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거북이와 변방의 학살자 (3)
지향, 어떤 목적, 목표를 갖고 존재하느냐다.
삐이.
녹색 평원을 노닐던 매 한 마리가 머리 위로 날아갔다.
매의 울음소리가 둘 사이를 스치고 지난다.
그리 춥지 않은 겨울의 낮이다. 부대 내 담장을 곁에 두고 엔크리드는 들어온 제안에 물음으로 답했다.
토레스는 뜸을 들였다. 그는 생각을 거듭하고는 입을 열었다.
“병사 등급제는 병신 같지만, 그래도 한 가지 기준은 명확히 세워 줬지. 특급 병사란 무엇인가.”
그의 목소리는 조용하고 낮고 굵었다. 저음의 찬가를 부르며 퍽 잘 어울릴 것 같았다.
평소의 생각이 질문에 맞춰 정립되어 나온다. 토레스의 말에는 진심과 믿음이 섞였다.
“인간의 한계에 다다른 수준을 말한다. 잘 시간을 쪼개고 전장에서도 손이 부르트도록 검을 휘두른다지?”
토레스가 말하며 엔크리드의 손을 잡아당겼다. 엔크리드는 순순히 그의 손에 자기 손을 맡겼다.
엔크리드의 손바닥을 뒤집은 토레스가 말했다.
“봐라.”
딱딱한 굳은살이 몇 번이고 박이다 못해 터진 손바닥이다. 그동안의 노력, 수없이 많은 하루를 보내며 검을 휘두른 방증이 손에 남아 있었다.
“이만한 노력을 하는 놈은 많아. 하지만 재능이 뒤따라온 사람은 흔치 않지. 정말 흔치 않아.”
토레스가 말하며 작게 고개를 저었다. 그의 말이 맞았다. 재능이 부족하기에 그동안 박박 땅을 기고 또 기었기에 너무도 잘 아는 사실이다.
“노력과 재능을 겸비한, 인간의 한계에 다다른 병사가 모인 곳! 그런 부대가 바로 변방수비대다. 실력을 기르고 싶다고? 우리 부대에 들어와라. 그게 네 부족함을 채워 줄 거다.”
지향점을 물었는데 부족함을 채워 준다고 한다.
엔크리드는 거기서 답을 얻었다.
열정과 열망, 믿음이 가득한 그의 눈을 본 엔크리드가 입을 연다.
“죄송합니다.”
거절이었다.
더없이 좋은 기회일 수 있었다.
찢겼으나 잊지 않았던 아니, 잊을 수 없었던 꿈으로 향하는 길에 정말 더없이 좋은 기회.
하지만 엔크리드는 갈 수 없었다.
변방수비대는 높은 곳으로 향할 계단은 될 수 있으나, 계단의 끝은 자신이 바라던 세상이 될 수 없었다.
‘한계에서 멈추는 거론 안 돼.’
한계에 다다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변방의 학살자, 보더 가드 내에 주둔한 부대 중에서도 가장 탁월한 살상 능력을 갖춘 집단이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지금도 눈을 부라리는 수비대의 일원이 제 입으로 말하지 않았나.
변방수비대는 인간의 한계에 다다른 이들이라고.
엔크리드의 꿈은 그보다 더 높았다.
물론 한계에 다다르지 않은 자가 한계를 넘겠다는 건 오만한 생각일 따름이다.
그렇다고 목적지에 도착도 하기 전에 중간쯤에서 멈출 걸 예상하고 떠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엔크리드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 부대 특징을 알 텐데?”
일반병을 단시간에 훌륭한 살육 병기로 만든다.
안다. 어쭙잖은 훈련 따윈 없다. 일반병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병사를 양성하는 집단이다.
다만, 그 방식이 문제일 뿐.
사실 엔크리드의 질문에 내포된 물음은 하나였다.
변방수비대에 있던 이들 중 기사가 된 이들은 있는가.
없다.
그들은 가장 편리하고 효율적인 방식의 살인을 배우고 익힌다.
괜히 변방의 학살자란 별명이 붙은 게 아니었다.
검술을 빗대어 따지자면 기본기가 아닌 편법과 변칙만을 앞세운 검술이다.
편법과 변칙만으로는 기사가 될 수 없다.
그걸 알기에 갈 수 없는 길이었다.
“너 바보구나.”
하지만 다른 사람의 눈에는 이렇게 보일 수도 있는 법이었다.
토레스가 눈에서 힘을 풀었다.
“그런 소리 자주 듣죠.”
“하, 여자 말고 남자한테 차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유를 물어도 되나?”
얘기해도 될까? 또 비웃음을 사려나?
자신의 꿈에 대해 말을 꺼내면 이제까지 가히 비웃음 외에 들은 게 없는 것 같았다.
아, 아닌가.
‘크랑은 진지했지.’
그 외는 없다. 렘은 놀려 먹을 구실을 잡아 신나 했었고.
나머지도 그리 좋은 반응은 아니었던 것 같다.
특히나 교관 몇은 미친놈을 보는 눈빛이란 무엇인지 보여 주기도 했다.
“변방수비대보다 더 높은 곳에 가길 원합니다.”
그런데도 엔크리드는 순순히 말했다. 숨길 것도, 감출 것도 없었다.
“더 높게?”
“붉은 망토를 원합니다.”
꼭 붉은 망토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적절한 비유였다.
나우릴리아의 기사단은 하나뿐이니.
그들은 피처럼 붉은 망토를 두른 왕의 수호군이었으며 나우릴리아 무력의 상징이었다.
왕의 문장을 쓰도록 허락받은 유일한 부대이기도 했다.
그들의 망토 위에는 왕국의 상징인 교차한 세 자루 검의 문양이 선연히 새겨져 있었다.
칼날이 교차한 세 자루 검과 신화 속 신수인 둥근 머리에 불꽃 갈기를 가진 태양수.
이 두 가지가 나우릴리아의 상징이었다.
기사가 되겠다는 말이었다. 토레스도 충분히 알아들었다.
그래서 당황스러웠다.
“……조금 과한데.”
토레스는 엔크리드의 실력을 엿봤다. 뛰어났다.
서른에 재능에 눈은 뜬 것치고는, 뛰어난 편이란 거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사실 변방수비대에서 받기에도 아슬아슬한 실력이었다.
아까 숙소 안에서 마주쳤던 엔크리드의 분대원이라면 모를까.
‘걔들은 안 되지.’
그쪽은 다른 이유로 무리다.
다들 문제가 많은 이들이다. 아무리 말썽을 부린다고 해도 말을 들어 먹어야 군인이다.
저들은 그런 면에서 수준 이하였다.
내가 든 칼날이 나에게도 상처를 입히게 된다면 좋은 무기라 할 수 없는 법이었다.
그건 버려야 할 물건이다.
“진심이지?”
“물론입니다.”
깨끗하게 차였다. 토레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의 바람을 꺾는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이 말은 꼭 해야 했다.
“후회할 거다.”
“그럴지도요.”
엔크리드는 진심을 담아 답했다.
모든 선택이 항상 정답이란 법은 없으니, 후회할지도 모른다.
변방수비대 소대장, 토레스는 군례도 받지 않고 몸을 팩 돌려 돌아섰다.
토라진 것처럼 보이나, 오히려 어깨는 가벼워 보였다.
엔크리드는 멀어지는 토레스를 보며 몸을 돌렸다.
숙소로 돌아가려고 터벅터벅 걷는 사이, 엔크리드는 라그나와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붉은 망토의 기사단원을 말하는 겁니까? 어떻게 그렇게 움직였는지가 궁금하다는 거고요?”
붉은 망토 기사단원을 보고 받은 충격이 작지 않았다.
기사란 무엇인가.
어떻게 저렇게 움직일 수 있는가.
의문이 들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리라.
하물며 단원은 준 기사일 뿐이지 않나.
“지금 알기에는 조금 이르군요.”
라그나는 그렇게 말했고 엔크리드는 묵묵히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의 기대대로 라그나는 이어서 말했다.
“기사란 존재는 근력만 다루지 않습니다. 그들의 몸에는 아주 특별한 힘이 깃듭니다. 그 힘을 다루는 건 지금 나눌 얘기가 아닐 겁니다. 알아봤자 방해만 될 테니까요.”
“방향만 알려 줘. 내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건지 아닌지 알고 싶다.”
무리한 부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엔크리드는 실력이 늘수록 제 분대원이 전부 보통이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닫는 중이었다.
그중 라그나에게는 검술의 기초를 배웠고, 배우며 눈치챘다.
분대 내에서 기사란 존재와 가장 가까운 존재를 꼽자면 그건 라그나일 거라고.
“기본기는 단순하고 무식한 기술의 향연입니다. 싸워 보면 알 텐데, 분대장이 배운 그 용병검을 토대로 실력을 기르는 게 빠르겠습니까? 아니면 기본기를 단련해 실력을 기르는 게 빠르겠습니까?”
편법은 왜 편법인가.
변칙은 왜 변칙인가.
그저 잘 싸우는 방법이라면 발렌 식 용병검술이 중검식 기본기를 배우는 것보다 몇 배는 나았다.
“더 나아가기 위한 것, 정도(正道)입니다. 바른길을 걸어야 합니다. 대답이 됐으리라 생각합니다.”
차고 넘치는 대답이었다.
기본기를 통해 나아가는 검술.
그걸 통해 앞을 가로막는 벽을 수없이 넘으며 바른길을 걷는 것.
그게 지금 할 일이었다.
엔크리드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크릉.”
숙소에 들어서자, 이번에는 짐승 소리가 반겼다. 숙소가 엉망이었다.
한쪽으로 밀린 침대와 엎어진 탁자, 그 가운데 얼굴이 긁힌 왕눈이가 울상을 짓고 있었다.
“아우, 하필 얼굴을.”
“날쌔네.”
“표범 고기는 맛없지만, 고기는 고기니까.”
왕눈이의 뒤로 라그나가 한마디, 렘이 한마디를 섞었다.
짐승, 검은 표범이다. 푸른 눈을 가진 어린 표범, 일전에 함께 싸운 전우와 같은 놈이었다.
갑자기 사라져서 이제 볼 일이 없을 줄 알았더니.
어떻게 여기까지 들어온 모양이었다.
표범은 털을 세우고 라그나와 렘을 노려보다가 엔크리드가 들어오자, 뒤로 팽 하고 돌아서 엔크리드의 품 안에 쏙 들어갔다.
렘이 도끼를 든 손의 엄지로 제 머리를 긁으며 물었다.
조금만 늦었다면 저 도끼가 표범의 목을 뎅겅 잘랐을지도 몰랐다.
“분대장 애완동물이었수?”
“음, 그런 거였습니까?”
라그나, 기사에 관해서 말할 때는 한없이 진지하고 묵직했던 남자가 평소의 게으름뱅이로 돌아갔다.
그는 검집째 들었던 검을 치우고 한쪽으로 밀린 침대에 몸을 맡겼다.
그걸 본 렘도 도끼를 내렸다.
“분대장님 거였어요? 그놈 참 사납네요.”
왕눈이가 슬그머니 표범 눈치를 보고 물었다.
“긁혔냐?”
“머리 한번 쓰다듬어 보려고 하다가요.”
왕눈이가 제 상처를 손으로 가늠하며 말하자, 옆에서 렘이 낄낄 웃으며 말했다.
“암컷인지 수컷인지 확인해 보겠다고 손을 집어넣으려고 하다가 저리 됐수다.”
“카악!”
영특한 표범은 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고개를 내밀며 송곳니를 드러냈다.
그걸 본 왕눈이가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나려다 널브러진 가죽 수통을 밟고 미끄러져 넘어졌다.
쿵 하고 엉덩방아를 찧은 왕눈이를 보고 렘이 웃음을 터트렸다.
“괜찮냐? 얼굴은?”
엔크리드도 피식 웃고는 물었다.
평소에 제 얼굴은 나우릴리아 왕국의 축복이라고 떠들던 놈이다.
“아, 괜찮아요. 흉터 안 남게 신성 치료나 약 발라야죠.”
그따위 상처에 신성 치료라니.
크로나가 썩어나지 않고서야 하지 못할 짓이다.
“어, 그래.”
대강 답해 주고 품 안에 안긴 표범을 바라봤다.
송곳니를 드러내던 놈은 어느새 얌전히 고개만 들었다.
그리 가볍지도, 작지도 않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품에 안아 보니 가볍고 작다는 생각이 들었다.
“놀러 왔니?”
엔크리드가 물었다. 표범은 말을 알아들었다.
눈을 깜빡이고는 까르릉 하고 작은 울음을 흘리더니, 엔크리드의 가슴에 대고 머리를 비볐다.
비단결보다 고운 털 느낌이 꽤 좋았다.
손으로 표범의 머리를 쓰다듬는 엔크리드를 보고 렘이 말했다.
“기를 거요? 심심하진 않겠네.”
렘은 의외로 동물에게 관대했다. 라그나와 작센은 관심이 없었고.
어느새 근무를 끝내고 돌아온 종교쟁이 분대원, 아우딘 또한 관심이 전혀 없었다.
왕눈이, 크라이스만 여전히 관심이 지대했다.
“그거 암컷이에요.”
“응?”
“제가 그냥 얼굴만 긁히고 끝났을 것 같습니까?”
왕눈이가 팔짱을 끼고는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그러냐? 참 대단도 하네.
“어.”
엔크리드는 답하고 대강 주변을 정리하는데, 렘이 넘어진 테이블을 세우고 그 위에 걸터앉고는 물었다.
“상급 병사가 되니까 아주 여기저기서 찾고 난리가 난 것 같은데, 어떻수? 변방수비대라면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엔크리드는 가끔 저 음흉한 남자의 속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종일 장난만 치나 싶다가도 저렇게 핵심을 찔러 왔다.
“안 가.”
엔크리드는 결론부터 말했다.
이거로 괜히 시끄러워지는 건 원치 않았다.
“왜?”
작센이었다. 말이 짧았다.
“요.”
그가 뒤늦게 존대를 붙였다.
“그냥.”
자세히 얘기할 거 뭐 있나. 그리 넘어가려는데, 렘이 딴지를 걸었다.
“진심이유? 아무리 병사 등급제가 모지리 같은 제도라고 해도 상급부터는 괜찮은 수준을 넘어선 거요. 그런 상황에서 왕국 직할군을 거절했다고?”
“그럴 만하니까 그러겠지.”
이전 대화로 상황을 짐작했는지 라그나가 끼어들었는데, 그게 상황을 악화시켰다.
“……이런 염병, 저 새끼가 지금 아는 척을 한 거요? 뭔가 아는 눈치인데?”
“왜?”
작센이 다시 물었다.
이번에는 존대어가 뒤늦게 따라오지 않았다.
눈빛이 참 불손했다.
“주여, 저 무지한 자들에게 지혜를 내리소서.”
옆에서 아우딘이 기름을 붓자, 분위기가 활활 타올랐다.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분위기였다.
놔두면 아무 의미 없는 칼부림이 난다. 엔크리드는 그동안의 경험으로 이런 상황을 너무도 잘 알았다.
성질을 부리는 분대원은 꼭 무력시위로 해결책을 찾는다.
“변방수비대는 인간의 한계에 다다르면 끝이니까. 그걸 위한 부대고.”
“그게 문제가 되는 거요?”
새삼 그게 문제라는 게 가슴 아플 필요는 없을 것이다.
기사가 되는 길에 관해 라그나와 대화를 나눌 때, 라그나는 마지막에 이런 말을 덧붙였다.
“타고난 재능, 하늘이 내린 인재, 즉 천재라면 사실 기본기를 익히고 몸에 새기듯 배울 필요는 없습니다. 알아서 될 테니까요.”
기사란 천재 놀음이다.
무예의 재능을 타고난 이들, 그들 사이에서 또 한 줌의 사람만을 가리고 가린다.
재능을 타고난 자 중에서 다시 재능을 타고난 천재를 찾는다.
그런 이들만이 기사가 될 수 있다.
그럼 꿈도 꾸면 안 되는 걸까.
바라서도 안 되는 건가.
찢기고 찢겨 흔적조차 없어졌다고 해도.
버리지 않았다면 그 꿈은 여전히 가슴에 남아 있는 법이다.
그러하기에 엔크리드는 꿈을 꿨다.
“문제가 돼. 내 목표는 더 위다.”
다들 멀뚱멀뚱 자신을 바라본다. 엔크리드의 입이 열렸다.
너무도 평범하고 여상하게.
내일 아침으로 푹 삶은 양고기가 나온다고 말할 때와 같은 어투와 목소리로.
“기사가 될 거다.”
일전에는 비웃음의 대상이 되었다.
사실 엔크리드의 꿈은 언제나 비웃음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이런 반응이 어색했다.
“벽을 몇 번은 넘어야 하지만, 뭐, 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
렘이 먼저 말하고.
라그나는 가끔 보이는 불타는 눈빛을 보였으며.
작센은 ‘그렇습니까’ 하고 반문했다.
왕눈이는 ‘우와’ 하고 입을 벌린 채로 다물지 못했고.
아우딘은 두 손을 맞잡고 기도했다.
“꿈과 희망이 헛되고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도 버리지 않고 붙드는 그 노력에 은총을 내리소서.”
기도에 감화될 필요는 없었다.
사실 비웃었다고 해도 변한 건 없었을 터였다.
엔크리드는 그런 인간이었다.
다른 사람의 비웃음이나 괄시보다 중요한 건 자신이 품은 꿈이었다.
상급 병사.
병사 등급제에서 제대로 인정받는 급수다.
사실 이제 시작이었다.
실력을 쌓는 것도, 기사가 되기 위한 이름을 알리는 것도.
캬릉.
표범이 울음을 토하며 엔크리드의 볼을 톡 쳤다.
그게 마치 응원처럼 느껴졌다.
“영특하네.”
렘이 그걸 보고 껄껄 웃었다.
아무리 상관없다고 해도 엔크리드는 심장이 찌릿했다.
비웃음 대신 응원을 받은 건 처음이었으니.
‘요새 참 처음인 게 많아.’
그 누가 뭐라 해도 즐거운 순간이었다.
* * *
엔크리드는 이틀 동안 평소와 같이 훈련으로 시간을 보냈고.
사흘째 시장 순찰 근무에 나섰다.
푹.
그리고 단검에 배를 찔렸다. 치명상이었다. 불에 달군 쇠꼬챙이가 배를 쑤셔 내장을 조각내는 것 같았다.
“이런 씨.”
엔크리드는 입가에 피를 질질 흘리며 황당함에 웃음을 토했다.
정말 예상치 못한 일격이었다.
꺄아악!
시장 한복판, 지나가던 여급의 비명이 울린다. 죽어가는 엔크리드는 들리는 비명을 끝으로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