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기습과 푸른 눈
엔크리드는 비틀거리는 정찰 분대장을 보며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간신히 성공했네.’
손등으로 칼을 쳐 내는 묘기는 열에 다섯 번만 성공하는 수준이었으니까.
뭐, 하다 보니 조금씩 익숙해지긴 했다.
이 친구가 가진 특유의 버릇 같은 게 눈에 익었기에 가능한 거지.
그게 아니라면 쉽게 엄두도 못 낼 묘기이긴 했다.
하지만 그건 순전히 엔크리드의 입장이었다.
옆에서 보면 실력 차이가 월등해 보일 뿐이었다.
다가오는 칼날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쳐 내곤 명치를 때려서 전투 불능으로 만들었다.
압도적인 실력 차가 아니라면 보이지 못할 묘기 아닌가.
“당신이 최하급 병사라고?”
이 말을 대체 몇 번째 듣는 거지?
이제는 지겨울 수준이었다.
“진급 테스트를 안 받았어. 필요 없다고 생각했거든.”
이후 나올 질문에 대한 답까지 완벽하게 한 엔크리드는 뻐근한 손목을 좌우로 꺾었다.
이상은 없었다.
그동안 검을 휘두르며 필요하다는 훈련은 다 해 왔다.
근력의 단련은 당연했다.
힘으로만 치자면 엔크리드는 부대 내에서도 꽤 상위에 꼽힐 수준으로 잘 단련된 상태였다.
그러니 이런 결과가 가능한 거고.
“이제부터 내가 분대장이다.”
엔크리드가 선언했다.
이제 산 하나를 넘은 셈이었다.
정찰 분대장은 뭐라 대들지도 않았다.
멍한 시선으로 보고 있나 싶더니 “그, 너, 어”라고 중얼거리다가 입을 다물었다.
따르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은연중에 분대장 다음으로 영향력 있는 인상 험악한 병사가 얌전히 엔크리드를 따랐으니까.
예상한 바였다.
그 뒤, 활로를 찾기 위한 길이 더 이어졌다.
“엔리, 넌 꿈이 뭐지?”
엔크리드는 대형을 바꿔 선두로 나선 뒤, 엔리를 옆에 끼고 걸었다.
한바탕 소란이 일고 난 뒤다. 엔리는 정신이 빠질 것 같다가도 엔크리드의 말에 금세 마음을 다잡았다.
“네?”
“하고 싶은 거 있냐고.”
엔리는 눈을 몇 번 깜빡이다가, 당황했는지 꽤 자세한 소망을 입에 담았다.
“에, 음, 잘 살아남아서 꽃집 미망인이랑 살림을 차리는 겁니다.”
그렇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목표가 있다.
“일단 살아서 돌아가야겠군. 그럼 넌?”
그 뒤 곧바로 고개를 돌려 뒤를 향해 묻는다.
엔크리드의 바로 뒤에는 앤드류가 있었다.
엔크리드가 대형을 바꾸고 제일 처음 한 건, 자신의 바로 뒤에 앤드류를 세운 거였다.
하물며 무장도 그대로 들려준 채다.
엔리는 그걸 보며 생각했다.
엔크리드란 인간은 정말 겁도 없다고.
악감정에 뒤에서 콱 찌르면 어쩌려고?
엔크리드야 찔렸다고 해도 다시 하루를 시작하면 그만이었지만, 엔리는 그걸 몰랐다.
질문을 받은 앤드류가 숨을 푹 내쉬었다.
“좋아. 내가 졌다고.”
그가 말한다.
“그래서 넌 뭘 하고 싶냐고 물었다. 병사.”
분대장에서 병사로 강등이다.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실력 차이를 너무 명확하게 보여 줬으므로.
“가문의 부흥.”
몰락 귀족이라더니.
“그럼 너도 일단 살아 돌아가야겠네.”
엔크리드가 말한다.
다들 새로이 취임한 분대장이 왜 이러는지 빤히 바라봤다.
그는 이후에도 같은 질문을 반복하고 똑같은 답을 내놨다.
“살아서 돌아가야 돈도 버는 거다.”
돈을 모아서 가게를 차리는 게 꿈이라는 병사의 말에 대한 답이었다.
“애인이 애를 가졌다고? 아비 없는 자식으로 안 키우려면 너도 돌아가야겠네.”
깡패 병사 중 하나는 이미 예비 애 아빠였다.
“전부 같은 의견이네.”
엔크리드가 이어 계속 말한다.
“그럼 일단 살아 돌아가 보자고.”
다들 정말 이 작자가 왜 이러나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따지는 사람도 없다. 엔크리드는 모두와 눈을 한 번씩 마주쳤다.
본래라면 별 의미 없을 동작이겠지만, 앞에서 뿌린 말이 있지 않나.
앤드류를 포함한 아군 병사는 각각 자신이 뒤에 두고 온 걸 떠올렸다.
엔크리드는 이들이 스스로 목적의식을 갖길 바랐다.
폭력과 강압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알아서 잘 싸워 줘야 했으므로.
몇 번이고 해 본 방법이었다.
마음 안에 삶의 갈망을 심어 주는 것.
이건 퍽 잘 먹히는 수단이었다.
홀로 뚫고 나가는 것보다 열 명이 한 몸처럼 헤쳐나가는 게 훨씬 유리했다.
아니, 이 정도면 도망이 아니라 기습을 시도해 볼 법도 했다.
기습이 시작되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으니까.
‘될 것 같아.’
가능성만 보인다면 몇 번이고 해 볼 수 있었다.
죽음만 각오한다면 그럴 수 있었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으며 엔크리드는 적의 위치와 숫자를 외웠다.
분대장을 몇 번 더 때려눕히는 오늘이 지난다.
“꿈이 뭐라고?”
같은 말을 반복하는 오늘도 지난다. 그 모든 것들이 지겨울 법도 했지만, 엔크리드는 반복되는 오늘을 똑같이 충실하게 보냈다.
그리하여 얻은 것, 핵심은 두 개였다.
기습과 깃대.
‘해 보자고.’
그 모든 오늘을 거쳐 지금이다. 수없이 반복한 오늘에서 연습은 충분히 했다.
“다들 살아 돌아가자.”
엔크리드가 뒤를 돌아보자, 정찰 분대 전부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이게 그리 위험한 임무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어찌 됐든 계속 저리 말하니, 가슴이 꿈틀거리긴 했다.
“그럼 가자고.”
대련으로 익힌 건 얼추 몸에 익었다.
이제 더 오늘을 반복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엔크리드는 신중하게 움직이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이미 적의 위치를 대강 외우고 있었다.
“전에 여기 와 보셨습니까?”
평원 사냥꾼 출신 엔리가 물었다.
선두에 엔크리드와 나란히 선 채였다.
“몇 번.”
안 와 봤다고 하면 그게 더 이상할 것이다.
아무리 봐도 거침없이 길을 나아가고 있으니까.
“아, 그렇군요.”
그렇게 조금 더 걷다가 엔리가 또 물었다.
“혹시 사냥꾼 출신이십니까?”
“그건 아니고, 아는 사냥꾼한테 조금 배웠어.”
흔적을 읽는 법이나, 풀이 누운 방향을 읽어 내니 그런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엔크리드에게 이런 걸 가르친 건 엔리다.
그리 길을 인도하며 뒤를 보니, 앤드류 곁에 꼭 달라붙은 보모 병사가 보였다.
저 외모로 진짜 보모가 된다면 애들이 기겁하고 내빼겠지만.
전장에서라면 더없이 훌륭한 경호원이 되리라.
앤드류와 보모 병사를 보며 엔크리드는 생각했다.
‘전투가 벌어지면 인상 나쁜 병사는 반드시 앤드류를 따라온다.’
걸으면서도 자신이 곱씹어 찾은 활로를 몇 번이고 그렸다.
목적지에 다다른 순간, 엔크리드가 오른 주먹을 들어서 분대원을 멈춰 세웠다.
“후.”
멈춘 자리에서 크게 호흡을 가다듬고.
다들 여기서 왜 멈췄나 싶어서 시선이 모였다. 이제 풀밭 초입이니까.
하지만 누구 하나 먼저 입을 여는 사람은 없었다.
엔크리드는 강압적인 분대장이었다.
움직이는 방향이나, 루트에 관해서 상의하는 법이 없었다.
독단적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었다.
어차피 순찰 임무라는 게 일정 지역 부근을 돌아보는 게 목적이니까.
중요한 정찰 임무라면 그에 맞는 인원이 배치되었을 건데, 아무리 봐도 이 부대의 역할의 중요성은 그리 무겁지 않은 듯했으니.
어찌 됐든 필요한 일만 하고 돌아가면 그만이라는 소리였다.
“쏴.”
엔크리드가 한쪽을 가리켜 명령했다.
석궁을 든 엔리가 멀뚱히 엔크리드를 바라봤다.
당황한 엔리가 “네? 어딜요?”라고 되물었다.
매번 반복된 일이다.
어쩔 수 없다. 이들에게는 반복된 오늘이 없으므로.
“쏴라. 두 번 말하지 않는다.”
엔리는 눈치가 없는 편이 아니었다.
엔크리드의 말투는 차가웠고, 반론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깃들었다.
그가 가리킨 곳은 키다리 풀 너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딱히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고.
그래도 시키는 대로 했다.
엔크리드가 싸우는 걸 봤다. 소문과 달리 만만찮은 양반임이 분명했다.
활줄을 당겨 화살을 시위에 걸자, 팽팽하게 활줄이 늘어났다.
엔리는 눈치를 보다가 엔크리드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시위를 놨다.
분대장이 시키는 거니까.
퓽 하고 날아간 화살이 어딘가 푹하고 박히는 소리가 났다.
그와 동시에 ‘억’ 하는 단말마도.
“……어?”
엔리가 당황했다.
이 순간, 당황하지 않은 건 둘뿐이었다.
베테랑 전사인 인상 더러운 병사와 엔크리드.
“따라와라. 앤드류.”
바로 뒤에 앤드류를 둔 건, 이 순간 때문이었다.
실전 경험은 형편없지만, 그래도 실력만큼은 꽤 괜찮은 병사.
실력이 나쁘지 않다면 잘 굴려서 써먹어야 하지 않겠나.
그동안의 오늘에서 해 온 실수는 너무 혼자서 해결하려고 했다는 것.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안다.
엔크리드가 앞으로 뛰쳐나가자 앤드류는 반사적으로 그 뒤를 따랐고, 그러자 인상 험악한 병사가 ‘젠장’이라고 한마디 욕설을 뱉으며 다시 그 뒤를 따랐다.
세 명의 병사가 풀숲 너머에 다다르자, 이마 정중앙에 볼트가 꽂힌 시신이 보였다.
그리고 그 주변에 서성이는 병사 무리도.
아즈펜의 쇠뇌 부대였다.
숫자는 대략 열 명 내외.
엔크리드는 시작부터 필살의 수를 꺼냈다.
찌르기다.
왼발로 땅을 밟으며 비틀어 내지른 검 끝이 적병의 목 하나를 꿴다.
“꺽!”
칼날이 꽂힌 부위로 피가 줄줄 흘렀다.
목에 구멍이 난 놈이 손을 들어 검을 쥐려고 했다.
엔크리드는 곧바로 발바닥으로 죽은 병사의 배를 차며 검을 뽑았다. 검이 뽑힌 자리로 까만 구멍이 생겼고, 그 구멍에서 꿀렁 하고 선혈이 왈칵 쏟아졌다.
그사이 바로 옆에서 앤드류가 숏소드를 내리쳤다. 슬쩍 보니 칼질이 꽤 어설펐다.
갑자기 따라오란 말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적을 보고 반사적으로 내려친 것에 불과했다.
깡!
쇠뇌를 내팽개친 적병이 단검을 뽑아 막았다.
‘어설퍼.’
하지만 괜찮다.
앤드류를 여기에 데려온 건 이 친구 뒤에 딸린 옵션 때문이기도 하니까.
인상 험악한 병사가 움직였다.
그는 기합을 내지르지도, 그렇다고 과격한 움직임을 보이지도 않았다.
앤드류의 숏소드를 막은 병사의 뒤로 돌아간 그는 오른손으로는 적병의 턱을, 왼손으로는 머리통을 감싸듯 잡더니 그대로 양손을 반대 방향으로 세차게 꺾었다.
우득!
적병의 머리가 꺾일 수 없는 각도로 꺾였다.
당연히도 죽었다.
인상 험악한 병사는 그 뒤 허리춤의 숏소드를 뽑으면서 뒤로 팽하고 팽이처럼 돌았다.
훙.
그의 숏소드는 바로 뒤에 있던 병사의 투구와 흉갑 사이에 드러난 목 한가운데를 갈랐다.
베인 목 피부가 한순간 쩍 벌어졌다.
피슉. 피슈슈슉.
잘린 목에서 핏줄기가 솟는다.
그걸 보며 엔크리드도 옆에 있던 적병의 발목을 걷어찼다.
손에 들린 검을 경계하던 적병이 옆으로 고꾸라졌다.
엔크리드는 넘어진 병사의 머리통을 걷어찼다.
빡! 우득.
목뼈가 꺾이며 맞은 놈이 끄럭 하고 묘한 비명을 내지르며 기절했다.
“기, 기습이다!”
“적병이다아!”
그제야 놀란 적병의 기합이 들렸고.
그제야 엔크리드의 뒤쪽에서 싸움 좀 한다는 깡패 출신 아군 병사를 비롯해 전원이 싸움에 합류했다.
“전원 척살.”
엔크리드가 말했다.
핑!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엔리의 볼트가 날았다.
날아간 볼트는 엔크리드 앞에 있던 병사에 가슴에 박혔다.
날아간 볼트가 적병이 입은 갬비슨을 퍽 하고 뚫곤 빨간 핏물이 흘러나오게 했다.
“이런 씨-”
적병이 뭐라 입을 열려고 했다. 엔크리드는 놈이 뱉는 말을 마저 들을 수 없었다.
곧바로 검을 찔러 놈의 목에 구멍을 만들어 줬으므로.
“후.”
호흡을 뱉어 내며 단시간에 과격하게 움직인 근육을 쉬게 한다.
그사이 챙챙 하는 소리가 울렸다.
꼭 혼자 전부를 상대할 필요는 없다.
새삼 깨달은 그 사실을 되새기며 몸을 돌리려는데.
하-악!
세 걸음 앞에서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났다.
이미 수차례 본 광경이다.
경계심 가득한 짐승의 울음소리.
눈을 돌린다. 그리고 정체를 확인한다.
새카만 털이 보였다.
저 존재가, 이곳에 주둔한 적의 쇠뇌 부대 일부가 방심한 이유였다.
엔크리드는 오늘을 반복하며 기습할 장소를 몇 개 봐 뒀다.
직접 목숨을 버려 가며 가장 유리한 기습 장소로 여기를 택했다.
그 이유가 저기에 있었다.
풀밭을 떠돌던 저 작은 짐승이 이쪽 쇠뇌 부대의 시선을 끌었을 것이다.
그럴 만한 존재다.
이미 알고 있다.
꼭 의도한 건 아니지만, 도움이 된 존재.
새카만 털의 주인이 푸른 눈으로 엔크리드를 바라봤다.
엔크리드의 푸른 눈도 놈을 바라봤다.
둘의 눈이 마주친다.
적병 중 하나가 칫 하고 잇소리를 내며 보병용 단창을 내리꽂는 게 보였다. 까만 털의 짐승을 향해서였다.
‘신세를 진 셈이니.’
죽게 놔둘 생각은 없었다.
엔크리드는 가슴팍을 손으로 훑고는 앞으로 팔을 뻗었다.
뻗은 팔은 손가락을 전부 세운 형태로, 손이 바닥과 직각이 되게 멈췄다.
그 일련의 동작에 맞춰 가슴팍에 꽂혀 있던 나이프가 허공을 날았다.
팽하고 날아간 나이프가 적군의 어깨 어림에 꽂혔다.
그 덕분에 단창을 든 놈이 주춤했고.
캬아아아앙!
그 틈에 기껏해야 팔뚝 반만 한 짐승은 기겁할 만한 소리를 내지르더니 적병의 종아리를 물어뜯었다.
팍 하고 살점과 피가 튄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짐승은 자신이 물어뜯은 자리를 앞발로 후볐다.
상처를 쑤신 발톱과 털에 피가 묻어 번들거렸다.
그렇게 쑤시고는 잽싸게 피한다.
“이 개 같은 새끼가!”
종아리가 뜯긴 적병이 단창으로 바닥을 찍지만, 이미 까만 털의 짐승은 피한 뒤였다.
‘그놈 참.’
영물이다.
엄청나게 영리하고 사나운 어린 흑표범이었다.
어깨에 나이프를 맞은 적병은 발악하기도 전에 인상 험악한 병사의 손에 죽었다.
적병의 뒤에서 나타나 목을 슥 하고 긋는 게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었다.
비명이 그친다.
마지막 남은 적병은 앤드류가 죽였다.
슬쩍 보니, 숏소드로 몸통을 수차례 찌르고 바닥에 쓰러뜨려 얼굴을 쑤신 듯했다.
그리 적을 죽인 앤드류가 숨을 몰아쉬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여기저기서 헉헉대는 숨소리가 들렸다.
“허억, 허억, 후우우, 후우, 씹, 이거 뭡니까.”
놀란 아군이 묻는다. 얼굴은 눈에 익은데 이름은 기억나지 않았다.
대신 엔크리드는 죽은 병사의 시신 중 아군의 것을 눈으로 찾아냈다.
쟤는 어떻게 해도 죽는다. 이번에는 적병의 단창에 얼굴을 찔려 죽은 듯했다.
보기 흉한 몰골이었다.
저 자식도 몇 번이고 구하려 해 봤지만, 저게 구해 주면 꼭 중간에 자기 살겠다고 탈주해서 일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반복된 오늘을 통해 아는 사실이었다.
“적병이지. 순찰 임무 중에 이런 경우가 있을 거라는 거 몰랐나. 잊지 마라. 우리는 살아 돌아가야 한다.”
엔크리드는 다시 한번 삶의 갈망을 이끌어주며 분대원을 이끌었다.
“이쪽으로.”
그러자 인상 험악한 병사가 말로 엔크리드를 붙들었다.
“거긴 더 안쪽이야. 분대장.”
“불복인가? 항명하려면 아까 했어야지.”
엔크리드는 반대 의견을 뭉개 버린 뒤,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마치, 따라오지 않으면 다른 선택지가 없는 것처럼.
무언의 압박과 강요다.
그래야 했다.
일일이 설명할 시간이 없었다.
내달리며 옆으로 시선을 돌리자, 어린 흑표범의 눈이 보였다.
파랗고 깊은 호수 같은 눈.
엔크리드는 자신과 비슷한 색의 눈을 보며 고개를 돌렸다.
지금은 다른 그 무엇보다 살기 위해 발악할 시간이었다.
짐승과 교감을 나눌 시간이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