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늘만 사는 기사-82화 (82/170)

82. 좀 변한 것 같수다.

그동안 본 게 많았다.

빠름에 관련된 건, 특히나 더.

폴리드란 머저리 뒤에 있던 검사가 계기가 됐으나.

그보다 먼저, 항상 보던 것들.

대련마다 마주했던 순간들.

채찍처럼 휘어지는 도끼질이다.

폴리드란 머저리를 따라온 검사의 검.

렘의 도끼질.

전장에서 경험하고 체득한 것.

그동안 홀로 단련하고 고민했던 것.

고립의 기법으로 변한 몸까지.

모든 것이 집약되어 머릿속에 내려앉는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감각이 몸 안에 자리 잡고.

엔크리드는 한 점의 집중 상태에 들어섰다.

오롯이 검과 자신만이 남은 세상.

손에 쥔 감촉마저 멀어진다. 눈에 보이는 건 점과 점을 잇는 선.

필요한 건 선을 잇는 데 필요한 근력.

마주한 렘의 눈을 본 순간, 그걸 토해 내니.

늘어뜨린 검 끝이 점과 점을 잇는 가장 짧은 선을 그렸다.

검 끝이 목을 꿰뚫는다.

환상이 보였다. 진짜라고 착각할 만큼 뚜렷한 환상이.

환상 속에서 엔크리드의 검은 렘의 목을 뚫었다.

렘은 목에 구멍이 나서 쓰러졌다.

피가 흘러 바닥을 적시고.

쓰러진 렘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피거품을 물었다.

그 눈에 원한 따윈 보이지 않았다. 오롯한 놀람만 보였을 뿐.

“시발, 이번 건 진짜 빨랐수.”

얼마나 놀랐는지, 욕설로 시작한 한마디에 엔크리드의 환상이 깨지고 무너졌다.

환상으로 남은 장면이 깨진 유리 조각이 되어 와르르 흘러내리는 듯했다.

깨진 유리 너머, 놀란 눈의 렘이 보였다. 놀란 것도 잠시다. 곧 렘의 눈매가 부드럽게 휘었다.

재밌는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 같은 눈이다.

“무슨 짓을 한 거요?”

묻는 렘의 목덜미에 핏자국이 보였다. 칼날이 스친 탓이었다.

“골로 갈 뻔했수다.”

연이은 말에 엔크리드가 입을 열었다.

“미안, 죽일 뻔했다.”

“……내 입으로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는데, 우리 분대장 졸라 컸수, 정말.”

“본래 나이는 내가 더 많지 않나?”

키도 엔크리드가 더 컸다.

“거참. 재밌는 작자라니까.”

말과 함께 렘이 도끼를 불쑥 찔렀다.

엔크리드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그걸 피하자, 도끼날이 엔크리드의 뺨을 따라 따라오기 시작했다.

대련의 연속이다.

이후, 엔크리드는 렘의 도끼질에 반쯤 생사를 넘나들어야 했다.

“빨리 휘두른다는 게 뭔지 깨달은 거요? 좋수다. 더 해보자니까.”

이건 뭘까, 목에 생채기가 나서 그런 건가? 반쯤은 원한이 깃든 것 같은데?

그러면서도 엔크리드는 물러서지 않았다.

“또 날 죽일 것 같아서 쭈뼛대는 거요? 걱정하지 마쇼. 내가 먼저 죽일 테니.”

렘의 눈이 사납게 빛났다. 이후 그의 팔은 채찍이 아니라 빛살이 되었다.

이제껏 간신히 피하고 막고 튕겨 내던 도끼날이 어느새 엔크리드의 목덜미에 닿았다.

피부에 생채기조차 내지 않은 채로.

툭 도끼날이 목을 치고 뒤로 물러났다. 날이 서지 않기에 상처가 생기진 않았다. 차가운 도끼날의 감촉만 남았을 뿐.

“제 손에 든 무기를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다면 그건 반푼이요.”

대련의 끝을 알리며 렘이 남긴 말이다. 차디찬 땅 위에 드러누운 채로 엔크리드는 조금 전 대련으로 얻은 것을 정리했다.

빠름이란 무엇인가.

지금 내린 결론은 궤적, 동선이다.

점과 점을 잇는 선을 단숨에 그려 내는 동작이다.

거기에 필요한 것, 머릿속에 선을 그릴 것, 그린 선을 그대로 구현하는 데 필요한 건 또 무엇인가.

몸이다. 몸이 따라 줘야 한다. 그러므로 육신의 단련이 필요할 터였다.

도끼가 채찍처럼 휘어져 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근력, 단련된 근육, 운동 능력.’

이제껏 아우딘이 몸에 쌓으라 했던 것들 아닌가.

고립의 기법을 통해 얻은 것과 같다.

근력은 기반이다.

손에 쥔 검을 어느 때보다 빠르게 찌르거나 휘두르는 행위의 기반.

거기에 동선의 개념을 담는다.

점과 점을 잇는 선을 머릿속에 그린 직후 한순간 실현해 내기에.

‘이게 빠름이다.’

정중환쾌유.

그중 쾌검식의 일부였다. 엔크리드는 쓰러진 채로 웃었다.

“푸후.”

오늘을 반복하지 않았음에도.

죽음을 반복하지 않았음에도.

검은 강의 뱃사공을 만나지 않았음에도.

‘내일을 위한 검.’

자신의 성장을 실감했기에.

무엇보다 누군가에게 배운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달았기에 더 뿌듯했다.

재능이 없다는 소리만 듣던 삶이다. 그런 삶 속에서 이런 경험을 하리라고 언제 상상이나 했던가.

‘더 할 수 있다.’

나아갈 길이 보이기에 엔크리드는 심장이 두근댔다.

이후 렘이 남긴 말을 파고들었다.

복기와 궁리.

안으로 침잠할 시간이었다.

“얼어 죽고 싶지 않으면 안으로 들어오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바닥에 드러누운 엔크리드를 향한 목소리, 작센이었다. 외부에 나갔다가 들어오는 듯했다.

평소와 같은 무덤덤한 표정의 작센이 어깨 위에 두른 온열 가죽 망토를 바람에 펄럭이며 다가왔다.

엔크리드는 누운 채로 고개를 끄덕이고 일어났다.

뽑았던 검을 검집에 넣고, 굳은 목을 좌우로 풀고.

그리 일어나 숙소로 들어가는데, 갑자기 전신에 소름이 돋고 모골이 송연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전신 근육이 바짝 긴장했다. 본능의 영역에서 일어난 반응이었다.

반사적으로 뒤로 몸을 돌려 재차 검을 뽑았다.

챙!

칼날과 검집의 마찰음이 울리고.

엔크리드는 자기도 모르게 호흡을 참고 있다는 걸 깨닫곤 그제야 숨을 내쉬며 상대를 봤다.

살기의 진원지, 세 걸음 뒤다. 작센은 여느 때와 같이 평범하게 서 있을 뿐이다.

아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오른팔을 밑으로 늘어뜨렸을 뿐.

“나쁘지 않군요.”

그런 엔크리드를 보고 작센이 말했다.

뭐가 나쁘지 않다는 건지, 엔크리드는 조금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다만, 작센이 뭔가 했다는 건 알았다.

살기를 뿜어내는 행위 자체가 이리도 살벌하게 사람을 옥죌 수 있던가?

“카르멘의 스틸레토는 아주 좋은 단검입니다.”

작센이 재차 입을 열었다. 그제야 엔크리드는 작센이 자신이 말한 바를 지키려는 걸 알았다.

“오감을 계속 단련하는 건 무엇을 위해서인가, 어떻게 뒤에서 날아오는 단검을 보지도 않고 피할 수 있는가.”

작센이 했던 말이다.

그리고 지금 보여 준 게 스틸레토의 대가일 테고.

“상대를 죽이려는 의지를 다질 때, 자기도 모르게 기세가 실리곤 합니다. 그걸 살기라고도 부르죠.”

기세, 살기, 투기, 의지.

모든 것이 비슷한 개념이었다.

엔크리드는 매티스란 이름의 상단 호위 무사를 떠올렸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밝히며 기세를 드높였다. 그것만으로 모두의 시선을 모았다.

작센은 그걸 통해 상대를 도시급 강자라 평했고.

“살기를 감지하는 법입니다. 지금 보인 건 사실상 지나가던 꼬마 아이도 느끼고 기겁할 수준이었으니 느끼는 게 당연한 거고. 계속 느끼십시오. 오감을 포함한 모든 거로 느낍니다. 그게 바로 ‘칼날의 감각’의 다음 단계, ‘육감의 문’입니다.”

두근.

다시금 심장이 뛰었다.

빠름에 관한 개념을 세울 때만큼이나.

“알겠다.”

대답은 덤덤하게 했으나, 대담함을 지닌 심장은 연신 뛰었다.

이 또한 즐거워 미칠 것 같았기에.

오늘을 반복하며 엔크리드에게 생긴 가장 큰 변화라면 이런 부분일 것이다.

하루하루가 더없이 즐거워졌다는 것.

이전에는 느껴 보지 못한 성장의 즐거움이 채찍과 당근이 되어 엔크리드의 등을 떠밀었다.

너는 더 할 수 있다고, 여기서 멈추지 않아도 된다고.

‘무엇을 위하여.’

목표 또한 명확했다.

기사.

꿈은 그대로 빛나는 별이 되어 엔크리드의 가슴 안에서 빛났다.

“들어가시죠.”

작센은 그리 말하곤 먼저 숙소 안으로 들어갔고.

그 뒤 엔크리드가 들어가자.

“오늘치 단련은 하셨습니까?”

아우딘이 묻는다.

“아직.”

이 또한 해야 할 일이다. 하기 전에는 전신을 통증의 바다에 던져 넣는 짓이기에 괴롭지만, 또한 괴롭지 않기도 했다.

괴로움의 바다를 넘은 뒤 입 안에 떨어질 과실이 너무도 달콤하기에.

육신을 쥐어짜 얻는 괴로움이 즐거움으로 화했다.

“시작하시죠.”

이후 아우딘과 고립의 기법을 시작.

단련을 끝낸 후 녹초가 된 몸을 씻고 돌아와 침대에 누우려고 하자, 에스터가 먼저 제 침대에 누운 게 보였다.

가슴 앞에 앞발을 모은 뒤, 그 위로 얌전히 머리를 올린 채였다.

엔크리드가 손을 뻗어 에스터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했다.

카-앙!

손끝이 막 정수리 부근에 닿을락 말락 하는데 에스터가 손등을 할퀴어 물러났다.

에스터가 작정하고 발톱을 휘두르면 손등을 할퀴는 게 아니라 손목을 잘라 낼 수 있었다.

그러므로 지금 보이는 건 귀여운 앙탈이라 봐야 옳을 터였다.

다만.

“왜 또 그러냐.”

이유를 모를 뿐.

그걸 보고 옆에서 크라이스가 쿡쿡 웃었다.

“그러게요. 아니, 마성의 분대장 노래를 들을 때부터 저러더라고요.”

결국, 하릴없는 위인들이 마성의 분대장이란 노래를 신나게 불러 젖힌 모양이었다.

“유후, 도시 안의 모든 여자를 눕힐!”

“지나가는 여자 모두를 노리는 사냥꾼!”

“마성, 마성, 마성의 분대장!”

크라이스가 첫 소절을 시작하고 렘이 덧붙였다.

가사도 음률도 엉망이었다. 사실상 진짜 노래라 부르긴 힘들지만.

“캬악.”

뭐 때문인지, 에스터는 그 노래가 아주, 매우, 몹시 싫은 듯했다.

노래를 듣자마자 곧바로 표독스러운 울음을 토해 내니.

‘크라이스 때문인가.’

크라이스는 노래를 더럽게 못 했다. 의외로 렘은 남자다운 목소리로 곧게 지르는 편이라 듣기 괜찮은 편이고.

“중대장은 어쩌고? 다른 여자를? 마성의 분대장.”

옆에서 라그나가 물었다. 진짜 궁금한 것처럼 보였으나, 저 자식 또한 놀리기에 진심일 뿐이었다.

“닥쳐라.”

일일이 오해를 푸느니, 얌전히 소문이 가라앉길 기다리는 게 나았다.

괜히 말 한 번 더 꺼내면 불이 더 크게 붙을 판이었다.

“그래서 했수, 안 했수.”

그래도 이건 답해야 했다. 레오나의 명예와도 관련된 문제니.

“안 했다.”

“……그거 음, 진심이우?”

“이런 거로 거짓말할 이유는 없지.”

자면 또 어떤가.

사실 그렇다. 이걸 괜히 거짓으로 무마할 필요는 없다. 그런 엔크리드의 성격을 알기에 렘도 엔크리드가 한 말이 진실임을 알았다.

“고자요? 어느 틈에 잘린 거요? 그래서 그런 거요?”

이 새끼는 진짜.

“괜찮습니다. 마성의 형제님, 신은 모두를 사랑하십니다. 잘려도 사랑하십니다.”

거기에 아우딘의 한마디.

근데 왜 형제님 앞에 ‘마성의’가 붙는 걸까.

“풉.”

크라이스가 웃고.

작센은 올라가는 입꼬리를 누르며 외면.

라그나는 ‘그럼 중대장과는 어떻게 한 거지?’라는 말을 뱉어 드물게 엔크리드의 화를 돋웠다.

“미친 새끼들.”

분대원 전부 정상은 아니다. 엔크리드는 이 안에서 정상인이 자신밖에 없기에 안타까웠다.

화를 내면 뭐하나.

어차피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놈들인걸.

엔크리드는 자기들끼리 싸우는 것보다 이게 더 나은 것 같다는 걸 위안으로 삼고 침대에 누웠다.

그리 합심해 엔크리드를 한참 놀린 뒤다.

“좀 변한 것 같수다.”

누운 엔크리드를 보고 렘이 대뜸 말했다.

“나도 같은 생각인데.”

라그나가 덧붙였다. 나머지는 귀만 기울였다.

변해? 엔크리드는 렘의 말에 생각했다.

자신이 변했나? 어떤 점에서?

“요새 자꾸 묘하게 웃는 것 같은데. 또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고.”

이전에는 잘 웃지 않았던가?

새삼 엔크리드는 과거의 자신을 떠올렸다.

어땠었던가.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그때도 지금도 발악하는 건 마찬가지라는 것.

다만, 그때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을 헤쳐 나가는 중이었다면.

지금은 제 앞에 놓인 길이 어렴풋이나마 보인다는 것.

그 길이 보인다는 게, 재능이 있는 자들은 상상도 못 할 즐거움을 줬다.

“원래도 검에 미친 작자라는 건 알긴 했지만, 그래도 최근에는 좀 심한 편인 것 같기도 하고. 웃는 것도 그렇고, 실력도 부쩍 늘었고. 하여간 변했수다.”

이유도 변변찮은 주장이었으나, 그걸 다른 분대원이 동의했다.

“예전보다 조금 더 미친 것 같긴 해요.”

마지막은 크라이스가 장식했는데.

엔크리드는 그 말에 조금도 동감할 수 없었다.

자신처럼 무던하고 평범한 사람이 어디 있다고.

단련하고 수련하는 데 조금 더 시간을 투자하고, 다른 이들보다 꿈이 조금 클 뿐.

“그게 뭐 나쁘다는 건 아니유.”

렘이 덧붙였다. 엔크리드는 무시했다. 밤이다. 잘 시간이었다.

떠들 시간이 아니고.

이후 작센과 크라이스가 근무 때문에 숙소를 비웠고.

엔크리드는 금세 잠이 들었다.

매일 느끼는 거지만, 몸을 혹사하는 게 익숙해진 만큼 언제나 피로가 몰려왔다.

그런데도 아침이 되면 꽤 몸이 가볍긴 했다.

기초 체력이 늘어난 걸까.

모르겠다. 이전보다 최근에 더 그런 듯한데.

‘그게 언제부터였더라.’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최근이었다. 전장에 돌아오고 나서 얼마 되지 않은 최근.

* * *

에스터는 상대가 얄미웠다.

‘나가기만 하면 여자와 일이 생겨.’

부대 내에 있어도 일이 생긴다. 일이 있기에 함께 있는 거지만, 어떻게 자신을 두고 다른 여자에게 시선을 돌릴 수 있는가.

한때는 어떤 주문 없이도 매혹과 매료의 대명사로 불렸던 그녀다.

지나가는 것만으로 남자가 제 혼을 바치겠다며 줄을 서기도 했다.

‘그 요정도 꼴사나운 판에.’

그녀는 생각을 이어 나가다 기겁했다.

표범의 모습으로 변한 자신을 자각한 순간이다. 이런 모습을 보고 어떤 남자가 반하겠나.

하물며.

‘내가 왜?’

그야말로 어떤 필요도 없는 잡스러운 생각이라 느껴졌다.

그녀의 목표는 명확했다. 제 몸에 걸린 빌어먹을 것을 중화시키는 것.

에스터는 그걸 위해 움직였다.

그러니 지금과 같은 잡스러운 생각은 뒤로 밀어 둬야 할 것이다.

에스터가 제 몫인 온열 가죽 위에서 내려와 사뿐히 막사 중앙을 가로질렀다.

“또 가냐?”

잠든 엔크리드란 놈 곁에 있던 야만인이다.

“토라진 꼬맹이 같네.”

야만인이 불경스러운 말을 뱉었으나, 에스터는 무시했다.

그녀는 자신이 할 일을 명확히 인지했다.

그러므로 여기에 사감이 들어갈 일은 없었다.

그대로 표범이 폴짝 뛰어 소리 없이 엔크리드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품 안에서 표범은 손톱으로 괜히 엔크리드의 가슴팍을 한 번 쿡 찔렀다.

“아파. 자자. 에스터.”

엔크리드가 제 몸을 끌어안았다.

‘이 부끄러움도 모르는 놈.’

에스터는 슬쩍 엔크리드의 얼굴을 보곤 곧 남자의 맨살과 맞닿은 채로, 그의 몸에 남긴 피로의 일부를 빨아들여 허공에 날렸다.

쉬이 할 수 있는 재주가 아니다.

기실 엄청나게 도움이 되는 수준은 아니지만.

이 남자처럼 미친 듯이 매일 몸을 혹사한다면 꽤 의미가 있을 것이다.

여기에 하나 더.

가죽 갑옷에도 수작을 부려 뒀다.

일회성이긴 해도 누군가 마법으로 해하려 하면 한 번은 막게끔.

그로 인해, 제 몸을 찾는 게 조금 늦춰졌지만.

‘이 자식이 멀쩡해야 하니까.’

그러므로 이건 필요에 의한 행위였다. 장기적인 관점으로 본 거다.

그리 생각하면서도 에스터는 남자의 품이 주는 안온함과 따뜻함에 취했고.

잠결에 또 헛된 생각을 이어 나갔다.

‘그 말을 믿어 주지.’

감히 자신을 두고 다른 여자와 무슨 짓을 하진 않았으리라는 말.

그 말이 진실처럼 여겨지기에.

사실 기분이 썩 나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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