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늘만 사는 기사-73화 (73/170)

73. 매 순간 단련했기에 (2)

습격자의 수법이 도둑의 그것과 너무 닮아 있었다. 검게 칠한 단검, 쇠뇌, 쓰로잉 나이프 등이 주력이었으니.

‘이거 참.’

다만, 솜씨는 더 떨어졌다.

‘길핀 길드 수준도 못 되는 것 같은데.’

“피해?”

단검을 피하자 놀라서 저리 말하는 것부터 전문가의 냄새가 나지 않았다.

본래 암살이 주특기가 아닌 거다.

엔크리드는 죽은 상대의 손에서 뺏은 단검을 손안에서 휘돌렸다.

손가락을 튕겨 나이프의 위치를 바꾸고 엄지와 검지로 날을 잡은 뒤, 앞으로 팔을 뻗었다.

일련의 동작이 결과를 불러 왔다.

팽하고 날아간 단검이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습격자의 이마에 꽂혔다. 이마에 칼을 맞은 그대로 암습자의 몸이 뒤로 넘어가 쓰러졌다.

쿵 하고 머리통이 바닥에 찧는 소리가 나며 붉은 피가 여관 바닥에 줄줄 흐르고.

“우아악!”

그저 여관에서 끼니나 때우던 시민 몇이 비명과 함께 밖으로 뛰쳐나간다. 음식을 나르던 급사와 여급은 어느새 테이블 밑에 숨었다.

습격은 비명을 불렀고.

비명은 소란을 일으켰으나.

엔크리드 일행은 생채기도 나지 않았다.

“……다 죽여 버려!”

습격자 중 하나가 외쳤다.

“습격이다! 반격해!”

“무기를 챙겨라!”

상단의 호위 쪽에서도 반격의 봉화를 올렸다. 각자 무기를 뽑아 들었다.

챙하고 칼날이 검집과 마찰하는 소리가 울렸다.

그걸 들으며 엔크리드는 이게 호위 임무임을 잊지 않았다.

“제가 갑니다.”

요정 중대장에게 말한 엔크리드는 발걸음을 돌렸다.

누군가는 호위 대상의 안전을 확보해야 했다.

1층이 이 난리라면 위층에도 문제가 생겼을 것 아닌가.

근접 호위가 붙어 있긴 하지만.

‘여기서 일 터지면 우리 책임이기도 하니까.’

과연 어떤 미친놈이 사주한 건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보더 가드 내에서 상비군을 호위로 둔 상단을 습격하다니.

엔크리드는 그대로 위층으로 향했다. 중간에 자신을 막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그럴 만했다.

작센이 중간을 막아섰으니까.

그는 의자 하나를 들더니 방패처럼 휘둘러 날아오는 단검을 전부 막았다.

의자는 금세 형이상학적인 예술품이 되었다. 단검과 쿼렐이 곳곳에 꽂힌 나무 의자다.

던지는 게 안 되자 숏소드나 몽둥이를 들고 다가오는 이들도 있었다.

작센은 그들이 제 범위 안에 들어올 때마다 검을 휘둘러 한칼에 한 명씩 영혼과 육신을 분리해 줬다.

그야말로 깔끔 그 자체였다.

막고 베는데, 칼날의 궤적은 평범했으나, 상대는 번번이 막지 못했다.

챙!

한 명이 가까스로 막긴 했으나, 작센은 애초에 끊어치기로 검을 휘둘렀고 튕겨 낸 검을 번개처럼 뻗어 다시금 상대의 얼굴 위에 쑤셔 넣었다.

뚝 하고 코뼈가 부러지며 콧등 위로 새로운 구멍이 생긴 상대가 쓰러지고 작센은 검을 뽑아 다시금 같은 작업을 시작했다.

날아오는 단검은 의자로 막고, 다가온 상대는 검으로 벤다. 엔크리드보다 단검 던지는 솜씨가 몇 배는 훌륭하지만, 활용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이런 씹, 뭐냐, 이 새끼는.”

작센은 대답하지 않았다. 곧 죽을 놈들과 무슨 대화를 나누겠나.

요정 중대장은 작센이 시선을 끄는 사이, 아예 습격자 가운데로 들어섰다.

그녀의 허리춤에서 나이들이 뽑혔다.

잎새 검이 춤을 추자, 습격자가 목을 잡고 쓰러지기 시작했다.

베고 또 벤다.

핏방울이 허공에 튀었다. 그녀의 얼굴과 몸에도 분분히 피로 만든 그림이 그려졌다.

경쾌한 요정의 몸놀림에 대응할 놈은 없었다. 그만한 실력자가 모인 그룹이 아니었다.

“이게 전부면 실망인데.”

요정이 한 발만 바닥에 대고 한 다리는 바닥에서 두 뼘 높이로 들곤 잎새 검으로 상대를 겨누듯 자세를 잡고서 말한다. 춤을 추기 직전처럼 보이기도 했다.

맑고 경쾌한 목소리지만, 듣는 처지에서야 명부의 마왕과도 같을 것이다.

복면을 쓴 놈 중 하나가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시이발.”

남은 놈 중 하나가 울상을 짓고 말했다. 습격한 무리 중 하나의 읊조림이었다.

1층을 습격한 이들 중 리더는 생각했다.

‘어차피 목표만 달성하면.’

시간은 충분히 끌었다. 2층의 작업이 성공했든 말든 여기서 시간을 더 끄는 건 죽은 목숨이리라.

호위대의 실력이 그의 생각보다 몇 배는 뛰어났다.

전부 변방의 학살자를 데려오기라도 한 걸까.

모른다. 알 필요도 없는 일이다. 그는 제 일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빠질 때였다.

“다 죽여!”

리더는 그렇게 말하며 문 쪽으로 달렸다. 부하가 시간을 버는 사이, 자신은 몸을 뺄 심산이었다. 작전은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아즈펜에 영광을!”

남은 부하 중 하나가 외쳤다. 외침을 뒤로 흘리며 리더는 도주했다.

도시에 남아 있던 첩자의 잔재다.

그들은 나라와 명예를 위해 목숨을 던졌다.

리더야 돈 때문에 하는 일이지만.

본래 충성이란 이럴 때 쓰라고 키우는 거 아니겠나.

그렇게 도주하는 리더의 뒷모습을 유심히 보던 작센은 허리춤에 숨겨 둔 얇은 칼날에 손을 댔다가 뗐다.

‘괜한 짓이다.’

저거 하나 죽인다고 달라지는 건 없을 것 같으니.

여기서 놓친다고 큰일이 생길 것도 아니고.

작센은 고개를 돌려 하던 일을 계속했다.

덤비는 적을 무참히 도륙하고 죽이는 것.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막아서는 수문장의 역할이다.

평소 태도를 생각해 보면 퍽 어울리는 일은 아니지만.

여관 메인 홀에 모인 이들의 실력만 놓고 보자면 요정 중대장 다음이었으니, 아무도 작센을 넘어서지 못했다.

신나게 나이들을 휘두르면서도 요정 중대장은 뒤쪽을 한 번씩 봤다.

계단에 올라간 엔크리드보다 그 앞을 막아선 분대원의 실력이 눈에 띄었다.

‘돋보이는구나.’

사고뭉치 분대라고 했던가.

정작 분대장보다 뛰어난 분대원이라니.

그런 경우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이쪽은 실력 차이가 확연했다.

‘최소 도시급.’

병사 등급제는 나우릴리아가 만든 제도.

넓게 대륙으로 나가 보면 실력 수준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 법이다.

떠돌이 생활을 해 온 중대장에게는 그쪽이 더 익숙했다.

마을, 도시, 대륙.

이 중에서도 큰 마을이냐, 작은 도시냐를 따졌고, 대륙도 지역을 말함이냐, 아니면 대륙 전체를 말하는 것이냐 따지긴 하지만.

기본적인 구조가 이렇다는 거다.

마을 하나에 이름을 떨칠 실력인가.

아니면 도시 하나에 이름을 팔아도 될 실력이 되나.

대륙 전체에 이름을 날리려면 어느 정도여야 하나.

그녀 기준으로 대륙급 강자는 최소 기사급 강자다.

그들이 다루는 ‘힘’을 깨우치지 않고서는 힘들다.

음유시인을 고용해 이름을 파는 사기꾼을 제하면, 그렇다.

“재밌어.”

그녀가 읊조렸다.

습격한 쪽, 조금 전 나이들을 막으려다가 오른쪽 손의 손가락 네 개를 전부 잃은 처지에서 보자면 끔찍한 소리였다.

“끄흐윽, 뭐?”

눈물을 흘리며 손가락을 잃은 사내가 말한다. 요정 중대장은 말없이 나이들의 폼멜로 상대의 뒤통수를 때렸다.

뻑.

기절이다. 손을 지혈해 둬야 할까?

아니, 상관없을 것이다.

죽으면 죽는 대로 놔둘 것이다.

어차피 증언할 입은 널렸다. 전부 죽이진 않았다. 작센도 마찬가지였다.

개중 어려 보이고 입이 가벼워 보일 것 같은 이들 몇은 죽이지 않고 허벅지를 베거나, 기절만 시켜 놨다.

맨 처음 아즈펜을 외친 놈도 살려 뒀다.

여러모로 쓸모가 있을 것이다.

‘위는?’

요정은 싸우며 위쪽에 신경 일부를 던졌다. 청각이 열리며 위쪽 상황을 알렸다.

그녀는 묘한 미소를 지었다.

‘재밌어.’

거듭 드는 생각이다.

어릴 때, 맨 처음 나이들을 받았을 때였던가.

그때도 이만큼 즐거웠던 것 같은데.

생각과 함께 요정의 나이들은 다시금 움직였다.

어느새 습격자의 숫자가 반 토막이 된 채였다.

* * *

엔크리드는 위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두 개씩 밟으며 올라갔다.

훅훅- 하고 계단을 밟고 뛰는데 몸이 가벼웠다.

‘고립의 기법.’

확실히 몸의 변화를 만들어 냈다. 아우딘은 더디다고 했지만, 정작 엔크리드는 차이를 확연히 느꼈다.

전보다 몸이 가볍다는걸.

2층 복도에 올라서는 순간, 머리 위쪽에서 칼을 든 암살자가 떨어져 내렸다.

이전에 상대한 암살자보다 수준이 떨어졌다.

기척이 눈에 보일 듯 잡혔으니까.

좁은 복도에서 휙 하고 몸을 틀었다. 그렇게 벽에 바짝 붙어 피하자, 칼을 든 상대가 바닥에 뚝 떨어졌다.

떨어진 상대의 눈이 엔크리드에게 닿는다.

엔크리드는 오른손으로 롱소드 그립을 쥐며 반쯤 무릎을 굽혔다. 중검식의 발검 자세다.

바닥에 떨어진 상대가 균형을 잡으며, 숏소드를 땅과 수직으로 세웠다.

횡 베기를 막는 시도로 중검식 발검을 막기에는 훌륭한 방어 태세였으나.

엔크리드의 왼손에서 시작된 수직 베기를 막기에는 형편없는 자세였다.

퍽!

오른손과 자세로 상대를 속이고 왼손에 몰래 뽑아 둔 숏소드로 정수리를 쪼개듯 벴다.

발렌 식 용병검 이중 발검이다.

속은 상대의 눈알이 떨렸다.

하지만 뭐라 말은 하지 못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이니까.

“미쳤어? 여기가 어디라고 암살자를 고용해?”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딜!”

또 다른 여자의 목소리도 들렸다.

엔크리드는 시체를 뛰어넘고 좁은 복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문이 반쯤 열린 호실이 보였다.

그 앞을 막은 복면 쓴 괴한도.

“멍청한 놈들.”

놈이 달려오는 엔크리드를 보더니. 손을 휘저었다. 핑하고 쓰로잉 나이프가 날아왔다.

휘슬 대거에 비하면 반의반도 속도가 나오지 않았다.

야수의 심장이 준 대담함이 날아오는 비도를 정면으로 바라보게 하고.

한 점의 집중으로 타오른 집중력이 날아오는 비도를 느리게 보이게 했다.

그 위로 칼날의 감각이 더불어 붙으며 비도의 궤적을 읽어내고.

이 모든 과정을 뒷받침해 주는 근육과 순발력이 몸에 붙었기에.

엔크리드는 고개만 옆으로 꺾었다.

과거, 그러니까 오늘을 반복하기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동작이다. 묘기라고만 생각했었다.

날아오는 비도를 고개만 꺾어서 피하다니.

실제로 전장에서 매의 발톱인지 뭔지 하는 놈의 화살을 피하지 못해 방패를 들지 않았었나.

지금이라면 그 화살도 피할 수 있을 듯했다.

귓가에 쌔액 하는 투척물이 날아가는 소리만 남았다.

고개만 꺾어 피하고 달려들자, 상대의 눈이 커진다. 놀란 거다. 그러면서도 상대는 손을 움직였다. 재차 단검이라도 던질 셈으로 보였다.

왼손에 든 숏소드를 세워, 달려드는 척 보여 준 엔크리드는 오른팔을 한 번 휘저었다.

삐이익.

팔이 휘두른 궤적을 따라, 휘파람이 울렸다.

휘슬 대거가 상대의 목을 관통하니.

“끄럭.”

목에서 피가 터지고 입에서는 피거품이 흘렀다. 놈은 반사적으로 하던 동작을 마무리했다.

손에 든 단검을 던졌다. 다만, 이미 죽어 가던 중이기에 힘이 없어, 툭 하고 바닥에 떨어졌을 뿐.

피하고 던진 동작 모두가 몇 호흡 안에 일어난 일이었다.

엔크리드는 달리는 속도를 늦추지 않고 그대로 어깨로 부딪쳐 목이 뚫린 놈을 옆으로 날려 버렸다.

퍽, 붕, 쾅!

날아간 놈이 반대쪽 복도에 있는 문에 부딪히자, 안에서 으헉 하는 놀란 비명이 나왔다.

여긴 여관이다. 당연히 묵는 사람이 있었다.

대낮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도시 한복판, 그것도 여관에서 이런 습격을 벌이다니.

상대는 보통 강심장이 아니었다.

아니면 전부 병신에 머저리거나.

“끄으으으!”

막 한 놈을 처리한 뒤, 열린 문을 박차고 방에 들어선 순간이다.

상단의 호위가 배에 칼을 맞고 쓰러지는 게 보였다.

호위의 배에 칼침을 놓은 상대, 복면을 쓴 놈이 검을 뽑으며 그대로 호위 대상을 베려 했다.

찰나의 틈.

엔크리드는 손에서 휘슬 대거가 날아갔다.

삐익! 땅!

너무 급해서 전력으로 던진 건 아니었으나, 휘슬 대거는 제 역할을 했다. 상대가 그걸 막느라 주춤했으니.

던지며 달려가는 엔크리드다.

상대는 달려오는 엔크리드를 상대하지 않았다.

대신 휘슬 대거를 막은 검을 재차 호위 대상, 상단 아가씨에게 휘둘렀다.

‘엿 같은 새끼.’

엔크리드는 집요한 암살자를 욕했다. 방법이 없기에.

한순간, 전장에서 봤던 스콰이어의 동작을 흉내 냈다.

당연히도 그대로 해낼 순 없다. 그에게 그런 재능은 없다.

하지만 짧은 거리였다. 그리 넓지 않은 방, 침대 하나와 가구 두어 개가 전부인 방.

좁은 공간이니, 흉내 정도는 내볼 만했다.

자세를 낮추고 땅을 찬다. 단숨에 공간을 좁힌다. 휘슬 대거를 하나 더 뽑아 던져 봤자 상대를 제지할 순 없으리라 생각했기에, 엔크리드는 몸을 던졌다.

빡!

그리 검과 호위 대상 사이에 들어선 엔크리드의 등에 칼날이 날아와 쳤다.

갬비슨이 베이고 그 안까지 칼날이 들어와 등허리를 갈랐다.

엔크리드는 반사적으로 허리를 틀어 몸을 때린 검을 흘렸다.

칼날을 몸으로 막은 엔크리드의 눈에 호위 대상이 들어왔다.

놀란 눈과 하얗게 질린 안색을 기대했는데, 어금니를 꽉 깨문 야무진 인상의 여인이 보였다.

호위 임무다. 임무란 무엇인가.

맡은 일이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란 거다.

등으로 검을 받아냈기에 엔크리드는 그 충격을 고스란히 몸으로 견뎠다.

동시에 속으로 아우딘에게 감사를 표했다.

‘고맙다. 아우딘.’

“잘 맞는 법, 그게 우선이지요.”

레슬링의 기초라 했다. 맞으며 힘을 흘리는, 몸으로 하는 칼날 흘리기다.

배울 때는 죽을 것 같았는데.

배워 놓고 나니, 이리 써먹는구나.

“잠시.”

엔크리드는 말하며 상단 아가씨를 손으로 밀쳤다.

“음!”

아가씨는 비명 대신 숨을 참았다. 강단 있는 타입으로 보였다.

“이 새끼가?”

상황을 파악한 암습자가 두꺼운 칼날을 지닌 검, 글라디우스를 들고 엔크리드를 노려봤다.

“우리 내려가서 얘기할까?”

엔크리드는 뒤로 돌아서서 말한 뒤, 냅다 달려들었다.

상대의 칼날이 미간을 노리고 찔러 들어왔으나.

휘슬 대거를 상대한 경험이 이리 도움이 될 줄은 엔크리드는 꿈에도 몰랐다.

휘슬 대거보다 느린 찌르기다.

피하고 자세를 바짝 낮춰 상대의 허벅지 뒤를 손바닥으로 감쌌다.

그대로 아래에서 위로 상대를 들어 올리며 창문으로 내달렸다.

펑, 우지끈.

나무로 만든 틀이 깨지고 창이 부서진다. 엔크리드와 암살자는 그대로 2층 바깥으로 추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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