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 보라의 결혼식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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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보라의 결혼식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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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보라의 결혼식 (2)
2022.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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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의 결혼식 장소는 시내에 있는 특급 호텔이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리는데, 문득 어디선가 이쪽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시선 같은 것이 느껴졌다. 시현이 무심코 돌아보려는데, 태하가 제 몸으로 막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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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뭔가 태도가 이상하게 느껴져서 시현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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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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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아니야. 일단 올라가서 얘기해.”
태하는 그녀의 어깨를 감싸듯 한 팔로 단단히 껴안고 걸음을 옮겼다.
엘리베이터에 타자마자 무슨 일이냐고 다시 물으려 했는데, 공교롭게도 마침 엘리베이터 안에는 미래은행 개발팀 인원들이 먼저 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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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게 누구야?”
시현을 본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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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 강시현 씨! 다른 사람인 줄 알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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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과장님 너무 예뻐요! 오늘 부케 받으시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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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워낙 보라 씨랑 친했지.”
시현의 달라진 모습을 보고 어찌나 놀랐는지, 사람들은 본부장인 태하에게 인사하는 것조차 잠시 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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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그냥 결혼식 보러 온 거예요.”
대답하며 시현은 속으로 한숨을 지었다. 원래는 축의금만 전달하고 돌아갈 예정이었는데, 사람들 눈이 있으니 아무래도 앉아서 식을 봐야 할 모양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시현은 태하의 팔을 붙잡고 살짝 사람들 뒤로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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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였어, 아까?”
태하가 굳은 표정으로 대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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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진을 본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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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시현은 놀라서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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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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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잠깐 본 거라 확실하진 않지만…… 맞는 것 같아.”
신중한 태하가 이렇게 말할 정도면 우진이 맞겠지. 시현은 불길한 예감에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김우진이 대체 여긴 왜?
그러나 어디선가 들려온 놀란 목소리에, 더 깊게 생각할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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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 유니온TA 윤태하 대표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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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디 회장 아들?”
긴장해서 얼굴이 확 굳어지는 시현을 향해, 태하가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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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너무 예뻐.”
심호흡을 하고, 시현은 태하가 내미는 팔을 붙잡았다.
*
시현과 태하, 두 사람이 결혼식장에 나타나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관심은 일제히 그쪽으로 집중되었다.
타고난 완벽한 체형을 감이 좋은 슈트로 꼭 감싸고 있는 남자는 존재만으로도 시선을 끌었다. 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얇은 여름 양복 천 아래 가려진 폭발적인 근육들이 뚜렷한 형태를 드러냈다.
자칫 모델이나 배우 따위로 착각하게 만드는 화려한 이목구비를, 진한 갈색의 눈동자가 차분하게 만들고 있었다.
곁에 있는 여자 역시 그에 지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하늘거리는 드레스에 섞인 얇은 금사가 눈부신 조명 아래 우아하게 빛나고, 높은 굽의 구두는 날씬한 다리를 더욱더 돋보이게 했다.
선이 곱고 단정한 작은 얼굴이, 옆에 있는 남자의 화려한 외모와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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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하 대표 맞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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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저 여자가, 케네디 회장이 기자회견에서 말하던 예비 며느리란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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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일곱 살 연상이라더니 하나도 그렇게 안 보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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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 미인이었네.”
여기저기서 감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여럿이었다.
보라의 눈에도 완벽한 커플이었다. 쇼핑이 취미인 보라는 시현의 옷과 가방, 구두에 이르기까지 모두 최고급이라는 것도 금세 알아볼 수 있었다. 저게 회사에서 보던 그 수수하고 검소한 강시현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한순간에 주목을 빼앗겨버린 보라는 화가 치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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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게 내 결혼식을 망치려고 일부러!’
그러나 보라는 금세 정신을 차리고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생각하려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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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남들은 속사정까지는 모르잖아. 저런 유명인사가 와 주면 그만큼 내 결혼식이 돋보이는 거 아니겠어?’
게다가 윤태하의 아버지는 미국 재계의 거물이다. 이런 하객이 참석했다는 것은 시댁에도 면이 서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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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과장님!”
보라는 둘도 없이 반가운 표정으로 다가가 보란 듯이 시현의 손을 덥석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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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신데 어떻게 여기까지 와 주셨어요?”
시현이 엷은 미소를 띠고 대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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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앱팀 축의금, 내가 대표로 전달하게 됐거든. 사다리타기에 지는 바람에.”
보라는 시현의 곁에 서 있는 태하에게도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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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본부장님.”
태하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없이 살짝 고개만 까딱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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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축하해.”
시현은 핸드백에서 봉투를 꺼내서 보라의 곁을 지키던 웨딩도우미에게 건네고는, 보라의 귓가에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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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끝나고 나서 열어봐.”
보라는 내심 초조해졌다. 대체 저 봉투 안에 뭐가 들어 있는 걸까. 단순히 축의금이라면 굳이 자기 것만 직접 줄 이유도 없을 테고, 굳이 나중에 보라고 할 리도 없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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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저게 뭐지?’
시현과 태하는 인사를 나누고 금세 돌아서서 가버렸지만, 신경이 잔뜩 곤두서는 바람에 보라는 더 이상 미소를 지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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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요? 얼굴이 안 좋은데.”
걱정스레 묻는 신랑의 목소리마저도 짜증이 났다.
신랑이랍시고 한껏 멋을 내고 메이크업까지 하고도, 방금 본 윤태하와 비교하면 마치 오징어처럼 느껴졌다. 화려한 식장조차도 왠지 새삼스레 촌스럽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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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요.”
억지웃음을 지으며 대답했지만 더 이상 아까처럼 환한 웃음이 되지는 못했다.
도망치듯 제자리에 돌아가 앉아서, 보라는 억지로 마음을 진정시키려 노력했다.
괜찮아, 오늘의 주인공은 나야.
잠시 후 예식이 시작되었다. 신랑이 먼저 입장하고, 보라도 아버지 이 회장의 손을 잡고 웨딩 로드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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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 입장.”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보라는 아버지 곁에서 곱게 눈을 내리깔고 사뿐사뿐 웨딩 로드를 걸었다. 아름다운 신부의 모습에 아낌없는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웨딩 로드의 중간 정도까지 왔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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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구머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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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게 뭐야?”
갑자기 음악이 멈추고, 대신에 하객석에서 놀란 소리가 들려오는 바람에 보라는 걸음을 멈췄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고개를 들었다가 보라는 제 눈을 의심했다.
주례석 뒤의 대형 스크린에, 웨딩 사진이 아닌 엉뚱한 사진이 떠올라 있었다.
어두운 침대 위에 벌거벗은 채 뒤엉켜 잠들어 있는 남녀의 모습이 왠지 눈에 익었다. 각도 상 남자의 얼굴은 교묘하게 보이지 않았지만, 여자의 얼굴은 똑똑히 보였다.
……순간, 보라의 시간이 멈췄다.
드넓은 결혼식장이 온통 침묵에 휩싸인 가운데, 화면은 이윽고 동영상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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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폰 뺏어요! 빨리!]
벗은 몸을 시트로 가린 여자가 화면 속에서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보라의 곁에 서 있던 이 회장이 벼락같이 고함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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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뭣들 하고 있어? 빨리 가서 끄지 못해!”
몇몇 사람들이 급히 달려갔다. 그러나 혼주석에 앉아 있던 시아버지가 벌떡 일어서더니 더욱더 큰 소리로 호통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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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놔둬!”
쾅, 쾅, 쾅. 충격음에 이어서 화면이 새카맣게 물드는 것을 보고 보라는 남의 일처럼 생각했다. 아, 저 때 휴대폰을 부쉈구나.
그때부터는 목소리만이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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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보라 너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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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해요, 대리님. 제가 정말 잘못했어요!]
두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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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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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아!”
저만치서 고함과 함께 몸싸움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재생을 멈추려는 신부 측 사람들과, 가로막으려는 신랑 측 사람들의 실랑이였다.
그사이에 소리는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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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내 남자였니? 너 인기 많잖아. 더 좋은 남자들도 많았을 텐데, 왜 하필 이 인간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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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그러려고 했던 게 아니었어요. 그냥 전, 진짜로 강 대리님이 너무 좋아서…… 대리님 거는 뭐든지 다 좋아 보였어요. 그것뿐이에요.]
하객들도 술렁이며 경악한 눈으로 보라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보라의 귀에는 하나도 들려오지 않았다. 보라는 눈 깜빡이는 것조차 잊고 새카맣기만 한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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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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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네, 대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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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거는 다 좋아 보인댔지? 그럼 너 다 가져.]
시현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소리는 멈추고, 보라는 생각했다.
뭐, 별것도 아니었네.
결혼 전에 저런 일, 누구든 한 번쯤 있을 수 있는 거잖아.
게다가 내 것을 먼저 빼앗은 건 저 여잔데.
그렇죠? 하듯 바라보자 신랑이 이를 악물고 보라를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가슴에 꽂았던 장미꽃을 빼내서 바닥에 팽개친 남자가, 꽃을 구둣발로 자근자근 밟아버렸다. 처참하게 밟혀버린 꽃에서 흘러나온 꽃물로 새하얀 웨딩 로드가 금세 물들었다.
그대로 뚜벅뚜벅 걸어 식장을 나가 버리는 신랑의 뒷모습을, 보라는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았다.
방금까지 곁에 있던 아버지도 어느덧 사라지고 없었다. 보니까 사회자석으로 향하는 시아버지의 팔에 매달리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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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돈어른, 잠시만 고정하시고…….”
어떻게든 붙잡으려는 이 회장의 팔을, 시아버지가 거칠게 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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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사돈이란 말이오?”
시아버지는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사회자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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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하지만 오늘 결혼식은 취소입니다. 축의금은 돌려드릴 테니 빠짐없이 찾아가시고, 오신 분들은 식사들 하고 가십시오.”
그때 반대편에서 다급한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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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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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어머니를, 보라의 언니와 오빠가 달려들어 부축하고 있었다.
하객들 몇몇은 이 난리통을 휴대폰 카메라에 담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것을 제지하느라 여기저기서 또 다른 난리가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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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찍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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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 뺏어!”
아수라장 가운데서 남의 일처럼 우두커니 서서 구경하던 보라는, 이윽고 누가 벌인 일일까 하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야 물론 강시현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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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고고한 척하더니, 결국 너도 거기까지구나.’
이 와중에도 왠지 묘한 쾌감이 느껴졌다.
보라는 주위를 둘러보며 시현을 찾았다. 하객석 맨 뒤에 앉아 있던 시현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보라는 한쪽 입가를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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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때, 그토록 경멸하던 나하고 같이 진흙탕에 빠진 기분은?’
그러나 시현은 보라가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에 어려 있는 것은 승리의 미소가 아니라 당황한 기색이었다. 마치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는 듯이.
왜 그런 표정을 하고 있는 거야.
보라는 초조함을 느꼈다. 아까 반쯤 벗은 제 모습이 대형 화면에 나올 때조차도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이게 아닌데.
보라는 뒤에서 드레스 자락을 잡고 있던 웨딩도우미에게 날카롭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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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백 가져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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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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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핸드백 달란 말이야!”
웨딩도우미가 어쩔 줄 몰라 하며 보라의 핸드백을 가져와 내밀었다. 보라는 아까 시현이 주었던 봉투를 꺼냈다.
봉투 안에서 나온 것은 짧은 편지였다.
- 이왕 하는 결혼, 행복하게 잘 살아봐.
내가 갖고 있는 건 영원히 없애버릴 테니까 아무 걱정 말고.
결혼 축하한다, 이보라.
편지를 든 보라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결국 강시현은 끝내 자신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진흙탕에 빠져 있던 것은 저 혼자뿐이었다.
제 손으로 제 목을 졸랐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왠지 우스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누가 재수 없는 여자 아니랄까 봐, 끝까지 잘난 척을…….
아수라장 속에서 보라는 소리 내어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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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하하……!”
웨딩 로드 한가운데 털썩 주저앉아 정신이 나간 듯 큰 소리로 웃어대는 신부를, 하객들이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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