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탄검식
엔크리드는 여덟 번째 오늘에서 옆구리에 쿼렐을 맞았다.
갈비뼈 사이를 뚫고 들어온 쿼렐은 내장을 헤집었다.
‘이건 예상 밖이군.’
휘파람 비도를 전부 피하고 뒤에서 덮치는 로튼까지 걷어찬 뒤였다.
잠깐의 틈에 갑자기 쿼렐이 날아왔다. 도저히 피할 수 없었다.
‘준비를.’
참 철저하게도 했다.
쿼렐을 뽑으면 더 치명상이 될 것 같았다.
그대로 고개를 드니, 눈앞에 혼혈 요정의 흉한 낯짝이 보였다.
혼혈의 외모는 전부 저럴까.
모르겠다.
살면서 만나 본 혼혈 이종은 처음이었다.
대부분 좋은 대우를 받지 못한다는 건 알지만.
“눈치가 비상하구나. 너.”
머리 위에서 혼혈 요정이 말한다. 말하는 거, 참 좋아하는 놈이었다.
“그런 편이지. 후.”
엔크리드는 말하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혼혈 요정의 위치, 거리 모든 걸 머릿속에 넣고 마지막 발악을 보이기 위해서다.
팅.
한순간 넓은 칼날의 단검을 뽑아 아래에서 위로 찔렀다.
가드 소드라 불리는 물건이 픽 하고 혼혈 요정의 볼을 스쳤다.
옆으로 고개를 틀어 피한 요정은 엔크리드의 배를 걷어찼다.
퍽.
“끅.”
비명 대신 신음이 흘러나온다. 내장에 박힌 화살촉이 속을 휘저었다. 더럽게 아팠다.
움직일 때부터 이미 아팠지만, 얻어맞으니 끔찍한 통증에 눈앞이 하얗게 변했다.
“어딜.”
죽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치는 않았다. 요정의 손속은 깔끔했고 날카로웠다.
목이 베인 엔크리드는 눈을 감았다.
이후 다시 맞이한 오늘에서는 요정과 로튼, 잭과 보가 한 번에 덤볐다.
엔크리드는 손이 꼬여 죽으면서도 잭과 보를 죽였고, 혼혈 요정의 팔 하나를 가져갔다.
마지막 일격은 또 심장이었다.
혼혈 요정이 허리춤에 숨겨 둔 송곳 검에 심장이 찔렸다.
그렇게 아홉 번의 오늘을 보낸 뒤, 열 번째의 아침이 밝았다.
아우딘과 체조를 끝내고 작센을 만난다. 반복되는 일이다.
어떤 하루도 허투루 보낼 수 없기에 엔크리드는 오늘도 전력을 다했다.
“자세 좀 봐 주겠어?”
등가교환이든 뭐든 상관없었기에 엔크리드는 작센을 꼬아 낼 용도로 비도 던지는 법을 보여 줬다.
처음 배웠을 때와는 전혀 다른 숙련도다.
재능의 끝자락을 붙들어 몸에 익힌 기술이었으니.
전과는 다른 게 맞다.
엔크리드는 한 점의 집중을 발동, 몸에 힘을 뺀 뒤, 한순간 전신의 근육을 튕기듯 썼다.
손이 허공을 긋고 손에 들린 단검이 팽하고 날아간다.
빛살 같다고 할 순 없지만, 전보다 몇 배는 빨랐다.
“팔과 손은 발사대, 전신의 탄력을 이용하는 것, 여기까지는 잘 알겠더라고. 부족한 게 있어 보여?”
뻐끔.
엔크리드는 태어나 지금껏 작센이 저리 입을 크게 벌린 걸 처음 봤다.
언제나 담담한 눈빛과 말투를 쓰는 분대원 아니었던가.
감정 변화와 표현이 적은 친구였는데.
경악을 표현한 입은 금세 닫혔다. 눈빛은 여전히 흔들렸지만, 표정은 본래대로 돌아왔다.
입을 벌린 것도 겨우 1초 내외였다.
“작센?”
“어디서 배웠습니까?”
“전장에서 어떤 놈이 기가 막히게 단검을 던지기에.”
“던지기에?”
“보고 배웠다.”
“보고 배워요?”
앵무새도 아니고 뒷말을 따라 하기 바쁘다. 실상 놀랄 만도 했다. 이런 종류의 기술은 단순히 단련한다고 되는 게 아니었으니까.
기본기를 갈고닦는 것과는 별개다.
센스를 타고나지 않고서는 익히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작센은 그걸 익히 알았다.
그렇기에 놀랐고.
그런데, 분대장이?
요즘 실력이 부쩍 늘긴 했지만, 이건 또 다른 종류이긴 하니까.
고개를 끄덕인 엔크리드를 물끄러미 보던 작센은 할 말을 했다.
“그 정도면 됩니다. 더 깊게 파고들 기술이 아니죠. 다만, 지금 들고 있는 건 무게가 있으니 손끝에 가벼움보다는 묵직함을 싣는 게 낫겠지요.”
작센은 필요한 말을 골랐고 했다.
엔크리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탄검식이라고 합니다.”
이후 작센이 대뜸 말했다.
등가교환은 아니어도, 작센은 가르침을 아끼는 타입은 아니었다.
엔크리드가 자세를 바로 했다.
본래도 몸에 배고 또 밴 태도였고, 크랑을 보며 표출하는 법까지 익힌 경청의 자세다.
듣는 것에도 최선을 다하는 법이 있음에.
그 태도를 본 작센은 즐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우 투척술, 그 누가 이리 진지하게 듣겠는가.
하긴 평소에 이런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면 진즉에 분대장이란 존재를 무시하고 외면했겠지만.
“과거 게오르란 불세출의 암살자가 기초 틀을 잡은 기술입니다. 리오네시스가 다섯 개의 검식을 집대성한 것에 자극받았다는 설이 있으나, 자세한 건 모릅니다.”
역사가 있는 기술이다. 엔크리드의 집중력은 더없이 타올랐다.
라그나는 설명과 동시에 나아갈 길을 말해 주고.
듣는 엔크리드는 더없이 진지하게 눈을 빛낸다.
탄검식이라 이름 붙였지만, 실제로는 검만 던지는 기술이라 할 수 없었다.
투척 무기 전반을 다루는 거였다.
그 와중에 묻지도 않았는데 휘파람 비도에 관한 얘기도 나왔다.
“휘슬 대거란 던지는 단검이 있습니다. 일단 마주치면 피하십시오. 상대하기 어렵습니다. 게오르의 탄검식에 검 자가 들어간 이유가 바로 휘슬 대도 때문이었습니다.”
부가적인 설명이 이어졌다.
휘파람 비도는 본래 얇은 칼날을 겹쳐 만드는 거라고.
본래 게오르가 추구하는 경지는 딱 한 겹, 한 장의 비도를 쓰는 거였다고 했다.
한 장의 칼날만 던지면 더는 소리조차 나지 않기에 휘파람 비도라 불리지도 않는다는 말이 뒤따랐다.
‘몇 겹이었지?’
엔크리드는 반사적으로 혼혈 요정이 던진 비도를 떠올렸다.
팔뚝에 꽂혔을 때, 기억을 더듬어 떠올렸다. 팔에 꽂힌 비도는 세 겹이었다.
“저기, 오늘 근무 아닙니까?”
보가 숙소 앞까지 찾아와 엔크리드를 불렀다.
너무 열중한 나머지 근무 시간이 다가온 것도 몰랐다.
“아, 깜빡했다. 가지. 오늘 같은 근무였지?”
“네, 보라고 합니다.”
“알아. 정찰대 소속.”
엔크리드는 아무렇지 않게 보에게 대꾸하고는 작센을 향해 말했다.
“잘 배웠다.”
“그렇습니까?”
작센은 자신의 입이 싸다고 생각한 적이 없으나, 분대장 앞에만 서면 전에 없이 말이 많아지는 건 인정해야 했다.
꼭 필요한 것만 말하긴 했지만.
말이 많긴 했다.
‘휘파람 비도는 너무 나갔나?’
그 얘기는 왜 나왔지?
다시 생각해 보면 그럴 만했다. 나올 법한 얘기란 소리다.
엔크리드가 보여 준 자세 때문이었다.
‘던지는 법이 닮았어.’
게오르의 탄검식은 던지는 법이 정해진 투술이 아니지만, 기본적인 틀은 있는 법이다.
그런데 아까 분대장이 보인 자세는 딱 휘파람 비도를 떠올리게 했다. 마치 누군가 옆에서 잡아 준 것처럼 깨끗한 자세였다.
작센으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겠지만, 엔크리드의 자세를 잡아 준 건 그였다.
* * *
“여기로 가자.”
엔크리드는 멋대로 순찰 경로를 바꿨다.
“엇, 위에서 지시한 건 시장 순찰인데요? 염병 이러면 우리 징계 먹습니다.”
잭이 따졌다.
“내가 책임진다.”
분대장이자, 상급 병사로 진급했으며, 1중대와 변방수비대에서 욕심내는 인재.
나이 서른에 이제야 주목받기 시작한 늦은 신예.
그게 엔크리드다.
정찰대 소속 병사 둘이 반항한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책임진다니까. 근무도 쉬엄쉬엄해야지. 가자.”
엔크리드가 앞장섰다. 둘이 따라오는 건 당연하다는 태도다.
“순찰지 이탈은 징계감인데.”
보가 중얼거리며 잭을 바라봤다.
잭의 손이 바삐 움직였다.
‘어떡해?’
‘몰라.’
보가 고개를 저었다.
엔크리드는 보지 않고서도 둘이 나누는 대화가 들리는 것 같았다.
상의한다고 답이 나오진 않을 것이다. 세상에는 어쩔 수 없는 일이 있다. 상사가 까라고 하면 까야 하는 것처럼.
그리고 지금 상사이자 선임은 자신이고.
암살자는 장소, 시간, 사람을 준비했다.
거기에 꼭 따라 줄 필요가 있을까.
‘장소를 바꾼다.’
상대는 암살자, 그가 준비한 무대로 들어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엔크리드가 궁리 끝에 내놓은 답이었다.
그는 멋대로 움직였다. 아예 성문 외곽을 거닐었다. 건물이 있는 도심지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잭과 보는 곤란했다.
시장으로 향해야 한다고 설득해 봤지만, 엔크리드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렇게 반 시간쯤 걸은 뒤다.
엔크리드가 갑자기 멈춰 섰다.
“에? 왜 멈추십니까?”
엔크리드를 지나친 둘이 두 걸음 앞으로 나간 뒤 멈춰 돌아섰다.
슬슬 시장으로 들어서는 걸 포기한 둘이었다. 포기한 뒤에 몰래 여기저기 암호를 남긴 참이고.
그러니 이제 시간이 됐다.
둘을 물끄러미 보던 엔크리드가 물었다.
“왜 그랬냐?”
멀뚱멀뚱.
잭과 보가 엔크리드를 보다가 서로 눈을 마주쳤다.
지금 저 새끼 무슨 말 하는 거냐?
나야 모르지.
“네?”
보가 대표로 되물었다.
“왜 그랬냐고.”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염병 알아듣게 말해야지.”
잭이 퉁명스러운 말투를 꺼냈다.
“몇 번 고심해 봤는데 도저히 이유를 모르겠다. 일개 병사로 첩자질 한다고 달라질 게 있나? 크로나? 돈 때문에?”
불현듯 던진 말에 잭과 보가 뒤로 튕기듯 물러났다.
그러더니 겸연쩍어하며 서로 시선을 마주치더니, 보가 뒤통수를 긁고는 입을 열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아니, 시벌, 대뜸 사람을 첩자로 모는 겁니까?”
잭도 버럭 화를 냈다.
“뒤로 물러나서 검 손잡이에 손을 올려놓은 시점에서 추잡한 변명이란 생각은 안 드나?”
엔크리드의 말에 둘이 다시 눈을 마주친다. 그러곤.
채챙!
둘 다 검을 뽑았다.
보는 얇은 칼날의 스틸레토 형태의 단검을.
잭은 상대적으로 두꺼운 숏소드를.
엔크리드는 가만히 서 있었다.
“시발, 눈치 개빠르네.”
“여기서 죽어 줘야겠습니다.”
계획은 어그러졌지만, 할 일은 명확했다. 잭과 보는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였다.
둘이 눈치를 보고 멈춘 사이, 엔크리드도 검을 뽑았다.
챙!
날을 갈아 둔 롱소드가 뽑히며 햇볕을 반사한다. 그러곤 뽑은 그대로 앞으로 한 발 크게 딛고 검으로 반원을 그렸다.
그리 크게 그어 내자, 잭과 보가 간격을 읽어 내고 피했다.
아니,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엔크리드는 검을 크게 휘저었기에 빈틈이 많았다. 보가 그 틈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평소에도 몸 쓰는 재주가 탁월한 병사였다.
뒷발에 힘을 주고 앞으로 달려든다. 엔크리드는 막 양손으로 검을 잡고 휘둘러 우측으로 무게 중심이 옮겨 가는 시점이었다.
그렇게 숏소드가 닿는 간격까지 다가온 보가 다가온 순간.
퍽!
어느새 엔크리드의 왼쪽 겨드랑이 안에서 칼날이 튀어나왔다.
그 칼날은 그대로 보의 목을 꿰뚫었다.
발렌 식 용병검, 그림자 찌르기.
크게 휘두르는 척하며 적을 안으로 끌어들이는 게 시작이었다.
그 뒤 왼손만으로 롱소드를 지탱하고 몸으로 오른손을 가린 뒤, 오른쪽 허리춤에 꽂아 둔 단검을 뽑아 겨드랑이 사이로 찔렀다.
상대는 거기서 칼날이 나온다는 걸 생각도 못 했을 것이다.
보가 자신의 순발력을 믿고 거리를 너무 좁힌 탓이었다. 그리고 엔크리드는 그런 보의 반응을 예측했고.
몸 날랜 걸 장기로 삼는 놈이 거리 좁힐 기회를 놓칠 리가 있나.
북방식 중검식으로 기초를 잡았다고 해서 이전에 배운 걸 잊을 필요는 없었다.
아즈펜과의 전장 마지막 순간, 콧수염 병사와의 전투로 인한 깨달음이었다.
기본은 기본일 뿐, 거기에 더하고 빼는 건 쓰는 사람의 몫이라는 걸.
무거운 검을 휘두르다 부드럽게 흘려도 되고 카운터를 노려도 되기에.
여기에 발렌식 용병검을 섞어도 되는 것이리라.
기초로 삼은 뼈대가 흔들리지만 않으면 그만이었다.
끄륵끄륵 하며 보가 바닥에 쓰러졌다. 뚫린 목에서 피가 흘러 바닥을 적셨다.
“……염병 더럽게 걸렸네.”
그걸 본 잭의 안색이 질렸다.
도망갈 자신도, 그렇다고 싸울 자신도 없다.
그렇다고 어떻게 하겠는가.
“왜 그랬냐?”
“알아서 뭐 하게? 시발?”
잭은 한결같았고, 엔크리드는 굳이 상대를 위한 자비의 칼날을 준비하지 않았기에, 둘의 다툼은 짧았다.
위에서 밑으로 짧게 끊어친 롱소드의 일격.
막기보단 피한 잭.
그 움직임을 예측한 엔크리드는 끊어칠 것처럼 휘둘렀던 검을 그대로 횡으로 그었다.
부우욱! 쩍!
잘 갈아 둔 칼날이 잭의 옆구리에 있어선 안 될 구멍을 만들었다.
“후욱, 시이벌.”
그게 잭의 마지막이었다. 단말마 대신 욕설로 잭이 쓰러지고.
엔크리드는 잠시 그 자리에서 멈춰 기다렸다.
검을 바닥에 꽂고 숨을 한참이나 고른 뒤였다.
그제야 다른 이들도 도착했다. 팽- 하고 뒤에서 쿼렐이 날아왔다.
고개를 꺾어 피한 엔크리드의 눈에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놈 하나, 그 옆에서 주춤거리다 나선 로튼, 마지막으로 넝마를 뒤집어쓴 암살자가 보였다.
엔크리드는 검을 꽂은 채로 물었다.
“한 번에 올 거지?”
일대일로 싸우자고 하는 건 안 먹힐 듯싶었다.
말 그대로였다.
쿼렐을 든 놈이 다시 자신을 겨눈다. 엔크리드는 숨을 짧게 들이켰다.
전신의 힘을 쭉 뺀다. 바닥에 꽂아둔 검을 그대로 두고 팔을 늘어뜨렸다.
늘어뜨린 손이 진자처럼 흔들린다.
이후 오른손이 채찍처럼 위로 휘어지며 손에 쥐었던 단검을 떨쳐내 뿌렸다.
쌕!
전신 탄력을 이용한 탄검식.
날아간 칼날이 복면 쓴 쇠뇌병 이마에 꽂혔다.
과연 빛살 같았다.
그걸 본 혼혈 요정의 어깨가 잠깐이지만, 흠칫하고 떨렸다.
“재밌네.”
그러곤 곧 중얼거렸다.
엔크리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