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늘만 사는 기사-83화 (83/170)

83. 뜨거움

검은 강의 뱃사공이 말했듯, 엔크리드의 일상은 오늘을 반복하는 것과 비슷했다.

오롯이 단련밖에 없는 나날이었다.

“통제, 통제, 통제하시라고.”

렘과의 대련은 엔크리드가 제 몸과 검을 완벽하게 다루는 데 중점을 뒀고.

가끔 오싹함을 느끼게 만드는 살기는 어딘가 숨어서 자신을 노려보는 작센의 눈빛이 부리는 묘기였다.

작센은 사람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몸이 바싹 마르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조금만 방심해도 죽을 것 같다.

정작 작센은 아무 짓도 하지 않았으나 눈빛만으로 그런 생각이 들게 만드니, 참 미칠 노릇이었다.

이렇듯 매번 살기를 뿌리는 작센을 찾는 것 또한 훈련의 일환이었다.

그걸 위해 청각과 오감의 영역을 넓히며 시도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엔크리드는 ‘육감의 문’이란 개념이 와닿지 않았다.

“쉽게 되진 않습니다.”

작센은 우직하게 같은 짓을 반복했고.

엔크리드는 살이 빠지기 시작했다.

그만큼 견디기 어려운 훈련이지만.

그렇다고 그만하라는 말을 하진 않았다.

“작작 해라. 음흉한 들고양이야. 되게 거슬려, 너.”

“야만인 따위가 내 살기를 느꼈나? 섬세함이 부족했군.”

“일부러 흘렸으면서, 말은 참 잘해요. 도끼, 내 도끼가 어디 갔나, 들고양이의 머리통을 쪼갤 내 도오오끼이이이.”

말라가는 엔크리드를 보며 렘이 대신 한마디씩 던졌고, 이후에는 당연하게도 다툼이 이어졌다.

그럼, 엔크리드는 도끼를 찾으며 음률을 타는 렘을 말리곤 했다.

“내가 원해서 하는 거다.”

“염병. 적당히 하라는 거지, 적당히.”

‘적당히’란 말을 하는 놈치고는, 엔크리드는 전신에 멍이 마르지 않는 날이 없었다.

렘의 주먹과 도끼에 얻어맞은 덕이었다.

렘도 적당히 하는 법은 몰랐다.

엔크리드는 그게 렘이 할 말인가 싶었으나, 렘에게도 그만하라 하진 않았다.

고립의 기법으로 몸을 단련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도 지금처럼 버티지는 못했을 것이다.

아우딘은 틈만 나면 물었다.

“힘들면 쉬셔도 됩니다. 형제님.”

이 새끼는 확실히 신이 아닌, 악마의 사제 같았다.

힘들면 쉬어라. 그만해도 좋다. 이런 말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그건 실제로 악마의 속삭임이었다.

“그럴까.”

하고 말하면.

“정신력도 단련해야겠군요.”

라고 말하며 부리나케 달려드니까.

“정신력은 육체의 힘에서 비롯되는 법, 이건 비밀인데 형제님께만 알려 드리죠. 기실 정신력은 근육에서 나오는 겁니다.”

농담 삼아 꺼낸 한마디에 그날 들어야 할 무게가 느는 건 물론이요. 고립의 기법과 레슬링이 더 과격해지곤 했다.

미친 성직자 새끼가 악마를 흉내 내 사람을 괴롭히는 취미가 있었다.

그렇다고 이게 또 불만인 건 아니었다.

가끔, 아주 가끔.

너무 고되어 혹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아우딘이 뱉는 악마의 속삭임은 엔크리드의 정신을 일깨워 주는 역할을 하긴 했다.

“오늘은 좀 쉬고 싶군.”

아우딘이 어떻게 반응할지 알면서 일부러 이리 말하기도 했다.

그럼, 아우딘은 만면에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할 만하셨나 보군요.”

도발임을 알고 그에 상응하는 훈련을 준비해 엔크리드의 몸에 쑤셔 넣는 과정이다.

고되고 고되다.

이걸 고되지 않다고 말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그 어느 때보다 착실히 단련의 성과가 몸에 쌓였다.

렘의 도끼가 빛살이 될 때 막지 못하는 건 똑같지만.

채찍처럼 휘는 도끼질 세 번 중 두 번은 몸의 균형을 흐트러트리지 않고도 막을 만했고.

라그나와 대련 중에는 수를 읽는 게 늘었다.

이제껏 한 치 앞만 보기 급급했다면, 이제는 몇 개의 속임수를 엮어서 상대를 제 의도대로 움직이게 만드는 수단이 더 날카로워졌다.

라그나와 렘은 확연히 다른 상대였지만, 둘 다 엔크리드에게는 도움이 됐다.

작센의 살기 감지는 여전히 꽉 막힌 채지만.

‘육감의 문이라.’

전신에 소름이 돋는 과정을 몇 번이나 반복했나.

언제 어느 때건, 그 시선을, 그 살기를 받아 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오한이 들었다. 끔찍했다.

오늘을 반복하며 죽는 것만큼이나.

이제껏 암살자를 만난 게 두 번이다. 그 두 번 다 오늘을 반복해야 했으나, 이만한 살기를 느낀 적은 없었다.

잘 훈련된 암살자는 되려 살기를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하던가.

엔크리드는 자신이 만났던 암살자를 떠올렸다.

첫 번째는 의무 막사에서.

‘살기보다는 소리가 들렸었지.’

그놈은 어설픈 놈이었을까.

두 번째, 휘파람 비도를 던지던 혼혈 요정을 상대할 때는 놈의 움직임, 손끝 하나 까딱이는 것도 놓치지 않으려 했었다. 눈을 부릅뜬 채로 노려보듯 바라봐야 했다.

둘 다 육감 활용이란 것과는 거리가 먼 형태다.

어느새 사계의 끝이라는 겨울의 혹한이 슬며시 머리를 숙이기 시작했다.

아직 따뜻하다고 할 순 없지만, 날이 조금씩 풀리는 모양새다.

눈이 와야 할 타이밍에 비가 내리면 이제 그게 봄비가 되어 새로운 해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가 될 터였다.

그래도 한동안은 추위가 남을 테지만.

본래 이 지역이 그렇다. 추위가 긴 곳이다.

암살자를 떠올리다 보니 자연스레 생각이 닿았다.

‘집요하다고 했는데, 이제 더 오진 않는 건가.’

아즈펜이 자랑하는 특수 부대인 그레이 독은 지독한 놈들이었다.

그걸 몸소 느끼지 않았나.

‘병사 하나 잡자고 암살자를 보내다니.’

염두에 두고는 있는데, 습격할 낌새는 안 보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누가 자신을 노린다고 해도 반응할 수는 있을까 싶었다.

렘과 라그나, 아우딘, 작센에게 시달리기 바빴으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지금 당장은 그레이 독인지, 회색 고양이인지를 걱정할 때는 아닐 것이다.

‘내일의 나에게 주는 선물이다.’

오늘 제 몸에 쏟아붓는 시간, 그로 인한 단련은 언제나 선물인 셈이다.

내일의 내가 오늘의 고통을 희열로 받아들일 테니.

* * *

미치 휴리어는 대련장 한가운데서 겨울의 기운을 날렸다.

몸을 움직이고 검을 휘두르므로 전신에서 김이 올라온다. 미치는 추위를 잊었다.

그저 검, 자신, 그리고 상대만 그렸다.

휘두르고 또 휘두른다.

병상에서 일어나 몸을 회복하자마자, 미치 휴리어는 검에 미친 사람처럼 굴었다.

훈련 전용으로 두껍게 칼날을 만들어 무게를 더한 가검이다.

그 검이 허공에 몇 개의 선을 그리다가 하늘을 찌를 듯 검 끝을 비스듬히 세운 채로 멈췄다.

이후, 미치의 팔 근육에 힘줄이 솟고 검 끝이 허공을 갈랐다.

숭-

위에서 밑으로.

어느 정도 안목이 있는 이들이 봤다면 소름이 끼칠 만한 검격이다.

검은 땅과 수직을 이루는 선을 그리되 검 끝이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서 완벽한 직선을 그려 냈다.

어지간한 롱소드보다 세 배는 무거운 검을 들고 몇 시간째 검을 휘둘렀음에도 이런 검격을 보인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다.

미치 휴리어는 패배를 자양분 삼아 자라는 나무가 되었다.

‘그러니 그렇게 죽어선 안 되지.’

자신이 병석에 누운 사이, 자신을 때려눕힌 놈에게 암살자를 보냈다고 들었다.

그걸 듣고 얼마나 짜증이 나던지.

그런데 암살이 실패했다.

그게, 미치를 기쁘게 했다.

‘넌 내 손에 죽어야 한다.’

그것도 전장에서.

엔크리드란 병사에게 패한 이후부터 놈을 넘어서는 게 미치 휴리어란 인간이 사는 이유이자, 삶의 목표가 됐다.

“보기 좋지만, 또한 보기 나쁘다.”

아버지는 그런 미치를 엄히 나무랐다. 검에 미쳐 날뛰는 망나니가 되어 버려서야, 가주가 바라는 가문의 일원은 아니겠지.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일까.

가문의 명예를 위한다고 그레이 독의 이름을 팔아서 암살자나 보내는 것보다야.

‘내 쪽이 훨씬 건실하지.’

미치는 웃었다.

언젠가 전장에서 자신을 찌른 상대를 만나길 기대하고 고대하며.

그리고 그건 헛된 망상은 아닐 터였다.

이전 전장에서 상대의 기사단원에게 당한 걸 염두에 두고 아즈펜에서 대대적으로 군대를 모으고 있으니.

‘전장에서 보자.’

상대의 얼굴이 또렷이 기억에 남았다. 평생 못 잊을 터였다.

그렇게 진 건 처음이었으니까.

그 덕분에 태어나 처음으로 대련장에서 떠나지 않는 훈련 중독자가 됐다.

본래 암살자를 더 보내기로 한 것을 미치의 상태를 본 그레이 독 부대장이 막았다.

“다시 만나면 잡을 수 있겠지?”

“만날 겁니다. 그리고 죽일 겁니다.”

미치의 대답을 들은 부대장은 이후 암살자 문제를 덮었다. 다시 그 병사에게 뭘 보낼 일이 없단 거였다.

* * *

“변했다는 말 취소합시다. 그게 맞는 것 같수.”

렘이 말했다. 치고받던 대련이 끝난 뒤다.

“정체기 같수다.”

입버릇 나쁜 야만인이 드물게 엔크리드를 향해 독설을 뱉었다.

“실력이 늘었다 싶으면 멈추는 건, 버릇이우?”

엔크리드는 그 말에 굳이 토를 달지 않았다.

왜 저러는지 이해하기 어렵지 않았으므로.

본래 그렇다. 가르치는 이가 열정을 보일 때쯤, 멈춰 버리는 성장.

보는 사람으로서는 답답할 수도 있다.

렘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신기할 정도로 응용식이 안 되는군요. 기본기는 그리 단숨에 몸에 붙였으면서. 단기간에 실력이 늘면 보통은 재능이 있다고 말해야 하는데, 뭐랄까 분대장은 꾸역꾸역 따라오는 느낌이 납니다. 분명 단시간에 실력이 늘었었는데.”

라그나는 날카로울 때가 있었다.

어쨌든 그 또한 렘과 같은 말을 뱉었다.

아우딘도 비슷했다.

“형제님, 생각한 대로 몸을 움직이게 하는 건 훈련뿐입니다. 반복하다 보면 됩니다. 그러니까 보통은 그렇습니다만, 음, 분대장 형제님은 좀 느리긴 하군요.”

제자리걸음이라는 말을 길게도 한다.

작센은 크게 뭐라고 하지 않았다.

육감의 문인지, 구멍인지는 처음부터 엔크리드 쪽에서 아예 가닥도 못 잡았으니.

오전 나절의 수련 시간이었다. 상비군은 기본적으로 제 몸을 단련하는 걸 업으로 삼는 이들이다.

괜히 직업 군인이 아니었다.

그리 다들 몸을 단련하는 곳이다.

길게 늘어선 회랑의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고 훈련에 전념하던 렘이 갑자기 손을 멈췄다.

“오늘은 여기까지 합시다.”

“그러지.”

렘은 엔크리드를 두고 숙소 안으로 들어섰다.

포기한 건 아니다. 그런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다만, 지금 필요한 게 단순한 대련이 아니라는 것뿐.

“실전.”

숙소에 들어온 그의 중얼거림에.

에스터가 슬쩍 고개를 들어 그를 봤다.

나머지 분대원의 눈도 렘을 스쳤다.

곧 라그나, 아우딘, 렘과 작센은 분대에 합류한 처음으로 의견이 합치됐다.

이어 엔크리드가 안에 들어오자, 작센이 팔을 붙들며 말했다.

“의뢰받으시죠.”

“응?”

“실전이 필요한 시점인 거요. 어디 전장에 던져 놓고 살아 돌아오면 좋겠는데, 그건 뭐 지금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렘이 덧붙였다.

다들 같은 의견으로 보였다. 엔크리드는 새삼 이들의 태도에 놀랐다.

‘포기하지 않을 줄은 알았지만.’

이리 합심해서 뭔가를 얘기할 줄은 또 몰랐다.

게으른 라그나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만으로도 신기할 따름인데.

넷이 한마음 한뜻이 되었다.

엔크리드는 꿈에서도 보지 못할 광경이라 생각했던 장면이다.

“냐아.”

에스터가 발밑에서 울었다.

엔크리드가 표범을 안아 올리며 말했다.

“안 그래도 나도 같은 생각이었는데.”

목숨을 던져 오늘을 반복하겠다는 건 아니다.

다만, 엔크리드는 언제나 전장과 실전에서 제 몸을 다지고 검을 휘둘렀다.

훈련과 단련을 했다면 제 실력을 시험해 보고 싶은 것도 당연한 거고.

재능으로 똘똘 뭉친 놈들이야, 정체기 따윈 훌쩍 털고 일어날 테지만.

자신에게 그런 재능 따윈 없었기에.

부족한 건 몸으로 구르며 익혀야 할 뿐.

‘막혔고 멈췄으면.’

뭐라도 할 뿐이다. 언제나 그러하듯 발악을 하든, 춤을 추든, 엔크리드는 지푸라기를 잡을 것이다.

그게 그가 살아온 방식이었다.

“당장 내일 아침부터 의뢰받으러 나가슈. 마수 토벌이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있다고 하는 것 같던데.”

엔크리드가 이미 알아보기도 했다.

“이미 생각해 둔 바가 있었군요.”

작센이 말한다. 엔크리드는 손끝으로 에스터의 머리를 긁으며 답했다.

“응.”

작센이 수없이 말하지 않았나.

육감의 문이란 무엇인가.

그걸 열기 위해서는 본능의 영역을 엿봐야 했다.

오감이 아닌 보이지 않는 감각으로 무엇을 인지하는 게 가능한가?

“가능합니다. 다만, 정말 보이지 않는 감각은 아니죠. 야수가 먹이를 사냥하거나 내달릴 때, 몇 초 이내로 판단하는 그 직감이 어디에서 온다고 생각합니까? 초식동물이 포식자를 피하는 감각은요?”

작센이 풀어 준 육감의 정의다.

인간의 감각은 보고, 듣고, 맛보고, 맡고, 느끼는 것만 있는 게 아니다.

평형감각, 위치 감각, 운동 감각, 온열감 등.

인간의 몸은 다양한 감각으로 이뤄졌고.

자신이 가진 모든 감각을 칼날처럼 세운 채로 싸우는 걸 반복하다 보면.

본능의 영역에서 자연스레 살기를 읽어 내고 예측하고 반응하는 법이라고.

그때가 되면 뒤통수에 칼이 날아와도 피할 수 있게 된다고 했으니.

“기사쯤 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겁니다. 실제 기사도 이런 훈련을 받고.”

엔크리드는 작센이 마지막에 덧붙인 말에서 그의 투박한 배려를 느꼈다.

답지 않은 짓이지만, 또 작센다운 배려였다.

“알았다.”

기사의 훈련이기도 하다. 그러니 포기하지 말아라.

응원까지 받은 판이다.

야수를 예로 들었으니, 그와 비슷한 마수를 만나 볼 생각이었다.

마수의 본능 또한 그와 비슷할 것이고.

그들이 내뿜는 살기는 작센의 것보다 더 날 것일 테니.

물론, 모든 게 엔크리드의 생각대로 되는 건 아니었다.

* * *

“의뢰? 그럼 이것부터 처리해 줘. 우리 쪽 사람이 너무 없어서.”

다음 날 아침, 곧바로 마수 토벌 의뢰를 찾는데 대뜸 비집고 들어온 옆 소대 분대장이 부탁을 했다.

신발 직공이 제 소유의 구둣방에서 밤만 되면 이상한 소리가 난다고 확인해 달라는 의뢰다.

아무래도 언데드 계열의 마물이 밑에 사는 것 같다고.

“도시 내에 그런 게 있었으면 진즉에 난리가 났겠지.”

“나도 알아. 그런데 어쩌겠어. 의뢰 하나 끝내면 공적도 되고 좋잖아. 슥삭 해치워 주자. 시간 되면 좀 들어줘. 내가 그, 예전에 바느질도 해 주고 그랬는데.”

맞다. 그때의 분대장이었다. 첫 번째 오늘을 넘어설 때 바느질을 해 줬던 그 친구, 술 좋아하던 분대장.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고 한 뒤에 직공의 불안감만 없애 주고 갈 생각이었다. 제 가게 마루 밑에서 무슨 마물이 나오겠나.

숙소에 들러 채비하고 있자니.

“마수 토벌 의뢰는 안 가고?”

작센이 버릇처럼 말끝의 존칭을 생략했다.

“어, 이거 갔다가.”

마수 의뢰도 하러 가겠다고 해 뒀다.

이거 끝나고 곧바로 가면 될 듯했다.

이번 실전은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이다.

‘검도 감각도, 심장도, 몸을 쓰는 법도.’

마수를 베다 보면 뭔가 잡힐 것 같았다.

그렇게 도착한 신발 직공의 집이었다.

“여기, 보쇼. 내가 결국 밑을 까 보니 이런 게 있었다고!”

직공은 흥분했다. 엔크리드도 놀랐다. 직공의 집 지하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안쪽으로 인위적인 동굴이 보였다.

“잠깐, 제가 먼저 가서 볼 테니.”

안쪽에 귀를 기울였는데,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엔크리드가 말하고 직공이 뚫은 구멍 안에 발을 디밀었다.

‘횃불이 필요하겠는데.’

완전한 어둠은 아니었다. 뚫린 구멍으로 스며드는 빛 덕분에 조금은 앞이 보였다.

비스듬한 경사로다. 밑으로 내려가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들어서서 앞쪽으로 조금 걷자, 마법사나 마물이 만든 던전을 걷는 기분이 들었다.

몇 걸음 걷지도 않았다.

아직 등 뒤로 위에서 밝힌 촛불의 빛이 스며들었으니.

그렇게 맞이한 여섯 갈래의 갈림길이다.

“이건 어떤 미친놈이 만든 거냐.”

절로 혼잣말이 나왔다. 아무리 봐도 인위적인 냄새가 풀풀 난다.

엔크리드는 여섯 통로 중 왼쪽 첫 번째 통로에 발을 디뎠다.

아무 낌새도 없었다. 몇 걸음 더 걸어 안으로 들어갔다.

자박자박.

통로를 지나는 바람 소리 외에는 어떤 인기척이나 소리도 없었다.

다만.

웅-

곧 작디작은 진동음이 들리고.

엔크리드는 제 눈앞에서 터지는 불빛을 봤다.

뻐-엉.

폭음이 들렸고, 뜨거운 쇠꼬챙이 같은 것들이 폐 안으로 들어와 내장을 헤집는 것 같았다.

그러고는 기억이 끊겼고 다시 아침이 밝았다.

당연하게도 엔크리드는 왜 이렇게 된 건지 알았다.

‘죽었어.’

몸에 남은 마지막 감각은 뜨거움.

그러니까 열기였다.

어떻게 죽었는지는 이제부터 알아볼 판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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