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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화.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해 (112/155)


112화.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해
2023.02.27.



 


“소식 들었습니까!”

날이 밝기도 전에 제니퍼가 아델의 방문을 벌컥 열었다.


“제니퍼, 무슨 일이에요?”

놀란 아델을 보자 그는 노크를 깜빡했다는 걸 깨닫고 얼른 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선 벌컥, 후 노크로군요. 들어와요.”

“죄송합니다. 워낙 급한 일이라.”

목발을 짚고 다가오는 제니퍼의 손에는 ‘칼라임 타블로이드’가 들려있었다.

아델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의 소식이 실렸나요?”

“읽어보시는 게 더 빠를 겁니다!”

제니퍼는 아델의 앞에 소식지를 내밀었다.

[바이스 백작, 봉인된 늑대 일족을 깨우다!]

소식지의 타이틀만으로도 아델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결국 그가 늑대 일족의 봉인을 해제시킨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좋아진 건 아니었다.

그 일로 전 세계에 전쟁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었으니까.

늑대 일족은 교황청과 대치중이었고, 각국에서는 교황청에 지원군을 보내는 중이라고 했다.

자칫하다간 엄청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 있는 상황.


“제가 가서 단장님을 만나볼까요? 아델 양의 임신 소식도 알리고.”

아델은 엷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건강한 제니퍼였지만 그의 다리는 좀처럼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제도 마크가 한참 걱정을 했었다.


“제니퍼도 아직 치료 중이잖아요. 그가 무사한 걸 알았으니 그걸로 됐어요.”

아델은 이 위험한 상황이 더 크게 번지지 않기만을 바랐다.

그리고 이 전쟁의 칼자루를 쥔 사람이 크리스틴이라면 곧 그렇게 될 거라고 믿었다.

그는 아델만큼이나 전쟁을 원하지 않을 테니까.

***

며칠 후.

늦잠을 잔 아델은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일어나 수도원의 창문을 열었다.

하늘은 청명했고, 달짝지근한 바람이 코끝을 스쳤다.

그리고 사람들이 나누는 얘기 소리가 들려왔다.


“소식 들었어요? 늑대 일족이 그렇게 흉포하다면서요?”

“흉포하다 뿐인가요? 바이스 백작이 글쎄, 사제들까지 잡아먹는대요!”

“잔인무도한 놈! 그런 짐승인 줄도 모르고 영웅이라고 떠받들었던 걸 생각하면 소름이 돋아서 원.”

마크에게 진료를 받으러 온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였다.

아델은 얼른 창문을 닫고 배를 감싼 채 침대로 가서 이불을 덮었다. 배 속의 아기에게 그 소리가 들리기라도 할 것처럼.


“듣지 마, 아가. 바이스 백작님은 아주 좋은 분이야. 네가 생겨난 걸 알면 정말 기뻐할 거야.”

가만히 배를 토닥이던 그녀는 머리맡에 놓여 있는 타블로이드지를 읽어보았다.

그녀는 요새 시중에 발간되는 소식지를 모두 구독 중이었다. 전쟁의 소식을 알리기 위해 칼라임 타블로이드뿐만 아니라 우후죽순으로 여러 소식지가 발간되고 있었다.

물론 대부분 흥미본위로 크리스틴을 흉포한 짐승으로 묘사하고 있었다.

그가 살아 있는 사람을 잡아먹는다거나, 악마의 힘을 빌려서 죽은 늑대 일족을 살려냈다거나…….


“모두 터무니없고 자극적인 내용뿐이야.”

아델은 절망적인 얼굴로 타블로이드지를 내려놓았다.

사람들이 그를 잔인하고 교활한 악마라며 떠들어대는 건 이런 소식지의 영향이 컸다. 지난겨울만 해도 전쟁의 영웅이라며 추켜세우던 것은 까맣게 잊고서.

하지만 전쟁의 상황을 알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이런 소식지라도 읽어야 했다.

그의 병력은 대략 3만 명 정도.

교황청은 마법 쉴드를 치는 사제들 외에 10만여 명의 성기사단이 싸우고 있었다. 게다가 각국에서 계속 지원군과 사제들을 보내는 중이라고 했다.

다들 크리스틴의 군대가 얼마 못 가 참패할 거라고 했다.

***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마크가 들어왔다.


“좋은 아침이에요, 아델. 몸은 좀 어때요?”

“많이 좋아졌어요. 움직여도 될 정도로.”

그녀의 생각을 알아차린 마크가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아직 블루게일까지 가는 건 무리예요.”

“정말 안 될까요?”

“그렇게 불쌍하고 애처롭게 바라봐도 소용없어요.”

“마차를 타고 가는 건 어때요?”

“마차가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다면요.”

블루게일까지 가려면 아침에 떠나도 저녁이나 도착할 것이다. 게다가 험난한 길도 꽤 많았다.


“허락해주기 싫으면 싫다고 하세요.”

“내 허락이 필요한 문제가 아닐텐데요?”

“미안해요. 알면서도 답답해서 괜히 투정 부려봤네요. 이 몸으로 그에게 간다면 오히려 민폐일 텐데.”

“특히 아기에게 민폐죠. 이제 겨우 안정적으로 자리 잡았는데.”

“그러네요. 자꾸 깜박깜박해요. 이 아이를 지켜줄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걸.”

아델은 씁쓸하게 웃으며 아직은 납작한 배를 어루만져 보았다.


“그래서 말인데요, 아델. 나는 오늘 집으로 돌아가려고 해요. 당신도 함께 가는 건 어때요?”

이 수도원은 그린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그린힐 외곽에 있던 아델의 저택까지도 마차로 1시간 남짓이면 충분히 도착할 거리였다.


“그러는 게 좋겠네요. 집에 돌아가서 그에게 편지를 써야겠어요.”

그러자 마크가 난감한 표정으로 코를 긁적였다.


“그게…… 당신도 우리 집으로 가야 할 것 같아요.”

“당신의 집으로 가다니요?”

“아가씨의 집에 불이 났어요.”

뜻밖의 말에 아델이 돌아보았다.

마크의 조수 쥬디가 방으로 들어오며 어색하게 웃었다. 겉옷을 팔에 걸치고 있는 걸 보니 지금 막 이곳에 도착한 것 같았다.


“오랜만이에요, 아델 아가씨.”

“반갑지만 기뻐해 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우리 집이 도대체 왜…….”

쥬디는 대답을 망설이며 마크를 흘끗 보았다.

그래서 아델은 그에게 대신 대답을 구했다.


“내게 뭔가 숨기는 게 있나요?”

쥬디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대답했다.


“사람들이 아가씨의 집에 불을 질렀어요.”

“사람들이 왜요?”

“그게…… 바이스 백작님의 약혼녀가 살던 집이라면서. 보니타 부인은 말리다가 크게 다칠 뻔했고요.”

아델은 깜짝 놀랐다. 미아는 지금 한창 배가 불러 있을 텐데.


“그래서 미아는 괜찮나요?”

“네, 하지만 동네 분위기가 흉흉해서 제가 이렇게 남작님을 모시러 온 거예요. 제이드와 폴린도 불안해하는 것 같고…….”

잠시 생각에 잠겼던 아델은 단호하게 말했다.


“마크, 아무래도 난 당신과 함께 돌아갈 수 없어요. 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까지 같이 위험해지는 건 끔찍하네요.”

“염려 말아요, 아델. 사람들은 불안해서 만만한 데다가 화풀이를 한 거니까.”

쥬디가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다들 바이스 백작님을 두려워하고 있어요. 늑대 일족이 교황청을 무너뜨리고 사람들을 마구 잡아 죽일지 모른다면서.”

아델은 크리스틴을 대신해서 억울해했다.


“그는 누구보다 평화를 원했어요! 끝까지 싸움에 휘말리지 않고 루스울프로 돌아가고 싶어 했는데…….”

교황청에서 그를 궁지에 몰아넣지 않았다면 이런 일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들의 믿음이 위협받고, 삶이 파괴될지 모른다는 사실만으로 두려워했다.

교황청이 지독히 타락하고 위선적이라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알아요, 아델. 그러니 백작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는 당신부터 무사해야죠. 함께 가요.”

제니퍼도 방으로 들어오며 우렁차게 말했다.


“캐슬러 남작님 식구들과 아델 양은, 이 제니퍼가 끝까지 지킬 테니 염려 마십시오! 그러니 함께 가요, 아델 양. 당신 아이에게도 안정된 보금자리가 필요하잖아요.”

아이…….

엄마란 참 이상했다.

아니, 아직 엄마라는 자각조차 없었는데도 아이 얘기만 나오면 그녀는 이상하게 약해졌다.

그래서 기꺼이 염치없는 사람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럼 신세 좀 질게요.”

 

 

***

블루게일을 흐르는 거대한 강줄기 앞에는 수많은 별장이 있었다.

과거에는 권세가들의 별장이었으나 지금은 크리스틴의 군대가 병영으로 쓰는 중이었다.

별장으로도 모자라 길가에는 수많은 막사가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그중에 가장 높은 언덕에 있는 검은 막사가 단장인 크리스틴의 것이었다.

그의 막에서는 아침부터 지휘관 회의가 한창이었다.


“모두 철수하고 우리는 루스울프로 간다!”

크리스틴의 말에 막사 안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 누구도 생각지 못한 폭탄 발언이었다.


“안됩니다! 이제 곧 교황청이 함락되기 직전인데 왜 갑자기!”

제일 먼저 W.G 제2 기사 단장이 반대하고 나섰다.

온몸이 털로 뒤덮인 거구의 남자도 우렁차게 동조했다.


“제 정신이십니까? 교황청 놈들을 내 손으로 찢어 죽이기 전엔 못 떠납니다!”

그는 바울로라는 자로, 봉인되기 전 늑대 일족의 수장이라고 했다. 늑대 일족은 시간이 멈춘 채로 100년 넘게 봉인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바울로를 포함해 모두 그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자신을 둘러싼 지휘관들을 둘러보며 크리스틴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지금 식량과 무기가 고갈되기 직전이다.”

“그럼 마을을 습격해서 식량을 구해오면 될 거 아닙니까!”

바울로의 말에 크리스틴의 눈매가 매서워졌다.


“민간인에게 해를 끼치는 건 용서하지 않는다!”

“젠장! 인간 따위!”

늑대 일족은 교황청만큼이나, 인간에 대한 증오심도 컸다. 그러니 강력하게 제지하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해코지하는 걸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영원히 사람들 속에 어울려 살 수 없게 된다.

그걸 알기에 크리스틴은 그들이 민간인을 공격하는 건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


“그뿐 아니다. 곧 대규모 연합군이 들이닥칠 것이다.”

그 말에 작은 소요가 일어났다.

교황청과 싸움은 두 달 넘게 계속되었다.

엄청난 수의 성기사단과 사제들이 맞섰지만, 승세는 점점 아군에게 유리해졌다.

그러나 대규모 연합군이 교황청과 협공을 해온다면 어떻게 될지 몰랐다.

무엇보다 늑대 일족 중에는 싸울 수 없는 노인과 아이들도 많았으니까.


“그럼 루스울프로 가서 다시 교황청과 전쟁을 준비합니까?”

하지만 크리스틴은 그 물음에도 고개를 저었다.


“아니, 교황청은 당분간 포기한다.”

그러더니 지휘봉을 들어 탁자 위의 지도를 가리켰다.


“우리가 제일 먼저 노릴 곳은 여기다!”

지휘봉이 가리킨 곳은 루스울프 옆에 있는 캐디아 공국이었다. 작은 공국이었지만 철 생산량이 풍부해서 철기 부대가 유명했다.


“그다음은 오르비스 왕국, 그리고 다음은…….”

그의 지휘봉이 칼라임 제국 주변국을 차례로 가리켰다.


“원군을 보낼 주변국이 사라지면 교황청은 저절로 고립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칼라임을 압박하면 교황청이 설 자리가 없어지겠지.”

그러자 바울로가 늑대의 울음소리를 내며 함성을 질러댔다.


“우오오오! 역시 단장님은 다 계획이 있었군요!”

“정말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이 계획이 허무맹랑하지 않은 이유는 언급된 나라들은 이미 크리스틴에게 패배한 적이 있었다.

초반에 매서운 기세로 제압한다면 승산이 있는 싸움이었다.

만족스러운 회의가 끝나자 다들 막사를 나왔다.


“역시 단장님이시군. 근위대장인지 뭔지 한다면서 안 돌아오시기에 우릴 잊은 줄 알았지.”

W.G 제2 기사단장은 신나서 떠들어댔다. 그러다 짐머의 표정을 보고 멈칫했다.


“자네는 왜 그런 얼굴인가? 어마어마한 계획에 겁이라도 먹었나?”

“아니, 단장님께 보고할 게 있는걸 깜박했네. 먼저 가게.”

짐머는 다시 몸을 돌려 지휘관의 막사로 돌아갔다.

물론 크리스틴의 이번 전략은 가장 확실하고 위력적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전쟁이 얼마나 길어질지 몰랐다.

그러면 아델과는 너무 오랫동안 헤어져 있게 된다.


‘그녀에 대한 문제를 생각하고 있긴 하신 건가?’

봉인이 해제된 이후 그는 한 번도 아델에 관해 언급하지 않았다.

마치 그녀의 존재를 다 지워버린 사람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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