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 죽일 놈은 죽여야 하는 법
“수를 읽고 대응하는 법입니다.”
렘에게 맞으면서.
작센에게 육감에 대해 들으면서도.
아우딘과 고립의 기법으로 몸을 쥐어짜면서도.
라그나에게도 충실히 검술을 배웠다.
실력이 느는 건 별개로 참으로 꾸준히.
“안 답답합니까?”
그런 엔크리드를 향해 라그나가 묻곤 했다.
답답? 그럴 이유가 없다.
라그나의 가르침은 기본기를 배운 다음을 향한 길이자, 이정표였다.
그동안 길을 몰라 헤맸던 나날이 얼마나 길었던가.
이제는 한 걸음 나선 순간, 곧바로 다른 길이 보이니, 그저 즐거울 뿐이었다.
상대가 검을 내리치면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마수가 상대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갑자기 뒤에서 누가 창을 찔러 오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검을 뻗어야 하는가.
기본을 갖췄다면 이후 갖춰야 할 건 응용하는 법이니.
모든 상황에 대응할 순 없다. 이것도 비슷했다. 요는 요령을 깨우치는 건데.
당연하게도 쉬울 리가 없었다.
“이건 좀 빨리 끝날 줄 알았는데.”
라그나가 그리 말했지만.
어림도 없지. 엔크리드는 자신의 재능이 형편없다는 걸 안다.
재능이 어지간한 수준이었다면 이렇게 고생했을까.
아닐 것 같은데.
그렇다고 원망 따윈 하지 않는다. 그럴 시간에 검을 한 번 더 휘두르고 말지.
“검술의 응용은 수를 읽고 대응해야 의미가 있는 법입니다.”
상대하는 놈이 마수든, 마물이든, 적병이든, 움직임을 보고 속임수와 진실을 판별, 이후 검으로 베거나 찌르면 그만이다.
라그나는 지치지 않고 가르쳤고.
엔크리드도 지치지 않았으나, 진도는 하염없이 느렸다.
느리고 부족함을 안다. 다른 사람보다 몇 배는 노력해야 하는 것도.
그러하기에.
주변 모든 것, 모든 상황, 환경, 주어진 어떤 짧은 순간까지도.
모든 걸 성장의 도구로 삼을 뿐.
엔크리드는 그렇게 했다.
굴을 파헤치고 나아가는 길.
늑대 마수 네 마리가 튀어나왔다.
컹컹!
개처럼 짖은 놈들은 숨도 쉴 틈 없이 달려들었다.
팍팍 하고 바닥의 흙을 박차며 달려드는 역동적인 늑대 마수는 보는 순간 오금이 저릴 만했다.
야수의 흉포함을 담은 눈, 혀를 내밀고 침을 흘리는 주둥이 사이, 누런 이빨이 횃불 빛을 받아 빨갛게 빛났다.
‘야수의 심장.’
대담함, 그 덕에 칼날을 코앞에 들이밀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수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엔크리드는 덤덤했다. 숨 몇 번 고를 시간에 늑대 마수가 몇 걸음 앞까지 왔고.
엔크리드는 검을 다루는 법에 본능의 직감을 더했다.
대담함에서 비롯된 반사적인 반응이었다.
이 또한 성장의 발판이 되리라 믿었고, 훈련의 일부로 삼고자 했기에.
‘실전만큼 좋은 훈련은 없다.’
유일한 단점이라면 매번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것뿐.
오늘을 허무하게 보내는 건 용납할 수 없다.
그렇게 하루하루 목숨만 붙은 채로 사는 삶을 원했다면 꿈을 노래하는 게 아니라 밭을 일구고 신의 축복을 갈구했으리라.
그리 오늘을 아끼고 아끼기로 했으면서도, 목숨을 걸고 나아가야만 한다.
이것만이 엔크리드가 꿈을 노래할 수 있는 길이니.
죽기 위해 달려드는 게 아니라 살기 위해 목숨을 거는 거다.
직감이 말하는 대로.
본능에 따라.
딱!
늑대 마수의 이빨이 부딪치는 소리가 코앞에서 났다.
엔크리드는 왼발을 뒤로 빼는 거로 늑대 마수의 입질을 피하곤, 팔꿈치를 움직여 검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쳤다.
쩍! 깽!
칼날이 아니라 검면으로 후려쳤다. 무게를 잔뜩 실은 일격에 머리통을 맞은 늑대 마수가 바닥에 고꾸라졌다.
검을 후려치고 자연스레 왼쪽으로 한 걸음.
횃불을 한쪽으로 던져 놨으나 꺼지지 않았기에, 그게 광원의 역할을 했다.
왼편으로 한 걸음, 엔크리드는 막 횃불을 몸으로 가리며 늑대의 앞발을 피했다.
붕 소리와 함께 묵직한 일격이 본래 엔크리드의 배가 있던 자리를 훑었다.
잘못 걸리면 갬비슨 따위는 걸레 조각이 되어 버릴 게 분명했다.
마수란 짐승의 특징을 가진 괴물이었다.
그중 두 마리가 영악하게 뒤를 잡으려고 돌았다.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했는지, 두 놈이 보통의 늑대보다 배는 날카로운, 짧은 나이프를 촘촘히 꽂아 둔 것처럼 생긴 주둥이를 들이대며 엔크리드의 양쪽 허벅지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삐이-익!
횃불 하나만 비추는 어두운 굴에 묘한 소음이 퍼졌다.
한순간의 일이었다.
몸을 돌린 엔크리드가 손을 털었고 달려드는 늑대 마수 한 마리의 이마에 퍽- 하고 휘파람 비도가 꽂혔다.
그야말로 빛살과도 같은 속도였다.
그사이에 달려든 다른 한 마리는 허벅지를 당겨 피한 후 그대로 무릎을 치켜세움으로써, 피하는 것과 때리는 걸 동시에 행했다.
뻑.
큰 충격이 아니었는지, 무릎에 맞은 늑대 마수는 물러서지 않았다.
대신 제 다리 근육을 자랑하듯 앞발로 엔크리드의 발등을 누르려고 했다.
치켜세운 무릎을 뒤로 빼며 반 발짝 물러나 발등을 노린 앞발을 피하고 엔크리드는 앞과 뒤를 가로막은 두 마리 마수 사이에 섰다.
포위된 것과 다름없었다.
위기라고 부를 만한 상황 속에서도 엔크리드의 눈은 늑대 두 마리를 보고 있지 않았다.
집중 그리고 또 집중.
전처럼 주변이 느리게 느껴지진 않았다.
점과 선만이 남아, 다른 게 보이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저, 늑대 마수의 움직임이 눈에 훤히 보였다.
그들의 다음 동작을 미리 머릿속에 그려 낼 수 있었다.
마수의 다음 움직임이 눈에 잡히니 엔크리드의 행동은 단순해졌다.
복잡하게 속이고 휘둘러 상대를 몰아세울 필요가 없었으니.
늘어뜨린 검, 그걸 크게 휘둘렀다.
좌우로 휘두르기에는 좁아도 종으로는 크게 반원을 그리기에는 굴의 높이가 충분했다.
중검식은 어떤 검인가.
기본으로 배운 것을 떠올린다.
일격에 부수는 것을 장기로 삼는 검이다.
컹!
늑대 두 마리가 동시에 달려들었고.
엔크리드는 머릿속에 그린 동작을 수행했다.
부웅 퍽! 찌직! 콰직!
온 힘을 다해 휘두른 롱소드가 제 역할을 다했다.
검 쪽에 있던 늑대 마수는 가슴팍부터 턱, 머리까지 쪼개졌고.
반원을 그리며 떨어진 내려치기에 당한 놈은 머리통이 터졌다.
조금만 타이밍이 어긋났어도 두 마리 중 한 놈한테는 어딘가 물어 뜯겼을 터였다.
지금의 일격은 힘으로 부린 묘기였다.
“후아.”
엔크리드는 참고 있던 숨을 뿜어냄으로 심장을 다독였다.
‘하나.’
남은 마수는 한 마리.
남은 늑대 마수가 주춤하는 사이, 엔크리드가 앞으로 툭 뛰어 들어갔다. 우습게도 그는 늑대 마수의 정면이 아니라 왼쪽으로 달렸는데.
마수는 그걸 보지도 못했는지 똑같이 그 방향으로 뛰었다.
‘왼발을 축으로.’
극도의 집중 상태, 직감과 몸, 그동안의 훈련으로 인해 응축된 경험이 시키는 대로.
왼발로 땅을 찍고 검을 뻗었다. 찌르기다. 곧게 뻗어 나간 검 끝이 늑대의 주둥이 안에 꽂혀 뒤통수를 뚫고 나왔다.
푹!
소음과 함께 늑대의 무게가 양팔에 실렸다.
자연스레 힘을 빼며 퍽 하고 늑대를 바닥에 패대기치듯 늘어뜨렸다.
엔크리드는 입부터 머리까지 구멍이 난 늑대의 머리통을 발로 밟아 검을 뽑았다.
뿍 하고 뽑힌 검 사이로 마수의 빨간 피가 바닥에 흘렀다. 늑대 마수의 시신이 부들부들 떨렸다.
낑.
마지막 남은 마수의 숨이 허무하게 흩어졌다.
죽인 마수를 두고 양팔을 늘어뜨린 채, 엔크리드는 조금 전 자신의 한 짓을 되새겼다.
‘보인다.’
늑대 마수의 움직임은 단순했다. 본능에 맡긴 움직임.
그러니 육감에 걸린다. 한 점의 집중과 본능의 육감.
두 개의 합이 만들어 준 감각에 치중한 검격의 연속이었다.
‘할 수 있다.’
지금이라면 라그나가 말한 응용하는 검이라는 걸 보여 줄 수 있을 듯했다.
상대의 의도와 움직임을 읽는다. 이후 남은 건 기본기로 단련한 검을 내려치는 것뿐.
상대를 속이는 것도 비슷한 이치다.
“원래 할 줄 아는 겁니다. 그걸 정형화해서 몸에 붙이는 과정일 뿐인데도.”
라그나가 한 말이 새삼 떠올랐다.
그래, 맞다. 본래 하던 거다.
하지만 알고 하는 것과 모르고 하는 건 고양이와 호랑이만큼이나 차이가 있었기에.
엔크리드는 손을 쥐었다 펴며, 되새기고 또 되새겼다.
횃불을 들고 앞으로 나아가면서도 계속 머릿속으로는 제 검을 그렸다.
한 번으로 몸에 착 달라붙는 건 재능 있는 이들의 전유물.
그러니 고심하고 되뇌는 거다.
엔크리드는 모든 걸 수련으로 삼고 행했다.
이후 마물과 마수는 더 보이지 않았다.
대신 통로의 끝에 하수도와 연결된 통로를 찾았다.
그제야 검술 대신 다른 게 보였다.
‘미친놈이군.’
여기까지 이런 굴을 파다니.
이게 무슨 짓인지.
스펠 트랩은 비쌌다. 싸구려 쥐덫 따위가 아니니까.
그런 걸 여섯 개 갈림길에 전부를 막으며 깔아 둔 저의가 무엇인가.
크로나가 남아도는 부유한 상인도 어지간해서는 못 할 짓이다.
거기에 식인귀라 불리는 구울과 마수까지 있다.
이렇게까지 막아서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 뒤에는 대체 뭐가 기다리고 있는가.
그 질문의 답 일부가 보였다.
“미친 새끼가.”
엔크리드는 절로 입이 열렸다.
고약한 냄새가 나는 하수로를 따라 걸어 도착한 곳.
횃불 빛에, 사방에 빨래처럼 널린 게 보였다.
벽에 못을 꽂고 거기에 줄을 엮어서 늘어뜨려 만든 것들이다.
옷가지가 아니었다. 그 옷가지를 입어야 할 부위였으니.
인간의 내장과 살점, 뼈로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참극의 현장이다.
어지간히 험한 꼴을 보고 살아온 엔크리드조차 구역질이 날 정도인 그런 참극.
‘미친 새끼.’
반드시 죽여야 할 놈이었다.
죽어 마땅한 놈이니까.
이런 놈을 죽이는 것 또한 기사의 할 일 아닌가.
꿈을 꾼다고 해서 기사가 되는 게 아님을 안다.
하지만 이런 걸 보고 그냥 넘어갈 순 없었다.
사이사이 멀쩡한, 그나마 인간의 형체를 한 시신도 보였다.
그중 하나가 살아 있는 듯했다.
눈을 몇 번 깜빡이다 입을 연다.
“끄르륵.”
말은 못 했다.
당연했다. 머리밖에 안 남은 인간이 어찌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저 상태로 눈을 뜨고 말한다는 것 자체가 그로테스크할 뿐이다.
“끄르륵, 끄르륵.”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가.
추측조차 어렵다.
엔크리드 자신이라면 죽여 달라 빌 것 같은데.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는지는 알 수도 없었다.
거기다, 머리통을 관통한 줄은 어떻게 넣은 건지 알 수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어지간한 일을 다 겪었음에도 이런 참극은 정말 역겨웠으니까.
“넌 뭐냐?”
그때 들린 목소리다. 엔크리드의 시선이 목소리 쪽으로 돌아갔다.
인간의 시신을 장식으로 삼은 길의 끝이다. 하수도 구석, 시신 애호가의 얼굴이 보였다.
하얀 얼굴의 창백한 인상의 젊은 남자였다.
칙칙한 녹색의 로브를 둘렀고 머리칼은 길었다.
엔크리드가 물었다.
“여긴, 네 작품이겠지?”
남자는 잠시 고심하는가 싶더니 혼잣말을 섞어 말했다.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걸까. 신이 날 사랑하는 건가. 가만히 있어도 실험체를 이리 던져 주는 걸 보니, 자, 보자. 상비군인 것 같은데, 잘 단련된 몸이구나. 좋구나. 좋아.”
젊은 남자의 목소리는 가볍고 경쾌했다.
양질의 철을 받은 대장장이 같았고.
이득을 본 거래를 성사한 상인 같았다.
어찌 보면 잔잔하게 제 마음을 고백하는 순수한 청년 같기도 했다.
묘했고 또 묘했다.
“넌 어떤 거로 만들어 볼까?”
엔크리드는 횃불을 높이 들었다. 남자의 뒤로 어른거리는 그림자 너머다.
몸을 이리저리 짜깁기 한 기묘한 시체가 보였다. 벽에 기대앉은 채로.
두 눈은 감고 숨을 쉬는 기색도 없었다. 엔크리드의 판단으로는 시신이었다.
“사랑스럽지? 얘가 바로 내 최고의 명품이 될 것이야. 이름은 바밀로다.”
엔크리드는 결론을 내렸다. 사실 더 말을 나눌 필요도 없었다.
완벽하게 미친 새끼.
엔크리드는 횃불을 집어던졌다.
화륵, 화륵! 횃대가 팽팽 돌아 둥글고 긴 궤적을 남기며 미친놈의 머리를 향해 날아갔다.
퉁.
그리고 미친놈은 손을 드는 것만으로 횃불을 튕겨 냈다.
주문, 그러니까 마법사였다.
그래서, 그게 자신이 멈출 이유인가.
아니다. 죽어야 할 놈은 죽어야 한다. 엔크리드는 횃불을 던졌고, 그게 손짓 한 번에 날아가는 걸 봤음에도 발을 멈추지 않았다.
땅을 찬 엔크리드는 몸을 낮췄다.
하수로의 진득한 땅 밑으로 몸을 깔며 앞으로 내달린다. 퍽- 하고 오물을 차자, 몸이 쌕 소리와 함께 마법사 앞에 도달.
달리는 힘까지 이용해 검을 휘둘렀다. 아래에서 위쪽으로 휘두른 검을 따라, 사선 베기가 횃불이 사라진 어둠을 갈랐다.
* * *
에스터는 주로 밤에 바짝 붙어 있곤 했는데, 엔크리드가 도시에 있는 날이면 그 근처를 배회하는 때도 있었다.
물론, 안 그런 날도 많았다.
‘밤에만 붙어 있어도 충분하니까.’
그리고 꼭 항상 붙어 있을 필요도 없었다.
보통이라면 막사 안에 그냥 붙어서 시간이나 보내고 있을 그런 날.
가앙.
잘 가라.
나가는 엔크리드를 배웅하는데, 방심하는 사이 놈이 손가락을 튕겨 코끝을 때렸다.
캬릉!
이 새끼가?
“간다.”
그러곤 나가 버린다.
그 뒤, 에스터는 몰래 엔크리드의 뒤를 따라갔다.
‘무슨 짓을 하러 가는데, 남의 코를 때린 거냐.’
순수한 호기심에서 시작된 미행이다.
에스터가 따라나선 건 엔크리드의 변덕 어린 손끝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어제의 오늘에서는 없던 일.
톡톡.
검은 표범은 금세 골목 사이, 다른 사람 눈에 띄지 않는 천장을 밟으며 움직였다.
사뿐하고 가뿐한 걸음걸이다.
사람들 눈에 안 띄게 움직이는 거야 일도 아니었다.
그렇게 에스터는 엔크리드가 들어간 지하까지 발을 디뎠다.
‘또 무슨 짓을 하는지.’
순수한 호기심이었다.
그러다 엔크리드란 놈이 들어간 곳에서 고약한 주문 냄새를 맡게 됐다.
‘잘못하면.’
자기가 택한 인간이 죽을 듯했다. 곤란했다. 아직은 자신한테 필요한 인간이었다.
안으로 들어가 봐야 했다.
스펠 트랩을 보고 피하는 거야, 에스터에게는 일도 아니었다.
한때 그녀는 별을 노래했고 별을 품은 마녀였다.
이런 조악한 트랩쯤이야.
그렇게 구울과 싸우는 남자를 봤다.
‘실력이 늘었나?’
검에 관한 조예는 없다. 다만 매일, 정말 매일같이 엔크리드를 지켜봐 왔기에.
‘늘었네.’
성장 정도가 보였다.
그러다 늑대 마수를 죽일 때다. 이건 에스터가 보기에도 이상했으니.
‘이건 뭐야?’
엔크리드란 남자가 신들린 듯한 움직임을 보였다.
어둠을 꿰뚫은 에스터의 눈에 그의 움직임은 이해할 수 없음의 연속이었다.
검을 휘두르고 베고 찌른다. 발과 무릎 따위로 늑대를 걷어찬다.
난전이라 생각했는데, 그는 어떤 치명적인 상처도 입지 않았다.
고작 긁힌 게 전부였는데 그 또한 갑옷이 긁혔을 뿐이다.
엉켜 싸워서 저런 결과가 나올 수 있나?
‘마수가 반푼이인가?’
아닌 것 같은데.
물론 그녀가 본래의 힘을 찾았다면 이런 마수나 마물 따위는 감히 자신을 향해 고개도 들 수 없을 테지만.
‘그런데 계속 가네?’
이제 돌아갈 법도 한데.
엔크리드는 계속 나아갔고, 결국 그 참극의 현장을 에스터도 봤다.
그녀는 충격까진 받진 않았다.
주문을 연성하는 놈 중에는 별의별 미친놈이 많았으니까.
그리고 그녀는 결국, 이 너머에 있는 게 마법사라는 걸 알았다.
‘어떻게 할까?’
마법사를 상대할 때, 도와야 할까?
그동안 모은 쥐꼬리만 한 힘으로?
그럼, 자신의 몸을 되찾는 데 더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나름대로 엔크리드의 갑옷에 기운을 불어 넣어 둔 것도 있긴 하지만.
‘골치 아프게 구네.’
결국 판단을 유보하고, 에스터는 몸을 숨겨 엔크리드의 뒤를 쫓았고.
그와 마법사가 마주하는 걸 봤다.
엔크리드는 몇 마디 말을 건네곤 곧바로 공격을 이어 갔다.
이후, 에스터는 놀랐고 또 놀랐다. 그럴 만했다.
어둠을 옷 삼아 숨은 레이크 팬서의 눈에 엔크리드란 남자가 가득 찼다.
그리고 남자는 말도 안 되는 재주를 부리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