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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이 여자 쫓아내요 (70/181)


#70. 이 여자 쫓아내요
2022.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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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는 그랜드호텔의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남자와 마주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상대는 몇 달 전에 선으로 두 번 만났던 남자. 얼마 전에 보라 쪽에서 다시 연락한 후 세 번을 더 만났으니까, 이번이 총 다섯 번째 만남이다.

보라는 조한신문 사주의 딸, 그리고 상대는 국내 유수의 재벌가 자제였다.

보통 이런 집안끼리 선을 봐서 세 번째 만나면, 뒤에서는 벌써 결혼 준비가 슬슬 시작되는 게 상례였다. 즉 다섯 번이나 만났다는 것은 이미 서로 결혼에 암묵적으로 동의를 했다고 봐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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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프러포즈를 할 때가 됐는데?’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역시나 상대가 꼭 할 말이 있다며 식사를 청해 왔다.

하필 장소가 전에 우진과 함께 왔던 곳이라 좀 꺼림칙하기는 했다. 하지만 이 레스토랑이 서울에서는 가장 핫한 곳 중 하나라, 일부러 신경 써서 예약했을 거라는 사실을 보라는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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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엄청 좋지? 예약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

김우진이 그때 온갖 생색을 다 냈던 걸 생각하면 지금도 우습다. 하긴 월급쟁이 주제에, 분에 넘치는 곳이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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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씨.”

식사가 거의 끝나갈 때쯤, 남자가 조금 긴장한 얼굴로 검은 상자를 꺼냈다. 그 안에서 나온 것은 눈동자 크기만 한 다이아몬드가 박힌 반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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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결혼해주시겠습니까?”

보라는 놀란 얼굴을 해 보였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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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영 씨…….”

감동한 나머지 차마 손을 내밀지 못하는 척, 보라는 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하지만 속내는 꽤나 복잡했다.

분명 외모도, 스펙도, 매너도 뛰어난 남자다. 자신보다 더 좋은 조건의 혼처도 줄을 섰을 게 틀림없었다.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이 남자다, 하고 생각했을 정도다.

문제는 윤태하와 자꾸만 비교를 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외모도 체격도 아무래도 태하에 비하면 한참 떨어졌다.

재력으로 따져도, 윤태하는 본인부터가 이미 수천억 대 자산가인 데다 미국 대부호의 외아들 아닌가. 이쪽은 재벌가 자제라도 직계가 아닌 방계인 데다, 셋째 아들이니 회사 물려받기도 그른 것 같은데.

무엇보다 윤태하가 가진 수컷의 매력이 이 남자에게서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가까이 있기만 해도 몸이 절로 떨리는, 그런 페로몬이.

한숨이 나오는 것을 보라는 꾹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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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하는 벌써 물 건너갔잖아.’

아쉬워도 어쩔 수 없다. 어쨌든 지금은 이 남자가 최선이었다.

요즘 회사에서 사람들이 자신을 보는 눈치가 예사롭지 않았다. 눈치가 뒤에서 뭐라고 수군거리는 것 같더라니, 역시나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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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시현 대리 파혼한 거 말이야. 개발팀 이보라 씨 때문일 수도 있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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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설마, 나도 듣긴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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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대리 시어머니 될 뻔했던 사람이랑, 한참 동안 둘이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다잖아!]

며칠 전, 사람들끼리 소곤거리는 것을 화장실에서 우연히 듣고 보라는 최대한 빨리 결혼을 진행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벌써 불이 번지기 시작한 이상 빠르게 진화하는 게 최선이었다.

조한신문 사주 딸이 남의 약혼자와 바람을 피워 파혼하게 만들었다는 소문이 밖으로 퍼졌다간, 대한민국 그 어느 재벌가에서도 보라를 며느리로 맞지 않을 테니까.

자꾸만 윤태하가 아쉬워지는 마음을, 보라는 애써 억눌렀다. 지금은 배부른 소리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출구전략이라는 건 원래 그런 거니까.

그러면서도 새삼 시현에게 화가 치미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내가 똥차 치워 준 덕분에 지금쯤 그 여자는 윤태하와……!

난폭한 속마음을 감추고, 보라는 반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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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요, 준영 씨. 너무 기뻐요.”

반지를 들여다보다, 보라는 조심스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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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어, 우리 결혼 말이에요. 최대한 빨리 진행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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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들께 그렇게 말씀드려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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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는 좀 늦게 잡더라도, 청첩장이라도 빨리 나왔으면 좋겠어요.”

상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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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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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자꾸만 귀찮게 구는 사람들이 있어서요. 자기들 눈으로 보면 포기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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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보라 씨 같은 미인이라면 골치 아픈 일이 많을 만도 하죠. 그럼 얼른 청첩장부터 준비합시다.”

다행히 남자는 금세 납득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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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는 결혼 후에도 계속 다닐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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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어차피 사회 경험 삼아서 다닌 거였어요. 조만간 퇴사해서 결혼 준비에 집중하고, 결혼 후에는 준영 씨 내조에 힘쓰고 싶어요.”

청첩장만 돌려서 소문을 진화해놓고 나서는 바로 퇴사할 생각이었다. 윤태하와 강시현, 그 둘을 가까이서 보기만 해도 속이 뒤집어지는 것 같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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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말이네요.”

남자는 더없이 흡족한 얼굴을 하고 와인 잔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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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건배할까요?”

보라가 따라서 와인 잔을 들 때였다. 문득 저만치서 레스토랑으로 들어오는 손님이 눈에 띄었다.

삼십 대 중후반 정도로 보이는 외국인 남성이었다. 멀리서 봐도 눈에 확 띄는 미남인 것도 그렇고, 훌륭한 체격도 그렇고, 절로 윤태하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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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남자가 또 있었구나.’

잠시 그에게서 눈을 못 떼고 있다가, 문득 보라는 그의 팔짱을 끼고 있는 여자를 보고 하마터면 놀라서 잔을 떨어뜨릴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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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시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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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실례할게요. 강시현 씨 친구예요.]

레온을 향해 방긋 미소를 지으며 영어로 말하고, 보라는 시현을 향해 웃는 표정 그대로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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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하는 알고 있어? 당신이 양다리 걸치고 있는 거.”

시현은 순간 당황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얘가.

잠시 생각한 후에야 시현은 겨우 보라가 레온과 자신을 남녀 사이로 오해했다는 걸 깨달았다. 하긴 아저씨가 너무 젊어 보이시긴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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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

시현이 웃음을 터뜨리자 보라는 조금 당황한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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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어? 왜, 내가 윤태하한테 얘기 못 할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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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가서 말해. 당장 말해. 태하가 들으면 삼박 사일은 웃겠다.”

시현은 배꼽을 잡았다. 태하가 이 얘기를 들으면 얼마나 황당한 표정을 할까. 상상만 해도 우스웠다.

한참을 웃다가, 배어 나온 눈물을 냅킨으로 훔치며 시현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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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야말로 참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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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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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약혼자랑 왔던 호텔, 웬만하면 찝찝해서라도 다신 안 올 것 같은데 말이야.”

보라가 보란 듯이 불쑥 손을 내밀어 보였다. 보석 따위는 잘 모르는 시현의 눈에도, 몇 캐럿은 족히 되어 보이는 다이아몬드 반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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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곧 결혼해. 프러포즈 받으러 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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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래? 안 물어봤는데.”

이보라 따위가 누구와 결혼하는지 궁금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었다. 그게 설사 우진이라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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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부케라도 받아줘?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하고.”

비꼬아주고, 시현은 레온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레온은 팔짱을 낀 채로 말없이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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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지금은 말마따나 데이트 중이니까 이만 가 주라.”

그렇게 말하고 다시 포크를 집어 드는데, 보라가 레온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더니 비웃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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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누구랑 되게 닮았다. 취향 확실하네, 강시현.”

이쯤 되자 시현도 더는 웃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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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약혼자랑 놀아난 주제에, 네가 감히 나한테 그런 소리를 해?”

그러나 보라는 그지없이 당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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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쓰레기 치워준 덕분에 당신은 윤태하를 잡았잖아. 고맙다고 인사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시현은 기가 찼다. 보라가 자신에게 미안해하지 않는 건 진작 알았지만, 그런 생각까지 하고 있는 줄은 몰랐다.

세상에 어쩌면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을까. 잠시 말문이 막혀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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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신 인사하죠.”

그때까지 가만히 듣고만 있던 레온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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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않아도 어떻게 된 영문인지 궁금했는데, 아가씨 덕분이었군요? 정말 고마워요.”

레온은 보라를 향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외국인의 입에서 완벽한 한국말이 흘러나오자, 보라는 크게 당황한 눈치였다.

레온이 가볍게 손을 들자 대기하고 있던 직원이 다가와서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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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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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손님 자리에 와인 한 병 서비스해드려요. 제일 좋은 걸로.”

그는 보라를 가리키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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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 드시거든 정중히 밖으로 모셔요. 블랙리스트에 올려서 두 번 다시는 출입하지 못하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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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요?”

순간 레온의 얼굴에서 미소가 싹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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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 쫓아내지 않는 것만도 감사하게 여겨요.”

보라는 금세 사나운 표정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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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요. 그쪽이 이 레스토랑 셰프인지 대표인지 모르겠지만, 나한테 이러면 안 될 텐데?”

내가 누군지 아느냐는 듯, 보라는 도도하게 턱을 치켜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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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버지가 이 호텔 회장님하고 친한 사이거든요. 아버지께 말씀드려서, 레스토랑 서비스가 아주 형편없다고 전해드려야겠네요. 회장님께 직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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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친한 사이인데 호텔 매각했다는 얘기는 안 해줬나 보네요?”

재미있다는 듯이 되묻고, 레온은 다시 직원에게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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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은 취소. 식사비는 환불하고, 내 눈앞에서 치워요. 지금 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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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회장님.”

회장님? 그제야 주춤하는 보라를 싸늘하게 바라보며, 레온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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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다시 내 호텔에 그 더러운 발 들여놓지 말도록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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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원들에게 끌려나가듯 쫓겨나는 보라를 보고 속 시원했던 것도 잠시, 시현은 뒤늦게 걱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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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으시겠어요? 사실은 쟤 아버지가 조한신문이라고, 유력 신문사 사주거든요.”

그러나 레온은 아무렇지 않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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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 해보라고 해. 하나도 안 무서우니까.”

식사를 마치고 나오자 태하가 레스토랑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제도 그제도, 오늘 낮에도 회사에서 본 얼굴인데 볼 때마다 새롭게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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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하야!”

시현은 얼른 태하에게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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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으면 들어와서 같이 식사하지 그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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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아버지 데이트하시는데 제가 방해할 순 없죠.”

레온을 향해 빙긋 웃고, 태하는 시현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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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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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너무!”

시현은 활짝 웃었다. 아까 보라를 마주쳤던 얘기를 태하에게 해주고 싶어서 입이 간지러웠지만, 일단은 참기로 했다.

오늘은 부자가 처음으로 함께 살게 된 날이니까, 빨리 단둘이 있게 해 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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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아저씨, 태하랑 좋은 밤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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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데려다줄게.”

태하가 나섰지만 시현은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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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냐, 나 리무진 타고 싶어. 아까 여기 올 때도 탔는데 정말 좋더라. 아저씨, 저 리무진 타고 집에 가도 되죠?”

레온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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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우리 시현이가 원하면 언제든지.”

 

*

레온이 태하와 함께 지내기 위해 준비한 방은 침실이 두 개 있는 스위트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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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좋은 슈트가 별로 없네. 아들 옷 맞추러 한번 같이 나가야겠다.”

태하의 옷을 손수 정리해 주며 레온은 내내 들뜬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아들과 함께 지내게 된 것이 기뻐서 어쩔 줄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런 아버지를 보고 태하는 새삼 가슴이 찌르르했다. 진작 좀 잘해드렸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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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은? 배고프지 않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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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두 분 기다리면서 저도 가볍게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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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술이나 한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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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죠.”

그렇지 않아도 할 말이 있었다. 태하는 흔쾌히 승낙했다.

라운지 바에 올라가 창밖에 펼쳐진 화려한 야경을 즐기며 함께 위스키를 마셨다. 전에 화상통화를 하며 술잔을 나눈 적은 있지만, 실제로 이렇게 마주 앉아서 마시는 것은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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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탁이 있습니다, 아버지.”

첫 잔을 마시고, 태하는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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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나한테?”

부탁이라는 말에 레온은 대번에 눈을 반짝였다. 뭐든 말해 보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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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있는 아들을 찾는 여자분이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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