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늘만 사는 기사-60화 (60/170)

60. 겨우 열 번

재밌다니, 그건 이쪽에서 하고 싶은 말이다.

“너 진짜 재밌어.”

넝마를 뒤집어쓴 혼혈 요정이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으며 팔을 밑으로 축 늘어뜨렸다. 넝마 밖으로 하얀 손등이 보였다.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준비 자세였다.

저기서 손이 움직이면 끔찍한 휘파람이 울린다.

“투사체를 보고 피하면 늦습니다. 그러니 손을 보십시오.”

작센이 말하는 휘파람 비도 파훼법이자, 투척 무기를 다루는 이들을 상대하는 법이다.

쏘아진 화살을 눈으로 잡아채는 건 어렵다.

“정말 기사라도 되지 않는 이상은 힘듭니다. 하지만 기사가 아니더라도 날아오는 화살을 피하는 방법은 있습니다.”

가려 보는 법, 선투안(選投眼)이다.

손을 교묘하게 감춰도 움직이는 팔을 전부 감출 순 없다.

적을 눈앞에 둬라.

손과 팔을 눈에 담고 보아라.

그 뒤 전신을 눈에 담고 피하라.

그게 핵심이었다.

작센의 말투는 조곤조곤했으나, 귀에 쏙쏙 박혔다.

렘이 뭘 가르칠 때는 기본적으로 몸을 쓴다. 말보다는 몸이 앞서는 편이다.

작센은 그 반대다. 조곤조곤한 설명 이후에 몸을 쓴다. 머리로 이해하는 게 먼저라는 거다.

라그나는 흥미가 돌기 전에는 대충이고, 제 흥미가 돌면 몸과 설명을 동시에 이어 간다. 흐름을 타는 타입인 셈이다.

아우딘은 렘과 비슷하지만, 말투는 연신 긍정의 신과 같았다. 어찌 보면 가장 최악이 아닐까.

“할 수 있습니다. 형제님.”

“괜찮습니다. 형제님, 그 정도로는 신의 품에 닿지 않으니.”

“아픕니까? 잘되고 있군요.”

체조를 배우는 과정이 그리 녹록하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그거로 톡톡히 이득을 보았다.

도시 외곽, 성벽이 만든 그늘 밑이다. 햇살이 비치는 곳보다 몇 배는 추운 공기가 어렸다.

그런데도 몸에는 적당히 온기가 돌았다.

굳는 느낌은 없다. 아우딘에게 배운 체조 덕이라고 봐야 했다.

잡생각을 하면서도 엔크리드의 눈은 혼혈 요정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휘파람 비도를 피하는 방법, 손끝을 보는 거다.

손은 눈보다 빠르지만, 휘두르는 팔을 어찌할 순 없다. 궤적을 그리고 느끼고 본다.

보이면 피할 수 있다. 이미 몇 번이고 해 본 일이었다.

눈을 떼지 않는 것, 지금 그게 엔크리드가 할 일이었다.

그러면서 엔크리드도 손을 늘어뜨린 채다.

혼혈 요정도 마찬가지인 상황이었다. 휘파람 비도 수준은 아니지만, 상대의 투척술도 만만치 않았으니까.

‘어떻게 하면 한칼 먹일 수 있으려나.’

혼혈 요정은 신이 났다.

본래는 지루하고 고루한 일이었다. 일반 병사 하나 죽이라는 의뢰였다. 흥미가 생길 턱이 없었다.

암살자인 혼혈 요정에게는 두 가지 기벽(奇癖)이 있었다.

하나는 상대의 방심을 이용해 심장을 찌르는 것.

다른 하나는 정면에서 일류 이상의 전사를 죽이는 거다.

둘 다 취향이다.

본래는 만족할 수 없으리라 생각하고 전자에 집중했으나.

‘재밌겠어.’

지금은 후자 쪽으로 넘어갔다.

혼혈 요정은 연신 혀로 입술을 핥았다. 집중할 때의 버릇이었다.

눈으로 계속 상대의 허점을 찾는다. 쉬이 보이진 않았다.

느낌이 명확히 뇌리를 때린다. 지금은 어떻게 휘파람 비도를 던져도 상대가 피할 것이라고.

그래도 괜찮다.

‘비도 던지는 걸 대비하고 있다, 이거지.’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는데, 상대는 자신이 준비한 수를 깼다.

그것도 더없이 간단한 수단으로.

장소를 옮기므로 그리됐다.

일이 꼬여 버렸다. 죽은 사람이 셋이나 됐고 소란도 있었지만, 다가오는 사람은 없다.

본래 암살 장소로 택한 곳은 시장 한복판, 번잡한 곳이다.

번잡함은 순간 인지 능력을 늦춘다.

거기에 잭과 보라는 소모품으로 쓰일 두 놈이 시답잖은 말로 수작도 부릴 것이다.

그게 끝도 아니었다.

쇠뇌를 잘 다루는 놈을 하나 데려와 지붕 위에 숨겼고.

로튼이란 놈은 몰래 따라오게 했다.

이 모든 준비가 장소 하나 바뀌는 거로 뒤틀렸다.

주변에 숨을 건물이 없었고.

시작도 하기 전에 두 명의 멍청이가 죽었으며.

마주친 순간, 예상치 못한 비도 투척으로 쇠뇌를 든 놈도 죽었다.

‘전부 계산했을까?’

다시금 혀로 입술을 훔쳤다.

집중력이 극한에 다다르니, 입술이 자꾸 말랐다.

혼혈 요정은 이곳에 오기까지 목표물이 했던 행동을 추측했다.

‘계산했다.’

전부 계산한 거다.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먼저 알았다.

‘정보가 샜군.’

어디서 샜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결과가 중요할 뿐.

잭과 보를 해치우고 곧바로 쇠뇌를 든 병사를 처리.

‘깔끔해.’

상대가 한 계산, 수단, 탄검식까지.

모든 걸 확인한 뒤의 결론이다.

‘같은 업계로군.’

자신과 비슷한 일을 하거나, 그런 경험에 농후한 놈이다.

착각이었다.

하지만 그럴 만도 했다.

상대는 암살 수법을 읽었고, 정면으로 파훼했다.

아무리 정보가 샜다고 해도 이런 반응은 이런 일에 경험이 있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그럼 내가 쓸 수단은?’

몇 가지가 남았다.

품에는 세 가지의 독도 있고.

허리 뒤에는 짧게 개량한 자신의 전용 무기도 있다.

팔뚝 길이의 긴 송곳이다. 무기 명칭은 니들, 나이들과 함께 요정족이 즐겨 쓰는 무기 중 하나였다.

뽑아서 찌른다. 그거면 끝이었다.

이제까지 이 수법에 살아남은 건 한 놈뿐, 정확히는 어떤 프록뿐이다.

개 같은 프록 새끼.

“넌 왜 그렇게 더럽게 생겼냐?”

자기 외모를 서슴없이 폄하하던 미친 개구리 새끼.

혼혈 요정은 자기 외모에 콤플렉스가 있었다.

본래 요정은 아름다워야 하나, 혼혈은 미의 축복에서 벗어났다.

프록 새끼를 만난 그날 이후 혼혈 요정은 꼭 상대의 심장을 터트리는 거로 일을 마무리했다.

집중할 때 입술을 핥는 것과 마지막 결정타는 꼭 심장을 노리는 것.

이제는 버릇으로 굳어 버렸다.

‘독은 아깝다.’

프록을 떠올리자니, 상대의 심장을 쪼개고 싶었다.

그게 그리 어려운 일로 느껴지지도 않았다.

‘거리를 좁힌 뒤, 단숨에 니들로 뚫는다.’

상대가 검술에 재주가 있다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정면으로 싸울 때의 얘기일 것이다.

혼혈 요정은 자신이 가진 비장의 수단을 믿었다.

그럼, 어떻게 거리를 좁힐까.

몇 가지 수단을 떠올리는 와중이다. 로튼이란 멍청이가 움찔하는 게 느껴졌다.

‘머저리 새끼.’

혼혈 요정이 말했다.

“움직이지 마라. 멍청아.”

그 말에 로튼이 침을 꿀꺽 삼켰다.

슬그머니 발을 떼려는 순간이었다. 압박감이 느껴져 자리를 피하고 싶은 욕구가 솟구쳤다.

오랜 시간 도둑 길드에서 활동한 로튼은 이게 죽음의 공기라는 걸 알았다.

육감이 위험의 경종을 미친 듯이 울렸다.

“몇 개나 있냐.”

혼혈 요정은 로튼을 말로 붙든 뒤, 앞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엔크리드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아마도 손에 쥔 단검의 개수를 물어본 것이리라.

“난 두 개뿐이다.”

혼혈 요정은 거짓을 말했다. 입술에 침은 진즉에 수차례 바른 뒤다.

“난 하나.”

엔크리드는 다 알면서도 솔직히 답했다.

“내가 유리한 것 같은데?”

“그건 네 생각이고.”

엔크리드가 던진 단검은 아침부터 크라이스를 닦달해 구한 비장의 무기였다.

얇고 가벼운 걸 찾아 달라 했고, 크라이스는 구해 왔다.

덕분에 고기 썰던 나이프를 뺏긴 병사가 생겼고.

엔크리드에게는 너무 심하게 갈아 댄 탓에 칼날이 손가락만큼 짧아진 쓰로잉 나이프가 생겼다.

“진짜 재밌다. 너.”

요정이 읊조렸다.

수틀리면 휘파람 비도가 날아온다. 그런데도 엔크리드는 요정의 말에 동조했다.

긴장감이 전신을 데운다.

눈 한 번 잘못 깜빡이면 죽음의 손길이 목을 옥죄고 조를 것이다.

그런데도 즐겁다. 상대와 자신의 실력을 가늠해 맞붙는 것이.

상대가 준비한 수와 자신이 준비한 수를 겨루는 것이.

호승심과 더불어 이기고자 하는 마음이 가슴을 채운다. 전에는 쉬이 가질 수 없던 것이었다.

어디 이기려고 마음먹을 수 있던 순간이 있던가.

살아남기 위한 발악을 하기에도 바빴지.

그럼, 지금은 어떤가.

반복되는 오늘, 수 없는 사선에서 죽음을 맞이한 오늘.

그 덕분에 변한 건 검술만은 아니었다.

본래 포기를 모르는 심성이나, 승리를 쉬이 바랄 순 없었다.

특히나 일정 수준 이상의 실력을 갖춘 상대라면 더더욱.

하지만 지금은.

‘이길 수 있다.’

이기고 싶었고, 이길 수 있었으니.

마음가짐의 변화다.

“시신을 들어라. 방패로 써.”

혼혈 요정은 엔크리드가 듣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로튼에게 말했다.

“널 노리고 던지면 저놈도 죽는다. 그런 수를 쓰진 않을 거다. 쇠뇌도 챙기고.”

혼혈 요정은 머리에 떠오른 수단 중 가장 합리적이며 효율적이고 확실한 방법을 택했다.

수의 이점을 살리는 거다. 이쪽은 둘이었다.

로튼은 주춤했다. 혼혈 요정은 차분한 말투로 상황을 설명했다. 그럴 필요가 있었다.

“여긴 도시 안이다. 곧 이쪽에도 순찰병이 돌지 않나?”

맞는 말이다. 엔크리드는 시간만 끌어도 유리한 상황이었다.

곧 이쪽에도 순찰병이 올 것이다.

그럼, 끝이다.

그들과 마주하는 순간 로튼은 제 위장이 날아가는 건 물론이고 살아남기도 어렵다는 걸 알았다.

“빌어먹을.”

로튼은 상황이 엿 같아진 것에 성질을 부리고는 조심히 시신을 들었다.

얼마나 긴장했는지 등이 축축하게 젖었다.

‘언제 저렇게 실력이 늘었지?’

엔크리드를 노려보며 움직인 덕에 로튼의 행동은 굼떴다.

그는 바닥을 더듬어 일단 쇠뇌를 한쪽에 얌전히 내려놓고는 머리에 비도가 꽂혀 죽은 시신을 들었다.

무거웠다. 그는 끙끙대며 힘을 썼다. 여기서 비틀거렸다가는 끝이다.

로튼은 집중했고, 그의 이마에서 흐른 땀이 시신 위로 뚝 떨어졌다.

‘신중하게 움직이면 돼. 저 새끼 칼 못 던진다.’

그리 생각하며 시신을 방패 삼아 든 참이다.

훅, 쌕!

엔크리드의 팔이 움직였다.

비도가 날았다.

시신이 미처 몸을 전부 가리기 전이다. 로튼은 필사적으로 몸을 틀었다. 그 덕인지, 날아온 비도가 어깨에 꽂혔다.

“끅.”

로튼은 비명을 삼켰다.

그가 한칼을 맞는 타이밍에 요정의 손도 움직였다.

양손이 위아래로 정확히 네 번.

삐이이이익!

휘파람 소리가 겹치며 크게 울렸다. 날아간 비도는 넷.

엔크리드는 손에 든 나이프를 던지면서도 눈은 혼혈 요정에게서 떼지 않았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았기에.

날아오는 휘파람 비도의 궤적을 읽었고, 곧바로 양발을 앞뒤로 벌리며 바닥에 엎드리듯 자세를 낮췄다.

허리는 숙이고 양손은 바닥을 짚었다.

엔크리드의 머리와 가슴팍이 있던 자리로 네 자루의 휘파람 비도가 날아갔다.

이 모든 건 엔크리드가 비도를 던진 이후부터 겨우 숨 반 모금 들이마실 순간에 일어난 일.

그리고 나머지 숨 반 모금을 마시는 시간 동안, 혼혈 요정이 손이 다시 움직였다.

네 개의 비도를 던지고 아주 짧은 틈을 둔 뒤였다. 시간차 공격이었다.

양손으로 바닥을 짚은 자세의 엔크리드의 머리와 허벅지를 노린 휘파람 비도 두 자루가 더 날았다.

엔크리드는 반사적으로 옆으로 굴렀다.

퍼벅!

비도가 땅에 꽂혔다. 바닥을 구른 엔크리드는 급히 다시 고개를 들어 적을 찾았다.

비도 던지는 걸 놓치면 끝이었다. 엔크리드의 시선이 좌우로 움직였다.

시야에 적이 잡히지 않았다.

팔뚝에 비도를 맞은 로튼과 펄럭 하고 허공에 펼쳐진 넝마가 먼저 눈에 띄었다.

엔크리드의 눈이 넝마 사이를 꿰뚫었다.

없었다. 어디에도 암살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비도를 던지기 위한 위치를 찾은 것 때문에 놓친 거였다.

그사이 혼혈 요정은 자세를 낮추고 달려오는 중이었으니까.

넓게 퍼트린 시야 안쪽이다.

귀가 쫑긋 서며 땅을 차는 존재의 위치를 알린다.

엔크리드의 눈이 그제야 혼혈 요정에게 닿았다.

어느새 거리를 바짝 좁혔다. 겨우 몇 걸음 거리였다.

* * *

넝마로 시선을 뺏고 거리를 좁힌다. 상대는 자신이 거리를 좁힐 거란 예상은 할 수 없었으리라.

혼혈 요정의 노림수였다.

그의 예상이 맞았다.

엔크리드의 표정은 당황 그 자체였으니.

그런데도 그는 움직였다.

핑!

‘개자식.’

혼혈 요정은 자신이 한 거짓말은 생각지도 않고 속으로 상대를 욕했다.

상대의 손에 세 번째 비도가 있었다.

그런데 자신을 노린 게 아니었다.

혼혈 요정이 궁리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

머릿수가 많은 건 언제나 유리한 법이니.

그 덕분이었다.

로튼이 쇠뇌를 들고 견제하면 끝이었다.

놈에게도 선택지가 없었을 것이다.

쌕 하고 날아간 비도가 시신 방패 대신 쇠뇌를 든 로튼의 이마에 꽂혔다.

물론 혼혈 요정의 눈에 그 장면이 보이진 않았다.

그는 그저 최선을 다해 달렸다.

그렇게 두 걸음 안쪽.

허리 쪽에 손을 댄다. 상대가 비도를 던진 뒤, 필사적으로 롱소드를 쥐는 게 보였다.

뽑아서 긋는 것보다 훨씬 빨리, 혼혈 요정의 짧은 송곳을 닮은 검이 엔크리드의 심장을 찔렀다.

쩡! 티디딩!

‘막혀?’

혼혈 요정은 놀랐다. 정말 기겁할 정도로.

이게 막히면 안 되니까.

비장의 한 수이자, 필살의 일격이었으니까.

모르고서는 절대 막지 못할 테니까.

하지만 막혔다. 그로서는 억울할 일이다.

엔크리드는 이미 아홉 번째 죽음에서 송곳 검 니들을 봤으니.

엔크리드는 롱소드를 뽑는 대신, 비도를 던지며 뽑아 둔 가드 소드의 칼날 면으로 송곳 검을 막고 틀어 내며 흘렸다.

완벽한 유검식은 아니지만, 비슷하게 흉내는 낼 수 있었다. 덕분에 칼날이 뚫리는 대신 깨지는 것에서 그쳤다.

깨진 칼날이 가슴팍에서 빛무리처럼 흩어져 떨어지고.

가드 소드 그립을 놓은 엔크리드가 롱소드를 뽑았다.

이 모든 게 한 호흡이었다. 막고 버리고 뽑는다. 멈춤이 없었다. 부드러운 동작의 연속이었다. 그리 뽑은 롱소드를 위에서 밑으로 힘껏 내려치는 것까지, 흐르는 물과 같았다.

깨진 칼날이 바닥에 떨어지는 짧은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혼혈 요정은 놀란 와중에도 니들로 머리 위를 막았다.

피하기는 늦었으니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방어였다.

그리고 엔크리드는 중검식의 기본기를 십분 살렸다.

막는 게 무엇이든 깨고 부수며 내리꽂는 검이다.

쩡!

니들이 나뭇가지처럼 부러지며 불똥이 튀고 혼혈 요정의 머리 위로 롱소드의 칼날이 떨어져 검 본연의 임무를 수행했다.

퍽, 드득!

언젠가 지나가던 프록이 거침없이 까 버린 혼혈 요정의 흉한 외모는 이제 다시 확인할 수 없었다.

얼굴이 반으로 쪼개졌으니.

손에 쥔 롱소드의 칼날이 요정의 턱을 쪼개고 내려왔고.

죽은 요정은 단말마도 없이 얼굴이 쪼개진 채, 피를 우수수 흘리며 앞으로 얼굴을 처박았다.

“후.”

엔크리드는 참았던 호흡을 뱉었다.

그리고서 검을 회수한 뒤, 생각했다.

열 번, 겨우 열 번이었다.

반복된 오늘을 종결지은 횟수가.

이제껏 경험한 오늘 중 가장 짧은 반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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