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늘만 사는 기사-65화 (65/170)

65. 넘어올 사람

‘적의 행동을 예측했다.’

작센은 그게 칼날의 감각이 준 효능이라고 봤다.

제가 가르쳐 준 기술을 십분 활용한 모습을 보니, 가슴이 간질간질했다.

흐뭇한 거였다.

허나, 작센은 자신의 감정을 직시하지 않았다. 익숙하지 않아서 감정을 돌아보는 법을 몰랐다.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눈앞에서 죽으면 신경 쓰이는 사람, 딱 그 정도다. 저자가 자신의 무엇이라고 신경을 곤두세운단 말인가.

아무것도 아니다. 그리 생각했다.

작센은 어쭙잖은 군인 놀이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목표는 명확하니까.

그리 생각하면서도 불쾌함은 여전했다.

그 때문이었다.

작센은 엔크리드의 뒤에서 길드장이란 놈을 빤히 바라봤다.

‘생긴 게 마음에 안 드는군.’

작센은 적절한 핑계를 만들었다.

절대 분대장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저 새끼 생긴 게 마음에 안 들었다.

그러므로 덤비면 죽인다. 여기서는 임무에 충실할 것이다.

렘은 엔크리드가 야수의 심장을 부려 대담함을 무기로 삼은 걸 봤다.

창을 내지르는 적의 품 안에 파고드는 모습이라니.

몇 달 전이였다면 분대장이 저런 모습을 보이리라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부쩍 실력이 늘었고 그 중심에는 자신의 가르침이 있었으니.

‘아무렴.’

그게 그를 기분 좋게 했다. 그런데 암살자 따위가 엔크리드를 노렸단다.

‘그냥 전부 죽이지.’

렘은 상대를 전부 갈아 버리고 싶었다.

라그나는 새삼 엔크리드의 검술에서 자신의 흔적을 엿봤다.

‘어디서 배웠을까?’

훌륭하다. 무게 중심을 옮기는 법, 발을 떼는 법, 검을 찌르는 법, 전부.

자신이 간간이 검술을 봐줬다곤 하지만, 저 정도로 숙달되려면 뼈를 깎는 수련이 있어야 하는데.

‘신기하다.’

재능이 없다고 판단한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뛰어난 실력을 보인다. 본래도 라그나는 엔크리드에게 호감이 있었다.

끊임없이 나아가는 그의 모습이 라그나에게는 좋은 자극제였으니.

암살자가, 범죄자 패거리가 그런 사람을 노렸다?

‘다 죽이는 게 편한데.’

평소의 게으름을 잊고 라그나는 범죄 길드를 깡그리 죽이려고 마음먹었다.

다만, 이 자리의 주도권은 분대장에게 있다. 그의 뜻을 따라 줄 생각이었다.

아우딘은 엔크리드의 몸을 눈으로 훑으며 손가락으로 제 허벅지를 툭툭 두드렸다.

‘잘 단련된 몸이야.’

하지만 체계적으로 만든 몸은 아니다. 신전의 몽크는 기술보다 몸을 먼저 만든다.

육체 단련의 비기다.

아우딘은 그걸 몇 번이고 개량해 자신만의 기법으로 만들었다.

‘몸을 만들면 늘겠어.’

분대장은 우직한 노력을 할 줄 아는 사람이다.

아우딘의 머릿속 한쪽, 새삼 떠오르는 생각이다.

신은 어째서 저리 노력하는 자에게 재능을 내려 주지 않는가.

‘신의 의중을 일개 인간이 알 수는 없으니까.’

자기 가슴에 꽂힌 비수와 같은 말이다. 그 말이 떠오를 때면 아릿한 통증이 심장부터 전신에 퍼졌다.

한데 지금 눈앞에서 노력으로 재능의 벽을 뛰어넘으려는 자가 있다.

신의 의중 따윈 신경도 쓰지 않고 온전히 자신을 믿는 자였다.

‘나의 주여.’

아우딘은 속으로 기도했다.

‘굽어살피소서.

빛나고자 꿈꾸는 자가 헛되고 눈먼 칼날에 죽지 않기를.’

기도에 마음이 담긴 것과 같이, 그 또한 누군가 엔크리드를 노린 것만큼은 퍽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런 사람이 등 뒤를 찌르는 비수에 죽는 건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기에.

다만, 아우딘은 누구도 죽일 생각은 없었다.

‘두 다리를 전부 부러뜨리고, 대장은 팔을 하나 떼 버리면 될 것을.’

그러니 목숨 빼고 다른 걸 앗아가면 될 일이었다.

* * *

단 일 합.

엔크리드가 준 충격은 꽤 컸다.

그런데도 누구도 선을 넘으려고 하지 않는다.

‘부족하다 이거지.’

무력으로 상대를 압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충격을 연속으로 주면 된다.

엔크리드는 자신의 위치를 자각했다. 꼭 자신이 나설 필요가 없다는 거다.

“렘.”

“네?”

“셋만 죽여라.”

눈을 피한다는 핑계라곤 해도 이건 작전이자 임무였고, 엔크리드는 분대장이었다.

렘은 대거리 없이 나섰다.

엔크리드가 준 충격이 가시기도 전이다.

손도끼 두 자루를 손안에서 빙글 돌린 렘이 달렸다.

훅 하고 사라지는 것처럼 보일 만큼 빨랐다.

사라진 렘이 흉악한 인상에 못 박힌 몽둥이를 든 놈 앞에 섰다.

몇 번이고 봐 왔던 장면이었다. 렘의 팔이 채찍처럼 휘어졌다. 채찍의 끝에 달린 도끼날이 섬광을 토했다.

후앙! 퍽!

후웅! 쩍!

우득!

첫 번째 도끼질이 흉악한 인상의 목을 잘랐고.

두 번째 도끼질은 흉악한 인상의 우측에 있던 놈의 머리를 쪼갰다.

마지막은 다시 좌측이었다. 렘이 허리를 틀며 눈매가 사나운 놈의 목을 도낏자루 끝으로 후려쳤다.

목이 잘리고 머리가 쪼개지고 마지막 하나는 목이 부러졌다.

그리 죽인 뒤, 렘이 손도끼를 바닥을 향해 사선으로 휘둘러 묻은 피를 털었다.

후두둑 하고 핏방울이 바닥에 흩뿌려졌다.

그러곤 길드 놈들에게 등을 보이고 성큼성큼 걸어 돌아왔다.

“셋 죽였수다.”

엔크리드는 두 번의 충격이면 기회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넘어올 사람.”

같은 제안이 세 번째다.

이제는 안 들어도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을 죽이려 덤비는 상대에게 아량을 베풀 수 없으니.

죽고 죽이는 시대다.

상대를 죽이려면 자신도 죽을 수도 있음을 알 것이다.

“……변방수비대였나?”

귀티를 풍기는 길드장이 물었다.

“아니.”

엔크리드는 조촐한 분대를 이끌 뿐이다. 다만, 분대를 이루는 면면이 독특한 이들일 뿐.

“보더 가드 사이프러스 사단 소속 보병대대다.”

느슨하게 검을 쥔 채 출신을 밝힌다. 감출 이유가 없었다.

주춤주춤 눈치를 보던 놈 중 몇이 무기를 내려놓으려 하자, 길드장이 눈을 사납게 부라렸다.

“어디 한번 살아남겠다고 발악해 봐. 내가 그냥 두나 보자.”

제 편을 향한 말이었다.

크라이스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길핀이란 놈, 부하를 공포로 다스린다고 했던가.

수틀리면 사지를 분지르고 혀를 자른다고.

“분위기에 휩쓸리지 마라! 저 새끼들도 사람이다. 쑤시면 뒈지는 놈들이다. 몸에 갑옷도 제대로 안 두르고 온 거 안 보이냐? 죽여 버려! 몰매에 버티는 놈은 없는 법이다!”

주제에 문자를 쓰네.

엔크리드는 내심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숫자로 찍어 누르는 것.

일반적으로는 맞는 방법이다.

훈련받은 군인은 집단전일 때 효율성이 극대화되는 법이니까.

소수의 싸움에서는 지나가던 깡패 새끼도 병사를 죽일 수 있었다.

빈틈을 노리고 칼날을 쑤시면 어떻게 살아남겠나.

소수 대 소수의 싸움이라면 깡패가 유리할 수도 있다.

당연히도 기사나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이들에게 통용되는 얘기는 아니지만.

그리고 지금도 먹히지 않는 얘기이긴 했다.

“하지 마라.”

엔크리드는 경고했다.

사고뭉치 분대는 애초에 전략과 전술의 바깥에서 제멋대로 싸우는 놈들이다.

전장에서도 다수를 상대로 신명 나게 싸우고 멀쩡히 살아 돌아오는 위인들이란 거다.

그런 이들에게 고작 서른 명의 무장 병력, 그것도 군인도 아닌 이들이 덤빈다는 건, 자살행위였다.

“놔두슈, 관을 봐야 눈물을 흘리는 놈도 있는 거니까.”

“형제님, 이제는 신의 징치가 필요한 시점 같군요.”

“뒤로 물러서서 구경이나 하시죠.”

어쩐 일인지 아우딘과 라그나까지 의욕을 보였다.

작센은 아예 말도 없이 나섰다.

챙 하고 검을 뽑더니, 성큼 한 걸음 내딛자, 성격 급한 놈이 있는지 반대편에서도 도둑 한 놈이 튀어나왔다.

놈이 튀어나오면서 손에 쥔 넓적한 칼날의 시미터를 휘둘렀다. 훙 하고 작센의 머리 위로 날이 떨어진다.

작센은 시미터의 날과 수평으로 검을 들어 상대의 칼날을 제 검에 붙여 흘리고는 그대로 검을 내리그었다.

부욱.

검이 상대의 배를 가르고 지나갔다.

그리 힘이 들어가지 않은 것처럼 보였는데도 뱃가죽을 자르고 내장을 보여 주기엔 충분했나 보다.

“끄억.”

핑크빛 내장을 쏟아 낸 놈이 무릎을 꿇으며 쓰러졌다.

그게 시작이었다.

“덤비는 놈만 죽여.”

엔크리드가 말했다.

그 말에 렘은 제자리에서 도끼만 휘둘렀다.

그런데도 분쇄기와 다름없었다.

도리깨를 휘두른 놈은 제 무기가 중간부터 잘리자, 뒤로 물러났으나, 이미 도끼가 머리를 쪼갠 뒤였다.

물러나며 피와 뇌수를 흘리고는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라그나는 아밍소드 한 자루를 들어 위에서 밑으로 기계적으로 휘둘렀다.

어떤 신묘한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내려칠 때마다 시신이 늘었다.

정수리가 쪼개지고 어깨가 잘리고.

아우딘은 몽둥이 두 개를 양손에 나눠 쥐더니, 날아오는 날붙이를 쳐 냈다.

따다다다당!

덕분에 아우딘 쪽이 제일 시끄러웠다.

아우딘은 무기를 쳐 내고 거리를 좁혔다. 발이 무척 빨랐다. 렘과 비교할 정도로.

그리 거리를 좁힌 아우딘은 몽둥이를 적절하게 휘둘러 적의 다리몽둥이를 부러뜨렸다.

쩍, 우득!

“끄아아아아악!”

다리가 부러진 이들의 비명이 공터를 울렸다.

이 소리에 순찰 경비병이 출동하진 않을까 싶어질 정도였다.

다행히도 이곳을 찾는 사람은 없었다.

크라이스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토굴에서 반 시간.’

골목길 끝에서 찾은 거점도 애초에 도시 외곽 쪽이었다.

이쪽 장원은 아마도 일부 부유한 상단이 도시 내에 투자한 고급 장원 지역일 것이다.

평소에는 사람이 많이 없는 곳이다. 거기에 상대는 길핀 길드라는 범죄 조직 아닌가.

윗선에 뒷돈을 댔을 테고.

‘주변에 사람이 오가지 않게 물렸겠지.’

어설프게 순찰병이 오가는 것보다는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게 일을 처리하기 더 편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크라이스는 상대의 숫자에 당황하지 않았고 위협도 느끼지 않았다.

그도 사고뭉치 분대원이다.

자신과 함께하는 분대원의 수준을 대충은 알았다.

상급 병사가 된 엔크리드가 쩔쩔매는 수준이니.

‘전원이 변방수비대 이상이지.’

그럼, 답이 나온다. 상대가 될 리가 없다는 답이.

크라이스의 뇌는 활기차게 돌아가며 앞으로의 일을 계획했다.

이걸 위해 일부러 정보를 흘리기도 했다.

‘그 친구는 나중에 처리하고.’

애초에 흘린 정보도, 지금 상황도 어느 정도 크라이스의 의도 안에 있었다.

이 중에 이걸 눈치챈 사람이 있을까?

분대장은 알아챌지도 모른다. 겉보기에는 우직한 바보처럼 보이지만, 분대장은 머리를 쓸 줄 알았다.

렘도 단서가 있으면 알지도 모르지만.

그는 도시가 돌아가는 방식을 잘 모르니.

‘아마 모르겠지.’

라그나와 아우딘은 말할 것도 없을 테고.

작센은 제가 원하는 것만 명확하면 다른 걸 따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이제 됐다.

그사이에도 시신이 무수히 늘어 가고 있었고.

아우딘 쪽에서는 비명이 미친 듯이 울리고 있었다.

“끄아아아악!”

아우딘은 다리 한쪽만 부러뜨리고 끝내지 않았다. 꼭 돌아와 다른 쪽 다리도 부러뜨렸다.

그러며 설교도 잊지 않았다.

“성자가 되라고 하진 않겠습니다. 다만, 이웃에게 피해를 주는 삶은 지양하십시오.”

반도 못 알아들을 말을 다리를 부러뜨리면서 하니, 알아들을 놈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아우딘은 한결같이 행동했다.

엔크리드는 눈이 바빴다.

처음에는 작센의 절제된 동작에 빠져들었다.

‘정검식.’

기본은 정검식이다. 상대의 검을 이용한 반격, 정해진 검로를 따라 상대를 의도대로 움직이게 한다.

거기에 쾌검이 섞였다.

공수가 하나가 된 검, 정검의 묘미다.

단순한 검식을 넘어, 검을 휘두르는 판단력이 남달랐다.

확실히 상대를 죽일 수단을 택한다. 살인을 위한 검이었다.

배울 만한 게 많았다.

그 뒤는 렘이 눈에 들어왔다.

다가오는 적을 후려치는 것뿐이지만, 도끼의 궤적이 생각지도 못한 그림을 그린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을까?’

정중환쾌유,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검 같았다.

당연했다. 렘의 도끼질은 철저히 감각에 의한 거였다. 굳이 분류하자면 기검이다.

물론 도끼를 쓰니 기부(奇斧)식이라고 해야겠지만.

엔크리드는 여기서도 배웠다.

라그나의 중검식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익힌 기본 검술의 극한을 보여 준다.

어설프게 막으면 그대로 돌파해 목표점을 때린다.

그 일격이 정수리를 깨고 어깨를 잘랐다.

아우딘의 체술은 또 어떤가.

검술은 기본적으로 체술을 기반으로 한다. 주먹과 발을 쓰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검술이라 할 수 없었다.

근접전을 익히는 건 필수 조건이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아우딘의 싸움에서 배울 게 제일 많았다.

짧은 몽둥이 두 개로 다리를 부수는 과정을 눈에 담는다.

예전이었다며 보고도 몰랐던 동작이 머릿속에 담겼다.

엔크리드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넷의 모습을 보고 기술을 훔치기 바빴다.

몸으로 실현해 내는 건 다른 문제지만.

확실한 건 배울 게 많은 건 많은 거였다.

싸움은 길지 않았다. 긴 시간을 소요할 수 없었다.

전의를 잃은 자들이 속출했다.

그 와중에 작센은 평소답지 않게 우직하게 길을 뚫었다.

지팡이를 든 길드장을 향해서다.

거리를 좁힌 작센이 대뜸 검을 휘둘렀다. 머리 위를 노린 상단 수평 베기였다.

길드장 놈이 지팡이 손잡이를 위로 뽑았다. 일반 지팡이가 아니라, 소드 스틱이었다.

안에 칼날을 숨긴 지팡이였다.

팅 하고 뽑힌 길쭉한 칼날이 작센의 검을 막았다.

챙 하고 둘 사이에 불똥이 튀었다.

그러자 길드장 뒤를 지키던 두 놈이 합세하려 했고.

“하지 마라.”

“싸우게 둬.”

어느새 다가온 렘과 라그나가 말했다.

길드장의 호위로 나선 둘이 서로를 바라봤다.

덤빌까?

둘의 눈이 렘과 라그나가 걸어온 길로 향했다.

피의 길이다. 시신만이 즐비했다. 살아남은 건 무서워 바지에 오줌을 지린 놈과 눈치 보고 덤비지 않은 놈들뿐.

호위 둘은 조용히 무기를 내렸다. 둘 다 단검을 쥐고 있었다. 아예 단검을 검집으로 도로 넣고는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항복과 굴종의 자세다.

“너 이 새끼들!”

길드장이 호위 둘이 하는 짓을 보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래도 어쩌겠나.

세상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의 목숨인 것을.

분위기에 휩쓸려 덤빈 놈들만 불쌍할 뿐이었다.

작센은 무표정했다. 붉은색 띠를 두른 갈색 눈이 길드장을 쫓았다.

“항복하겠다!”

놈이 외쳤다. 작센은 듣지 않았다.

“항복하겠다니까!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냐? 돈이 필요하다면 돈을 주겠다!”

어조가 다급했다.

채채채채챙!

놈이 입을 터는 사이 작센의 검이 급격하게 빨라졌다. 소드 스틱을 연속으로 다섯 번 때렸다.

불똥이 겨울밤 사이로 튄다. 밤의 어둠과 화르륵 타는 횃불.

죽은 시신과 신음을 흘리는 무리.

공포에 질린 자들과 공포를 선사한 자들.

그 사이에서 작센의 목소리가 울렸다.

“생긴 게 마음에 안 들어.”

‘이게 무슨 개소리야?’

그게 길드장의 마지막 생각이었다.

곧 작센의 검이 길드장의 비싼 옷을 헤집고 가르며 목을 벴다.

스걱.

섬뜩한 소리, 길드장은 억울함에 눈을 부릅뜨고 죽었다.

아직 할 말이 많았다.

자신의 뒤를 누가 봐주는지 아느냐고.

무엇보다 권력자란 놈들한테 쏟아부은 크로나가 얼마인가.

억울하고 또 억울하다.

당연한 일이다. 칼 맞아 죽은 사람은 언제나 억울한 법이니.

작센이 피 묻은 검을 늘어뜨렸다.

어느새 주변 모든 싸움이 끝나 있었다.

엔크리드는 분대원 모두의 동작을 되새기며 눈을 감았다가 떴다.

상황 정리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어두운 밤, 겨울의 시린 공기와 횃불을 배경 삼아, 엔크리드는 한 걸음 나섰다.

어쩌다 보니 딱 중앙이다.

둥글게 감싼 횃불 사이, 그림자가 모이고 시선이 모인다.

그리 모두의 시선을 모은 뒤, 엔크리드의 입이 열렸다.

“넘어올 사람?”

한마디면 충분했다.

살아남은 모두가 무기를 떨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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