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8화. 제발 버텨줘, 크리스! (88/155)


88화. 제발 버텨줘, 크리스!
2022.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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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랴 핫! 이랴 핫!”

제니퍼가 정신없이 마차의 고삐를 흔들었다.

아델과 은빛 늑대를 태운 마차는 전속력으로 숲길을 가로질렀다.

챙! 챙!

마차 밖에서는 여전히 칼 부딪치는 소리와 비명들이 가득했다.

얀의 병사들과 W.G 제1 부대원들이 계속 싸우는 중이었다.

하지만 아델에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옷자락을 찢어서 피를 흘리는 은빛 늑대의 옆구리를 누른 채 수없이 기도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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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제발…….”

살아만 줘!

조금 전 은빛 늑대가 바닥으로 힘없이 고꾸라지자, 아델은 비명을 지르며 절벽을 뛰어 내려왔다. 그 가파른 절벽을 어떻게 내려왔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 사이 짐머가 마차를 끌고 와서 온몸에 화살이 박히고 피투성이가 된 은빛 늑대를 옮겨 실었다.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로드웰 공작도 함께 태웠다.

그사이 합류한 제니퍼가 마차를 몰고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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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를 많이 흘려서 정신을 잃은 것뿐, 괜찮으실 겁니다.”

짐머는 안심하라는 듯 말했지만 아델은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지혈을 해도 크리스틴의 옆구리가 자꾸 피로 젖어 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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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괜찮겠죠? 전쟁터에서도 이렇게 다친 적이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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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요…….”

짐머의 흔들리는 목소리에 아델은 낙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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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이 서투네요, 짐머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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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하지만 정말 괜찮으실 겁니다. 보통사람보다 상처가 훨씬 빨리 회복되시니까. 처음엔 저도 깜짝 놀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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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 일족이라서 그런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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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눈치채셨던 겁니까?”

짐머가 조심스럽게 묻자 아델은 힘없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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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요. 내 눈치가 많이 모자랐죠? 함께한 시간이 얼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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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장님께서 감추려고 애를 쓰셨으니 당연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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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머 경은 언제부터 알고 있었나요?”

짐머는 생각을 더듬듯 미간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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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언제부턴가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 것 같아요. 전쟁터에서는 다들 반쯤 제정신이 아닌 상태니까. 제 경우엔 오히려 강한 지휘관 밑에 있다는 게 안심된 것 같아요. 그래야 오래 살 확률이 높아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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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단 내에서 또 아는 사람들이 있나요? 제니퍼는 아는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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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대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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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요?”

아델은 깜짝 놀랐다. 그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데 어떻게 그가 은빛 늑대라는 비밀이 그토록 잘 지켜질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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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서도 다들 암묵적으로 모른 척하는 거죠. 단장님도 그걸 아시면서 또 모른 척하시고요. 공공연한 비밀이랄까. 모두 알고는 있지만 대외적으론 비밀인 그런 거요.”

짐머가 쑥스러운 듯 코끝을 쓱 문질렀지만 아델은 조금 씁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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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짐머 경과 자신의 기사들을 믿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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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는 마십시오. 단장님께서 아델 양에게 말하지 못했던 건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조금 다른 문제였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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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해요. 내가 은빛 늑대를 끔찍하게 증오했으니까. 그래서 말할 수 없었겠죠.”

이렇게 그의 존재를 인정하고 나니 아델은 수많은 감정이 휘몰아쳤다.

미안함, 연민, 회한, 후련함…….

분명한 건 그를 사랑하는 마음은 전혀 퇴색되지도, 흔들리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평소와 똑같은 그녀의 크리스틴일 뿐이다.

그저 모습이 바뀌었을 뿐 본질은 변하지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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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이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사람의 행세를 한다는 건 너무 끔찍하니까.”

 
그때 했던 그 말을 그가 기억하고 있을까?

상처받았겠지?

잊어줬으면 좋겠는데.

지금은 그저 그가 다시 건강하게 회복되길 바랄 뿐이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그가 늑대가 아닌 다른 어떤 괴물이라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의 늑대.

나의 짐승.

나의 사랑, 크리스틴.

***

겨우 블루게일 시내로 들어온 마차는 제일 큰 진료소 앞에서 멈췄다.

흰색의 커다란 2층 건물이었는데 다행히 안에 불이 켜져 있었다.

급하게 들어오는 마차 소리를 들었는지 누군가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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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인가요?”

머리에 하얀 보닛을 쓰고 하얀 앞치마를 두른 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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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한 환자입니다!”

짐머는 소리치며 크리스틴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는 어째선지 늑대의 모습에서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아델과 짐머는 서로 눈을 마주치며 잠시 고민했다.

늑대의 모습 그대로 진료소로 데리고 들어가도 될까?

아니, 그는 늑대의 모습이긴 했지만 평범한 늑대와는 확연히 달랐다.

게다가 이곳은 교황청이 지척에 있는 블루게일의 시내.

만일 이 수상한 늑대에 관한 얘기가 교황청에 들어간다면 그는 더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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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를 시키고 모두 죽이는 방법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짐머가 작게 속삭이자, 아델은 깜짝 놀랐다.

곱상한 얼굴로 그런 잔인한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다니.

하지만 아델도 잠시 마음이 흔들렸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되든 상관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에겐 오직 그를 살리는 것만 중요했으니까.

하지만 그럴 순 없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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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조금만 더 참을 수 있지?”

조심스럽게 털을 쓸며 귓가에 속삭이자 대답하듯이 그가 눈을 가늘게 떴다가 다시 감았다. 그것만으로도 몹시 힘겨웠는지 뜨거운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아델은 울음이 나올 것 같은 걸 억지로 참고 결정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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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소엔 로드웰 공작님만 옮기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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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단장님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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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생각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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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습니다.”

짐머는 머뭇거리긴 했지만 아델의 결정에 토를 달지 않았다. 이 순간 누구보다 크리스틴을 살리고 싶은 사람은 그녀였을 테니까.

짐머와 대화를 나눈 진료소 여인은 잠시 후 안으로 들어갔다. 곧 사람들이 들것을 가져와 로드웰 공작을 실었다.

그들은 마차 안에 있는 피투성이 늑대를 힐끔 쳐다보았을 뿐 공작을 싣고 바쁘게 뛰어갔다. 크리스틴만큼이나 공작의 상태도 위중했던 것이다.

공작의 보호자로 진료소에 함께 들어갔던 짐머가 잠시 후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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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님은 어떠신가요?”

짐머는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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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에게 빨리 알려서 임종을 준비하랍니다. 언제까지 살아계실지 장담할 수 없다고.”

아델의 입술 사이로 무거운 한숨이 흘러나왔다. 일분일초가 다급한 상황에서 가장 현명한 결정을 내려야 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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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짐머 경이 이자벨 선황후에게 가주세요. 절대 황제가 먼저 알아서는 안 됩니다. 서두르세요!”

황제는 크리스틴에게 로드웰 공작의 암살을 맡긴 것이다. 그래놓고 병사들과 스톤을 보내 그의 뒤를 칠 계획을 세운 배신자였다.

만일 공작이 잘못된다면 크리스틴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빠져나갈 것이다. 더구나 크리스틴의 상태로 봐선 당분간 황제와 대적 할 수 없을 테고.

그러니 적어도 이자벨이 도착할 때까지는 살아있어야 했다.

그래야 그가 누명을 쓰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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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아델 양 혼자서 단장님을 돌보겠다는 겁니까?”

물론 짐머도 그녀와 같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다 죽어가는 크리스틴과 아델만을 남겨두고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델은 오히려 씩씩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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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퍼도 있고 곧 기사단도 합류 할 테니 걱정하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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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걱정 말라고!”

마차를 몰고 오느라 진이 다 빠져있던 제니퍼가 다시 큰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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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진료해주실 적임자도 떠올랐어요. 그러니 어서 서둘러요, 짐머 경!”

아델이 채근하자 짐머도 더는 망설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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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그럼 아델 양만 믿겠습니다! 제니퍼, 두 분이 조금이라도 잘 못 되면 네놈은 내 손에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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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려 마. 내 가운뎃손가락을 걸고 맹세하지.”

제니퍼는 짐머를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높이 치켜세우며 씩 웃었다.

잠시 후 짐머가 진료소에서 빌린 말을 타고 질주하기 시작하자, 제니퍼도 손가락을 접으며 아델을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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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어서 가죠. 근데 어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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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힐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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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힐이라고요?”

그린힐까지는 마차로 밤새 달려도 날이 밝을 무렵에 도착할 것이다. 그때까지 그가 버텨줄지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그러나 아델은 흔들림 없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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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만한 의사 선생님이 거기 계시니까요.”

그 말에 제니퍼는 더이상 토를 달지 않았다. 짐머와 마찬가지로 그를 가장 살리고 싶은 사람이 그녀라는 걸 알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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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지금부터 전속력으로 달리겠습니다. 이랴 핫!”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아델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은빛 늑대를 꼭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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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내가 잘 결정한 거겠지?”

그가 다시 힘겹게 눈을 떴다가 감았다. 마치 그녀의 물음에 대답이라도 하듯이.

그토록 애를 쓰며 자신에게 화답하려는 그 모습에 아델은 울컥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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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 그때까지 제발 버텨줘,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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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하늘이 푸르스름하게 밝아오고 있었다.

아침 일찍 눈을 뜬 마크는 버릇처럼 2층으로 올라갔다.

제이드와 폴린은 나란히 놓인 침대에 누워 곤히 잠들어 있었다.

폴린은 언젠가 아델이 구해준 마을의 술주정뱅이 아들이었는데, 이제는 마크 가족과 한 식구처럼 지내고 있었다.

그리고 폴린 덕분에 그는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워낙 일이 바쁘다 보니 제이드와 함께할 시간이 늘 부족했다. 그러면서도 홀로 있는 어린 아들이 마음에 걸리곤 했었다.

하지만 폴린이 오고 나서부터 제이드는 마크보다 더 바빠 보였다.

폴린에게 글자와 숫자도 가르쳐주고, 둘이 함께 나가서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노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러면 초저녁부터 곯아떨어지곤 했다.

그 덕분인지 요 몇 달 사이 폴린과 제이드는 훌쩍 커서 제법 소년의 태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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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 그래도 이불은 덮고 자야지. 감기 든다.”

마크는 제이드가 걷어찬 이불을 끌어 올려 덮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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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그 바람에 잠에서 깼는지 제이드가 부스스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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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 더 자. 아직 새벽이야.”

하지만 청개구리 습성이 있는 아들은 오히려 잠에서 깨려고 눈을 비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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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나 꿈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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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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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델 아줌마가 우리 집에 와서 쿠키 구워주는 꿈.”

아델의 이름에 마크는 가슴 한 곳이 싸해졌다.

그녀에게 아직 정리되지 못한 마음이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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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구나. 좋은 꿈이었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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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근데 아줌마는 이제 안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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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그럴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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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난 보고 싶은데. 아델 아줌마도 나 보고 싶다고 답장 보냈어.”

마크는 쓰게 웃으며 제이드의 앞머리를 살며시 헝클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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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폴린 형이 있잖아.”

제이드는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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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린 형이 있으니까 아델 아줌마까지 있으면 더 좋잖아. 아빠. 엄마, 형, 그리고 나. 그렇게 다 있어야지 그림이 예쁘지.”

가족 그림을 말하는 것이었다.

제이드의 가족 그림엔 항상 아빠와 자신, 둘 뿐이었으니까.

마크는 제이드의 침대에 걸터앉아 아이의 뺨을 어루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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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드는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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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아델 아줌마같이 예쁘고 요리 잘하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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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생각해보자. 하지만 아델은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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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난 좋은데. 아델 아줌마도 나 좋아한단 말이야.”

그러다 아이는 뭔가 깨달은 듯 눈을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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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설마 아델 아줌마가 아빠를 싫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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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글쎄? 하지만 아빠보다 더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건 확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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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바이스 백작 아저씨?”

마크는 깜짝 놀랐다. 아직 어린아이인 줄만 알았는데 어느새 그런 것까지 다 눈치채고 있었다니.

자신이 어린 아들에게 속마음을 털리고 있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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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 더 자.”

침대에서 일어서는데 제이드가 얼른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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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그 아저씨 콩 싫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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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마크가 무슨 뜻이냐는 듯 돌아보자 제이드가 씩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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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그랬잖아. 콩을 먹어야 힘이 세지고 건강해진다고. 그러니까 그 바이스 백작 아저씨는 아빠보다 더 약할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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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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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도와줄게, 아빠. 그 아저씨랑 싸워! 나 그 아저씨랑 싸워서 이겼어!”

한껏 진지한 제이드를 보며 마크는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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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평화주의자야. 그리고 아델 아줌마는 싸워서 이긴다고 아빠를 더 좋아할 것 같지 않은데.”

바이스 백작과 싸워서 이길 수 없다는 얘기는 결코 할 수 없었으니까.

제이드는 울상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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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미워! 바보!”

이불을 뒤집어쓰는 아들을 보며 마크는 한숨을 쉬었다.

폴린 덕분에 덜 외로움을 타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엄마만이 채울 수 있는 마음의 빈자리는 여전히 그대로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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