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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화. 마크의 울음 (140/155)


140화. 마크의 울음
2023.06.05.



 
마크는 믿을 수 없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대체 어찌 된 일입니까?”

“늑대 일족의 짓이에요!”

그들의 말대로 상처 입은 사람들의 몸에는 다섯 개의 발톱 자국이 나 있었다.


“알겠습니다. 일단 다들 들어오세요.”

진료소의 문을 활짝 열고 환자들을 들어오도록 했다. 퇴근하려던 직원들도 어느새 평소의 근무 태세로 들어갔다.


“에이미, 환자들부터 분류해주세요! 가벼운 부상자들은 복도에 줄을 세우고, 응급환자들은 매트 위에 눕혀요!”

“네, 백작님!”

“릴리, 보호자들을 데려가 응급처치에 필요한 물품들을 다 꺼내와요!”

“네, 백작님!”

“톰슨, 봉합 수술 준비를 부탁해요!”

“염려 마십시오, 백작님!”

재빨리 재킷을 벗어 던진 마크는 팔을 걷어 올리며 아수라장이 된 진료소를 진두지휘했다.


“아버지! 아버지!”

그때였다.

폴린의 비명 같은 외침 소리에 돌아보던 마크는 그대로 숨을 멈췄다.

납처럼 창백해진 얼굴에 흔들리는 눈동자를 가득 채운 것은 폴린의 등에 업힌 피투성이 제이드였다.

***

마크가 수술실을 나오자 폴린이 얼른 달려왔다.


“제이드는 어때요? 괜찮은 거죠?”

“…….”

대답 대신 마크는 넋을 놓은 얼굴로 휘청거리며 폴린을 지나쳐 갔다.

그의 하얀 셔츠, 얼굴과 손은 온통 피투성이였다.


“아버지! 제이드는요?”

폴린이 애가 타서 묻자, 그는 피투성이 손을 들여다보며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어……. 좀 더 빨리 손을 썼어야 했는데.”

폴린의 눈이 눈물로 그렁그렁해졌다.


“으흑! 죄송해요. 좀 더 빨리 뛰었어야 했는데.”

이제 보니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내는 폴린의 한쪽 다리는 온통 피투성이였다.

그런 다리로 제이드를 업고 다급하게 뛰어왔던 것이다. 그런 아이가 애처롭고도 미안해서 마크는 꼭 끌어안아 주었다.


“괜찮다, 폴린. 너도 얼른 가서 치료받으렴. 제이드는 살 수 있을 거야. 꼭 살아날 거야.”

기도문처럼 중얼거린 마크는 진료소의 복도를 벗어났다.

바닥은 어느새 피투성이였고, 다친 사람들이 살려달라며 그에게 매달렸다.

하지만 복도를 벗어난 그는 그대로 로비를 가로질러, 진료소를 나왔다.

***

건물 안은 피 냄새와 비명으로 가득한 생지옥이었는데 밖은 화창하기 그지없었다.

바람이 불자 화르르 벚꽃잎이 휘날리고, 이름 모를 들풀과 꽃향기가 싱그럽게 퍼졌다.

그냥 흔하디흔한 화창한 봄날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두 아이는 친구들과 피크닉을 간다며 신이 나서 저택을 나갔던 것이다.


‘그때 보내지 말걸…….’

온몸에 제 아이의 피를 뒤집어쓴 채 멍하니 서 있던 마크는 고꾸라지듯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직도 몸에 묻어 있는 아이의 피가 뜨거웠다.


‘환자도 없는 진료소에 나오지 말고 차라리 낚시를 데려갔더라면.’

수많은 후회가 밀물처럼 밀려와 목을 조였다.

숨이 막혀 헐떡이며 제대로 울지도 못하던 마크는 불현듯 한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건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

제이드를 저렇게 만든 건 늑대 일족이었으니까.

황제와 같은 피를 나눈 종족.


“마크! 제이드는요? 크게 다쳤다면서요?”

그때 진료소 정원을 가로지르며 숨 가쁘게 달려오는 아델이 보였다.

그는 잔뜩 걱정하는 그녀가 왠지 가증스럽게 느껴졌다.

늑대 일족을 사랑하고, 늑대 일족의 아이를 낳은 여자…….

늑대 일족이 이토록 활개를 치고 돌아다니는 것이 모두 그녀의 탓인 것만 같았다.


“그 아이가 계속 엄마를 찾았어요. 제이드가 아는 엄마는 당신뿐인데. 하긴 이제는 아니지.”

“세상에……! 제이드가 얼마나 다쳤어요? 괜찮은 거죠?”

울먹이며 소리치는 아델을 향해 마크는 비릿하게 웃었다.


“괜찮아야 할 거예요. 만일 그 애가 잘못되면 당신이 사랑하는 황제를 기필코 내 손으로 죽일 테니까.”

“아아, 마크!”

아델은 분노와 슬픔으로 떨고 있는 그를 꼭 안아주었다. 하지만 그는 아델을 밀어내며 돌아섰다.

정말이었다. 제이드를 건드린 게 누구든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기필코 지옥으로 보내고 말리라!

***

거리는 마치 전쟁터 같았다.

부서진 물건의 파편들과 짓밟힌 음식, 꽃, 그리고 미처 치우지 못한 핏자국들로 사방이 어지러웠다.

겁이 난 사람들은 모두 숨어버려서 인적조차 없었다.

그 위로 흐드러진 벚꽃잎이 내려앉고, 붉은 황혼이 물들어가는 풍경이 어딘가 을씨년스러웠다.

크리스틴은 말을 타고 짐머와 함께 사건 현장을 둘러보는 중이었다. 그러다 말발굽에 차이는 인형을 보고 말에서 뛰어내렸다.

아이의 손때가 묻은 인형에도 피가 잔뜩 튀어 있었다.


“빌어먹을……!”

짐머도 말에서 내려 다가왔다.


“늑대 일족이 갑자기 공격했다고 합니다. 수도 경비대조차 손을 쓰지 못할 정도로 순식간이었다고.”

크리스틴은 주위에 생긴 흔적들을 유심히 살피며 중얼거렸다.


“폭주한 흔적은 이 거리에 국한되어 있다. 게다가 여러 명이 구역을 나눠 체계적으로 움직였어. 마치 누군가의 지휘라도 받은 것처럼 단숨에 많은 사람을 해쳤지. 단순한 폭주가 아닐 거다.”

“계획적인 사건이라는 겁니까?”

“아마도. 사상자는 얼마나 되지?”

바닥을 살피던 크리스틴이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대략 30~40명 정도입니다. 2명은 이곳에서 즉사하고, 중환자들이 많아서 사망자는 계속 늘어날 겁니다.”

“범인은 잡혔나?”

“모두 4명으로, 큰 저항 없이 체포되었답니다.”

“전부 다 늑대 일족인가?”

“……예.”

칼라임 왕국의 치안을 담당하는 것은 러스티스 국왕과 그의 병사들이었다.

그러니 범인을 체포하는 것도, 처벌하는 것도 모두 그들의 소관.

하지만 범인들이 늑대 일족이었으니 크리스틴은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제길, 고작 4명이.”

“당분간 사람들이 늑대 일족을 더 경계할 겁니다.”

그린힐은 늑대 일족에 대한 혐오가 가장 큰 지역이었다. 더구나 이런 사건까지 벌어졌으니 배척하는 분위기는 더 강해질 것이다.

이 소식이 다른 왕국들까지 퍼진다면…….

이 사건은 늑대 일족에게도 치명적이었다. 인간들의 세상에 자연스럽게 섞여 살 수 없을 테니까.

이런 상황이 올까 봐 그는 일족에게 각별한 지침을 내려 주의를 시키고 있었다.

특히 늑대로 변해 무고한 사람을 해치는 자는 이유를 막론하고 처형했다.

그런데 네 명이 동시에 이런 일을 저질렀다면 뭔가 냄새가 났다.

***

크리스틴이 궁으로 돌아오자 날이 어두워졌다.

마침 마차에서 내리던 아델이 황제 일행을 발견하고 달려왔다.


“폐하!”

항상 담담하던 그녀가 창백하고 다급한 얼굴로 울먹이자 그는 덜컥 겁이 났다.


“아델, 무슨 일이야?”

“레아나가 필요해요! 그 애라면 제이드를 살릴 수 있죠?”

“제이드를 살리다니? 제이드가 잘못되기라도 했나?”

제이드를 어려서부터 보아 왔기에 크리스틴에게도 특별한 아이였다. 그 아이가 잘못됐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심장이 쿵쿵 뛰었다.


“모르겠어요. 아직 숨은 쉬는데…… 흑, 살아는 있는데…… 점점 몸이 차가워져요. 흑! 마크는 힘들 거래요! 어떡해요! 제발 우리 제이드를 살려줘요! 제발!”

아델은 크리스틴의 옷자락을 잡고 매달려 울음을 터트렸다.


“진정해, 아델. 케니, 레아나는 지금 어디 있나?”

그의 뒤에 서 있던 케니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실은 그 일로 보고를 드리려는 중입니다. 레아나 양과 계속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아침에 귀환 명령을 내렸을 텐데.”

“예, 그 이후로 레아나 양의 마나가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동행한 기사들도 갑자기 놓쳤답니다.”

크리스틴은 기분 나쁜 예감이 들었다.

아무리 천방지축인 레아나였지만 주군의 명령이라면 복종하던 그녀였다.

우려대로 모리스의 함정에 빠진 걸까?


“모리스가 늑대 일족들을 데리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어요. 그러니 무슨 일을 꾸미는지 좀 더 조사해볼게요.”

 
아침에 레아나가 했던 말도 자꾸 마음에 걸렸다.

오늘 사건은 모리스와 연관된 게 분명했다. 게다가 레아나의 실종까지.


“알았네. 케니 자네는 치유력이 높은 마법사들을 꾸려 아델과 함께 가게. 다른 위급한 환자들도 도와주고. 그리고 수색대를 보내 레아나를 계속 찾게.”

“예, 폐하!”

“짐머, 우린 검은 성으로 가서 범인들을 만난다.”

“예, 폐하!”

 
하지만 크리스틴이 검은 성에 도착했을 때는 범인들이 갇혀 있던 감옥은 비어 있었다.

그들이 모두 자결을 했고, 벌써 화장을 마친 후라고 했다.

감옥 안의 벽에는 혈서로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무고한 사람들을 해친 것에 대해 깊이 참회합니다.

일족의 수장에게 죽음으로서 사죄를!]

마치 짠 것처럼 4개의 감옥 모두 똑같은 내용의 유서가 있었다.

콰앙!

크리스틴은 주먹으로 벽을 후려쳤다.

저들이 죽음으로서 진실을 은폐하려는 냄새 강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토록 빨리 시신을 태워버린 건 이 사건의 단서를 지우려는 게 분명했다.

설마 칼라임 왕실도 연관이 있다는 건가?

그럴수록 반드시 밝혀 내야 했다.

누가 어떤 목적으로 이런 일을 벌인 것인지!


 

***

날이 서서히 밝아오고 있었다.

케니가 치유마법을 썼음에도 제이드는 창백한 얼굴로 깨어날 줄 몰랐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이의 숨소리가 편안해졌다는 것 정도.

마크는 그런 아이 곁을 떠날 줄 몰랐다.

걱정된 아델이 수프와 요깃거리를 가져다주었지만 그의 입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내가 있을 테니 제발 좀 쉬어요, 마크. 이러다 당신 먼저 잘못되겠어.”

한참 후 마크가 갈라진 목소리로 겨우 말했다.


“황제에게 돌아가요, 아델.”

“싫어요!”

“여기서 당신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아뇨, 난 제이드의 엄마예요. 이 아이가 길 잃지 않고 엄마를 찾아오도록 끊임없이 말 걸어 줄 거예요.”

“고집불통.”

“자주 듣던 말이네요.”

아델은 의자를 끌어다 제이드의 침대 옆에 앉았다.

포기한 듯 마크가 한숨을 쉬더니 다시 아이의 잠든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내가 왜 아론을 예뻐했는지 알아요? 기저귀를 차고, 옹알이하는 아론을 보면서 제이드가 아기였을 때를 상상했거든요. 아내가 죽고 얻은 아이라 버리듯 부모님께 맡겨버렸으니까.”

“그럴 수 있어요. 너무 사랑했던 사람을 잃었으니.”

아델은 마크의 어깨를 쓰다듬어 주었다.


“몇 달에 한 번 겨우 얼굴을 본 게 다였는데…… 볼 때마다 얼마나 예쁘게 잘 웃어주던지. 제일 처음 배운 말도 아빠였대요.”

솟구치는 울음을 삼키는지 마크의 목울대가 흔들렸다.


“결국 데려와 함께 살았는데, 그때부터 나도 웃기 시작했던 거 같아요. 그제야 후회가 되더라고. 이 아이를 더 일찍 안아주지 못했던 게. 오줌을 싸고, 우유를 토하고, 자다가 칭얼거리는 걸 내 손으로 해결해주지 못한 게. 이렇게 일찍 떠날 줄 알았다면…… 그때 좀 더 많이…… 많이 예뻐해 줄걸…….”

아델은 흐느끼는 마크의 어깨를 보듬어 주었다.


“제이드는 떠나지 않아요. 그럴 리 없어. 당신도 나도, 폴린과 아론도 이렇게 간절히 기다리니까. 그러니까 반드시 우리 곁에 돌아올 거예요. 그렇지 제이드?”

커다란 남자는 결국 아이처럼 소리 내 흐느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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