이잖아. 스톤 그놈을 잡은.”
“하지만 놈의 숨통을 끊기 전엔 안심할 수 없어.”
“알아. 그래도 오늘만은 아무 생각 말고 파티를 즐기고 싶어.”
아델은 그에게 입을 맞추며 목덜미를 쓰다듬고 탄탄한 가슴과 배를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그 보드라운 손이 스칠 때마다 크리스틴은 온몸이 간질거려서 참을 수가 없었다.
‘이 여자는 도대체 날 어디까지 몰아붙일 생각일까?’
지금껏 그녀를 안을 때마다 폭주하지 않기 위해 항상 조심했다. 자칫 이성을 잃고 폭주해서 다치게 할까 봐, 늑대의 모습을 들킬까 봐.
그러면 모든 것이 끝이었으니까.
그럴수록 아델은 그를 시험이라도 하듯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것 같았다.
날뛰는 본능을 겨우 억누르며 그는 아델의 손을 감싸 쥐고 손가락마다 정성스럽게 입을 맞췄다.
“훗, 간지러워…….”
“참아. 파티는 지금부터 시작이니까.”
그가 준엄한 목소리로 말하자, 아델은 어깨를 움츠리며 쿡쿡 웃었다. 그러다 차츰 꿈을 꾸는 것처럼 나른하게 눈을 감으며 온몸이 풀어졌다.
그 모습을 놓치지 않고 지켜보며 크리스틴의 입맞춤이 좀 더 야하고 은밀해졌다.
“흐으응…….”
아델의 뺨은 점점 빨갛게 홍조를 띠었고, 숨소리가 달짝지근하게 달아올랐다.
툭. 툭.
단추가 열리고, 젖은 옷가지들이 하나둘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
두툼한 목을 끌어안고 아델은 가늘게 비명을 터트렸다.
입술을 꼭 깨문 그녀의 눈가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땀에 젖어 잔뜩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방만하게 흐트러진 모습이 미치도록 유혹적이었다.
깊은 숲을 닮은 눈동자에 갇혀버린 것처럼 그는 조금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녀를 지독하게 몰아붙이고, 타락시키고 싶은 욕망에 사로 잡혀버렸다.
“괜찮아?”
그럴수록 남은 이성을 짜내 물었다.
이대로 계속 괜찮은지, 허락이라도 구하듯이.
“으응…….”
아델은 열에 들뜬 몸을 한껏 밀착하며 매달려왔다.
그것만으로도 허리 아래가 자글자글 끓어서 그는 숨쉬기가 곤란해졌다.
조금만 움직여도 정수리를 꿰뚫는 쾌감에 돌아버릴 것만 같았다.
“제길……!”
저도 모르게 욕설이 나와 버렸다.
지독하게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는 쉬어 있었다.
그의 움직임이 거칠어지자, 아델은 못 견디겠다는 듯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쳤다. 그러다 이내 원하고 매달리며 울부짖었다.
그녀는 가련한 새끼 짐승처럼 애처로웠고, 또한 요염한 요부처럼 관능적이었다.
아무리 가지고 가져도 부족했다.
“크리스…… 제발!”
애원하는 그녀의 귓가에 음란하게 속삭였다.
“걱정하지 마, 아델. 오늘 파티는 밤새도록 계속될 거니까.”
초점이 풀어져서 몽롱하던 초록빛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 짐승……!”
그는 오히려 짓궂게 웃었다.
“그러니까 잠들지 말고 즐겨, 아델.”
“이젠 진짜 졸려…….”
“잠들면 나, 정말 짐승이 될지도 모르는데.”
감미로운 협박에 아델은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입꼬리를 살며시 올렸다.
“괜찮아……, 너라면.”
그러더니 어느새 스르르 눈꺼풀이 감겨버렸다.
자신이 내뱉는 말이 얼마나 위험한지 조금도 모른 채.
제 앞의 짐승이 얼마나 흉포하고 사나운지 짐작조차 못 하고서.
그러니 이토록 숨 막히게 타락한 모습으로 이토록 무방비하게 잠들어 버린 것이리라.
“후회할 텐데, 아델.”
그 위험스러운 목소리에도 그녀에게선 대답이 없었다.
아래층의 시끌벅적하던 소리도 모두 사라져, 사방은 그저 고요했다.
타닥, 타닥.
오직 고즈넉하게 타오르는 벽난로 소리와 새근거리는 그녀의 숨소리뿐이었다.
평화로운 이 밤.
오늘 밤 그녀는 온전히 제 것이었다.
이 굶주린 짐승에게 바쳐진 아름다운 제물.
내쉬는 숨이 뜨거웠다.
깜빡 잠이 들었던 걸까?
무거운 눈꺼풀을 가까스로 들어 올리자 강철같은 절벽이 가로막고 있었다.
불빛에 일렁이는 그 절벽은 온통 땀으로…….
아델은 그제야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깨달았다.
억센 힘으로 그녀를 끌어안은 남자는 도저히 놓아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
순간 온몸에 쾌락의 파도가 휘몰아치자, 아델은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리고, 메마른 목에서는 쉬어버린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러면서도 이 파도에 온전히 몸을 내맡겼다.
이토록 지독한 욕망이라니……!
하지만 묘한 충족감에 자꾸 웃음이 나왔다.
온전히 서로에게 각인 되었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그녀가 크리스틴이 아니면 안 되는 것처럼, 그 역시 그러리라는 걸…….
이제 다른 어떤 여자들도 자신을 대신할 수 없다는 걸.
몽롱하게 풀어진 시야 안으로 조용히 응시하는 다정한 청회색 눈동자가 들어왔다.
아델은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크리스, 나의 아름다운 짐승.’
***
아델이 눈을 떴을 땐 침대 옆이 비어 있었다. 그는 벌써 출근했나 보다.
“좀 깨워서 인사라도 하고 가지.”
바쁜 연인을 둔 아델에겐 익숙한 일이었지만, 항상 아쉬웠다. 이렇게 일어나면 그토록 뜨거운 사랑을 나눈 것이 꼭 혼자만의 꿈이었던 것 같았으니까.
꿈…….
그러고 보니 이번에도 또 은빛 늑대의 꿈을 꾸었다.
크리스틴과 사랑이 뜨거워지는 날엔 꼭 그랬다. 그녀의 침실에 은빛 늑대가 나타나곤 했다.
더 이상한 것은 그 은빛 늑대가 너무나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역시 크리스틴이 은빛 늑대……?
‘무슨 말도 안 되는!’
얼른 생각을 털어버린 아델은 옷을 갈아입고 1층으로 내려갔다.
“좋은 아침!”
거실 탁자에서 차를 마시던 미아가 손을 들어 인사했다.
“아침이라고?”
새벽까지 크리스틴과 함께 있다가 아주 푹 자고 일어난 것 같은데 아직도 아침이라니.
미아가 살며시 눈을 흘기며 놀렸다.
“너 이틀 만에 일어났어. 난 어디 아픈가 해서 걱정했는데, 하인들은 전부 태연하더라. 자주 있는 일인가 봐? 둘이 며칠씩 사랑을…… 읍!”
민망해진 아델은 미아의 입을 틀어막으며 얼른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타냐는? 몸은 괜찮대?”
“타냐는 걱정하지 마. 거기도 역시 사랑의 힘인지 아주 쌩쌩해.”
“사랑의 힘?”
미아가 살며시 목소리를 낮췄다.
“몰랐어? 짐머 경과 둘 사이에 핑크빛 기류가 흐르는 거.”
아델도 슬그머니 웃었다.
“그치? 네 눈에도 그렇게 보이지?”
“내가 보기엔 아직 서로 간 보는 단계 같아. 요즘 말로 썸이라더라. 원래 그때가 제일 좋을 때 아니겠어?”
“내 말이. 한창 좋을 때지.”
“지금 뭐 하세요, 두 분?”
맞장구치던 아델과 미아는 얼른 뒤를 돌아보았다.
“타, 타냐!”
타냐가 허리에 양손을 올린 채 두 사람의 가늘게 노려보고 있었다.
“두 분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면 안 되죠. 진짜 가진 자들이 더 무섭다더니…….”
아델과 미아는 서로 눈치를 보다가 동시에 타냐의 뒤를 가리켰다.
“어머, 짐머 경!”
하지만 타냐는 허리에 손을 올린 채 눈도 깜박 안 했다.
“그런 얄팍한 수로 도망칠 생각 마세요, 두 분!”
“진짜야, 타냐.”
아델이 재차 확인시켜주었지만 타냐는 손가락을 좌우로 흔들었다.
“설령 지금 그분이 나타난다고 해도 저랑 무슨 상관이죠? 절 구해주신 건 고맙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그분의 일이었을 뿐인걸요.”
“맞습니다, 어디까지나 제 일이었죠.”
짐머의 목소리에 타냐가 놀라서 돌아보았다.
“지, 짐머님……!”
“예, 그러니 혹시라도 부담 갖지 마십시오.”
짐머 딴엔 배려라고 생각해서 한 말이었겠지만,
“당연하죠. 그럼 전 그만 일하러 가볼게요.”
아무렇지 않은 척 돌아서는 타냐는 상처받은 표정이었다.
그런 두 사람을 보며 아델과 미아는 나직하게 혀를 찼다.
둘 다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