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늘만 사는 기사-57화 (57/170)

57. 보고 나니 갖고 싶어졌다.

대뜸 물어오는 질문이었다.

그렇다고 작센이 당황하는 법은 없었다.

언제나 그렇듯 무뚝뚝한 얼굴이었다.

작센이 아주 잠시, 입을 떼려다가 멈췄다. 고민하는 거로 보였다.

엔크리드는 팔을 늘어뜨린 채, 조용히 작센이 입이 열리길 기다렸다.

재촉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고민은 짧았다.

곧 작센의 입에서 하얀 입김이 나와 허공에 퍼졌다.

“휘슬 대거, 한때는 소리만 남은 비도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말하며 작센이 뺨을 긁는다. 입을 떼려다가 만 것치고는 유려하게 말을 이었다.

“소리만 남은 비도, 그만큼 빠르다는 겁니다. 사람의 눈으로 좇기 힘들 만큼. 그래서 상대하기 어렵습니다. 대부분 자신이 뭐에 당했는지도 모르고 죽습니다. 휘슬 대거란 그런 무기입니다.”

“굳이 상대해야 한다면?”

암살자를 피할 방법이 있는가?

당장은 없을 것이다. 없어 보였다.

주도면밀하게 준비해 온 놈이다.

아군에게 심은 첩자를 활용했고, 죽이기 위한 전후 준비도 철저했다.

적어도 지금 엔크리드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팔다리가 사슬에 묶였고 상대가 당기는 대로 끌려가야 하는 상황이기에.

헤쳐나갈 방법을 찾을 때였다.

“굳이?”

작센이 고개를 모로 꺾는다. 그가 듣기에는 참 묘한 말처럼 들릴 것이다.

“굳이.”

엔크리드는 다시 한번 강조할 뿐이다. 작센은 지긋이 엔크리드의 두 눈을 바라봤다.

엔크리드도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푸른 눈과 붉은빛이 감도는 갈색 눈이 허공을 격하고 마주쳤다.

작센이 눈으로 묻는 것 같았다.

‘왜 그게 필요합니까?’

엔크리드는 무시했다.

등가교환의 작센은 필요한 정보를 파는 사람이다. 상대에게 ‘왜’를 묻는 사람이 아니고.

작센은 곧 표정을 굳히더니 말했다.

“이 정보는 저렴하지 않을 겁니다.”

“비싸면 비쌀수록 좋지.”

진심이었다.

어차피 ‘오늘’이 마지막 ‘오늘’이 되진 않을 듯하니.

그렇게 다시 오늘의 아침이 밝으면 지금 작센이 말한 정보의 가치는 한없이 떨어질 것이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 되어 버릴 테니, 적어도 엔크리드에게는 그렇게 될 것이다.

작센의 표정이 굳어졌다. 어딘지 심경이 꼬인 듯했다.

엔크리드는 그조차 무시했다.

지금 급한 건 작센의 기분 따위가 아니었으니까.

“소리가 들리기 전, 손동작을 봐야 합니다. 휘두르는 손동작에 모든 게 걸려 있습니다.”

작센은 간단하게 파훼법을 알려 줬다.

소리에 속지 마라, 소리가 들렸을 때는 이미 늦다. 상대의 움직임을 눈에 담아라.

“한순간도 상대를 놓치면 안 됩니다. 특히나 상대가 일류의 암살자라면 보이지 않게 던지는 법도 알 테니.”

휘슬 대거는 종잇장처럼 얇은 칼날을 가진 게 가장 큰 특징이었으며.

칼날을 갈고 또 갈아, 어지간한 강철로 만든 브레스트 플레이트에도 박히는 게 만드는 게 핵심이었다.

던지는 사람의 역량이 뛰어나다면 실제로 강철 플레이트를 뚫기도 했다.

실력에 따라 얇은 칼날을 여러 개 겹쳐서 쓰기도 한다는 말이 덧붙었다.

작센은 비도를 던지는 법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눠 말했다.

손을 크게 휘저어 위력을 높여 던지는 법.

다른 하나는 던지는 걸 보여 주지 않는 방법.

“내가 단검 던지는 거 본 적 있지?”

엔크리드가 물었다. 단검 던지기는 한때 심취해서 단련했던 기술이다.

“네, 돌팔매질 수준이었죠.”

작센은 한마디로 엔크리드의 실력을 일축했다.

단검 대신 차라리 돌을 던지는 게 낫다는 거다.

돌을 던지면 충격이나 주지, 제대로 맞추지도 못할 단검은 왜 갖고 노느냐는 말이기도 했고.

‘신랄한데.’

아무리 엔크리드가 이런 쪽으로 덤덤하다고 해도 작센의 말은 덤덤함을 뚫어 찌를 만큼 날카로웠다.

심장에 비수가 날아와 꽂히는 기분은 아니지만.

최소 팔뚝 어딘가에는 꽂힌 기분이 들었다.

“좀 알려 주든가. 제대로 던지는 법을.”

엔크리드가 조금은 불퉁한 마음에 말을 툭 내뱉었다.

“그럼 배우시죠. 이것도 거래 목록으로 올리겠습니다.”

“음?”

“싫으십니까?”

싫진 않았다. 배움에는 끝이 없고 배움이란 욕망에 사로잡힌 엔크리드에게 지금의 제안은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았으니.

언제나 목말라 있기에 엔크리드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좋아.”

“쥐는 법부터.”

곧 순찰 근무에 나갈 시간이었기에 배움의 시간은 짧았다.

끽해야 반 시간.

엔크리드는 그 짧은 시간에 새삼 작센을 다시 볼 수 있었다.

“연습이 동반되지 않으면 의미 없을 겁니다.”

얇은 칼날을 쥐고 던지는 법, 손도끼를 쥐고 던지는 법, 묵직한 단도를 던지는 법.

전부 쥐는 게 다르고 던지는 게 다르다.

이 또한 배울 게 넘쳐났다.

다시 순찰 근무에 나서기 위해 돌아서는데 작센이 말했다.

작지만, 힘 있는 목소리였다.

“굳이 상대할 일을 만들지 마십시오. 그게 먼저입니다.”

내내 은근히 뾰로통한 태도로 대하더니, 마지막은 걱정으로 끝난다.

새삼 엔크리드는 자신이 이들에게 무엇을 주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유 없이 잘해 줘.’

남녀 사이도 아니고 이들과 깊은 우정을 나눴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는데.

작센이나 렘, 라그나 등 분대원의 태도를 보면 마치 자신을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돌보는 듯하다.

‘아니, 그건 아닌가.’

정작 전장이나 싸움터, 다른 임무에 차출될 때는 꼭 따라오려 하지 않으니, 물가에 내놓은 아이는 아닐 것이다.

괜한 생각이었다.

“그러지.”

실제로 그럴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피하고 싶다고 피해지는 게 아니니까.

“근무가 분대장이었습니까? 상급 병사가 됐다면서요? 아우, 시벌, 축하합니다.”

잭이다. 물론 보도 함께였다.

“가자.”

다시금 오늘의 파도 속에 몸을 담근다. 뼛속까지 얼릴 차디찬 공기가 몰아쳤지만, 어제보다 한 겹 더 옷을 껴입어, 숫제 천 갑옷을 걸칠 것과 다름없었다.

옷도 두꺼웠고 아우딘에게 배운 체조도 몸을 달구는 데 힘이 됐기에.

추위가 한결 가신 것 같았다.

“시벌 그 가격에는 못 줘!”

항상 같은 오늘의 시장통 속.

엔크리드는 어떤 상인의 외침을 기준으로 삼았다.

딱 이때쯤이었다.

호통 섞인 가죽 상인의 외침이 들리면 넝마를 뒤집어쓴 혼혈 요정이 나타났으니.

동시에 좌우로 잭과 보가 붙었다.

엔크리드는 어떤 오늘도 허무하게 보낼 생각은 없었다.

오늘도 당연히 계획이 있었다.

툭. 왼발로 잭의 발을 걸었다.

“엇.”

엔크리드의 왼편, 잭이 앞으로 넘어진다. 잭을 넘어뜨리자마자 엔크리드는 오른 허리춤에서 검을 뽑았다. 가드 소드라 불리는 단검이었다.

넓적하고 두꺼운 칼날이 방패 대용으로도 쓰이는 그런 종류의 무기였다.

치잉, 서걱.

“……미친!”

옆에서 보가 놀라 외친다. 그럴 만했다.

엔크리드가 뽑은 넓적한 단검의 칼날이 그대로 잭의 목덜미를 잘랐으니.

“끄윽.”

단말마라 부를 것도 없었다. 목울대가 잘린 잭이 바닥에 코를 박은 채로 제 목을 움켜잡으며 버둥거렸다.

피가 바닥에 흐르고.

쓰러진 잭을 본 이들이 비명을 내지른다.

“꺄악!”

“우악!”

주변 상인 무리가 한순간 물러났다. 괜히 엄한 칼에 맞아 죽고 싶은 이는 없으리라.

그 와중에 보가 움찔했다. 엔크리드는 보의 움직임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의 손에서 넓적한 칼날이 다시 움직였다.

위에서 밑으로 빗장뼈를 노린 일격이다.

챙!

“이 새끼가!”

보도 단검을 꺼내 막았다. 칼날이 얇은 찌르기 전용 무기였다.

수틀리면 저거로 엔크리드의 옆구리를 찌를 용도였으리라.

엔크리드가 막은 칼날을 짓누르며 밀어내니, 보가 뒤로 물러났다.

그대로 시간을 벌고 넓적한 칼날로 심장 부근을 막고 몸을 돌렸다.

겨우 호흡 두어 번 동안 일어난 일이었다.

대비하지 않았다면 당황해 손이 멈추기 충분한 시간.

‘여기까지는.’

계획대로 됐다.

엔크리드의 시선이 암살자에게 닿았다.

놈이 머리를 덮은 넝마를 뒤로 넘겼다.

묘한 불쾌감을 주는 외모가 눈에 들어온다. 놈의 눈에 호기심과 흥미가 돋운 게 보였다.

그러곤 다시 시작이었다.

‘소리 말고 손.’

귀를 닫고 눈에 온 신경을 집중한다. 시각으로 들어온 정보를 토대로 다음 동작을 예측한다.

작센이 알려 준 파훼법이다.

푹!

엔크리드는 상대가 당연히 심장을 노릴 줄 알았다. 그것도 아니면 머리를.

집중력이 빛을 발했기에 빛살이 칼날이 되어 보였다.

다만, 그 칼날이 도달하는 곳까지 볼 수 없었다.

그러하기에 심장을 가리고 고개를 틀었는데.

상대가 던진 휘파람 비도가 오른팔 팔뚝을 맞췄다.

화끈한 통증과 함께 전완근이 찢어져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신경이 망가져 신성 치료가 아니라면 회복할 엄두도 못 낼 치명상이었다.

“허.”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생각지도 못한 일격이었다. 심장을 가리니 손을 노린다. 가린 방패를 뚫는 게 아니라 방패를 든 주체를 처리한다. 색다른 시각이었다.

‘어설픈 암살자가 아니야.’

이미 깨달은 사실이 다시 뇌리에 새겨졌다.

삐이익.

두 번째 휘파람이 울고 비도가 심장에 박혔다.

이 새끼는 프록에게 무슨 억하심정이라도 있는 걸까.

꼭 심장에 비도를 꽂아야 직성이 풀리는 것 같았다.

“쿨럭.”

기침하는데 피가 반이었다. 울컥하고 쏟아져 나온 피다. 양 무릎을 꿇은 채, 왼팔로만 몸을 지탱하니,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재밌는 놈일세, 집요한 사랑꾼은 사냥감을…….”

“놓치지 않지.”

엔크리드가 마지막 힘을 쥐어짜 상대가 할 말을 뺏었다.

고개를 들어 혼혈 요정을 보니, 황당한 표정이었다.

입을 반쯤 벌리곤 말을 잇지 못하고 입술을 움찔거리다가 외마디 질문과도 같은 말을 내뱉었다.

“너?”

놀랐냐? 놀라겠지.

항상 모든 걸 예상한 듯이 움직이는 놈이다. 표정이 망가지는 걸 보고 싶었다.

흡족했다.

“또 보자.”

상대는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엔크리드는 기억하는 오늘에서.

그 오늘에서 또 만나자는 말이었다.

암살자는 엔크리드의 말에 화들짝 놀랐다.

“함정이었냐?”

혼혈 요정이 좌우를 살폈다.

일개 병사를 죽이는 데 일류 암살자를 고용했다. 과한 일이라고 생각하긴 했다.

함정이라면 말이 됐다. 또 보자는 말에 상대가 살아날 궁리가 있다는 건 줄 알았다.

물론 전부 착각이다.

함정은 무슨.

푹 하고 엔크리드는 고개가 꺾였다.

다시 하루가 끝났다.

뱃사공은 또 나타나 또 비웃었다.

‘이 새끼는 할 일이 없나?’

엔크리드는 그리 생각하며 다시 오늘을 맞이했다.

“으, 더럽게 춥네.”

아침부터 렘이 칭얼대는 소리가 들렸다.

“움직여서 몸을 덥혀. 그럼 좀 낫다.”

아우딘이 할 말을 엔크리드가 뺏어서 먼저 했다.

그리고는 일어나 몸을 풀기 시작했다.

굳은 몸보다는 적당히 열이 오른 몸이 더 낫다. 그건 확실했다.

그런 면에서 아우딘의 체조는 확실히 도움이 됐고.

먼저 몸을 풀자니, 아우딘이 와서 물었다.

“그건 어디서 배웠습니까?”

너한테 배웠지.

그렇다고 솔직히 말할 순 없었다.

“지나가는 수행 사제한테서.”

아우딘이 말하길 자신이 가르치는 체조의 원류는 신전이라고 했다.

즉, 사제들이 몸을 단련하는 법 중 하나라는 거다.

정확히는 사제 중에서도 박투와 무투를 수련의 도구로 삼는 몽크의 단련법이겠지만.

“제대로 배웠군요.”

아우딘이 옆에서 끼어들어 다시금 체조로 몸을 풀고.

“추울 때는 가만히 모포 끌어안고 있는 게 최고인 거 모르슈? 어디서 온열 가죽이라도 좀 구해와 보쇼. 분대장이 됐으면 분대원의 추위를 해결해 주라 이거요.”

렘이 툴툴거리는 걸 적당히 대거리해 주다 보니, 작센이 돌아왔다.

“얘기 좀 하지.”

대뜸 작센을 데리고 나갔다.

“뭐여, 날 두고 어딜 가는 거요!”

뒤에서 렘이 여전히 툴툴거렸다.

“휘파람 비도 다루는 법을 배우고 싶은데.”

엔크리드가 반복하는 오늘을 통해 배운 것 중 하나다.

괜히 머리를 써서 설득할 생각을 하는 것보다 필요한 걸 대뜸 던지는 게 낫다는 거다.

“그건 어디서 들었습니까?”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면 듣고 얻는 게 있는 법이야. 배우고 싶다.”

“대가는?”

“원하는 건 뭐든, 백지어음도 써 줄 수 있지.”

유명 상단은 어음을 발행하기도 하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일화의 주인공이 대륙 제일의 상단이자 상가인 렝가디스였다.

렝가디스 상단주가 뒤늦게 얻은 아들이자 독자(獨子)가 모험심에 마수 토벌대에 합류했고.

뒤늦게 그걸 알게 된 랭가디스 가문이 아들을 찾으러 떠났다.

그런데 이미 사고가 터져 아들이 죽음의 위기에 처했고.

우연히 그곳을 지나던 제국 기사단이 그를 구했다.

랭가디스 가문은 그걸 기려, 제국 기사단에 백지어음을 날린다.

얼마를 쓰든, 상가가 감당할 선이라면 그 금액을 내주겠다는 거였다.

유명한 일화가 이제는 관용어처럼 굳었고.

백지어음을 내주겠다는 말은 이제 목숨 외에는 무엇이든 주겠다는 말이 되었다.

작센의 미간이 좁혀졌다.

“그런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닙니다.”

“그만큼 배우고 싶다는 거야.”

엔크리드가 그 말을 받았다.

진심이었다.

혼혈 요정이 날리는 비도, 갖고 싶었다. 배우고 싶었다. 욕구가 끓어올랐다.

엔크리드의 눈을 본 작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안에 불길이 일고 있었다.

닿는 뭐든 부수고 태울, 그건 곧 욕망이란 이름의 불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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