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늘만 사는 기사-70화 (70/170)

70. 고립의 기법

‘고립의 기법’의 기본은 부하였다.

무거운 걸 들고 동작을 반복 수행함으로 운동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무거운 걸 들고 단련한다고 해서 단순히 근력을 늘리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소리다.

“이제 할까?”

한 달,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연병장 구석이다.

엔크리드가 대련을 제안한다. 아우딘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팔이 좋으십니까? 다리가 좋으십니까? 형제님?”

둘 중 하나를 비틀겠다는 신호다.

“혀가 길어. 아우딘.”

둘 다 맨손이었다.

한 달 내내 고립의 기법만 배운 건 아니었다.

둘이 서로를 노려본다. 아우딘과 눈을 마주치려면 비스듬히 고개를 들어야 했다. 체격 차가 명확했다.

그런데도 먼저 움직인 건 아우딘이었다.

툭, 땅을 차는 순간 몸을 낮추며 달려드는데, 순간 잔상이 보일 정도로 빨랐다.

기도하는 곰이라는 별명답지 않다.

예전 엔크리드라면 무릎을 세워 대응하는 게 최선이었으나.

지금은 달랐다.

똑같이 자세를 낮추고 주먹을 쥐고 엄지를 세워 앞으로 찌르듯 겨눈다. 달려들면 눈알을 터트릴 수 있는 위치다.

그러자 아우딘이 달려들다 말고 옆으로 몸을 튕겼다.

팍팍 하고 땅을 차는데 커다란 덩치가 에스터만큼이나 잽싸게 자리를 바꿨다.

날랜 표범 같단 소리다.

덩치와 어울리지 않는 민첩함과 순발력이다.

뒤를 잡히면 싸움은 거기서 끝나기에 엔크리드도 수차례 몸을 돌렸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아우딘이 주먹을 뻗었다.

어느새 팔의 리치가 닿는 거리였다. 언제 간격을 허용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한 점의 집중 상태였다.

엔크리드는 시간을 쪼갠 틈에서 판단했고 행동했다. 이마를 내밀어 주먹의 타격점에 도달하기 전에 막아 내려 했다.

아프지 않게 맞는 법, 레슬링 기술 중 하나였다.

아우딘은 주먹을 뻗다가 손바닥을 펴 엔크리드의 머리카락을 잡았다.

그 뒤 잡아챈 머리칼을 밑으로 당기고, 왼 팔꿈치로 엔크리드의 등을 찍으며 무게를 싣고 내리눌렀다.

엔크리드는 잠깐이지만, 아우딘의 힘과 무게를 견뎠다.

견디는 것에 끝나지 않고 등 뒤로 넘기려는 시도까지 했다.

아우딘은 얌전히 엔크리드의 등에 오르지 않았다. 그는 무게를 실으며 엔크리드의 머리칼을 앞으로 당겼다.

귀신같은 타이밍에 머리칼을 당긴 바람에 엔크리드는 무게 중심이 흔들렸다. 도저히 제 몸을 뜻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균형을 잃은 탓이었다.

이제는 도리가 없었다.

쿵.

엔크리드는 손으로 자신의 안면을 막으며 아우딘에게 깔렸다.

“팔과 다리 대신 몸을 내주셨군요. 분대장 형제님.”

아우딘이 껄껄 웃었다. 호쾌한 웃음이었다.

“전장이었으면 투구가 있었을 거야.”

머리카락을 잡은 걸 말한 거다. 깔린 채로 말하니, 아우딘이 웃으며 답했다.

“그럼 다른 수단을 썼겠지요.”

맞는 말이었다. 엔크리드도 불만이 있어 말한 게 아니었다.

다른 수단이 궁금해서 물은 거였지.

“투구가 있었다면 머리카락 대신 손바닥으로 목덜미를 잡거나 뒤통수에 대고 단숨에 누르는 방식을 썼을 겁니다.”

“그렇구나.”

아우딘에게 깔린 채다. 기도하는 곰의 무게가 짓눌러 금방이라도 내장이 터질 것 같지만, 엔크리드에게는 지금 배운 하나가 더 중요했다.

집중하는 엔크리드를 두고 아우딘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한 달, 누군가에는 지루함에 미쳐 버릴 일상이지만, 엔크리드에게는 담담한 일과가 된 나날이다.

오전에는 고립의 기법을 점심 이후에는 레슬링을 배웠다.

다시 저녁 전까지 검술을 단련했고.

저녁을 먹은 뒤에는 그동안 배웠던 것들을 되새겼다.

야수의 심장, 칼날의 감각, 한 점의 집중.

전부 개선의 여지가 있었다.

발전할 수 있는데 왜 멈춰야 하는가.

그런데도 익히는 속도는 느렸다. 한 점의 집중과 칼날의 감각, 야수의 심장이 받쳐 주는데도 그랬다.

그래서 엔크리드는 기었다.

그는 느린 달팽이였고 육지에 오른 거북이었다.

“참 느리게 느는군요.”

자리에서 일어난 아우딘이 제 옷을 추스르며 말했다.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았기에 어깨 위로 하얀 김이 폴폴 솟았다.

엔크리드의 어깨도 마찬가지다.

고립의 기법도, 레슬링도, 둘 다 땀이 흠뻑 흐르는 행위다.

엔크리드는 몇 번이고 아우딘의 가르침을 되새겼다.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실력을 가늠하는 법.’

몸에는 모든 정보가 담겨 있다.

가령 오른손잡이 검사는 오른팔 근육이 더 발달하곤 한다.

몸의 체격과 발달 정도를 보고 상대의 경험과 단련 정도를 읽어 내는 안목이다.

고립의 기법으로 단련을 시작한 뒤, 새로이 깨달은 거다.

이후 배운 것도 값지다. 고립의 기법으로 몸의 기초를 잡은 이후에는 레슬링을 배웠다.

아우딘은 레슬링을 크게 타격기와 관절기, 던지기 세 가지로 나눴다.

상대가 자신보다 체격이 작다면 던지고 메치는 것만으로 싸움이 쉬워지는 법이라 했다.

“내가 더 작으면?”

엔크리드는 제대로 들을 줄도 알았지만, 그만큼 질문도 많았다.

배움에 있어 절대 어떤 것도 쉬이 넘어가지 않았다.

아우딘은 그때마다 생각하곤 했다.

이게 바로 분대장의 장점이라고.

“작으면 작은 대로 싸우는 법이 있지요. 관절기와 타격기, 박투에 능숙한 이들이라면 상대의 힘을 이용해 쓰기도 합니다. 카운터도 그런 방식의 일종입니다.”

요정 중대장이 한 것도 그런 종류일 것이다. 손짓 한 번에 자신을 넘어뜨린 기술, 그게 떠오르는 말이었다.

실제 아우딘은 그런 방식으로 시범도 보여 줬다.

아우딘은 친절했다. 고립의 기법을 함께 할 때는 악마와 같으나, 레슬링을 가르칠 때는 오히려 순했다.

“여기서 힘을 더 주면 팔이 부러지고 관절이 망가집니다. 신성 치료가 동반되지 않으면 회복할 수 없으니, 팔 병신이 되겠지요.”

조금만 실수해도 엔크리드의 몸은 맨손 해체를 당할 판이었다. 자연스레 레슬링은 순한 맛이 되었다.

“힘과 속도는 당연히 갖춰야 합니다. 그 외 급소 파악, 쓰러뜨리는 방법, 뼈를 부러뜨리는 방법, 관절을 부수는 방법 등을 배워야 하지요. 어느 하나 대강 배워서 될 건 없습니다.

그러니 새로이 배우는 것보다 지금 배운 걸 더 반복하셔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도 새로운 걸 배우고 싶다는 겁니까?”

가끔 나무라기도 했다. 그럴 만했다.

엔크리드는 기술 하나에 완숙의 경지에 다다르기보다는 최대한 많은 걸 배우고 몸에 때려 넣으려 했다.

‘이게 맞아.’

엔크리드에게는 오늘의 반복이 있다.

지금 배우는 거로 기술의 숙련까지 바랄 순 없다.

아우딘이 보기에는 욕심이 많고, 몸은 못 따라주는 거로 보일 뿐이지만, 엔크리드한테는 이게 맞는 길이었다.

배운 걸 되새기는 상념이 아우딘의 목소리에 깨졌다.

“조금 전 상황에서 왜 머리칼이 잡혔다고 생각하십니까?”

“간격.”

엔크리드는 담백하게 답했다. 몰라서 당한 게 아니었다.

“그렇지요. 간격, 수없이 말했는데도 분대장 형제님은 참으로 둔하고 느리군요.”

엔크리드는 여전했다. 이딴 말에 상처 따위 받지 않는다. 그럴 시간도 없었다.

오늘 배운 걸 또 되뇌기 바빴으니까.

관절기는 종류만 수십 가지였다.

그걸 외우고 몸에 대강이라도 때려 박는 것만으로도 한계였다.

여기에 던지기와 타격기까지 배워야 했고, 기본적인 원리도 몸에 새겨 둬야 했다.

“몇 번이고 말씀드렸습니다. 체력은 필수고. 간격을 읽는 건 검술과 마찬가지이며, 마지막으로 민첩하지 못하면 모든 게 소용이 없음을.”

아우딘은 좋은 선생이었다. 가르치는 방식이 훌륭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포기를 몰라.’

느리고 더디기에 성장하는 게 보이지 않아도 우직하게 가르쳤다.

엔크리드에게는 이런 선생이 가장 잘 맞았다.

우직한 가르침은 조금이라도 몸과 뇌리에 남기 마련이니, 숙련과 숙달은 뒤로 미루되 엔크리드도 우직하게 익히고 배웠다.

“체력, 간격, 운동 능력.”

엔크리드가 아우딘의 말을 되새겼다.

검이든, 창이든, 둔기든, 레슬링이든 힘과 속도는 필수다.

간격을 재는 법이야, 꽤 익숙해졌지만 아우딘은 엔크리드보다 더 능숙했다. 그래서 당했다.

“오늘도 맨땅에서 구른 거요?”

그렇게 레슬링을 끝내고 돌아오니 렘이 기다렸다.

“오늘은 쉴 거유?”

매번 같은 질문이다.

“아니.”

이번에는 검이다. 목검을 들 때도 있었으나, 이제는 진검이 더 편했다.

손에 익은 롱소드가 렘의 전신을 노린다. 매일 렘만 상대하는 건 아니었다.

어느 날은 라그나가.

“보고 있으니 한번 붙어 보고 싶군요. 분대장.”

또 다른 날은 작센이 나서기도 했다.

“시간이 남습니다. 검을 들고 나오십시오.”

하나같이 엔크리드의 요청을 거절하지 않는 이들이다.

그러면서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하긴 했다.

가령 렘은.

‘무슨 재능이 이따위일까. 실전 경험이 필요한 건가?’

분명 전장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실력이 늘었던 것 같은데, 도시에 돌아오니 다시 제자리다.

물론 전보다는 낫지만.

극적인 성장은 없다. 렘이 보기에는 그렇다.

전보다 나은 건, 그나마 야수의 심장과 한 점의 집중, 칼날의 감각과 고립의 기법 덕이었다.

고립의 기법 덕분에 근육의 질이 변하는 중이었으니까.

물론 한 달 만에 극적인 변화를 일으킬 순 없었다.

조금씩, 반걸음씩 나아갈 뿐.

느린 달팽이가 기어가듯, 그리 나아간다.

라그나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기본기는 탄탄한데, 응용식은 왜 이렇게 더디게 늘지?’

나이 서른에 재능이 터진 게 아니었나? 왜 다시 바보가 됐지?

알 수 없다.

그런데도 라그나는 의욕을 보였다.

엔크리드는 절로 의욕이 생기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매일, 근무가 있든 다른 사정이 있든 어떻게든 똑같은 맹훈련을 반복한다.

오전 근무가 있으면 저녁 늦게라도 돌덩이 따위를 들고 묘한 자세를 취하곤 했다.

레슬링과 검술도 마찬가지다.

그 시간에 근무가 있으면 근무를 선 뒤, 돌아와서 단련을 시작한다.

자는 시간을 쪼개고 먹는 시간을 쪼갠다.

단체 병대 훈련에 들어가면 렘과 라그나, 작센, 아우딘, 크라이스 이렇게 다섯은 게으름을 피우거나 대강 넘기곤 하는데 엔크리드는 훈련에도 전력을 다했다.

그 뒤 숙소로 돌아와선 연무장으로 나가고 다시 제 훈련을 반복했다.

징그러울 정도로 한결같았다.

그러하기에 라그나는 분대장을 보며 자극을 받았고.

작센도 마찬가지였다.

‘감각이.’

청각은 뒤통수에 눈을 단 수준인데.

그 뒤 감각의 예민함이 발전하지 않는다.

‘왜?’

가르치는 자신의 잘못인가?

아니면 배우는 엔크리드가 문제인가.

‘배우는 쪽이 문제지.’

이미 수차례 가르쳐 본 경험이 있기에 안다. 그래서 신기할 따름이었다.

참 느리고 더디게 실력이 늘어나는 것이.

‘그런데도 포기하진 않아. 독특해.’

작센은 흐뭇한 미소를 지을 뻔하다가 본래의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분대장이 뭐가 중요하다고.’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그는 항상 최선을 다했다.

돌아가며 가르치다 보니 알아서 순번이 정해졌는데, 그중 작센이 제일 열심히 했다.

에스터는 자기가 택한 남자를 바라봤다.

검은 표범의 푸른 눈에 상대의 모습이 잡힌다.

어떻게 저럴 수 있는 걸까.

자신도 주문 세계에 미쳐 살던 때가 있다.

온종일 주문 세계에 몸을 담고 있으면 그 무엇도 필요 없던 시절이 있었다.

먹는 것도 자는 것도 어떤 것도 바라지 않았다.

‘그러다 이렇게 됐지.’

에스터는 과거를 곱씹다가 눈으로 다시 엔크리드를 쫓았다.

‘나와는 달라.’

저 남자의 일과는 단순하고 반복적이다. 먹고 자고 쉬는 것까지도 일과의 일부처럼 행한다.

열심히 쉬고 있다는 말이 퍽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보고 있자니.

‘도울 게 있으면 나도.’

돕고 싶어진다. 그런 사람이었다.

정작 엔크리드는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말 그대로 제 몸에 이런저런 걸 새기기에도 바빴으니.

본래도 훈련에 미친 놈이었으나, 최근에는 더했다.

고립의 기법 덕도 있었다.

‘근육의 질이 변한다.’

옷을 벗고 제 몸을 거울에 비춰 보고 싶을 정도다.

이걸 제일 잘 느끼는 게 누구겠나.

엔크리드 자신이었다.

전에는 힘겹던 동작이 부드럽게 나올 때면 기껍다 못해 즐거워 미칠 지경이었다.

찌르기부터 시작해서 중검식의 기초까지.

변한 몸으로 하니, 모든 게 전과는 다르다. 더 부드럽고 유려하다.

유검식의 흘리기도 이제 어느 정도 손에 익을 정도.

따-앙.

칼과 칼이 만나며 상대의 무기를 흘린다. 렘의 도끼를 옆으로 쳐 낸 참이었다.

“좀 나아졌수다.”

렘이 인정한 흘리기다. 완벽하다고 할 순 없지만.

‘전보다 좋아졌다.’

엔크리드 자신이 느끼기에도 기술의 완성도가 다르다.

이 모든 것에는 몸을 만드는 기법이 자리했다.

즉, 고립의 기법이다.

“진즉에 배우지 않은 걸 후회하고 계십니까?”

아우딘이 언젠가 물었었다. 몸을 만드는 게 늦었다고 생각하진 않냐고.

“아니.”

엔크리드는 고개를 저었다.

지나간 날에 관한 후회는 없다.

그런 후회 따위가 남았다면.

이미 ‘오늘’에 갇혔을 것이다.

과거의 그때는 그때 배운 것들이 중요했다.

그러므로 지금에 충실히 하는 것.

그게 맞았다.

한 달 동안 딱 한 번 사공이 나오는 꿈을 꿨다.

“오늘에 갇힌 것과 다를 바 없이 사는구나.”

지루하다는 감정을 전신에서 뿜으며 턱을 괸 사공은 말했고 스러졌다.

일전에 그리 세차게 비웃던 놈은 어디 갔는지.

사공의 말이 맞았다.

엔크리드는 오늘의 반복과 다름없는 한 달을 보냈다.

바뀌는 건 근무 시간과 날씨뿐이었다.

“이전에 배웠다면 몸이 받아들이지 못했을 겁니다.”

아우딘은 그런 말을 남겼다. 굳이 신경 쓰진 않았다.

중요한 건 오늘, 지금이었기에.

어느새 사계의 끝, 네 번째이자 가장 가혹하다는 겨울이 중턱을 넘어선 날이 다가왔다.

“잠깐 보지.”

그런 나날 중 하나, 요정 중대장이 엔크리드를 찾아왔다.

숙소 앞에 나가자, 추위를 등진 중대장이 녹색 눈으로 빤히 보며 말했다.

“임무다.”

보더 가드 상비군은 각각 필요에 따라 차출되곤 한다. 전장에서 싸우는 게 의무의 전부가 아니었다.

“네.”

“상단의 후계를 호위하는 일이다. 사 분대에서 한 명만 차출해 같이 오도록.”

중대장은 명령으로 용건을 전했다. 상부의 지시였다. 엔크리드는 그에 따라야 했다.

의뢰와 임무.

본래는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이제는 공을 쌓는 것에도 관심이 생겼다.

실력을 갖추고 공을 쌓는다. 기사로 가는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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