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 오스월드가의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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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화. 오스월드가의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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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화. 오스월드가의 몰락
2023.06.30.
제니퍼 부대와 함께 중정을 빠져나온 크리스틴은 계단에 앉아 치료를 받았다.
그는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왔는데 목덜미의 상처가 생각보다 깊었다.
같은 일족에게 얻은 상처라 회복하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
지혈했어도 목과 어깨에 감아놓은 붕대 위로 붉게 피가 번져 나왔다.
“치유 마법을 쓰는 게 좋겠습니다.”
“…….”
대답 대신 크리스틴은 무겁게 가라앉은 눈으로 참담한 광경을 응시했다.
성당 잔디밭에는 끔찍한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대다수가 그의 손에 죽은 자신의 일족들이었다.
젠장, 모리스……!
“폐하 잘못이 아닙니다. 그래도 시민 대부분은 무사히 빠져나갔습니다.”
제니퍼의 말도 큰 위로가 되지는 않았다.
“아무도 다치지 않게 끝낼 수 있을 줄 알았다. 내가 오만했어.”
“그러니 얼른 상처를 추스르고, 놈을 잡아야지요. 또다시 희생자들이 나오기 전에.”
“그래, 지금은 그게 최선이겠지. 케니!”
크리스틴의 부름에 응답하듯,
스스스…….
검은 로브의 케니와 수십 명의 마법사가 나타났다.
그들은 황제를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상황을 보고하라.”
케니가 대답했다.
“모리스와 사제들은 놓쳤습니다. 하지만 ‘트래킹 코인’이 있으니 금방 찾을 수 있을 겁니다.”
트래킹 코인은 바울로가 모리스의 주머니에 넣어둔 동전이었다.
평범해 보이는 동전에 특수한 향기를 묻혀놓은 일종의 추적기였다.
“크라이튼 공작은?”
“놈들의 본진을 습격 중이라고 합니다.”
모리스는 짐머를 결계에 가뒀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짐머의 부대원 중에 마법사들이 섞여 있었다.
덕분에 결계는 쉽게 풀렸고, 반란 사제들을 체포해 본진을 알아낸 것이다.
“바울로는 어찌 됐지?”
“우려하셨던 대로 모리스의 마법에 걸려 있었습니다. 다행히 제가 해제했고, 덕분에 그릴스 여백작님과 레아나 양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조금 전의 일을 생각하면 케니는 지금도 아찔했다.
그는 레아나에게 계속 고대어 마법을 배워왔던 것이다. 그래서 바울로에게 걸린 모리스의 마법을 해제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바울로가 늑대로 변하자 자신의 마법이 실패한 줄 알았다.
아델이 피스톨을 겨누며 늑대가 된 바울로와 마주 섰을 땐 모든 것이 끝나는 줄만 알았다.
그 순간 늑대 한 마리가 아델을 공격했고, 바울로가 무자비한 앞발로 후려쳤다.
그걸 시작으로 바울로는 수많은 늑대를 단숨에 물어뜯고 공격했다.
만일 일족 최고의 전사인 바울로가 모리스의 뜻대로 폭주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다행이군. 두 사람은 모두 괜찮은가?”
“여백작님은 바울로에 버금가는 전사셨습니다. 백발백중 솜씨에 저희가 다 놀랐습니다.”
바울로의 도움도 있었지만 마차가 그곳을 무사히 빠져나온 건 아델의 공이었다. 마차에 올라타려는 늑대들을 정확하게 명중시켜 떨어뜨렸던 것이다.
“당연하지. 누가 가르쳤는데!”
옆에서 듣던 제니퍼는 제가 더 으쓱해져서 소리쳤다.
크리스틴도 한시름 놓은 듯 엷게 웃었다.
“그런데…… 레아나는?”
케니는 이번만은 얼른 대답하지 못했다.
“그게…… 여백작님과 함께 안전한 곳에서 쉬고 있습니다. 마법은 이제…… 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알겠네. 고생했다.”
사실 크리스틴은 며칠 전부터 레아나를 주의 깊게 살피라고 했었다.
사흘 동안 행방불명이 된 후 나타난 그녀는 어딘가 달라져 있었으니까.
마법을 쓰는 걸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였고, 무엇보다 아론의 말이 마음에 걸렸다.
“누나가 자면서 울었어요.”
“자면서 울어?”
“네, 그리고 아주 작게 모리스…… 라고 했어요.”
그래서 오늘 그녀를 아델의 호위로 돌리고, 모든 작전에 케니를 내세운 것이다.
아델에게는 피스톨을 주며 모든 상황을 설명했고.
‘역시 그 사흘 동안 모리스와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생각에 빠진 크리스틴에게 케니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보다 상처가 심각합니다. 치유 마법을 쓰겠습니다.”
“음.”
케니가 나직하게 주문을 외자 붉은빛이 크리스틴을 감쌌다.
그동안 다친 기사들도 전부 마법사들에게 치료를 받았다.
자리에서 털고 일어난 크리스틴은 모여있는 수하들을 향해 소리쳤다.
“지금부터 우리는 모리스를 사냥하러 간다!”
“예, 폐하!”
우렁찬 외침이 하늘을 찌를듯했다.
***
이곳은 한때 오스월드 후작가라고 불리던 대저택이었다.
칼라임의 명문 귀족 가문으로, 넘치는 재산과 권력이 있던 곳.
그러나 이제 저택으로 들어가는 길목은 이름 모를 잡풀과 짐승들의 차지가 되었고, 거대한 철문은 넝쿨이 친친 휘감고 있었다.
언제 어디에서 무엇이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것처럼 을씨년스러운 곳.
사람들도 일부러 피해 다니는 흉흉한 폐허였다.
하지만 지금은 차라리 잘된 건지도 몰랐다.
세이라가 모리스와 사제들을 데리고 숨어들기엔 안성맞춤이었으니까.
“괜찮아요, 모리스?”
세이라는 간단하게 먹을 것을 찾아서 응접실로 들어왔다.
“…….”
빛바랜 라운지 체어에 앉은 모리스는 작게 고개를 끄덕일 뿐 말은 없었다.
겉보기에 그는 다친 곳이 없었다. 그러나 매우 피곤해 보였다.
수백 명이나 되는 늑대 일족을 마법으로 조종했으니 당연했다.
하지만 그의 피로함은 신체적이 아닌, 정신적인 것이 더 커 보였다.
‘모리스도 그렇게 어이없이 밀릴 줄은 예상 못 했겠지.’
오늘 계획했던 모든 일이 그들의 예상에서 어긋났다.
무엇보다 크리스틴과 싸우게 될 줄 알았던 바울로에게 마법 주문이 통하지 않았다.
그리고 레아나가 없었음에도 황제의 마법사들은 생각보다 강했다.
특히 그들 중에 고대어 마법을 쓸 줄 아는 자가 있을 줄은 몰랐다.
그로 인해 마법 대결에서 모리스는 많은 사제를 잃었다.
하지만 세이라는 그를 위로했다.
“당분간 황제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을 거예요. 특히 황제가 시민들을 구하기 위해 늑대 일족을 많이 죽었으니 내분이 생길 거고요. 우리는 여론몰이를 하며 때를 기다리면 돼요.”
그래, 아직 끝난 건 아니었다. 아니, 끝나지 않아야만 했다.
세이라는 오스월드가를 일으켜 세울 기회가 다시 올 거라고 믿고 싶었다.
그러자 모리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폐허가 된 응접실과 잘 어울릴 정도로 스산하기 짝이 없는 표정이었다.
그는 깨진 창틈으로 날아들어 오는 나비를 응시하고 있었다.
투명할 정도로 얇은 날개에서 빛을 뿜어내는 것이 신기한 나비였다.
‘이렇게 생긴 나비도 있었나?’
세이라가 홀린 듯 나비의 날갯짓을 보는 동안 나비는 수십 마리로 늘었다.
그리고 일제히 모리스의 주위를 맴돌기 시작했다. 마치 찾아다녔다는 듯이.
그제야 세이라는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걸 느꼈다.
“뭐죠! 이 나비들은?”
“페어리 플라이. 마법사들이 만들어낸 나비로 수십 마일 밖에서도 원하는 향기를 찾아 날아오죠.”
“황제의 마법사들이 보낸 건가요?”
모리스는 로브 주머니 안에서 못 보던 동전 하나를 꺼냈다.
“이거였군요.”
동전에 페어리 플라이를 끌어들이는 향기가 묻어 있었나 보다.
모리스가 동전을 허공으로 높이 띄우자, 나비들은 하얀빛을 뿜어내며 동전을 감쌌다.
파앗!
그가 주먹을 쥐었다가 펴는 순간, 동전과 함께 나비들은 산산조각이 나서 흩어졌다.
“이제 곧 황제가 들이닥칠 겁니다. 뭐, 차라리 잘된 건지도 모르죠.”
텅 빈 것처럼 스산하던 모리스의 얼굴에 싸늘한 미소가 드리워졌다.
“지금 싸우면 우리에게 불리해요! 잠시 피했다가 나중에…….”
“아니요. 우리에게 나중은 없답니다, 세이라.”
“그게 무슨 소리죠?”
세이라는 울상이 되었다. 모리스의 비장한 표정에서, 그의 주위로 다급하게 모여드는 사제들의 모습에서 이미 짐작했는지도 몰랐다.
자신들이 구석 끝까지 몰렸음을.
“조금 전 본진이 모두 불탔거든요.”
“본진이요?”
그건 그들이 공들여 준비한 모든 것이 사라졌다는 말.
세이라는 발아래가 와르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이제 곧 오스월드가를 되찾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는데.
퍼엉!
그때 엄청난 폭발음이 들려왔다.
굳건하던 철문이 부서지고, 수많은 말발굽이 정원을 짓밟는 소리가 파도처럼 엄습했다.
수백 년 동안 칼라임의 한 축을 지탱해오던 오스월드 가는 이제 영원히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세이라는 절박하게 모리스를 응시했다.
“일단 도망가요. 납골당으로 내려가면 외부와 연결된 비밀통로가 있어요.”
모리스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혼자 가요, 세이라. 나는 황제를 쓰러뜨려야 하니까.”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세이라가 성마르게 소리쳤다.
“이자벨 부인을 믿어보려고요.”
“그 늙은 여우는 우릴 배신했어요!”
그랬다. 성당에서 이자벨은 병사들을 데리고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녀는 뒤로 물러나 황제와 모리스의 싸움을 지켜볼 속셈이었으리라.
그리고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기회를 노리고 있을지도.
하지만 모리스는 분노하지 않았다. 이미 예상했던 일이었으니.
“난 그녀의 욕심을 믿고 거래한 거랍니다. 그 욕심이 내게 도움이 되어 줄지도 모르죠.”
세이라는 그 말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외침으로 들릴 뿐이었다.
그동안 사제들은 모리스의 주위에 마법 대형을 갖춰서며 마나를 끌어 올렸다.
그들 주위를 푸른 빛이 감싸기 시작했다.
세이라는 그런 모리스를 원망스럽게 바라보았다.
그의 온 신경은 황제와의 전투에 쏠려 있었다.
그녀가 떠난다고 해도 절대 돌아보지 않을 것 같았다.
“함께 있어달라고 붙잡지는 않을 건가요?”
세이라는 그렇게 말하는 스스로에게 놀랐다.
사실은 그걸 원하고 있었던가?
곁에 있어 달라고, 마지막을, 혹은 승리를 함께하자고 말해주기를.
“당신의 선택에 관여하지 않을 생각이에요.”
모리스의 대답은 차가웠다.
“내가 있건 없건 상관없다는 말처럼 들리네요. 그동안 난 뭐였던 거죠?”
그제야 모리스는 고개를 돌려 세이라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의 표정엔 오히려 의아함이 가득했다.
“내게 뭔가가 되고 싶었던 건가요?”
“치명적인 약점이요. 모리스라는 남자의.”
그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놀란 건지, 아니면 귀찮은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세이라는 그의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췄다.
당황한 그가 움찔하는 게 느껴졌지만 온 힘을 다해 그의 목에 매달려 키스했다.
이 차가운 남자의 숨결을 녹일 정도로 뜨겁고, 짙게…….
마지막이었으니까.
하지만 잠시 후, 뒤로 물러나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는 뜨거워지지 남자라는 걸 확인했을 뿐이다.
레아나를 바라보던 그런 눈빛을 자신에게는 허락하지 않았다.
“신의 가호를 빌어요, 모리스.”
그 말을 끝으로 세이라는 응접실을 나갔다.
뒤는 돌아보지 않았다.
상처받을 게 분명했으니까.
스스스…….
잠시 후, 모리스의 앞에 검은 형제가 나타났다.
곧 형체가 명확해지며 검은 로브의 마법사들로 변했다.
그뿐 아니라 여기저기에서 어지러운 검성과 함성이 들려오는가 싶더니,
콰앙!
“반갑군, 모리스 에터마티!”
문을 박살 내며 크리스틴이 안으로 들어섰다.
그의 검은 살아 있는 짐승처럼 피를 흘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