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한밤중의 키스 세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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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한밤중의 키스 세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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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한밤중의 키스 세례
2022.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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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치고 두 사람은 나란히 걸어서 집까지 돌아왔다.
레온이 은근슬쩍 따라 들어올까 봐 겁이 나서, 희선은 집 앞에서 일부러 힘주어 작별인사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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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려다줘서 고마워요. 조심해서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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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레온이 코트 안주머니에서 종이봉투를 꺼내어 건넸다. 열어 보니 아직 따뜻한 붕어빵이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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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잖아요. 식기 전에 얼른 먹어요.”
어쩐지 아까 말도 없이 불쑥 어딜 갔다 오더라니. 식당 근처에 붕어빵 파는 곳을 발견하고 사러 갔다 온 모양이었다.
식을까 봐 여태 옷 안에 품고 있었던 마음을 생각하니 가슴속이 다 간질거렸다. 소녀처럼 붉어지는 얼굴을 감추느라 희선은 괜히 퉁명스레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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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전에 이런 거 먹으면 얼굴 붓는단 말이에요. 태하 가졌을 때도 얼마나 퉁퉁 부었는지…….”
뒤늦게 레온의 표정을 보고 희선은 얼른 입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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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의 그 모습을 보지 못한 걸 평생 후회할 것 같네요.”
레온이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그 순간, 희선은 그를 보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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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와서 커피 마시고 갈래요?”
분명 바로 얼마 전에 그녀를 뜨겁게 안았던 남자는, 마치 깜짝 선물이라도 받은 것 같은 얼굴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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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그래도 돼요?”
희선의 키보다도 낮은 문을 통해 들어오느라 키가 큰 남자는 허리를 반쯤 접어야 했다.
희선은 작은 주전자에 물을 올렸다. 원두도 원산지 따져 가며 마실 것 같은 남자에게 인스턴트커피를 내놓자니 새삼 부끄러웠지만, 있는 게 그것뿐이니 어쩔 수 없었다.
좁은 방이 곧 달착지근한 커피 냄새로 가득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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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사는 게 참 초라하지요.”
민망함을 감추느라, 희선은 커피 잔을 만지작거리며 씁쓸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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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줄까요?”
믹스 커피를 맛있게 한 모금 삼키고, 그랜드호텔 회장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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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하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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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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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진 거라고 해 봤자 다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것들, 아니면 그걸 기반으로 이뤄낸 것들이에요. 내 아버지는 할아버지한테, 할아버지는 또 그 아버지에게 물려받았지요.”
채 다섯 평도 안 되는 좁은 방 안을, 레온은 찬탄이 어린 눈길로 둘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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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당신은 하나하나 자기 손으로 싸워서 얻어낸 거잖아요. 그것도 늘 쫓기듯 살면서 말이에요.”
진심 어린 목소리에 희선의 귓가가 달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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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스럽고, 멋지고, 대단해요.”
희선은 이 가게를 처음 얻던 날을 떠올렸다. 드디어 쫓겨나지 않아도 되는 내 가게, 혼자 쓸 수 있는 내 방이 생겼다는 기쁨에 첫날은 잠도 설쳤었다.
그걸 레온이 알아준다는 사실에 마음이 벅찼다. 무엇보다 그가 자신을 창피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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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당신이 빨리 가게 접고 호텔로 옮기라고 할 줄 알았어요.”
레온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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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러면 좋겠기는 하지요. 당신이 내 곁에 있었으면 좋겠고, 무엇보다 당신이 좀 편하게 지냈으면 좋겠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고운 사탕가루처럼 귓가에 포근하게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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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당신한테는 이 가게가 무척 소중하다는 걸 아니까 기다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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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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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그러고 싶어질 때, 내 곁으로 와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희선은 그저 고개를 숙이고 애꿎은 커피 잔만 닳도록 만지작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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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정말 모르겠어서 묻는 건데.”
달콤한 침묵 끝에, 결국 레온이 직구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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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커피만 마시고 그냥 가요, 아니면 자고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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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가요.”
들릴락 말락 하게 중얼거린 말을, 남자는 용케도 알아듣고 얼굴이 환해졌다. 냉큼 넥타이를 느슨하게 하고, 그는 성급하게 그녀를 향해 바짝 다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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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 와요.”
그러나 입술이 닿기 직전, 희선은 손가락으로 그의 입술을 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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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손만 잡고 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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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레온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눈으로 희선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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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에 호텔에선 내가 당신 말 들어줬잖아요. 이번에는 당신이 내 말 들어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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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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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으면 그냥 가든지요.”
레온의 잘생긴 얼굴이 고뇌로 가득 찼다. 과연 손만 잡고 잘 수 있을지 자신없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결국은 곁에 있고 싶은 마음이 컸는지,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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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았어요. 손만 잡고 잘게요.”
그러면서도 못내 원망스러운 눈으로 희선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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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로즈. 당신은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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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뭐요?”
가만히 품에 안기며 묻자 레온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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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사람이에요.”
마음만은 스무 살로 돌아간 여자가 그의 품 안에서 소리죽여 쿡쿡 웃었다.
사실은, 연애하는 김에 밀당이란 걸 한번 해보고 싶었다.
*
오늘도 태하는 늦게까지 바빴다. 퇴근하자마자 인테리어 디자이너와 함께 현장까지 다녀오느라, 호텔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저녁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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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안, 아들. 오늘은 밖에서 잘 테니까 기다리지 말고 먼저 자렴.
아버지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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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 아버지. 즐거운 시간 보내십시오. ♨
놀려 드리고 싶어서 뒤에 이모티콘까지 붙여서 보냈는데 답장이 이렇게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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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ㅠ_ㅠ
플라토닉이라고 하시더니 설마 진짠가?
휴대폰을 붙잡고 한참 웃다가, 태하는 호텔 정원에 나가 가볍게 산책을 했다. 자기 전에 산책을 하는 것도 호텔에서 지내게 된 후로 정착된 하루 일과 중 하나였다.
인적이 드문 조용한 정원을 걸으며, 태하는 습관처럼 시현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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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사무실에 있으려나.’
오늘 시현은 야근을 할 예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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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당분간 많이 바쁠 거라며. 그럼 나도 당분간 일 좀 빡세게 해야겠다.]
그가 바쁠 거라고만 얘기하고 이유조차 말해주지 않았는데도, 시현은 왜냐고 캐묻지 않았다. 이제 와서 혹시 그녀가 불안해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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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사실대로 말해줄 걸 그랬나?’
이 생각, 저 생각 하면서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데 어디선가 한숨 섞인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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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여기 오면 안 돼.”
돌아보니 누가 정원 구석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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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배고팠지? ……천천히 먹어.”
유니폼을 입은 뒷모습이 왠지 눈에 익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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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있습니까?”
다가가서 묻자 여자가 화들짝 놀라며 몸을 일으켰다. 역시 수영장에서 구해줬던 그 직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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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아닙니다.”
여자가 제 몸으로 얼른 막아서려 했지만 이미 태하의 눈에 들킨 뒤였다.
작은 종이 박스 안에 검정색 얼룩무늬의 새끼고양이가 들어있었다.
태하는 몸을 낮춰 고양이를 바라보았다. 야옹, 야옹거리는 것이 무척이나 귀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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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내보내려고 했어요.”
먹이다 만 소시지를 손에 든 여자가 황급히 변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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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쫓아내도 자꾸만 와서 어쩔 수 없이……. 아마 어미를 잃어버렸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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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요.”
물끄러미 새끼고양이를 바라보고 있자 여자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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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어, 당분간만 모른 척해주시면 안 될까요? 얘는 아직 어려서, 여기서 나가면 어른 고양이들한테 치여서 못 살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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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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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부탁드려요, 네?”
태하는 잠시 생각한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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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하죠.”
여자는 기쁜 얼굴로 몇 번이나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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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돌아서서 정원을 나오며, 태하는 휴대폰을 꺼내 아버지의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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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비서님? 윤태하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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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바빠?”
야근을 하고 있는데 태하가 불쑥 사무실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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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하야!”
시현은 반색을 하며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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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바쁘다며. 회사엔 왜 또 왔어, 들어가서 쉬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반갑기 그지없었다. 태하가 바빠서 따로 만나기 힘들어진 이후로, 낮에 회사에서밖에 얼굴을 볼 수 없었다. 하다못해 손조차 잡지 못한 게 벌써 며칠 째여서, 슬슬 금단증상에 시달리던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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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은 먹었어? 몸 챙겨 가면서 일하고 있는 거지?”
얼른 달려가서 손부터 잡는 시현을, 왠지 태하는 한참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불쑥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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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왜 바쁜지, 당신은 궁금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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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 궁금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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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왜 안 물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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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가 되면 말해주겠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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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한번 속아서 상처받았잖아. 내가 뭘 하는지 모르는데 불안하지도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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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만 아니면 됐지 뭐.”
그렇게 말하다 아, 하고 나서 시현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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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바람이라도 상관없어. 싸워서 도로 빼앗아 올 거니까.”
태하가 한숨을 지었다. 답답해서 흘리는 한숨이 아니라, 너무나 사랑스러운 것을 앞에 두고 어쩔 줄 몰라서 흘리는 한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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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
갑자기 날아온 고백에 시현은 목덜미까지 확 달아올랐다.
태하는 평소에 좀처럼 이런 말을 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감정표현을 말로 하는 법 자체가 무척이나 드문 남자였다.
침대에서 사랑을 나누고, 한껏 흐트러졌을 때에나 겨우 듣던 말을 사무실에서 들으니 민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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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너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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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잠깐만. 여기 사무실…….”
그러나 태하는 아랑곳하지 않고 팔을 뻗어 그녀를 꼭 껴안았다. 달아오른 뺨에 제 뺨을 비비고, 입을 맞췄다. 금세 입술을 떼고는 코끝을 비비다 또 입을 맞췄다. 홀린 듯한 눈길로 바라보다가,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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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해, 너무 사랑해.”
입맞춤 사이사이에 열띤 속삭임이 이어졌다. 갓 말을 배운 어린애처럼, 그는 끊임없이 고백하고 또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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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너무 좋아서 미칠 것 같아.”
흘러넘치는 감정을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는 것이 시현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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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알았, 읍, 그래도, 읍, 사무실, 읍, 인데 좀…… 읍.”
결국은 숨이 넘어가기 직전까지 입술을 빼앗기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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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또 달려들까 봐 멀찍이 떨어져서 묻자, 태하는 대답 대신에 웬 상자를 불쑥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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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뭐야?”
상자를 열어 본 시현의 눈이 기쁨으로 커다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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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사과패드! 나 이거 진짜 갖고 싶었는데!”
산 지 3년이 훌쩍 넘은 태블릿PC가 요즘 눈에 띄게 느려져서, 그렇지 않아도 하나 새것으로 장만하고 싶었던 참이었다.
반짝이는 새 태블릿을 쓰다듬어 보다가, 시현은 어깨를 으쓱하며 살짝 도도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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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까지 내가 좋다면, 해주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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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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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자고,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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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소리야?”
태하가 당황한 듯이 쳐다봐서 시현도 당황했다. 생일도 아니고 기념일도 아닌데 갑자기 와서 선물을 불쑥 내미니까 당연히 프러포즈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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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프러포즈하는 거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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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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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건 뭔데?”
태하는 조금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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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사전을 사려고 했는데, 아무리 찾아도 파는 데가 없어서 이걸로 대신하는 거야.”
시현은 영문을 몰랐다. 뜬금없이 무슨 전자사전 타령이냐고 물으려는데, 태하가 팔을 뻗어 다시 시현을 품에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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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두 번 다시 빼앗기지 않을 거야. 아무것도, 그 누구에게도.”
결심에 찬 목소리는, 왠지 어딘가 화가 난 것같이 들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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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소리야?”
그러나 한참을 기다려도 태하는 대답이 없었다. 그저 위로하듯 시현의 머리 위에 입을 맞추고 부드럽게 등을 쓰다듬어 줄 뿐.
문제는 위로받을 만한 일이 없다는 거였다.
아무래도 오늘따라 행동 하나하나가 이상하다. 분명히 뭔가가 있는 것 같은데…….
무슨 일이냐고 물으려다 시현은 그만두었다. 그가 말하지 않는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도 그녀는 태하를 믿었다.
넓고 따뜻한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있다가, 시현은 살짝 애교를 부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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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잖아, 나 너한테 프러포즈 받고 싶은데.”
당신은 왜 나한테 아무것도 원하지 않느냐고 태하가 서운해하던 게 떠올라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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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기다려줘.”
기쁜 듯한 목소리가 대답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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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이 준비되면, 꼭 할게.”
대체 무슨 선물을 하려고 준비씩이나 하는 건데?
왠지 겁이 나서 시현은 차마 묻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