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1. 내 아들의 아버지 (71/181)


#71. 내 아들의 아버지
2022.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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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있는 아들을 찾는 여자 분이 계십니다.”

태하는 수연의 얘기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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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누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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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현 씨가 부모님이 없어서 작은아버지 댁에서 자란 건 알고 계시죠? 어릴 때 그 댁에 입주가정부가 있었는데…….”

태하는 간단히 수연에 대해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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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님이 저처럼 미국인 혼혈이랍니다. 자세한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돼서 친부가 미국으로 데려가 버리고 나서 여태 못 만난 모양입니다. 지금은 어디 사는지, 이름이 뭔지도 모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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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몇 살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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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하고 동갑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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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레온은 금세 자기 일처럼 마음 아픈 얼굴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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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야 네가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았지만, 그분은 뻔히 알면서도 여태 못 만나고 있으니 얼마나 그립겠니?”

얘기만 들어도 남의 일 같지 않은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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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아드님을 그리워하시는 걸 보고 저도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어젯밤, 술에 취해 자신을 아들과 착각한 수연을 보고 태하도 눈물을 참느라 혼이 났다. 내가 진짜 아들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이 간절했다.

그래서 진짜 아들을 만나게 해주자는 데 생각이 미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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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하면 찾을 수 있게 아버지가 좀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레온은 시원스레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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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현이에게 그토록 잘해준 고마운 분인데, 당연히 내가 도와야지.”

자신 있는 대답에 태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케네디 가문은 대대로 정계에도, 재계에도 영향력이 대단하다고 했다. 아버지라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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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한 많은 정보를 알아다 주렴. 바로 찾아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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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아버지.”

태하는 위스키 병을 들어 두 손으로 아버지의 빈 잔을 채웠다. 그런 태하를, 레온이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술을 따르고 나서 태하는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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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어머니도 살아 계셨으면 저를 그렇게 사랑해주셨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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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지.”

순간 아버지의 얼굴에 쓸쓸함이 스쳐서, 태하는 어머니 얘기를 꺼낸 것을 금세 후회했다. 그는 얼른 화제를 돌리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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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그 여자분과는 어떻게 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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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누구?”

레온은 무슨 소리냐는 듯 의아한 표정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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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분이 계셨던 거 아닙니까?”

전에 화상 통화로 함께 술을 마셨을 때, 분명 아버지는 그렇게 말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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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서 기다려보자. 너도, 그리고 나도.]

그래서 아버지에게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거라고 짐작했던 건데, 레온은 딱 잘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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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여자는 오로지 네 엄마 하나뿐이란다. 이전에도, 물론 앞으로도.”

태하는 마음이 아팠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그토록 수많은 세월이 지났는데, 아직도 아버지는…….

안타까운 마음에 그는 호소하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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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잊어버리고 좋은 분 만나세요. 아버지에게도 아버지 인생이 있지 않습니까.”

레온은 대답 대신에 씁쓸하게 웃었다. 태하가 따라 준 위스키를 단숨에 마시고, 그는 시선을 돌려 창밖에 펼쳐진 야경을 바라보았다.

마치 저 수많은 불빛들 속에 그리운 사람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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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다시 한번 볼 수만 있다면, 나는 당장 죽어도 좋을 것 같구나.”

 

*

시현은 레온이 내준 리무진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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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여기서 내려주세요.”

일부러 집에서 조금 못 미쳐서 차에서 내렸다. 수연의 가게에 들를 생각이었다. 아무래도 어젯밤 일이 걱정이 되어서였다.

어젯밤, 술에 취해 찾아온 수연은 태하를 자기 아들로 착각하고 서럽게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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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 저 왔어요.”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던 수연이 시현을 보자마자 뛰쳐나왔다. 그러더니 젖은 손 그대로 시현을 와락 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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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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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

시현은 당황했다. 혹시 또 취하셨나, 하고 생각했지만 이번에는 술 냄새라곤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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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이 은혜를 어떻게 다 갚지?”

시현을 꽉 껴안고, 수연은 목멘 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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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가게 보증금을 막아준 일 때문에 새삼 이러나, 싶어서 시현은 일부러 가볍게 웃으며 수연을 달래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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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그게 뭐라고요. 천천히 갚으시면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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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냐. 내가 죽을 때까지 갚고 또 갚아도 모자라. 네가 아니었으면……!”

수연은 한참 동안이나 시현을 놓아주지 않았다. 겨우 달래서 진정시키자, 그제야 수연이 젖은 눈가를 훔치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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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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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호텔로 옮겼어요. 그랜드호텔이라고, 아버지가 거기 머물고 계시거든요.”

수연이 침을 꿀꺽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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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태하가 아버지를 찾은 게 고등학교 때라고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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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때까지 아저씨는 자기한테 아들이 있다는 것도 까맣게 모르셨대요.”

수연이 흠칫하며 시현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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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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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사정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랬대요. 알게 되자마자 찾아오신 거라고, 태하 끌어안고 미안하다면서 많이 우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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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구나.”

수연은 깊은 생각에 잠긴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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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랐구나. ……그래, 몰랐던 거였어.”

그런 수연은 슬퍼 보이기도, 묘하게 안도하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수연의 이상한 낌새를, 시현은 그저 자기 아들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라고만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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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 아드님 만나보고 싶지 않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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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수연이 움찔하며 시현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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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미국에 있잖아. 어디 사는지도 모르는데 무슨 수로 만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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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레온 아저씨한테 도와달라고 부탁해볼게요. 아저씨 능력이라면 충분히 아드님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제 부탁이라면 분명 들어주실 거고요.”

어제 술에 취해서 애타게 아들을 부르는 수연을 보고, 시현은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그래서 어떻게든 아들을 찾아서 만나게 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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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돼!”

갑자기 수연이 큰 소리를 내는 바람에 시현은 깜짝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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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으로 키워 주지도 못했는데 이제 와서 무슨 낯으로 내가 네 엄마라고 나서겠어? 그 애가 여태껏 엄마 없이 자라느라 얼마나……!”

생각하자 또다시 슬픔이 북받치는 듯, 수연은 입술을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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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님도 지금쯤 엄마를 보고 싶어 할지도 모르잖아요.”

생판 남인 태하조차도 수연을 보고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리며 그리워했다. 수연의 친아들도 틀림없이 그럴 거라고 시현은 생각했다.

그러나 수연은 생각 외로 강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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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싫어. 절대 그분한테 내 얘기 하지 마. 죽어도 안 돼. 알았지?”

본인이 저렇게까지 싫다고 하니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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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았어요, 안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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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하지? 정말 말 안 할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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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몇 번이나 다짐을 받아내고서야 수연은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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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호텔에 미역국이 있을까 모르겠네. 생일날 미역국은 먹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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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생일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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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내일이 태하 생일이잖아.”

시현은 눈을 깜빡였다. 벌써 날짜가 그렇게 됐나, 싶어서 다시 생각해봐도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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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하 생일은 다음 달인데요?”

순간 수연이 당황한 얼굴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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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래? ……내가 잘못 알았나 보네.”

 

*

수연이 태하를 빼앗긴 것은 아이를 낳고 한 달 만의 일이었다.

그때 그 사람들이 미국으로 데려간다고 해서 그런 줄만 알았는데, 이제 와서 생각하니 제게는 그렇게 말해놓고 아이를 어딘가에 버리고 간 모양이다.

시현의 말에 의하면 태하를 키워준 할머니도 ‘어디서 주워 온 아이’라고 했다니까.

그러니 태하가 진짜 자기 생일을 모르는 것도 당연했다. 다음 달이 생일이라는 걸 보면, 아마도 주운 날을 생일로 삼은 것이 아닐까.

예전에 시현이 태하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 해줬던 얘기가 떠올랐다.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방치당하는 아이를, 시현이 줍다시피 해서 키웠다고 했었다. 그때는 세상에 불쌍해라, 하면서 들었는데, 지금 와서 다시 떠올리자 억장이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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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아무 데나 버릴 거면 그냥 내가 키우게 놔두지, 왜 굳이 빼앗아 가서 생이별을 하게 만들어요. 내가 아이 앞세우고 찾아가서 돈이라도 요구할까 봐? 결혼해달라고 할까 봐? 그래서 그랬어요?’

왈칵 원망스러운 마음이 치밀었으나 수연은 애써 삼켰다.

레온의 잘못이 아니다. 그는 태하의 존재조차 몰랐다고 하지 않나. 알자마자 찾아와서 부둥켜안고 울었다지 않은가.

옛날에 레온이, 자기 부모님에 대해 무척 완고한 분들이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말이 통하지 않고, 자식의 의사를 전혀 존중하지 않는 분들이라고.

실제로 아들인 그도 견디지 못하고 머나먼 한국까지 도망쳐 와 있을 정도였으니까, 보지 않아도 어느 정도인지 대강 짐작은 갔었다.

그러니 아마 그의 부모가 아들도 모르게 벌인 일인 게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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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새끼가 그렇게 고생을 하는 줄도 모르고 나는, 미국에서 잘살고 있을 거라고만……!’

당시 수연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태하에게 있어서는 어디까지나 지켜주지 못한 엄마일 뿐, 무슨 변명을 해도 그 사실이 변하지는 않는다.

심지어 바로 눈앞에 있는데, 엄마라는 사람이 보고도 몰라보지 않았는가.

첫눈에 레온과 무척 닮았다고 생각은 했었다. 그러나 단순히 태하가 혼혈이라 그런 걸 거라고만 여겼다. 여태 끊어내지 못한 레온에 대한 미련이 엉뚱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태하에게는 하나부터 열까지 죄스러운 마음뿐이었다.

그래서 수연은 사실을 알고도 차마 내가 네 친엄마라고 나서지 못했다. 그럴 염치가 없었다.

무엇 하나 도움이 되어줄 수 있는 엄마도 아니지 않은가. 다행히 지금은 부자가 서로 사이좋게 지내고 있다니 그것만으로도 기쁜 일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어쨌든 오늘이 아들의 진짜 생일인 걸 알면서 도저히 그냥 보낼 수가 없었다. 하다못해 손수 미역국이라도 끓여 주고 싶었다. 수연은 밤새 고민하다 새벽녘부터 일어나 미역국을 끓여 보온병에 담아서 택시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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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호텔로 가 주세요.”

직접 얼굴을 보면 또 눈물이 날 것 같아서, 프런트에 전해 달라고 부탁만 할 생각이었다.

택시에서 내린 수연은 웅장한 호텔의 규모에 깜짝 놀랐다. 예전에 청소부로 일했던 작은 호텔과는 천지 차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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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 비싼 호텔에 묵는구나.’

초라한 제 차림이 새삼 부끄러웠다. 수연은 자칫 식을까, 품에 보온병을 꼭 안고 종종걸음으로 로비를 지나 프런트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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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어, 혹시 손님 중에 윤태하 씨라고 계신가요?”

호텔 직원이 채 대답하기도 전에, 수연의 눈에 저만치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태하가 눈에 띄었다.

그냥 가져온 물건만 맡겨 두고 돌아가자고 생각하고 왔는데, 정작 아들의 얼굴을 보니 왈칵 반가운 마음을 이길 수가 없었다. 가까이서 보고 싶고, 목소리를 듣고 싶다.

인사라도 할까 싶어 다가가려던 수연은, 흠칫 놀라 걸음을 멈췄다.

태하의 뒤를 이어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는 남자가 눈에 띄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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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 세월을 지나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내 아들의 아버지.

단 한순간도 잊어 본 적이 없었던, 나의 첫사랑.

그 자리에 못박인 듯 얼어붙은 채 바라보고 있는데, 문득 레온이 이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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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온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수연은 그대로 숨이 멎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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