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4. 나의 로즈 (74/181)


#74. 나의 로즈
2022.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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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을 만나기로 한 일요일.

시현은 약속 시간 한참 전부터 수연을 찾아와서 수선을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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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 이거 한번 입어보실래요?”

어디 한 군데 노출도 없는 단아한 디자인의 원피스였지만, 오랫동안 앞치마를 두르고 살아온 수연의 눈에는 영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꼭 공주님의 옷을 훔쳐 입은 하녀의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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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백화점 가서 태하랑 둘이 고른 거예요. 어때요? 마음에 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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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까지 신경 안 써줘도 되는데.”

수연에게 새 옷을 입히고, 시현은 미용실에도 데려가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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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큰언니 오늘 선보니까 예쁘게 해주세요!”

메이크업을 하고 머리 손질을 받는 데 두 시간이나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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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언니 너무 예쁘다!”

메이크업을 마친 수연을 보고 시현은 손뼉을 치며 좋아했지만, 수연은 여전히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이 어색하기만 했다.

그러면서도 굳이 거절하지 않고 시현이 하는 대로 순순히 따르고 있는 것은, 25년 만에 만나는 남자에게 초라하게 보이고 싶지 않아서였다.

먼발치에서 잠깐 봤을 뿐이지만 그는 변함없이 아름다웠다. 그토록 오랜 세월이 지났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아무리 꾸며 봐야 나이를 속일 수는 없겠지만, 최대한 노력이라도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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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그분은 오늘 나 만나는 거 알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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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깜짝 놀라게 해드리려고 일부러 말 안 했어요.”

쿡쿡 웃던 시현이, 조금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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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정말 저희 없이 두 분이서 만나셔도 괜찮겠어요?”

의사소통을 걱정하는 줄 알고, 수연은 시현을 안심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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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나 영어로 얘기할 수 있으니까.”

옛날에 레온과 사귈 때는 그가 한국어라고는 한마디도 할 줄 몰라서 영어로 이야기했다.

그때는 발음도 문법도 엉망이었지만, 그 후 언젠가 태하를 만나고 싶은 마음에 열심히 영어 공부를 했다. 그런 세월이 이십 년이 훌쩍 넘었으니 어느 정도 자신이 있는 것은 당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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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건 걱정 마세요. 레온 아저씨가…….”

뭐라고 말하다 말고 시현이 입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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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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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에요. 이따 만나면 깜짝 놀라실 거예요.”

시현은 재미있다는 듯이 쿡쿡 웃었다.

레온과 단둘이 만날 생각을 하니 새삼 긴장이 되어, 수연은 떨리는 가슴을 가라앉히느라 심호흡을 했다.

내 얼굴을 보고, 그는 무슨 표정을 할까.

반가워할까. 곤란해할까. 아니면 아예, 알아보지 못할까.

수연이 레온과 단둘이서 만나고 싶다고 한 이유가 있었다. 넷이서 식사를 하게 되면 자신이 친엄마라는 걸 태하가 필연적으로 알게 될 텐데, 과연 그걸 레온이 원할지 알 수 없었다.

만약에 그가 원하지 않는다면, 수연은 무덤 속까지 입을 다물 생각이었다.

*

시현의 승진을 축하하기 위해서 셋이 함께 호텔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하기로 한 날.

태하는 직접 레온이 입을 옷을 골라 주면서 신경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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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산뜻한 색이 어울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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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타이는 이게 좋겠네요.”

그러면서 정작 본인은 옷을 갈아입을 생각도 안 해서, 레온은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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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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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먼저 내려가 계세요. 저도 금세 따라가겠습니다.”

아무래도 수상하다. 직접 넥타이를 매어 주는 태하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며, 레온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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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얘기해보렴, 아들. 오늘 시현이랑 셋이 식사하는 거 아니지?”

태하가 움찔하며 손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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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무슨 일이니?”

한참 망설이다 태하는 결국 사실을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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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말씀드린 여자분 있지요. 미국에 있는 아들을 찾는다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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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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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과 데이트를 하게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레온은 눈을 감고 한숨을 쉬었다. 어쩐지 수상하다 했더니, 목적은 블라인드 데이트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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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고맙지만 오늘 식사는 취소해야겠구나.”

넥타이를 도로 푸는 아버지를, 태하가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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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돌아가신 어머니만 그리워하면서 사실 수는 없잖아요.”

네 어머니는 죽지 않았어.

그 말이 목구멍까지 치미는 것을, 레온은 꿀꺽 삼켰다. 희망 고문에 시달리며 사는 것은 나 하나면 족하다. 아들에게까지 같은 고통을 당하게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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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좋은 분이니까 딱 한 번만 만나 보세요, 아버지. 제 얼굴을 봐서라도 말입니다.”

태하는 매달리듯 말했다. 좀처럼 물러날 기세가 아니어서, 결국 레온은 사실과 거짓을 반반 섞어서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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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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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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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이 있어서 오래전에 헤어졌는데, 지금은 그 사람을 찾고 있는 중이야.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반드시 찾아낼 거야.”

아들은 아버지의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거짓이 아니라는 걸 알았는지, 아들은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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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습니다.”

넥타이를 풀어 내려놓으며, 레온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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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서 숙녀분께 나 대신 전해드리렴. 아무쪼록 실례를 용서해달라고 말이야.”

 

*

태하가 방을 나간 후, 잠시 앉아 있던 레온은 가슴이 답답해서 밖으로 나왔다. 아름답게 꾸며진 호텔 정원을 천천히 걸으며 레온은 그녀, 정희선과의 마지막을 떠올렸다.

만난 지 얼마 안 되어 두 사람은 곧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레온은 희선이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식당에 파트타임 자리를 얻어, 설거지를 하면서 그림을 그렸다.

레온은 한국어를 몰랐고, 희선의 영어는 겨우 초급 수준이었다. 그런데도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사랑은 말이 아니라 눈빛으로, 입술로 하는 것이라는 것을 레온은 알게 되었다.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한참 사전을 뒤져서 더듬더듬 이야기하는 여자가 말도 못 하게 사랑스러웠다.

6월에 태어난 여자는 갓 피기 시작하는 장미 꽃봉오리처럼 수줍게 웃었다.

장미를 무척 좋아하는 여자를, 그는 이름 대신에 로즈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마음 같아서는 온 세상의 장미꽃을 다 모아다 안겨 주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그는 자주 장미꽃을 그려 선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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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예뻐요!]

그림을 볼 때마다 희선은 활짝 웃으며 기뻐했다. 그녀가 장미를 닮은 것도, 어쩌면 장미가 그녀를 닮은 것도 같았다.

꿈결 같은 나날은 길지 않았다. 그녀와 연인이 된 지 3개월 만에, 편지로 도움을 청했던 친구에게서 돈과 함께 답장이 왔다. 어머니가 위독하시니 빨리 귀국하라는 것이었다.

아무리 매정하고 완고한 부모라 해도 낳아준 어머니였다. 게다가 그는 외아들이었다.

대체 어디가 얼마나 아프신 건지 몰라 걱정이 되었고, 이러다 영영 다시 못 볼까 봐, 마지막 가시는 길조차 지키지 못할까 봐 겁이 났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겨우 도망쳐 나왔는데 다시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한번 미국에 돌아가면 다시는 나올 수 없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백인 우월주의자인 부모님이 희선을 받아들여 줄 것 같지 않았다.

차마 사실대로 말하지도 못하고 매일같이 고뇌하던 어느 날 밤, 그녀가 뭔가를 불쑥 내밀었다.

미국행 비행기 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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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부모님께 가 봐요.]

부모가 없어서 고등학교까지밖에 못 다닌 여자는, 늦게라도 대학에 가고 싶다는 일념으로 매일같이 식당에서 열심히 일해 돈을 모으고 있었다. 같은 또래 아가씨들처럼 새 옷 한 번, 화장품 한 개를 못 사면서.

그렇게 모은 돈으로, 이 여자는 자신의 비행기 표를 샀다.

어쩌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순간, 여태 차마 하지 못하고 있던 말이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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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려줘요.]

레온은 매달리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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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께 허락을 받아서 꼭 데리러 올게요. 나하고 같이 미국에 가요.]

이 여자를 위해서라면 그림 따위 천 번이고 만 번이고 버릴 수 있다. 철저하게 부모님이 원하는 대로 살 것이다. 시키는 대로 경영학을 배우고, 후계자가 되어서 회사를 물려받을 것이다.

그러면 부모님도 한 번쯤은 져 주시지 않을까. 내가 가장 원하는 것 한 가지쯤, 허락해주시지 않을까.

애타게 바라보는 남자의 품에 안기며, 희선은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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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고 있을게요. 언제까지라도.]

두 사람 다 몰랐다. 그날, 그 밤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다음날 레온은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위독하다던 어머니는 멀쩡했고, 레온은 성난 부모님 앞에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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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사랑하는 여자가 있습니다. 그 여자와 결혼만 하게 해주시면 뭐든 다 듣겠습니다.]

명문가인 만큼 외아들의 혼처에도 벌써부터 신경을 쓰고 있던 부모님이다. 외국인, 심지어 유색인종인 여자와 결혼을 하겠다는 말에 부모님은 경악했다.

레온은 한국은커녕 대학으로도 돌아가지 못하고 그대로 저택에 갇혔다. 수많은 경호원들이 밤낮으로 그의 곁을 지켰다. 감시가 워낙 심해서 희선에게 연락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도 레온은 포기하지 않았다. 단식도 하고, 애원도 하고, 죽어버리겠다고 협박도 했다. 결국은 자살소동까지 벌인 끝에 부모님도 손을 들었다.

부모님은 사람을 보내 희선을 데려오게 했다. 그러나 한국에 보냈던 사람이 가지고 돌아온 것은 그녀의 사망증명서였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서 레온은 직접 한국까지 날아가서 확인해보았다.

사실이었다.

희선은 정말로, 교통사고로 죽었다.

그로부터 17년이 지나고, 부모님이 한날한시에 사고로 돌아가신 후. 유품을 정리하다 레온은 아버지의 서랍 안에서 한 장의 빛바랜 편지를 발견했다.

갓난아기 사진이 동봉된, 서툰 영어로 쓰인 짧은 편지였다.

- 우리 아들이 태어났어요. 생일은 X월 X일이에요.

이름은 아직 짓지 않았어요. 괜찮다면 당신이 지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아이는 제가 잘 키울 테니까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어디서든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레온은 편지를 갖고 달려가서 돌아가신 아버지의 비서실장을 다그쳤다. 이제는 가문의 유산과 사업을 모두 물려받게 된 레온에게, 비서실장은 결국 진실을 털어놓았다.

당시 부모님은 외아들인 레온을 다른 명문가의 딸과 결혼시킬 생각이었다. 사업상 무척 중요한 결혼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자도, 그녀가 낳은 아이도 세상에서 사라져야 했다. 동양인 여자가 낳은 아이 따위, 그들은 애초에 손자라고도 여기지 않았다.

다행히도 부모가 보낸 사람들은 그렇게까지 독하지 못했다. 아직 어린 어머니와, 갓 태어난 아이를 보고 차마 죽일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여자는 죽은 것으로 꾸미고, 그녀가 낳은 아이는 미국에 데려간다는 핑계로 빼앗아서는 그대로 한국에 버리고 왔다는 것이었다.

직접 그 일을 처리했던 사람의 증언과, 혼혈이라는 특징 덕분에 아들은 금세 찾았다. 그러나 그 어머니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 후로 또 허무하게 9년의 세월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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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온은 품에서 편지를 꺼냈다.

서투르게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레 써내려간 글씨. 벌써 수천 번도 더 읽었을 편지의 문구가, 새삼스레 그의 가슴을 갈가리 찢어 놓았다.

그녀는 그저 아이의 이름을 지어달라고 부탁했을 뿐, 언제 오느냐고 묻지 않았다. 기다리고 있다고도, 빨리 데리러 와 달라고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영영 데리러 오지 않을 거라는 것을.

편지 위에 굵은 눈물방울이 툭, 하고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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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라도 기다리겠다고 했잖아. 왜 약속을 지키지 않았어?”

그리움과 원망이 뒤섞여, 그의 목소리는 마치 피를 토하는 것 같았다.

이제는 나를 다 잊었대도 좋다. 다른 사람과 결혼해서 살고 있다고 해도 상관없다. 그저 한 번만, 단 한 번만 만날 수 있다면……!

어디선가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진 것은 그때였다. 고개를 돌리자 며칠 전처럼, 한 여자가 저만치에 서서 이쪽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이번에는 고개를 돌리지 않아서, 상대의 얼굴을 확실히 볼 수 있었다.

꿈에서도 보았던 얼굴.

25년을 하루처럼 그리워했던 그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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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내가 또 헛것을 보는구나.’

덧없는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보고 싶었다. 눈을 깜빡이면 자칫 사라져 버릴 것 같아서, 레온은 눈을 크게 뜬 채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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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한참을 바라보고 있어도 여자는 사라지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그제야 레온은 위화감을 느꼈다. 틀림없는 그녀인데, 기억 속에 있는 것과는 다르다.

그녀는 저렇게 화장을 한 적이 없었다. 저렇게 예쁜 옷을 입은 적도 없었다. 무엇보다 그녀는, 한 번도 저렇게 슬픈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본 적이 없었다.

환상이 아니라 진짜 그녀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 온몸의 피가 일시에 얼어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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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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