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늘만 사는 기사-72화 (72/170)

72. 매 순간 단련했기에 (1)

고심할 이유가 없는 선택이기에 작센을 택했다.

의뢰라면, 가장 수행 능력이 높은 대상과 함께하는 게 맞다.

사고뭉치 분대 내 작센이 의뢰를 가장 많이 맡아서 했었다.

경험이 많다는 거다. 그만큼 찾는 사람도 많고.

예민한 오감이 호위에 도움이 된다는 거야, 두 번 말하면 입 아플 테고.

다른 분대원과 비교하자면 호위 대상과 마찰을 빚을 확률도 낮았다.

“그러지요.”

작센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그걸 본 렘이 납득할 수 없다고 난리를 피우고.

다시 라그나가 자기도 이건 좀 이상한 것 같다고 하고.

아우딘은 신의 뜻과 어긋난 게 아니냐고 하고.

당연하다는 듯 라그나와 렘이 시비가 붙고.

작센이 옆에서 렘의 속을 긁자.

라그나가 빠지고 렘과 작센이 싸우고.

엔크리드는 말리고 또 말리다가 나중에는 아예 서로 눈도 마주치지 말라고 했다.

“대련할 거면 나랑 하고.”

엔크리드는 마지막 말을 덧붙여, 분대원과 돌아가며 대련을 하는 거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정신적 피로를 느낄 법도 했으나, 그럴 일은 없었다. 이게 사고뭉치 분대의 일상이었다.

무엇보다 재능 없다고 빌빌거리면서도 끝내 검을 휘두르며 긴 세월을 버틴 엔크리드에게는 이 정도는 별일도 아니었다.

이 정도로 정신적 타격을 받았다면 검 따위는 진즉에 놓아 버리고 쟁기를 들었을 테니.

“분대장은 역시.”

크라이스가 그걸 보고 다시 엄지를 치켜세웠다.

새삼 분대장의 정신력을 칭송하는 엄지다. 엔크리드는 대강 고개를 끄덕여 줬다.

호위 의뢰는 내일이었다.

중형 상단의 후계 문제였으며 도시 내 호위 임무였다.

배정된 인원은 셋.

요정 중대장과 엔크리드와 작센이었다.

새벽 나절부터 움직일 필요는 없었다. 호위 대상은 점심나절에 도시에 들어온다고 했으니.

* * *

푹 자고 일어난 다음 날 아침, 어느새 품에 에스터가 들어와 있었다.

“어제는 왜 그런 거냐?”

눈곱 낀 채로 물으니, 에스터가 손으로 툭 가슴을 쳤다.

뭐 때문에 화가 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화해의 신호로 보였다.

“그래, 오늘 하루도 잘 뒹굴고.”

에스터가 할 일이 뭐가 있겠나.

밤 되면 품에 들어와 자고.

아침이 되면 비비적거리며 일어나 뒹구는 게 일과다.

가끔 밖에 나갔다 오는 거로 봐서는 도시 근처에서 쥐라도 잡아 먹는 것 같긴 했다.

따로 식사를 챙겨 주는 편이 아니긴 한데, 간식으로 육포를 자주 주는 편이었다.

의외로 모든 분대원이 에스터를 잘 챙기는 편이었다.

특히나 크라이스가 살뜰히 챙겼다.

“레이크 팬서는 때가 되면 발톱을 갈 거든요. 그때 가져가면 뭐라고 안 할 거 아닙니까.”

털갈이하듯, 발톱갈이를 한다는 거다. 그러니까 크라이스는 합리적인 이유로 잘해 주는 거였다.

“요놈, 요놈.”

“갸륵.”

새침하게 고개를 돌리는 게 귀엽고 신기해 정수리를 두어 번 손톱으로 긁어 주고는 몸을 일으켰다.

아침 식사 시간이었다.

“날 버리고 얼마나 잘될지 한번 봅시다.”

아침 당번은 렘이었다. 놈이 눈을 흘겼는데, 엔크리드가 그걸 보고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뻗었다.

탁.

렘이 손바닥으로 주먹을 막았다.

“팔 하나 부러진 채로 가도 아무 상관 없는 일이었수? 아침부터 도전이라니.”

“아니, 얼굴을 보니까 반사적으로 나갔다.”

“그게 더 기분 나쁜데?”

그럴 수 있지.

말은 그렇게 했어도 렘이 덤비진 않았다.

임무를 나가는 날 아닌가.

몸이 상해서 나가서야 될 일도 안 될 법이니.

아침으로는 돼지 안심을 납작하게 눌러서 구운 것과 삶은 감자를 섞은 요리가 나왔는데, 맛은 형편없었다.

“몸에는 좋습니다. 고기는 근육을 단단하게 해 줍니다. 형제님.”

고립의 기법은 몸을 만드는 것이고, 몸을 만드는 것의 완성은 먹는 거라고 했던가.

아우딘의 말에 엔크리드도 꾸역꾸역 먹었다. 아우딘의 말이 아니더라도 잘 먹는 게 중요하다는 건 잘 알고 있기도 했고.

남는 시간을 고립의 기법으로 몸을 달구고 나니, 출발할 시간이었다.

엔크리드는 우물에 몸을 씻고 장비를 챙겼다.

일전 길핀 길드를 털고 얻은 가죽 갑옷을 챙겨 입었다.

몸통만 가리는 용도인데, 얇고 탄성이 좋아서 불편하지 않았다.

갑옷 위로 휘슬 대거의 나이프집을 두르자, 옆에서 작센이 물었다.

“그건?”

“전에 암살자 죽이고 챙겼지.”

“알뜰하시군요.”

그게 그렇게 되는 건가.

어쨌든 꽤 쓸 만한 도구라고 생각하긴 했으니까 챙기긴 했다.

이런 종류의 무기는 많으면 많을수록 이득이니까.

두꺼운 갬비슨까지 걸침으로 무장을 완료한 뒤, 밖으로 나섰다.

도시 내 여관까지 작센과 나란히 걸었다. 작센은 걷는 내내, 잘 듣는 법, 잘 보는 법 따위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둔하군요.”

이렇게 한마디를 추가하는 걸 잊지 않았다.

엔크리드는 여전히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이 둔하다는 거야, 언제나 알고 있는 얘기다.

네 개의 여관이 중심이 된 사거리에 도착하니, 중대장이 이미 와 있었다.

“호위 대상은 도착했습니까?”

엔크리드가 약식으로 군례를 보인 뒤 물었다.

“아직이다. 곧 오겠지.”

호위 대상 성격이 보통이 아니라는 말이 있었다.

크라이스가 전해 준 말이다.

길드를 맡더니, 전보다 배는 귀가 밝아진 것 같았다.

‘후계를 정하기 위해서 왔다고 했던가.’

얼마나 성격이 모난 건지 궁금할 따름이지만, 큰 걱정은 없다. 렘 수준의 망나니는 흔하지 않다.

사고뭉치 분대에서 한 달만 지내 봐라.

그 어떤 망나니도 귀여워 보일 수 있을 테니.

엔크리드는 태평했다.

작센은 별생각이 없었다. 그에게 의뢰는 의뢰일 뿐이었다.

사흘 동안 지켜 준다. 상단 내 후계 회의가 끝나면 의뢰도 끝이었다.

도시 내에서 안전만 보장하면 되는 거다.

머릿속에 입력은 끝났으니, 그다지 생각할 거리가 없는 거였다.

중대장은 엔크리드의 뒤통수를 보며 그를 데려온 이유를 떠올렸다.

사고뭉치 분대장, 이 남자는 아즈펜의 암살 대상이었다. 그건 뒤가 깨끗하다는 방증이었다.

무엇보다 도둑 길드를 처리한 방식도, 이후 대응도 마음에 들었다.

뇌물은 유지하고.

범죄 길드를 정보 길드로 갈아 버렸다.

덕분에 대대장과 마찰이 없었다.

범죄 길드를 없애 버리면 문제가 생김을 알고도 그리하라고 놔뒀다.

만약 뇌물이 끊겨서 윗선에서 문제 삼으면 이리저리 손을 쓸 생각이었는데.

저 분대장은 그럴 일조차 만들지 않았다.

‘생각한 바와 다르게 흘러가긴 하지만.’

이 또한 나쁘진 않았다.

중대장은 호위 대상을 기다리다가 입을 열었다.

“우리가 몸을 섞는 사이였던가?”

검 그립에 손을 비스듬히 올리고 있던 엔크리드다.

그의 전신이 순간 굳는 듯했다.

잘 만든 조각상이 된 그는 천천히 고개를 옆으로 돌려 물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나한테도 들릴 정도면 이미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해입니다. 헛소문이죠. 요새 워낙 일이 없고 조용하다 보니 시답잖은 소리로 시간을 보내는 놈들이 있는 겁니다.”

“그런가?”

“네.”

“그럼 우린 아무 사이도 아니라는 거군?”

“상급자와 하급자의 사이입니다.”

“그렇군.”

시답잖은 얘기로 넘겨야 했다. 소문이 참 넓고 깊게 퍼지기도 했지.

“큼.”

옆에서 작센이 헛기침했다. 슬쩍 보니 입꼬리가 씰룩인 것 같았다. 웃음을 참는 흔적이다.

‘이게 웃겨?’

입 모양으로만 물었다.

‘안 웃었습니다.’

작센도 입 모양으로 답했다.

중대장은 요정이었다. 그녀는 옆으로 슬쩍 눈을 돌리는 것만으로 둘 사이에 오간 대화를 읽었다.

독순술이야, 요정에게는 어려운 재주도 아니었다.

“곤란했나 보군.”

“아닙니다.”

엔크리드의 즉각적인 답이 돌아왔다.

“곤란한 것 같은데?”

“아닙니다.”

“그럼 좋았나?”

왜 이러는 걸까.

“아니이입니다.”

대답하는 발음이 묘하게 늘어졌다.

저리 말하고 웃기라도 하면 좋겠지만, 무표정이다.

하물며 눈도 마주치지 않고 도시 저쪽으로 시선을 던지고 있다.

‘요정의 농담은.’

좀처럼 적응되지 않았다.

“오는군요.”

엔크리드는 작센의 한마디로 곤경에서 벗어났다.

호위 대상이 오는 게 보였다.

두두, 두두.

이두 마차가 다가오자, 땅이 흔들렸다.

엔크리드는 중대장보다 호위 대상을 상대하는 게 몇 배는 편할 것 같았다.

“재밌었는데.”

뒤에서 중대장이 소곤거리듯 중얼거리는 게 들려 엔크리드를 오싹하게 했다.

온열 가죽을 덧댄 망토를 입었는데도 순간 오한이 들었다.

곧 마차가 서고 사람이 내렸다.

엔크리드의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

‘볼 빵빵한 욕심 많은 두꺼비가 아니라.’

수려한 외모를 지닌 여자였다. 긴 금발과 붉은 기가 감도는 갈색 눈이었다.

눈에 확 띄는 미모라 하겠다.

‘딱’ 하고 부츠 굽이 바닥을 밟는 소리가 났다. 마차에서 내려선 여자는 요정 중대장을 직시하곤 말했다.

“잘 부탁드려요.”

상비군에서 나온 호위라는 소개는 따로 필요 없었다.

그때부터 그녀는 함께 온 자기 일행하고만 말을 나눴다.

곁에 붙은 중년 여인, 유모라는 사람이 호위 대상의 뜻을 전할 뿐이었다.

금발 여인은 이제 막 스물이라 했고 성격이 유별난지는 알 수 없었다.

‘얘기를 나눠 봐야 알지.’

눈 한 번 마주친 적이 없는데, 뭐라 하겠나.

“일은 편하겠군요.”

작센이 말했다. 엔크리드도 고개를 끄덕였다.

호위를 요청하기에 달랑 혼자 오는 건 아닌가 했는데, 상단 호위랍시고 다섯 명의 검사가 붙었다.

그중 셋은 방패를, 둘은 얇은 세검을 가진 게 보였다.

엔크리드는 배운 걸 활용했다.

“나이, 자세, 위치 선정, 눈빛, 모든 게 다 정보입니다. 형제님.”

아우딘이 말한 대로 자세를 토대로 몸의 형태를 그리고 추측하는 거다.

‘맞을까?’

확신은 없다. 프록이라면 본능적으로 상대의 실력을 가늠한다고 하지만.

인간은 그럴 수 없기에 지식과 경험이 필요한 법이라고 했던가.

“하다 보면 됩니다. 형제님.”

아우딘은 그리 말했지만, 하루아침에 될 일은 아닐 듯했다.

조바심은 없었다. 엔크리드는 차분히 상대를 관찰하기 바빴다.

다섯 중 왼손잡이가 하나 있었고 테이블을 잡고 앉을 때 의자가 끼익하고 비명을 내지르는 걸 보니 무게감이 있는 무장을 걸친 듯했다.

그렇다고 사슬 갑옷을 입은 사람이 있진 않았다.

때가 겨울이다. 사계의 끝, 끝의 계절이라 불리는 혹독한 추위에 쇠로 된 갑옷을 입는다? 굳이 그럴 이유가 없을 것이다.

하물며 호위를 위해 마차를 쫓아 걷는 길이라면 두꺼운 갬비슨이 제격이리라.

이들도 그러했다.

그동안의 경험, 상식이 아우딘을 통해 배운 것과 맞물렸다.

무장의 상태, 자세를 보고 실력을 가늠하는 거다.

열이면 열, 다 맞진 않겠지만.

‘다섯 모두.’

변방 수비대원보다 못해 보였다. 병사 등급제로 보자면 특급 이하란 거다.

엔크리드는 자신이 깨달은 점을 되새겼다.

‘나쁘지 않아.’

자세와 무장만 보고 실력을 가늠하는 것, 평소에는 엄두도 못 낸 일 중 하나다.

그런 자신의 변화를 느꼈기에, 엔크리드는 오늘도 성장의 기쁨을 누렸다.

이런 기쁨은 질리는 법이 없었다.

매번 새로웠고 짜릿했다.

검술을 비롯한 전투 기술과 무예가 늘고 실력이 향상되고.

희열은 계속된다. 즐겁다. 정말 더없이 즐겁다.

비록 이번 임무에서는 검을 꺼내 칼부림할 일은 따로 없다고 해도.

앉은 자리에서 새로이 배우고 익힌 걸 활용할 수 있다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꼈다.

“재밌는 놀이 하나 하시겠습니까?”

거기에 작센이 던진 제안이 꽂혔다. 재미난 생각, 아니 수련법이었다.

“소리 맞추기란 놀이입니다.”

“하자.”

렘과 라그나, 아우딘 못지않게 렘도 가르치는 열정이 드셌다. 겉으로 보이지 않는 차가운 불꽃 같은 열정이나.

그걸 모를 순 없는 노릇이다.

그 열기의 수혜를 입는 게 자신이니.

그러니 이번에도 정말 놀이나 하자는 말은 아닐 터였다.

엔크리드의 추측이 맞았다.

작센이 제안한 건, 칼날의 감각을 단련하는 수련법 중 하나였다.

물론 쉬운 방법은 아니었다.

* * *

“혀 차는 소리.”

작센이 말하고 엔크리드는 미간을 찌푸렸다.

“늦습니다.”

호위 임무는 대체로 무료한 편이다. 하물며 여긴 보더 가드다.

상단의 개인 호위도 있는 마당에 셋을 부른 이유야 뻔했다.

크로나를 지급하고 호위를 불렀는데도 우리를 습격하면 보더 가드 상비군이랑도 붙어 보자는 말이 된다.

보더 가드는 국왕 직할령.

직할령 내에서 왕국의 병사를 건드린다?

호위 대상의 중형 상단이 아닌, 백지어음으로 유명한 대륙에서 제일 잘 나가는 렝가디스 상단이라고 할지라도 부담이 되는 일일 것이다.

“왼쪽 테이블 세 번째 남자입니다.”

어떻게 듣는 것만으로 저렇게 정확하게 아는 걸까.

엔크리드도 이제 등 뒤에 눈이 달렸다는 수준까지는 오른 것 같은데.

간단하지만 어려운 놀이였다.

작센이 말하면 주변 소리에 집중하고 있는 엔크리드가 알아맞히는 것뿐인데도.

“칼 가는 소리.”

주방인가? 아니다. 그보다 위다.

엔크리드는 한 점의 집중까지 발동했다.

이마에 땀방울이 흐를 정도다. 벽난로의 온기가 내부를 달군다고 해도 엔크리드가 있는 곳은 싸늘한 공기가 흐르는 곳임에도.

“위.”

“방향은 맞습니다. 몇 층입니까?”

그들이 있는 곳의 여관은 3층까지 있다.

찍어야 하나? 아니, 그럼 훈련이 되지 않는다.

“102호겠군요.”

작센이 정답을 말했다. 이 놀이의 핵심은 시간이었다. 제때 말해야 한다는 거다.

몇 번 오가니, 중대장이 다가왔다.

“같이 하지.”

상대는 요정이다. 오감이 인간보다 배는 뛰어난 종족.

엔크리드가 보기에 그녀는 작센보다 더 뛰어난 것 같았다.

“짧은 칼날을 넣고 뽑는 소리, 반복.”

다시 문제가 제시되고.

엔크리드는 거듭 놓치고.

요정 중대장은 숨도 안 쉬고 답했다.

“여관 입구 앞.”

“입가를 가리고 숨 쉬는 소리.”

아니, 그딴 건 어떻게 아는 거지?

엔크리드는 황당했으나, 요정 중대장의 유려한 목소리는 연신 정답을 말했다.

“창문 바깥.”

“앉은 채로 숨죽인 놈.”

“입구를 바라보고 우측 테이블 밑.”

“슬그머니 눈치 보는 놈.”

“네 뒤쪽.”

중간부터 엔크리드는 고개를 갸웃했다. 언제부턴가 숫제 소리를 묻는 물음이 아니었기에.

호위 대상은 상단의 후계.

상단은 개별 호위까지 데려왔고.

여관의 메인 홀 한쪽을 전세 내듯 자리 잡았다.

그리고.

“습격 예상.”

“동감이다.”

작센과 요정 중대장이 나눈 말을 엔크리드가 이해한 순간.

작센이 일어나며 앉아 있던 의자를 뒤로 밀었다.

드르륵! 퍽!

“읍.”

엔크리드의 눈에 작센이 밀친 의자 등받이에 허벅지를 맞은 놈이 보였다.

당황한 눈빛과 손에 들린 칼이 보인다. 검게 칠한 단검이었다.

소리 듣기 훈련, 그걸 위해 항시 신경을 곤두세워 뒀었다.

엔크리드는 작센을 보고 자신도 뒤로 몸을 돌렸다. 단검을 든 놈이 보였다.

냅다 찌르기 직전이었다.

갑자기 몸을 돌린 엔크리드를 보고 상대가 놀랐는지 눈이 커졌고, 순간이지만 몸이 굳었다.

그 틈에 엔크리드는 손을 뻗어 상대의 손목을 쥐었다.

우득.

쥐고 바깥으로 비틀어 당기며 반대쪽 팔꿈치를 직각으로 세운다.

“끅.”

손목이 뒤틀린 상대는 엔크리드가 당기는 대로 부질없이 끌려왔다.

그렇게 엔크리드가 팔꿈치로 상대의 가슴팍 중앙을 찍었다.

우직.

상대의 가슴뼈가 부러지며 단검을 놓친다. 떨어지는 단검을 잡아챈 엔크리드가 몸을 숙였다. 그가 있던 자리로 팽하고 단검이 날았다. 날아간 단검이 나무 기둥에 퍽 소리와 함께 꽂혔다.

누군가 보면 가까스로 피했다고 하겠지만.

엔크리드는 예상한 바였다. 쉽게 피했다는 거다.

‘별게 다 도움이 된다고 해야 하나.’

의무 막사에서 겪은 암살자의 습격 때, 크랑을 노린 습격이었으나 엔크리드를 거쳐 가야 했다.

매번 아득바득 살아남았다.

오늘을 반복함으로.

이후 혼혈 요정 암살자의 휘슬 대거와 맞붙었다. 하물며 이건 최근의 일.

이 또한 오늘을 반복했다.

누군가는 살면서 한두 번 겪을 일을 수없이 많은 반복으로 경험했다.

즉, 그동안 겪은 경험의 총체다.

이제 이런 종류의 습격은 수월하게 받아치게 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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