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에이프릴의 거짓말
(82/155)
82화. 에이프릴의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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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화. 에이프릴의 거짓말
2022.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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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시간에 무슨 일인가요? 단장님도 같이 돌아오신 건가요?”
아델은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갖고 짐머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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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장님께선 연쇄 살인사건 마무리 때문에 며칠 못 들어오실 것 같답니다. 저택에 별일은 없는지 살펴보라고 하셔서 잠시 들렀습니다.”
아쉬웠지만 아델은 내색하지 않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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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별일 없으니 안심하라고 전해주세요.”
그러자 미아가 얼른 끼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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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은 무슨. 아델이 걱정되니까 한번 살펴보라고 하신 거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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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뭐…….”
짐머가 정곡을 찔린 듯 어정쩡하게 웃었다.
크리스틴은 어제부터 계속 황궁의 검시관과 함께 있었다. 스톤을 체포했지만, 오스월드가에서 나온 백골의 신원을 아직 밝혀내지 못한 것이다. 아마 며칠은 더 걸릴 모양이다.
그런 와중에도 아델이 계속 걱정되는 눈치였다. 한동안 둘 사이가 냉랭하더니 며칠 전엔 꽤 뜨거웠나보다. 수시로 짐머를 보내서 저택에 별일은 없는지 살펴보라고 했다. 사실은 저택이 아니라 그녀가 궁금했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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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됐으니까 타냐도 한번 살펴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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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그게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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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머 경이 구한 사람이니까 끝까지 보살피는 것도 경의 몫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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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보이던걸요.”
짐머의 답답한 대답에 결국 미아가 끼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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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소리예요. 내 눈엔 억지로 괜찮은 척하는 걸로 보이던데!”
아델도 한마디 추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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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냐가 원래 아파도 내색을 잘 안 하는 성격이거든요. 그렇게 갇혀 있었으니 한동안 불안해할 거예요.”
두 사람의 성화에 짐머는 엉거주춤하게 뒷걸음질 치다가, 곧 결심한 듯 타냐가 사라진 곳으로 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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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꺅! 좋을 때다.”
미아는 자신의 연애인 것처럼 팔짝 뛰며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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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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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뭐라니. 정말 가진 자들이 더 무섭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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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미아, 너야말로 다 가졌잖아. 곧 태어날 아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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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는 넌? 어쩌면 지금 임신하고도 모르는 거 아니야? 날짜를 한번 잘 따져보라고.”
임신이라는 말에 아델의 표정이 흔들렸다. 물론 미아에게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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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좀 더 천천히 갖기로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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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왜?”
의외라는 듯 눈을 크게 뜨던 미아는 곧 이유를 짐작하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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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신혼의 재미를 좀 더 즐기고 싶으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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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런 셈이지.”
아델은 어깨를 으쓱하며 맞장구 쳐주었다.
아무리 미아라도 둘 사이의 사정을 모두 말할 수는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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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 요 앙큼하고 야한 것!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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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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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부럽다는 듯 야유를 보내던 미아가 갑자기 배를 감싸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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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래? 어디 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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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좀 이상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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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상한데? 의사를 부를까?”
놀란 아델과 달리 미아는 조금 야릇한 표정으로 자신의 배를 어루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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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속에서 물방울이 퐁퐁 터지는 느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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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방울? 설마 태동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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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겠어. 기분이 진짜 이상해. 아아…… 또야…… 와, 진짜 이상해. 근데 나, 이거 너무 좋아.”
미아는 환해진 얼굴로 까르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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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져봐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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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아델도 미아의 배를 조심스레 만져봤지만 아직은 아무 느낌도 들지 않았다. 하지만 미아는 계속 신기해하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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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진짜 실감이 나. 내 배 속에 정말 우리 아이가 자라고 있다는 게. 어서 그이에게 알려줘야 하는데, 퇴근할 때까지 어떻게 기다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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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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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아델, 둘만의 신혼 재미도 좋지만, 아이를 낳을 거면 빨리 낳아. 너와 그를 닮은 아이가 생기면 또 다른 행복이 기다릴 테니까. 우리도 아이를 임신하고부터 왠지 더 끈끈해진 느낌이야. 진짜 가족이 된 것 같다고 할까?”
확실히 지금의 미아는 누구보다 행복해 보였다.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려는 타냐와 능력 있는 약혼자를 둔 아델과는 다른 안정감이 그녀를 가득 채운 것 같았다.
크리스틴과 나의 아이…….
진짜 가족.
하지만 아직은 무리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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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금방 나오셔야 합니다.”
굳게 닫힌 철문 뒤로 간수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끼이익!
이내 철문이 열리고,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금발 여인이 안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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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월드 후작…….”
낡은 침대 위에서 팔을 괴고 누워 있던 스톤의 입매가 슬며시 올라갔다.
역시…… 올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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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나요, 후작?”
울먹이는 목소리에 스톤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앉았다.
눈앞의 에이프릴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스톤은 아직 죄가 확정되지 않은 구금 상태였다. 따라서 감옥으로 가기 전 시설에 격리되어 있었다. 좁고 낡긴 했지만, 침대와 집기들도 있었고, 창살이 쳐진 창문으로 햇살도 들어왔다.
하지만 에이프릴은 이런 곳에 갇혀 있는 그가 안타깝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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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에이프릴. 그대가 여길 어떻게…….”
그는 애달픈 표정으로 탄식하듯 그 이름을 불렀다.
그것만으로 에이프릴은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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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마시오, 에이프릴.”
그가 손을 뻗어 눈가를 닦아주자, 에이프릴이 와락 품으로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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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 미안해요, 후작. 내가 그렇게까지 아버님을 막으려고 애를 썼는데, 바이스 백작이 제멋대로 당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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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소. 고귀한 그대에게 그런 일을 시킨 게 미안할 따름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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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에요, 당신과 아버님을 위해서라면 그런 거짓말은 몇 번이라도 할 수 있어요. 전 정말 몰랐어요. 백작이 은빛 늑대라는 걸. 그토록 잔인하고 교활하다는 것도. 자신이 저지른 끔찍한 짓을 당신에게 뒤집어씌우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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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자가 폐하의 곁에 있는 게 더 걱정이오. 폐하께서도 자칫 전대 황제의 길을 밟게 되는 게 아닐지.”
그러면서 스톤이 슬쩍 바라보자 에이프릴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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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주세요, 후작. 제가 또 뭘 어떻게 하면 되죠?”
스톤은 에이프릴의 허리를 끌어당겨 제 무릎 위에 앉혔다. 그리고 어린아이를 달래듯 머리를 쓸어넘기며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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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그냥 이렇게 내 곁에 있어 주시오. 그대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힘이 되니까.”
에이프릴은 그 말에 감동한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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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상해요, 이런 당신을 의심하는 모든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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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만 날 이해해주면 괜찮소.”
에이프릴의 머리를 어루만지던 손이 자연스럽게 턱을 움켜쥐고 입술을 내렸다. 그러자 홀린 사람처럼 에이프릴이 그의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췄다.
순진한 황녀를 꾀는 것은 너무나 쉬웠다.
능숙하게 그녀를 탐닉해가는 스톤의 입꼬리가 뱀처럼 가늘게 올라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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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정신입니까, 폐하?”
크리스틴의 물음에, 얀은 미간을 모았다.
이제 저놈은 황제도 안중에 없는 모양이다.
제멋대로 스톤을 체포하더니, 놓아주라는 명령에 이토록 버릇없는 언사로 지껄이다니.
게다가 이제는 황제를 대하는 태도 따윈 개나 줘 버린 듯 제 책상 위에 걸터앉아 있기까지 했다.
하지만 얀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이 짐승 놈을 어떻게 할 재주가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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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말해두지. 내일까지 오스월드가에서 나온 사체의 신원을 밝혀내지 못하면 더는 가둬둘 명분이 없네. 하니 어서 돌아가 서두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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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비스 왕국의 사체와 놈의 저택에서 나온 백골 사체, 그리고 연쇄 살해된 사람들이 동일 수법으로 당한 것만으로도 증거는 넘쳐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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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만으로 귀족회를 설득할 수 없으니 문제지!”
얀이 흥분해서 소리쳤지만 크리스틴이 차분하게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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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회에선 아직 아무런 움직임도 없는 걸로 아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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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얀은 그의 시선을 얼른 피했다.
속을 꿰뚫을 것 같은 저 눈빛. 이제는 두려웠다.
놈에게 숨기는 게 많아질수록.
그랬다. 무슨 생각인지 귀족회에선 스톤의 일에 대해 침묵하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귀족회의 수장인 로드웰 공작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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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보니 증거는 더이상 의미가 없군. 네놈이 스톤을 놓아주고 싶어 하는 것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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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지금 무슨……?”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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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황녀님의 주치의가 왔습니다.”
시종장이 고하는 소리에 얀은 못마땅한 얼굴로 정중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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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다시 얘기하지, 바이스 백작.”
벌컥!
크리스틴은 인사도 없이 그대로 문을 열고 나갔다.
열린 문밖에는 에이프릴의 주치의가 진땀을 흘리며 서 있었다. 이곳에 불려온 이유를 짐작하는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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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오게.”
주치의가 집무실 안으로 들어오자 얀은 사납게 머리를 쓸어넘기며 책상 앞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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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프릴에 대해서 짐에게 할 얘기가 있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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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마마께서 묻거든 제가 임신했다고 해주세요. 이게 다 폐하를 위한 일이니 절 믿어주세요. 나중에 경의 공은 잊지 않을게요!”
주치의는 에이프릴의 당부를 떠올리며 대답을 망설였다. 그러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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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황녀님께선 아무래도…… 잉태 중이신 것 같습니다.”
얀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토록 아니기를 바랐건만.
그런 황제의 모습에 주치의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떨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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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구합니다, 폐하. 하지만 아직 정확한 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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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보게.”
얀은 혼자 남게 되자 책상 앞에서 머리를 감싸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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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그러다 갑자기 벌떡 일어나 책상이 부서지도록 주먹으로 내리쳤다.
쾅! 콰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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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톤, 이 개자식! 이 빌어먹을 짐승 놈!”
그는 벽에 걸린 검을 집어 들고 그대로 집무실 문을 박차고 나갔다.
감히 내 딸을!
이대로 놈의 목을 베어버려야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
멈칫!
그러나 사납던 걸음이 그대로 멈추고 말았다.
집무실 벽에 크리스틴이 기대 서 있었던 것이다.
순간 노화가 가라앉고 온몸의 피가 싹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설마 주치의와 하는 얘기를 들었을까?
하기야 못 들었을 리 없었다. 놈은 짐승보다 더 귀가 밝았으니까.
젠장, 좀 더 신중하게 움직였어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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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안 돌아가고 여기서 뭘 하나?”
가까스로 황제의 위엄을 갖춰서 물었다.
크리스틴은 몸을 돌려 얀을 똑바로 마주 보았다. 그의 입은 웃고 있었지만 두 눈빛은 얼음송곳처럼 날카롭고 매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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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알겠습니다. 폐하께서 오스월드가의 수색을 불허한 이유, 그리고 모든 증거가 명백함에도 스톤을 풀어주려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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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은 누가 들을까 봐 저도 모르게 주변을 흘끗 보았다.
다행히 주위에는 시종들과 근위대원들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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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소리인가?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안에 들어가서 하지.”
어떻게든 그를 달래서 안으로 데려갈 생각이었다. 만일 에이프릴의 일이 사람들의 귀에 들어간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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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군. 결혼도 안 한 황녀의 임신…….”
얀은 얼른 벼락처럼 호통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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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가려 하여라, 백작!”
황제의 매서운 기세에도 크리스틴은 물러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오히려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그를 보자 얀은 목이 졸리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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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작은 당장 물러가라! 근위대 뭣들 하느냐! 백작을 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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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움직이지 마라!”
서릿발 같은 크리스틴의 목소리가 공기를 갈랐다.
그 순간 근위대의 움직임이 일제히 멈췄다. 마치 자신들의 주인이 크리스틴인 것처럼.
그는 몹시 못마땅하다는 심기를 고스란히 드러낸 채 얀을 향해 가늘게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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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황녀의 혼전 임신도 추문이 될 텐데, 그 아이의 아비가 살인마라면……. 황실의 명예까지 나락으로 떨어지는 건 시간 문제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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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쳐라. 말도 안 되는 헛소리 집어치워!”
하지만 얀의 코앞에 바싹 다가온 크리스틴은 목소리를 한층 낮춰서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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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거 알고 있나, 얀? 늑대 일족은 평생 한 명의 반려와 잠자리를 한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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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간 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스톤은 이미 결혼을 한 전력이 있었다.
그렇다면 에이프릴의 임신은 거짓이란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