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그 결혼, 하지 마.2021.11.02.
초등학교 3학년, 열 살이 된 태하는 훌쩍 키가 커 있었다. 처음 봤을 때만 해도 또래보다 작았던 것이, 이제는 반에서도 세 번째로 키가 크다고 했다. 밥을 제대로 챙겨 먹기 시작하자 무섭게 키가 크기 시작한 것이었다. 원래는 키가 큰 유전자를 물려받은 게 아닐까 싶었다. 하긴 한쪽 부모님은 서양인일 테니까. 고등학교 2학년이 된 시현은 여전히 매일 저녁 태하의 집에 들러 공부를 봐주고 식사를 챙겨 주고 있었다. 주말에도 독서실에 공부하러 간다는 핑계로 태하의 집으로 갔다. 단순히 방치당한 아이가 불쌍해서가 아니었다. 태하가 시현을 의지하는 만큼이나, 시현도 태하에게 위로받고 있었다. 시현은 집에서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작은어머니는 시현이 1등을 한 성적표라도 내미는 날은 한층 더 모질게 굴었다. 일부러 산더미같이 설거지를 쌓아 놓고 가정부 대신 시현에게 시켰다. 시현이 자기 딸인 아현보다 뛰어난 것을, 작은어머니는 유독 못 견뎌 했다. 사업하느라 바쁜 작은아버지는 방패막이가 되어주지 않았다. 남의 눈이 무서워서 부모 잃은 조카를 보육원에 보내지는 않았지만, 그뿐이었다. 아내와 딸이 시현을 구박하는 것을 뻔히 알면서 모른 척 눈을 감았다. 시현이 마음 붙일 곳이라고는 오로지 태하뿐이었다. 고무장갑도 못 끼고 설거지를 해대느라 망가진 손을 보며 눈물을 글썽이는 아이. 제집 설거지만이라도 제가 하겠다고 우겨서, 의자까지 놓고 개수대에 서서 설거지를 하는 아이. 그런 태하에게 시현은 뭐든지 아깝지 않았다. 더 잘해주고 싶고, 더 많은 걸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쥐꼬리만 한 용돈조차 눈치를 보고 받아 쓰는 고등학생일 뿐. 그래서 시현은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태하에게 더 많은 걸 해주고 싶어서. 태하의 집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데, 갑자기 진한 화장을 한 얼굴이 불쑥 눈앞에 나타나는 바람에 시현은 놀라서 뒤로 물러섰다. 50대 중반쯤 되었을까. 아주머니라고 하기에는 나이가 많고, 할머니라고 부르기에도 주저가 되는 여성이었다. 주름진 눈가에는 화려한 색깔의 아이섀도가 처덕처덕 발려 있고, 입술은 쥐라도 잡아먹은 것처럼 시뻘건 여자에게서는, ‘할머니’라는 단어에서 으레 떠오르는 따스함이라든가 자상함 따위는 흔적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독한 술 냄새를 참느라, 시현은 최대한 숨을 쉬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물었다.
“혹시 태하 할머니세요?”
교복 입은 여학생을 위아래로 훑어보다, 상대는 픽 웃었다.
“아. 네가 요즘 우리 집에 들락거린다는 걔구나?”
요즘이라니, 시현은 기가 막혔다. 벌써 태하를 돌봐주기 시작한 지 1년이 다 되어 가는데. 태하의 할머니는 심하면 일주일, 열흘씩 집을 비웠다. 가끔 들어와서는 태하에게 돈 몇 푼 던져 주고 도로 나간다고 했다. 그런 식이니 시현과 마주치는 것도 1년 만에 처음이었다.
“들어가 봐. 태하 안에 있으니까.”
내뱉듯 말하고, 태하의 할머니는 시현을 밀치고 문밖으로 나왔다. 잠시 주춤했던 시현은 재빨리 뒤를 따라가서 따지듯 물었다.
“저녁때가 다 됐는데 또 어딜 나가시는 거예요?”
시현은 용기를 냈다. 언젠가 마주치게 되면 해야겠다고 몇 번이나 속으로 벼른 말이었다.
“어린아이를 집에 혼자 두고 어른이 자꾸 그렇게 돌아다니면 안 되는 거잖아요.”
당돌한 여고생을, 요란한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태하의 할머니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할머니가 손자한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태하의 할머니는 흥, 하고 코끝으로 비웃었다.
“태하가 그러디? 제가 내 손자라고?”
“네?”
“쟤는 주워다 키운 애야. 보조금 몇 푼 받을까 했던 게, 내 눈을 내가 찔렀지. 도로 갖다 버리지도 못하고, 썩을 놈의 거.”
할머니조차 친할머니가 아니었다니. 시현은 놀랐지만 금세 정신을 차리고 또박또박 말했다.
“그래도 데려다 키우셨으면 돌봐는 주셔야죠. 어린애가 혼자서 얼마나 외롭고 힘들겠어요?”
“그렇게 안쓰러우면 네가 데려가서 키우든가.”
귀찮다는 듯이 대꾸하고, 태하의 할머니는 종종걸음으로 가 버렸다. 멀어지는 뒷모습을 노려보며 시현은 쏟아지는 눈물을 억지로 참았다. 그래, 내가 돌봐주면 되지. 이제 조금만 있으면 나도 대학생이 되니까, 그러면 돈도 벌 수 있으니까. 우리 태하, 예쁜 옷도 사주고 책도 사줘야지. 내가 대학교 졸업해서 취업할 때쯤 되면 태하는 대학 갈 때가 되겠지. 대학도 내가 열심히 돈 벌어서 보내주면 돼. 그렇게 결심하고 나자 마음이 좀 가라앉았다. 손등으로 눈물을 쓱 훔치고 시현은 집 안으로 들어갔다. 방금 밖에서 제 할머니와 옥신각신했던 것을 혹시 태하가 들었으면 어쩌나 걱정하면서.
“태하야, 누나 왔어.”
방안을 슬쩍 들여다보니 태하는 책상 대신 쓰는 밥상머리에 단정히 앉아서 공부를 하고 있다가 시현을 보고 반가운 얼굴을 했다.
“누나.”
들은 것 같기도, 듣지 못한 것 같기도 했다. 말수 적은 아이는 웬만해서는 제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태하가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오로지 시현에 관한 일뿐이었다. 방치당해서 며칠씩 굶어도 아무 말 없었던 아이가, 시현의 튼 손을 보고는 처음으로 눈물을 글썽였었다. 시현은 방에서 카스텔라를 꺼내 접시에 담고, 알록달록한 초를 꽂아서 불을 붙여 가져갔다.
“생일 축하해, 태하야.”
태하의 눈이 조금 커졌다. 생일 축하를 받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던 모양이다. 다른 아이들은 생일날 부모님하고 외식도 하고, 장난감도 선물 받을 텐데. 케이크도 아니고 기껏해야 카스텔라에 초를 꽂은 걸 보고 얼떨떨한 얼굴을 하는 아이를 보자 시현은 또다시 마음이 아팠다. 케이크 살 돈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태하,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노래를 불러 주고 나서 시현은 태하를 재촉했다.
“얼른 불 꺼. 소원도 빌고.”
“소원을 빌면, 이루어져요?”
동심을 위해서 그렇다고 대답해주고 싶었지만, 그러다가 자칫 엄마 아빠를 만들어주세요, 같은 소원이라도 빌면 큰일이다. 잠시 고민한 끝에 시현은 솔직하게 말했다.
“글쎄. 나는 아직 이뤄진 적이 없지만, 너는 또 모르잖아.”
“그럼 안 빌래요.”
괜한 말을 했나, 하고 생각했을 때 태하가 촛불을 불어 껐다.
“……난 훌륭한 어른이 될 거예요.”
어둑해진 방 안에, 아이의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진지한 목소리가 울렸다.
“생일날 누나가 소원을 빌면, 내가 커서 꼭 들어줄게요.”
*
“묻잖아, 누가 울렸느냐고.”
눈물이 쏙 들어갔다. 시현은 다급하게 물었다.
“너, 기억 돌아온 거야? 이제 나 알아보겠어? 응?”
그러나 태하는 집요하게 추궁했다.
“묻는 말에 대답부터 해. 누가 울렸어?”
바보같이 우는 걸 들킨 게 새삼 부끄러워서, 시현은 얼른 옷자락으로 눈물을 닦았다.
“울긴 누가 울었다고 그래?”
얼버무리며 돌아서려는데 태하에게 손을 붙들렸다.
“대답하라니까!”
그 순간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져서, 시현은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아!”
그가 흠칫 놀라며 시현의 손을 놓았다. 그러고는 다시 팔을 조심스럽게 잡아서 가까이서 손을 들여다보았다. 새빨갛게 부어 있는 시현의 손을 본 태하의 눈에 새파란 날이 돋았다.
“손은 또 왜 이래.”
어떻게든 손을 빼려 했지만 태하는 놓아 주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시현은 시선을 돌린 채로 중얼거렸다.
“고춧가루를 좀 만져서 그래. 별일 아니야.”
“손이 이 지경이 됐는데 별일이 아니라고?”
무섭게 다그치다가도 결국은 걱정이 먼저인 모양이다. 태하는 일단 마음을 진정시키듯 길게 한숨을 내쉬고 나서는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를 냈다.
“연고 같은 거 있어?”
“이 안에…….”
책상 서랍을 가리키자 태하가 직접 서랍을 열어 연고를 찾아 꺼냈다.
“손 이리 줘봐.”
시현을 의자에 앉히고, 태하가 시현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시현의 손에 조심스럽게 연고를 펴 바르며 태하는 말했다.
“옛날부터 물 많이 만져서 자꾸만 손 트고, 습진 생기고 그랬잖아.”
그랬다. 작은어머니가 신부수업을 핑계로 자꾸만 주방으로 내모는 바람에, 시현은 고등학생답지 않게 늘 손에 주부습진을 달고 살았었다. 그걸 본 어린 태하가, 죽어도 제집 설거지만은 제가 하겠다고 우겼던 기억이 난다.
‘정말 기억이 돌아온 게 맞구나.’
일찌감치 거칠어진 손은 아무리 정성 들여 관리해도 돌아오지 않고 여태 그대로였다. 겨울에는 하루 이틀만 핸드크림을 바르는 걸 잊어버려도 금세 손등 피부가 거무죽죽하게 변하면서 딱딱하게 굳어버리기 일쑤였다. 그럴 때는 우진마저도 시현의 손을 보면 말없이 눈살을 찌푸리곤 했다. 그래서 시현은 남에게 제 손을 내보이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손이 눈에 띌까 봐 네일아트는커녕 반지조차 끼지 않을 정도로. 그런 시현의 손을, 태하는 마치 깨지기 쉬운 유리라도 다루는 것처럼 조심조심 약을 발랐다.
“그런 사람이 아무 생각 없이 맨손으로 고춧가루를 만졌을 리가 있나.”
못생긴 제 손과 달리, 태하의 손은 어디까지나 남자답게 아름다웠다. 커다랗고 손등에 핏줄이 툭툭 불거진 손은 더없이 세심하게 움직였다. 아픈 것보다도 괜히 간지러워서, 시현은 괜히 어두워진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가까이 있으니 태하에게서 예의 그 향기가 났다. 시현이 숙취로 죽을 뻔했던 날, 뒤집어지는 속을 진정시켜주던 그 향기. 씁쓸하면서도 산뜻한 향기가 태하에게 딱 어울린다고 시현은 생각했다. 무슨 향수냐고 물어보려는 순간, 태하가 또다시 물었다.
“말해봐. 대체 무슨 일이야?”
아무래도 그냥 넘어가 주지 않을 것 같아서, 시현은 결국 사실대로 말했다.
“오늘 남자친구 집에 처음 인사 갔었거든. 마침 어머니 생신이라고 해서.”
“오늘은 당신 생일이잖아.”
당신이라는 호칭에도 시현은 별로 놀라지 않았다. 고등학교에 입학할 무렵부터 이미 태하는 그녀를 누나라고 부르지 않았었으니까. 게다가 지금은 무려 본부장님이신데, 대리 나부랭이한테 누나라고 부르라는 것도 무리다.
“어머님이 나랑 생일이 같으셔.”
“그래서, 생일하고 고춧가루하고 무슨 상관이 있는데?”
“주방 일 도우라고 해서 나갔더니 나더러 겉절이 좀 무치라잖아. 그래서 비닐장갑 끼고 무쳤더니, 겉절이는 맨손으로 무쳐야 맛있다면서…….”
순간 태하의 얼굴에 격정 같은 것이 어렸다. 그는 또다시 눈을 감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
그 표정이 무엇을 뜻하는지, 태하를 오래 보아 온 시현은 잘 알고 있었다. 태하가 극도로 화가 났을 때, 스스로를 가라앉히기 위해서 하는 행동이었다. 제 일에 이토록 화를 내고 있는 태하를 보니 가슴이 뭉클했다. 정말 기억이 돌아온 게 맞구나. 아까 빌었던 소원이, 이루어졌구나. 내 편이 생겼다는 기쁨에 눈물이 핑 돌았다. 이제는 혼자가 아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태하는 마지막까지 내 편이 되어줄 테니까. 그러나 다음 순간, 태하는 눈을 뜨더니 불쑥 말했다.
“결혼하지 마.”
아픈 손을 피해서 손목을 꼭 잡고, 그는 가까이서 시현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내 말 들어. 하지 마, 그 결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