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5. 사랑해 (55/181)


#55. 사랑해
2022.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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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현의 입술이 제 입술에 닿은 순간.

건전지가 다 된 인형처럼, 태하는 그대로 멈춰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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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없이 조심스럽게, 그저 단순히 입술에 가만히 닿아 있을 뿐인 입맞춤에 태하는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손끝 하나 움직일 수 없고, 아예 머릿속마저 멈춰버린 것 같았다.

허락 없이 키스했다고 내 얼굴도 똑바로 안 쳐다볼 정도로 화를 냈던 여자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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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혼자서 좋아한 겁니다.]

아까 자신은 사람들 앞에서, 시현이 가장 두려워하는 일을 저질렀다. 다른 사람들이 둘 사이를 알아 버리는 것.

그러니까 이번에야말로 돌이킬 수 없을 줄 알았는데.

대체 이건 뭘까.

한참 만에야 시현이 입술을 떼고 천천히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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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잖아.”

그녀는 조금 부끄러운 듯, 시선을 내리깔고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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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검은 머리가 더 예쁜 것 같아.”

 

*

미래은행 본사는 초유의 스캔들로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윤태하 디지털전략본부장은 비록 취임한 지 얼마 안 됐지만, 나이로도 외모로도 이미 회사에서 유명한 존재였다.

그런 그가 같은 부서에 짝사랑하는 여자가 있다고 폭탄선언을 했는데, 그 여자가 무려 일곱 살 연상에다 심지어 얼마 전에 청첩장 돌리고 나서 파혼한 여자라 카더라!

창사 이래 이런 대형 떡밥이 떨어진 적은 일찍이 없었다. 강시현이 누군지도 모르는 타 부서들까지 생난리가 났다.

특히 직접 목격자들이 다수 포진한 3층은 아예 업무 마비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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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리 복도 없지, 왜 하필 그때 사무실에 있느라 그 좋은 구경을 못 하고!”

못 본 자는 땅을 쳤고, 본 자들은 MSG까지 쳐 가며 생생하게 현장을 묘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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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윤태하 본부장님이 딱 나타나서 시현 씨 앞을 가로막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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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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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혼자 좋아한 겁니다.’”

개중에는 제법 그럴듯한 성대모사를 선보이는 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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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본부장님 짝사랑이다 이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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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니까요. 강시현 씨는 아예 관심조차 없대요. 본부장님이 옆집에 이사를 가서 아침밥까지 해다 바치면서 대시를 했는데 눈길도 안 주더래요!”

강시현에 대한 평판은 하루아침에 확 바뀌어 버렸다. 청첩장 돌리고 나서 파혼한 안타까운 사연의 주인공에서, 맞은 로또를 수령 안 해가고 있는 기이한 여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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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신기하네, 대체 언제부터 아는 사이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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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장님 말씀으론 강시현 씨 전남친 만나기도 전부터 자기가 좋아했다고 하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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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강 대리 남친이랑 꽤 오래 만나지 않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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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장님이 스물여섯밖에 안 됐는데, 그럼 대체 언제부터 봤다는 거야?”

다들 일은 뒷전이고 삼삼오오 모여서 그 얘기뿐인 가운데, 듣기 싫어서 미쳐 버릴 것 같은 사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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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거 아니야?’

보라는 속으로 울화통을 터뜨렸다.

기어이 사람들 앞에서 폭탄선언을 한 윤태하도 밉고, 하루아침에 부러움의 대상이 된 강시현도 밉고, 일을 이렇게 만들어 놓은 김우진의 어머니도 밉다. 하나같이 짜증나는 것들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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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강시현 씨 입장에선 전화위복이네. 바람은 상대방이 피웠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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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요, 똥차 가고 벤츠 온 거죠.”

그 똥차를 치워준 게 다름 아닌 자신이라고 생각하니 스스로에게도 울화통이 치밀었다.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김우진 따위 강시현하고 천년만년 살도록 그냥 내버려 둘 텐데!

도저히 더는 들을 수가 없어서 슬그머니 일어나서 사무실을 빠져나가려는데, 문득 팀원 중 하나가 보라를 향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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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이보라 씨, 강 대리 전 예비 시어머니하곤 어떻게 아는 사이야?”

깜짝 놀란 보라는 대번에 정색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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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그분을 어떻게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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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언뜻 보니까 이보라 씨하고 한참 무슨 얘기를 하는 것 같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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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기라뇨. 강시현 씨 어딨냐고 묻길래 잘 모르겠다고 대답한 것밖에 없거든요?”

늘 생글생글 웃던 보라가 날카롭게 대꾸하자 팀원이 오히려 당황한 얼굴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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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왜 이렇게 예민해? 난 그냥 물어본 건데.”

다들 이상하다는 눈초리로 쳐다보는 바람에 보라는 내심 아차 싶었다. 괜히 의심당할 짓을 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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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잠깐 병원 좀 다녀올게요. 오늘 깁스 푸는 날이어서요.”

목발을 짚고 사무실을 나서면서 보라는 이를 악물었다. 수상한 눈초리가 일제히 등 뒤에 꽂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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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되겠어.’

강시현의 약혼자가 바람을 피운 것이 파혼 사유라는 것까지 공공연히 알려진 지금, 그 상대가 바로 자신이라는 게 소문나는 건 시간문제다.

그까짓 회사야 당장 그만둬도 아쉬울 것 없지만, 보라는 유력 언론사 사주의 딸이었다. 자칫 소문이 밖으로 퍼져나갔다간 제대로 된 집안에 시집갈 길은 영영 막혀버린다.

빠르게 마음을 정하고, 보라는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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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영 씨? 저 이보라예요.”

몇 달 전에 아버지 이 회장의 권유로 선을 보았던 상대였다. 외모도, 조건도, 매너도 흠잡을 데 없어서 두 번을 만났었다.

세 번째 약속을 잡기 직전에, 윤태하가 하루아침에 본부장으로 오는 바람에 이쪽에서 연락을 끊어버리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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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라 씨가 웬일입니까? 저한테 연락을 다 주시고.

상대의 목소리는 약간 퉁명스러웠다. 하기야 좋은 분위기로 가다가 갑자기 연락이 끊겼으니 자존심도 상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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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너무 바빠서 한동안 정신이 없었어요.”

보라는 진심으로 미안한 목소리를 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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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오늘 저녁에, 시간 괜찮으세요? 제가 사과의 의미로 맛있는 거 살게요.”

 

*

비바람이 몰아치고 천둥번개가 난무해도, 원래 태풍의 눈은 고요하기 그지없는 법이다.

밖은 일대 난리가 벌어진 가운데서도 정작 스캔들의 당사자인 시현은 비교적 평온한 하루를 보냈다. 그야 시현에게 직접 와서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물론 앞일을 생각하면 상당히 마음이 복잡해야 맞을 테지만, 현재 시현의 머릿속은 그저 태하로 가득 차 있어서 다른 생각이 비집고 들어올 겨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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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하면 혹시 아버지처럼 보일까 싶어서…….]

태하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머리보다 입술이 먼저 움직였다. 그리고 입술이 닿는 순간 자연스럽게 깨달았다.

아, 내가 너를 많이 좋아하는구나.

상대가 제 손으로 키운 아이라든가, 남들이 뭐라고 수군거릴지 모른다든가, 그런 것들은 이미 안중에도 없었다. 보이는 것은 오로지 눈앞에 있는 사람뿐.

그래서 일부터 먼저 저질러 놓고 뒤늦게 얼굴에 불이 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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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런 짓을 했을까?’

제 입으로 너는 남자로도 안 보인다는 둥, 어린애라는 둥 해놓고 먼저 키스를 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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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없었겠지?’

갑자기 키스한 시현에게, 태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주 키스해 오지도, 안아 오지도 않았다. 그저 굳어진 채로 눈이 커다래져서 멍하니 시현을 쳐다보고만 있었을 뿐.

결국 시현은 바보같이 ‘넌 검은 머리가 더 예쁜 것 같아.’ 이 한마디만 겨우 중얼거리고 도망치듯 나와 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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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좋아한다는 뜻이었는데, 제대로 알아들어 줬을까?’

뒤늦게 깨달은 감정에 마음이 너무 벅차올라서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태하가 오늘따라 하루 종일 원앱팀 사무실에도 나타나지 않아서, 더욱더 신경이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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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쯤 태하도 내 생각 하고 있을까?’

어떻게 하루가 지났는지도 모르겠다. 퇴근 후 집에 온 시현은 저녁도 못 먹은 채 안절부절못하고 태하를 기다렸다.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매일같이 보던 얼굴인데 새삼스레 왜 이렇게 떨리는지 모르겠다.

틀림없이 퇴근하자마자 달려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째서인지 태하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그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괜히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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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나도 좋다고 하니까 갑자기 확 부담스러워진 건가? 설마 그래서 안 오고 있는 거야?’

겨우 초인종이 울린 것은 여덟 시가 넘어서였다.

문을 열자 검은 머리를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그제야 시현은 태하가 늦은 이유를 알았다.

내가 검은 머리가 좋다고 해서, 그새 다시…….

불안했던 마음이 눈 녹듯이 녹아내렸다. 순간적으로 눈물이 핑 도는 바람에, 시현은 당황해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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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있잖아. 아까 낮에는 내가…….”

채 말을 꺼내기도 전에 태하가 갑자기 팔을 벌려 껴안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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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짝 놀란 시현의 뺨을 제 가슴에 눌러 붙이다시피 꼭 껴안은 채, 그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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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와서 실수라고 해도 안 들을 거야.”

고집스러운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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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그 생각만 했어. 나한테 왜 그랬을까, 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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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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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무슨 생각이었든지 상관없어. 장난이었어도 상관없어. 뭐라고 말해도 이제 없던 일로 못 해, 나는.”

태하가 말하는 동안, 시현은 그의 가슴에 가만히 귀를 대고 있었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두근거리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왜 껴안고 말하고 있는 건지도 알겠다.

무서워서 차마 내 얼굴 못 보겠는 거구나, 너. 혹시 내가 장난이었다고, 실수였다고 말할까 봐.

시현이 가만히 허리에 손을 둘러 마주 끌어안자 태하가 놀라서 움찔하는 것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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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렇게 좋아?”

분명히 알고 있는데도 또 듣고 싶었다. 그는 알고 있지 않느냐, 몇 번을 말해야 하느냐고 말하지 않고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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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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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안 보고도 몇 년이나 잘 살았으면서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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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그냥 평생 안 보고 살고 싶었어. 어차피 당신은 날 쳐다보지도 않을 거, 알았으니까.”

태하는 시현을 안은 채로 격정을 토해내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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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미래은행에서 제의가 왔을 때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어. 그래서 그냥 딱 당신 얼굴만 보자고 생각하고 수락했어. 그런데 얼굴을 보는 순간 알겠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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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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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역시 강시현이 아니면 안 된다는 걸.”

그제야 시현은 깨달았다. 처음에 그가 자신을 못 알아본 게 기억상실 따위가 아니었다는 걸.

속았다는 걸 알고도 화가 나기는커녕, 도리어 눈시울이 찡하니 아파왔다.

그렇게 해서라도 나를 잡아 보고 싶었던 거구나, 너는.

아주 가까이에 나를 이토록 애타게 원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왜 나는 그토록 먼 길을 돌아온 걸까. 쓸데없이 두려워하고, 도망치고, 내 감정마저 부정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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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는 바라지 않아. 내가 좋아하는 거의 백 분의 일, 천분의 일이라도 괜찮으니까.”

그렇게 말하고, 태하는 그제야 시현을 안고 있던 팔을 풀고서 가까이서 눈을 들여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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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 감정, 있는 거 맞지?”

반쯤은 희망에, 또 반쯤은 두려움에 찬 눈동자였다.

먼저 키스해 줬는데도 여태 못 알아듣고 이러고 있다니. 몸집은 커다란 주제에 겁이 많고 마음이 여린 남자가 사랑스러워서 심장이 다 저릿해졌다.

이쯤에서 빨리 나도 널 좋아해, 하고 말해서 안심시켜 줘야 할 텐데. 이상하게도 괜히 짓궂은 마음이 일어났다.

스스로도 참 성격이 나쁘다고 생각하면서도 시현은 짐짓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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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난 아니라고 하면 어떻게 할 건데?”

그녀를 바라보는 눈동자에서 희망의 빛이 서서히 사그라졌다.

방금 전에 실수라고 해도 안 들을 거다, 장난이었다고 해도 상관없다고 밀어붙이던 남자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고개를 떨어뜨린 채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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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슨 힘이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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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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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짝사랑이나 하고 사는 수밖에 없지, 지금까지처럼.”

그렇구나. 너는 거의 평생 동안 나를 사랑하고 있었겠구나. 여태 혼자서 얼마나 오랫동안 가슴앓이하고, 슬퍼했을까. 그러고도 모자라서 앞으로도 평생을 그렇게 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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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다시 너 짝사랑하게 만들지 않을게.”

그녀는 손을 뻗어 태하의 머리를 살며시 어루만졌다. 하루 간격으로 염색을 두 번이나 한 머리칼이 조금 뻣뻣하게 느껴져서, 마음에 파문이 일었다.

내가 여태 모르고 살았구나, 바보같이.

너는 늘 이렇게 사랑스러운 사람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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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무 늦은 만큼, 더 많이 좋아할게.”

놀란 듯이 바라보는 태하의 눈을 들여다보며, 시현은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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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 윤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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