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주마등
가죽 투구의 눈구멍 사이로 까만 점이 날아오는 듯 보였다.
엔크리드는 왼손등에 고정한 방패를 들었다.
퉁.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때리면서 흘리려고 했는데 반만 성공한 탓에 팔뚝이 뻐근했다.
엔크리드는 창을 내지른 놈의 투구 위로 칼날을 내리쳤다.
뻑.
반사적으로 목을 꺾은 놈의 어깨 위로 칼날이 떨어졌다.
견갑을 때린 묵직한 소리와 함께 손아귀가 찡하니 울렸다.
“끄윽, 죽인다. 너.”
적군이 중얼대더니, 창대를 짧게 잡고 휘둘렀다.
잘 배운 솜씨였다.
엔크리드는 생각할 것도 없이 발바닥으로 놈의 배를 밀어 찼다.
“억.”
맞은 놈이 균형을 잃고 쓰러졌다.
백병전, 난전에 가까운 전투다.
아군과 적군의 선두가 엮이고 섞이면 적아가 뒤섞이기 마련이었다.
고로, 쓰러지면 곧 죽는다는 말이었다.
쓰러뜨린 놈에게서 시선을 뗀 엔크리드는 방패 손잡이를 꽉 그러쥐고 아군을 찾았다.
이성을 잃고 날뛰면 죽는다. 난전이 됐다고 광전사 흉내를 내면 광전사가 되는 게 아니라 시체가 되기 마련이었다.
긴 세월, 보잘것없는 재능으로 살아남은 이유.
엔크리드는 분수를 알았다.
‘나서지 말고.’
어디선가 날아온 칼날을 방패로 막았다.
칼날이 방패 모서리에 맞으며 쇠테가 찌그러졌다.
기름 먹인 나무 방패가 뒤틀렸다.
잘해야 몇 번 더 쓰면 무용지물이 될 듯했다.
‘공격은 짧고 단순하게.’
막고 난 뒤, 엔크리드는 칼을 쥔 손에 힘을 주고 휘둘렀다.
퉁.
곧 묵직한 타격감이 손아귀를 강타했다.
운 나쁜 적군 하나가 머리통을 얻어맞아 옆으로 나뒹굴었다.
쓰러진 놈의 가슴으로 아군의 창날이 푹 하고 박혔다.
솜과 리넨을 겹쳐 두껍게 만든 갬비슨이 창날의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안으로 푹푹 찍혔다.
맞은 놈이 살겠다고 발버둥 쳤다.
퍽! 퍽! 퍽!
아군 병사는 쉼 없이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막든 말든, 거리를 두고 창날을 힘 있게 꽂았다.
푹.
결국, 창날이 갑옷을 뚫고 운 나쁜 적군의 몸통에 틀어박혔다.
“끅.”
피를 울컥 토해 낸 놈이 부들부들 떨며 제 배를 찌른 창대를 움켜잡았다.
“시발, 놔! 놓으라고! 개새끼가.”
적군은 끝까지 창대를 잡고 버텼고, 아군 병사는 자신의 무기를 포기하고 놈이 쓰던 창을 집어 들었다.
거기까지 확인한 엔크리드는 뒤로 물러나며 호흡을 끊어 삼켰다.
“후우, 후우, 후우.”
그는 자신이 선 위치, 아군의 위치, 적군의 위치 따위를 눈에 담고 머릿속에 그렸다.
‘나서면 죽는다.’
자신의 실력으로 적군 사이로 파고들면 전장에 뿌려지는 거름이 될 터였다.
조금 전 배꼽보다 몇 배는 큰 구멍이 뚫려 죽은 적군과 마찬가지다.
놈은 흥분한 채 전선 앞으로 튀어나왔으나, 실력은 그저 그랬다.
그동안 전장에서 제 놈보다 운 나쁘고 실력 없는 놈을 몇 잡아서 자만했을지도 모르고.
단순히 운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노리고 휘두른 것도 아닌 엔크리드의 칼날에 걸렸으니까.
며칠째 비가 오지 않아 바닥이 딱딱하게 굳어 돌덩이 같았다.
그 위로 피가 흩뿌려졌지만, 그렇다고 건조함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그동안 비가 너무 안 왔다.
목이 타들어 가는 기분이 들며, 목구멍 안에서부터 피 냄새가 솟구쳐 올라왔다.
엔크리드는 마른침을 삼키며 눈으로 제 분대원을 찾았다.
물론 찾는다고 보이진 않았다.
그 대신이다.
“우아아아아!”
누군가 고함을 내질렀다.
두 걸음 거리였다. 아군 소대원 중 하나가 창을 들어 찌르는 장면이 보였다.
‘뭐하냐.’
찌르기 자체는 좋았으나 혼자 발을 헛디디더니, 제 왼발에 오른발이 걸려 자빠졌다.
쿵- 하고 쓰러지며 무기도 놓쳤다.
‘죽여 달라고 기도라도 올리는 거냐?’
쓰러진 놈이 고개만 삐죽 올리는 꼴이 엎드린 채 기도하는 모습처럼 보였다.
엔크리드는 생각을 끊어 내고 움직였다.
앞으로 나아가며 방패를 위로 들고 숨을 참으며 근육에 힘을 줬다.
퉁. 우지직.
상대 칼날이 방패를 후린다. 묵직한 충격이 팔뚝을 통해 전신에 퍼졌다.
가까스로 칼날을 막자 기름 먹인 나무 방패가 쪼개졌다.
엔크리드는 부서진 방패를 앞으로 던지고 젖 먹던 힘까지 더해서 세차게 칼을 좌우로 휘둘렀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한 번, 다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크게 한 번.
훙, 훙.
까-앙!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휘두르는 타이밍에 상대 무기가 걸렸다.
칼날과 칼날이 만나 불똥이 튀고, 상대의 무기가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게 보였다.
그걸 노렸다.
엔크리드는 어쭙잖은 제 검술보다, 그동안 키운 제 완력을 믿었다.
훈련만큼은 어지간한 일류 용병 이상으로 해 왔다.
그 완력이 만든 기회였다. 그렇다고 덤벼들진 않았다. 언제나 위기 속에 기회가 있듯, 기회 속에 위기가 있는 법이니까.
“우아아!”
무기를 놓친 적군은 주춤하더니 팔을 들고 달려들었다.
자신이 곰인 줄 아는 듯했다.
엔크리드는 칼을 내미는 척하다가 바닥에 던지듯 놓아 버리곤 몸을 숙였고, 달려들던 놈을 받아서 뒤로 넘겼다.
갑옷과 투구, 갖가지 무장, 거기에 성인 남성의 몸무게가 등허리 위로 실렸다.
묵직했다.
상대를 등에 싣는 순간, 허리와 허벅지가 비명을 내질렀다.
그 비명을 무시한 채, 엔크리드는 힘껏 허리를 펴며 몸을 일으켰고.
“컥!”
적군의 몸은 뒤로 훌렁 넘어갔다.
쿵 하고 떨어진 놈을 돌아볼 필요는 없었다.
자신이 선 위치는 아군이 만든 전선의 한 발자국 안쪽이었고.
이쪽에선 보통 세 종류의 적군만 만날 수 있었다.
하나, 등 떠밀려 달리다 보니 선두에 서게 된 운 나쁜 놈.
둘, 며칠 간의 전투를 통해 자만감이 가득한 머저리.
셋, 제 실력에 자신이 있기에 전투를 주도하는 진짜배기.
지금 뒤로 넘긴 놈은 첫 번째 타입이었다.
자포자기로 덤비다가 적군 사이에 떨어졌으니 죽은 목숨이었고.
엔크리드는 바닥에 떨어진 칼을 주워들었다.
돌진하다 제 발에 걸려 쓰러진 아군이 주섬주섬 일어나는 게 보였다.
어디서 맞았는지 투구 반쪽이 곱게 쪼개진 것도 보였다.
머리통에서도 피가 흘렀다.
‘운 참 억세게 좋은 놈일세.’
하물며 조금 전에도 죽을 뻔한 걸 자기가 살렸다.
여러모로 운이 좋은 친구였다. 아는 놈이기도 했고.
“벨, 머리통이 쪼개져서 정신을 놔 버렸냐?”
엔크리드가 말했다.
투구가 반쯤 쪼개진 병사, 벨은 눈 위로 흐르는 피를 닦으며 답했다.
“크흐, 시발, 염병할, 간신히 살았네.”
“간신히 살았으면 등 좀 막아 줘.”
전장 한복판에서 일개 병사가 전세를 읽긴 어렵다. 분대장이자 십인대장은 지휘관이 아니라 십인대에 명령을 조달하는 역할이 주가 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엔크리드는 전세를 읽었다.
정확하게는 느꼈다.
‘안 좋은데.’
수없이 긴 세월, 전장의 피와 칼날을 머금고 살아왔다.
그 나날들이 그에게 검술의 재능을 주진 않았지만, 그래도 얼치기로 전장의 흐름은 잃게 해 줬다.
솔직히 말하면 순전히 감이었다.
그래도 그 감이 그를 여러 번 살린 건 사실이었다.
‘이거 염병난 것 같은데.’
“끄으, 그럽시다.”
벨이 머리에 피를 닦으며 대답하곤 제 무기를 챙긴 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동작으로 움직였다.
창을 든 벨은 주변을 경계하며 두 걸음 걸었고.
퍽.
섬광이 날아와 머리통을 뚫었다.
반쯤 잘린 투구 사이였다.
화살이 날아와 머리통에 꽂혔다. 그 충격에 눈알이 튕겨 나와 엔크리드의 가죽 갑옷 위를 때렸다.
‘아.’
벨은 짧은 신음조차 뱉지 못하고 죽었다. 입만 벙긋 벌린 채였다.
엔크리드는 시선을 돌렸다.
하늘 저편, 정확히는 허공. 무어라 딱 꼬집어 말할 수 없는 공간의 사이.
번쩍하는 빛과 점이 보였다.
그걸 보는 순간, 그게 자신의 머리에 꽂힐 거란 걸 알았다.
엔크리드는 눈을 감았다.
죽음의 순간에 초연할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엔크리드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눈을 감자 곧 지난 삶, 어제 꿨던 꿈처럼 과거가 툭 하고 튀어나와 흔히 말하는 주마등처럼 지나가려 했다.
시간이 느려지는 기분이 들었다.
전장의 소음이 지워지고 숨 쉬는 것조차 느려지는 기분이었다.
툭, 탁!
곧 그런 기분은 사라졌다. 주마등도 사라졌고 다시 전장의 소음이 들렸으며 숨도 똑바로 쉬고 있다는 걸 느꼈다.
“죽여 줘서 고맙다고 감사 기도라도 올리는 거요?”
부하 놈이었다.
제 십인대 중 하나.
그가 자신을 밀쳤고, 화살은 바닥에 꽂혔다.
“렘.”
엔크리드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이번 전투에 매의 눈깔인지, 깃털인지 하는 개자식이 왔다니까, 화살 조심하쇼.”
“그게 조심한다고 안 맞겠냐?”
“내가 조지고 올라니까, 좀 기다리고.”
이 새끼도 참 신선하게 미쳤지.
엔크리드는 그리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삶을 포기한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 오늘따라 훈련도 빼먹고 낮잠 자더만.”
렘이 말했다.
“참견이냐?”
“혹시나 뒈지고 싶은 거 살렸으면 내가 찝찝하니까.”
“염병할, 죽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
칼밥 먹고 산다는 게 자살 기도한다는 것과 같은 말은 아니었다.
“평소에는 잘만 싸우다가 꼭 중요한 순간에는 눈을 감으니까 하는 말이지.”
“감고 싶어서 감는 거겠냐?”
아까도 비슷한 말로 되물은 것 같은데.
렘은 오른손에는 도끼, 왼손에는 부러진 창을 들고 있었다.
칼이나 도끼, 둔기 등의 무기를 가리지 않고 잘 쓰기에 가능한 무장이었다.
그는 도끼를 든 오른손을 들어 엄지로 제 머리를 북북 긁었다.
그렇다고 시원해 보이진 않았다.
투구 위를 긁고 있었으니까.
“시발, 이 투구는 냄새가 참 개같아.”
“그건 동감이지.”
“죽을 것 같으면 더 집중하라니까.”
렘이 말했다.
자주 하는 말이었다. 엔크리드도 안다. 저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렘은 자주 말하곤 했다.
뒈질 것 같은 순간, 그 주마등의 순간, 사람은 초인의 경지로 집중한다. 그걸 전투에 활용하라고.
염병, 그게 되겠냐?
그게 재능이었다.
삶과 죽음을 나누는 그 찰나에 눈을 뜨고 상대를 직시하고 내 할 일을 하는 것.
“집중은 지랄.”
엔크리드가 말했다.
“뭐, 수백 번 죽어 보면서 배우면 좋겠지만, 목숨은 하나니까. 그럼 또 봅시다.”
렘이 낄낄 웃고는 또 훌쩍 뛰어 전장으로 내달렸다.
참 잘 싸우는 놈이다.
엔크리드는 다시 전투에 집중했다.
어깨 옆으로 아군 병사를 두고 싸운다. 그걸 반복한다.
엔크리드는 칼을 쑥 내질렀다.
운 좋으면 꿰이고 운 나쁘면 피하겠지.
이도 저도 아니면.
퉁.
그저 칼끝으로 치는 수준의 타격이 될 거다.
상대의 갑옷을 뚫지 못한 칼끝이 그대로 둔기처럼 상대를 밀쳤다.
“음.”
맞은 놈이 신음을 흘리며 뒷걸음질 쳤고, 지나가던 아군의 전투 망치가 놈의 머리통을 때렸다.
꽝.
잡생각을 지웠다.
당장 눈앞에 날아드는 칼날, 창날, 몽둥이를 막고 피하고 검을 휘두르는 것만 해도 신경이 타들어 가는 기분이다.
방패가 없어서 불안해 바닥에 떨어진 도끼를 하나 주워 방패 대용으로 썼다.
여전히 주변에 아군을 두고 막고 때리고 찔렀다. 틈이 보이면 그동안 배운 어설픈 칼질을 선보였다.
왼발을 앞으로, 무게 중심을 이동하며 칼끝은 곧게 팔에 힘을 빼지 않고.
찌르기다.
적당히 긴장한 근육과 집중력, 틈을 포착할 센스만 있다면 성공할 법도 했다.
팅, 티디디디디딩!
엔크리드의 찌르기는 반만 성공했다.
‘씁.’
투구와 흉갑의 틈새를 노렸는데 상대가 움직이며 빗나갔다.
상대의 목에 긴 칼자국을 만들긴 했지만, 치명상이라고 보긴 힘들었다.
피를 흘리던 놈의 눈이 엔크리드를 향했다.
독기가 가득한 눈이었다. 놈은 말없이 까드득 하며 어금니를 깨물었다.
‘위험.’
전장의 감이 말했다.
엔크리드가 뒤로 물러나는 사이, 아군 병사 하나가 그사이를 채웠다.
놈은 말없이 몸을 수그렸고 제 앞을 막은 아군의 정강이를 칼을 쥔 주먹으로 때렸다.
빠각.
뼈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끄윽!”
정강이가 부러진 병사가 쓰러지자, 적병은 단검을 뽑아서 아군의 목을 쑤셨다.
푹 찌르고 뽑아내는 과정이 자연스러웠다. 마치 그러라고 정해 둔 연극의 한 장면 같았다.
피가 솟으며 놈의 흉갑을 적셨다.
놈은 그대로 죽은 병사를 밀쳤다.
‘아.’
주마등.
삶과 죽음의 경계.
빛을 뿜는 등(燈) 바깥으로 수없이 많은 그림이 스친다. 그 그림은 엔크리드의 인생이었다.
어젯밤 꾼 꿈처럼.
그 인생의 끝, 모든 게 지나치는 순간, 상대의 칼날이 엔크리드의 목을 꿰뚫었다.
자신이 선보인 찌르기를 그대로 해 보인 놈이었다.
완벽한 찌르기였다. 적어도 엔크리드가 보기에는 그랬다.
화끈한 통증이 목에서부터 전신을 치달릴 때다.
엔크리드는 삶과 죽음의 순간을 마주했고 렘이 말한 그 집중력이란 게 뭔지 깨달았다.
다만, 너무 늦었을 뿐이었다.
‘죽어야 배울 수 있는 거였냐?’
속으로 렘을 욕하고 눈을 감으며 엔크리드는 생각했다.
아니, 그의 마음이 멋대로 움직였다.
갈망, 갈구, 열망.
‘검을 잘 쓰고 싶었다.’
‘기사가 되고 싶었다.’
‘영웅이 되고 싶었다.’
결국, 그리되지 못한 엔크리드는 적당히 돈을 벌어 적당한 마을에 정착해 집을 짓고 살아야 하는 신세였다.
하지만 그리하지 않았다. 그럴 수가 없었다.
가슴에서 들끓는 열정이 그를 그렇게 놔두지 않았으므로.
끝내 마지막 순간까지, 전장에서 피로 번 돈을 교습소 따위에 날렸다.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시간이 더 있었다면.
남들 잘 시간에, 소위 말하는 수재나 영재라는 새끼들이 노는 그 시간에 더 휘두르면 되리라고 생각했다.
주마등의 마지막, 자신이 혼자 힘으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구했던 작자의 얼굴이 튀어나왔다.
“부적은 기사님의 바람에 움직일 겁니다요.”
부적을 선물한 건 화전민 마을 촌장이었다.
앞니 몇 개가 빠져 바람 새는 소리가 나던 그 노파.
후회와 갈망이 섞이며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 가슴을 채웠다.
후회다.
‘칼 몇 번 더 휘둘렀으면 달라졌을까?’
죽음이란 두 글자가 몸에 깃든다. 감은 두 눈 너머로 검은 강물이 보였다.
그리고 엔크리드는 오늘 낮에 검을 휘두르는 대신 낮잠을 잔 걸 후회했다.
만약 그때 조금 더 했다면, 마지막 찌르기가 성공했을지도 몰랐다.
검은 강물 위로 얼굴 없는 뱃사공이 나룻배 위에 앉아 있었다.
그 뱃사공이 물었다.
“진짜 그렇게 생각해?”
음?
“너 재밌네.”
으으음?
“그럼 그렇게 하자.”
입 없는 뱃사공이 말했다. 말소리가 어디서 나오는지 알 수가 없었다. 입 부근은 까만 복면이라도 쓴 것처럼 그저 어두울 뿐이었다.
엔크리드는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그대로 정신을 잃었고 다시 눈을 떴다.
깡, 깡, 깡.
불침번이 쇳덩이를 두드리는 소리.
정확히는 국자로 냄비를 때리는 소리다.
익숙한 아침을 깨우는 소리.
“…….”
말없이 옆을 바라보자.
“개 같은 꿈이라도 꾼 거요?”
옆자리 부하, 램이 야전 침대에서 일어나 부츠에 발을 쑤셔 넣으며 투덜거렸다.
“아, 벌레.”
부츠에 벌레.
엔크리드는 눈을 깜빡였다.
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현실 같은 일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퉤.”
벌레를 털어 낸 렘은 침을 뱉고 벌레를 발로 짓이겨 죽였다.
바닥에는 벌레의 체액과 침이 섞인 흔적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