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5. 듣고 싶었던 말 (65/181)


#65. 듣고 싶었던 말
2022.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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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말 잘못했어. 다신 안 그럴 테니까 가지 마. 응?”

태하의 목소리가 확연히 떨리고 있어서 시현은 깜짝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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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긴 어딜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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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려고 하고 있잖아,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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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냐, 잠깐 옆에 있는 백화점에 다녀올까 해서 나온 건데…… 근데 네가 무슨 잘못을 했다는 건데?”

어리둥절한 시현을, 태하는 더욱더 힘주어 안으며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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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무 힘들게 해서, 싫어서 버리고 간 줄 알았어.”

그의 불안함이 생생하게 전해져 와서 시현은 안타까웠다.

분명히 나도 널 사랑한다고 몇 번이나 말해줬는데, 하루 종일 지치도록 서로를 안았는데. 왜 아직도 혼자서 짝사랑할 때처럼 구는 건지.

어쩌면 그에게는 오랜 습관 같은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현은 그를 마주 안았다. 아무리 팔을 활짝 벌려 껴안아도 커다란 남자는 채 반도 품에 들어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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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로 너 안 버려. 이렇게 예쁜 걸 주웠는데 내가 왜 버리겠어?”

얼마나 놀라서 뛰쳐나온 걸까. 여태 몸이 떨리고 있는 것이 느껴져서 사랑스러움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아, 나는 지금까지 너를 사랑하지 않고 어떻게 숨을 쉬고 살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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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나 나 버리지 마. 너랑 헤어지면 나…….”

이 남자와 헤어진다. 상상하자마자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아서, 시현은 태하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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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단 말이야.”

목소리에 울먹임이 섞이는 바람에 제가 듣기에도 바보 같았다. 하지만 태하는 오히려 기쁜 듯이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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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이 듣고 싶었어.”

그제야 시현은 태하가 계속 말해줘, 하고 졸랐던 의미를 깨달았다. 아, 그거였구나.

잠시 후 태하가 시현을 품에서 떼어놓았다. 눈물 어린 그녀의 눈을 한참 바라보다, 그는 불쑥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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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 못 참겠어.”

태하에게 안기다시피 해서 도로 객실로 향하며, 시현은 생각했다.

어차피 한번은 죽을 인생, 윤태하 품에서 죽는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

태하가 또다시 숙박을 연장하는 바람에 결국은 일요일까지 쭉 호텔에서 묵게 되었다.

그리고 일요일 저녁, 시현은 태하를 졸라서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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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서비스 지겨워. 저녁은 나가서 먹자, 응?”

사실은 핑계였다. 어제도 오늘도 식사는 모두 룸서비스로 해결했지만 매번 흠잡을 데 없이 맛있었다. 돈만 있으면 하루 세 끼 평생이라도 먹고 싶을 지경이다.

문제는 태하와 둘이서 하루 종일 방에만 틀어박혀 있자니 도저히 몸이 남아나지 않는 거였다. 원하는 마음은 마찬가지인데 몸이 안 따라 주어서, 시현은 태하와의 나이 차이를 뼈저리게 느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며 태하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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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먹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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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연 이모네 카레.”

시간 때우기에는 수연의 가게가 제격이었다. 오고 가는 데 시간도 걸리고, 앉아서 한참 수다도 떨 수 있고, 돕는다는 핑계로 설거지도 할 수 있고.

겨우 호텔을 빠져나왔는데, 최대한 시간을 끌다가 돌아가야 조금이라도 몸이 덜 축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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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다행히 태하는 너무 멀다는 둥 하지 않고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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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안 들켰다.’

시현이 몰래 안도의 한숨을 쉬는 순간, 태하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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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봐준 거야.”

시현은 딸꾹질을 했다. 다 눈치채고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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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운동을 열심히 해야겠어.’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태하는 프런트에 객실 키를 맡기고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는 대신에 호텔과 백화점을 잇는 통로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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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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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좀 살 게 있어서.”

태하는 시현의 손을 잡고 백화점으로 들어섰다. 그가 향한 것은 백화점 지하 식품관이었다.

그는 식품관을 한 바퀴 돌면서 이것저것을 샀다. 선물용 한우도 한 상자, 큼직한 굴비도 한 상자, 제주산 애플망고도 한 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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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님 갖다드리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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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 수연 이모까지 챙겨줘서.”

그러나 태하는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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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당신 때문은 아니고. 내가 잘해드리고 싶어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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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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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님하고 닮았대,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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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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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아드님도 나처럼 혼혈이라고 하던데. 그래서 날 보면 아들 생각이 나시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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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 아들이 미국에 있다는 얘기는 나도 전에 들었거든. 너랑 동갑이라는 얘기도. 그런데 아버지가 미국인인 줄은 몰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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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낳자마자 얼마 안 돼서 그 집에서 데려갔다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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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시현은 안타까워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저 아들과 오래 못 만난 모양이라고만 생각했지, 낳자마자 생이별을 당했던 줄은 미처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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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님이 나를 보실 때 눈빛이 뭐랄까…… 진짜 우리 엄마가 살아 있다면 저런 눈빛으로 보지 않았을까, 그런 느낌이 들어. 그래서 잘해드리고 싶어.”

시현은 무척 기뻤다.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두 사람을 꼽으라면 태하와 수연인데, 그 둘이 가까워졌다니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차로 30분 좀 넘게 걸려서 둘은 수연의 카레 가게에 도착했다. 문에는 이미 close 팻말이 걸려 있고, 수연이 분주히 뒷정리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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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

가게에 들어서자 수연이 반색을 하며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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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현이 왔니?”

수연은 눈을 가늘게 뜨고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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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나란히 있으니 너무 보기 좋다!”

그러고 보니 태하와 함께 오는 것은 처음이었다.

커다란 상자들을 테이블에 내려놓는 태하를 보고, 수연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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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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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 드시라고 태하가 샀어요. 엄청 좋은 거니까 손님 주지 마시고 이모 혼자 다 드세요.”

수연이 장난스러운 얼굴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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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혹시 지금 장모님 대접받는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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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

시현이 빨개져서 흘겨보자 수연이 얼른 주방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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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먹을래? 오늘은 카레 말고 파스타도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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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저 시푸드 파스타 좋아하는데 혹시 그것도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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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해물 듬뿍 넣어서 만들어 줄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시현은 태하와 나란히 바에 앉았다. 꽃병에 예쁜 장미꽃이 소담하게 꽂혀 있는 것을 보고, 시현은 별생각 없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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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꽃은 뭐예요?”

수연이 바지런히 손을 움직이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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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요즘 가끔씩 가게 문 앞에 놓여 있어. 누가 갖다놓은 건지도 모르겠어서 처음엔 그냥 놔뒀는데, 시들어서 계속 갖다 버리는 것도 아깝고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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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시현은 손뼉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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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누가 이모 좋아하는 거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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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는!”

별소리도 다 한다는 듯이 수연이 눈을 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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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요, 이모도 충분히 남자친구 생길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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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몇 살인 줄은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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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다섯이 어때서요? 요즘은 할아버지 할머니도 연애하는데요! 그리고 누가 이모를 그 나이로 보겠어요? 안 그래, 태하야?”

시현이 열렬히 말하자 태하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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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잠시 후 수연이 파스타를 앞에 놓아 주었다. 토마토소스에 볶은 해물이 파스타면 위를 온통 뒤덮고 있어서, 언뜻 보기에는 파스타라기보다 해물찜 같을 지경이었다.

맨 위에 얹힌 제일 큰 새우를 까고 있는데, 어느새 예쁘게 껍질을 벗긴 새우가 접시 위에 놓였다. 태하가 제 새우를 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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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너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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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새우 별로 안 좋아하니까 당신이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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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거짓말이야. 내가 네 식성을 몰라?”

서로 먹으라고 실랑이하는 두 사람을, 수연이 엄마 미소를 지으며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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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맛있다. 혹시 새 메뉴예요?”

시현이 파스타를 먹으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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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 근처 사는 아이들이 매일 밥 먹으러 오거든. 계속 카레만 먹으면 지겨울 것 같아서, 가끔씩 다른 것도 준비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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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식아동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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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한 대여섯 명 돼. 부모가 다 없는 아이도 있고, 한쪽만 있는데 일이 바빠서 식사를 잘 못 챙겨 주는 아이들도 있고. 맨날 이 옆에 있는 편의점 앞에서 컵라면 먹고 있길래, 돈은 안 받을 테니까 우리 집에 와서 밥 먹으라고 했지.”

수연은 한숨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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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사연인지 모르겠지만, 그 엄마들은 지금쯤 자식이 얼마나 눈에 밟힐까?”

아들을 향한 수연의 그리움이 느껴져서, 시현은 잠시 목이 메었다.

태하가 불쑥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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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계속 아이들 식사 챙겨 주세요. 혹시 그 외에도 다른 결식아동이 있으면 몇 명이라도 좋으니 다 먹여 주시고요. 비용은 모두 제가 대겠습니다.”

수연이 손을 내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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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아니야. 이 정도는 나도 얼마든지 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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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어릴 때 비슷한 일을 겪어봐서, 남 일 같지 않아서 그럽니다.”

수연이 새삼 안쓰러운 눈으로 태하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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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태하도 우리 시현이 만나기 전까지 많이 굶고 자랐다고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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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그래서 꼭 돕고 싶습니다.”

시현도 태하를 도와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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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 태하 엄청 부자예요. 그러니까 걱정 마시고 받으세요. 이참에 좋은 일도 하고, 매상도 팍팍 올리고, 얼마나 좋아요?”

둘이서 한참을 조른 끝에 결국 수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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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 태하. 그렇지 않아도 점점 재료비 부담이 커져서 좀 걱정이었는데, 앞으로 마음 놓고 맛있는 거 많이 만들어줄 수 있겠네.”

수연이 무척 행복해 보여서, 시현도 덩달아 기뻐졌다.

머리를 맞대고 사이좋게 파스타를 먹고 있는데, 갑자기 식당 문이 벌컥 열렸다.

들어온 것은 사십 대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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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손님. 오늘은 벌써 영업이 끝났어요.”

얼른 다가가서 친절하게 말하는 수연을, 여자는 가자미눈을 하고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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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요. 댁이 뭔데 우리 애들 밥을 멕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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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수연이 당황해서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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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애들이 맨날 이 집에 와서 밥 먹는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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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혹시 민우랑 진우 어머님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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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내가 걔들 엄마다!”

반말지거리에도 불구하고 수연은 어디까지나 침착하게 대하려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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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전 그냥, 아이들이 매일 컵라면만 먹는 게 안타까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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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식 내가 알아서 해!”

시현은 어이가 없었다. 아니, 생판 남이 자기 아이들 밥을 챙겨 주면 고맙다고 인사는 못 할망정 이게 무슨 행패지?

대체 왜 이러는지 이해가 안 가서 그냥 보고만 있는 사이에 여자는 점점 더 기세등등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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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 우리 집 인간이랑 벌써 눈 맞았지? 응? 아무리 별거 중이라도 엄연히 유부남인데, 남의 남편 뺏어서 안방 차지할 작정이라도 한 거야?”

그제야 시현은 상황을 이해했다. 그러니까 이 아줌마는, 자기 남편과 수연이 무슨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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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오해하신 것 같은데, 저는 남편 되시는 분이 누군지도 몰라요.”

수연은 어떻게든 해명하려 애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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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누굴 바보 천치로 아나. 누군지도 모르는 남자한테 꽃은 왜 받고 자빠졌어?”

꽃병에 꽂혀 있는 꽃을, 여자는 흰자 가득한 눈으로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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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년이 혼자 장사한답시고 동네 휘젓고 다닐 때부터 내가 알아봤어. 얼굴은 반반하게 생겨가지고, 누구를 홀리려고.”

더는 안 되겠다. 시현이 참다못해 따지려 한 순간, 태하가 먼저 몸을 일으켰다. 얼굴이 새하얘진 수연을 제 등 뒤로 숨기고, 태하는 얼굴을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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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어머니께 말씀 삼가시죠.”

순간 여자가 움찔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어이가 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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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하나, 저 여자가 몇 살인데 댁같이 다 큰 아들이 있단 말예요?”

믿지 않는 것도 당연했다. 수연은 기껏해야 삼십 대 중후반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으니까.

시현은 얼른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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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요, 저희 어머님이에요!”

그제야 여자가 당황한 듯이 수연과 태하를 번갈아 보았다. 좀처럼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지만, 태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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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않아도 누가 자꾸만 멋대로 가게 앞에 꽃을 놓고 가서 어머니가 무척 곤란해하시던 차입니다. 마침 댁의 부군이시라니 꼭 좀 전해주시죠.”

꽃병에서 꽃을 꺼내 통째로 쓰레기통에 처박아 넣으며, 태하는 무서운 얼굴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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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다시 저희 어머니께 허튼수작 부렸다간, 손목을 꺾어 놓겠다고요.”

 

*

시현과 태하가 돌아가고 난 후.

태하가 쓰레기통에 던져 넣은 꽃을 꺼내 쓰레기봉투에 담으며, 수연은 자꾸만 북받치는 눈물을 삼켰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혹시나 그 사람이 보낸 것이 아닐까, 하고 덧없는 기대를 품었던 자신이 바보 같았다.

수연의 본명은 희선. 발음이 어려워서 늘 애를 먹던 그는,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꽃 이름을 따서 지은 애칭으로 그녀를 부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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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

웃으며 부르던 목소리가 귓가에 선해서, 또다시 눈물이 차올랐다.

……그리고 그 시각, 레온은 서울로 향하는 전용기 안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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