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 특수 소대
인면견.
마물과 마수의 중간 어디쯤 있는 놈들이다.
노인과 비슷한 얼굴을 한 사족보행의 마물.
또는 인간의 그것과 닮은 얼굴을 한 갯과의 마수.
사실 그게 무슨 상관인가.
마물과 마수는 인간을 먹이로 삼는 놈들.
죽여야 할 대상일 뿐이다.
마물과 마수가 어디에서 왔는지는 아무도 모르나.
엔크리드가 태어났을 때부터, 아니 이 세계가 존재하면서도 마물과 마수의 위협은 있었다.
구울, 하피, 스켈레톤 등 종류도 다양했다.
마물과 마수의 차이는 단순했다.
마수가 짐승의 그것을 닮았다면 마물은 개별적 특징을 보였다.
그중 인면견은 무리를 이루면 겁대가리를 상실하는, 마수와 마물의 중간쯤 있는 괴물이었다.
“전진.”
대강 봐도 쉰 마리가 넘는 무리였다. 크르르 하는 울음을 토해 내며 중구난방 흩어져 있던 인면견 무리다.
그걸 발견하자마자 중갑보병대 지휘관이 말했다.
중갑보병, 장비에도 훈련에도 가장 비용이 많이 드는 병과다.
걸친 무장이 무거워 기동력이 떨어지고, 같은 이유로 투창을 들거나 궁병이 될 수도 없다.
갑옷의 무게가 역동적인 움직임을 제한하기에 경쾌한 돌격 따위를 할 수도 없으나.
전신을 막는 무장, 사각 방패, 그사이 삐죽 솟은 장창.
오롯이 이것만으로 중갑보병대는 평야 회전에서 압도적인 효율성을 보였다.
지금도 그랬다.
황무지를 가로지르는 중갑보병의 걸음은 느렸다. 황토 먼지가 크게 일어나지도 않았다.
차분히 한 걸음씩 멈추지 않고 나아갈 뿐.
그런데도 인면견 무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인면견의 주요 공격 수단은 발톱.
그 발톱이 아무 효용 가치가 없었으니까.
‘압승.’
하늘에서 노는 하피조차도 중갑보병대에는 타격을 줄 수 없었는데, 인면견 무리 따위가, 상대가 될 턱이 없다.
퉁!
발톱을 휘둘러 봤자 방패에 막힐 뿐이었다.
가끔 방패 사이 틈에 발톱을 밀어 넣는다고 해도.
탕.
철판으로 무장한 갑옷에 흠집만 날 뿐이다.
더욱이 그런 인면견은 열에 하나도 되지 않았다.
대부분은 중갑보병이 든 방패 전진에 막힐 뿐.
“카앗!”
듣기 껄끄러운 인면견의 비명이 터졌다.
앞발로 사각 방패를 후려친 놈이 방패 사이에서 쭉 하고 뻗어 나온 장창에 옆구리가 뚫리며 몸통이 꿰였다.
인면견 몸통이 창날에 꿰여 달랑거리자, 일선에 선 병사가 들고 있던 방패로 인면견의 몸통을 밀어내 창날을 쏙 빼냈다.
옆구리에 구멍이 난 마물이 바닥을 굴렀다.
깨개갱 하는 비명이 곧 단말마가 됐다.
그 위를 중갑보병이 밟고 지나가 으깨 죽여 버렸으니.
퍽, 퍽.
그들의 무게를 고려해 봤을 때, 밟는 것만으로 훌륭한 확인 사살이 될 터였다.
방패로 막고 장창으로 찌른다.
단순하지만 효율적인 전략이다.
상대가 사람도 아니고, 마물이다. 어찌할 수 없는 거다.
중갑보병이 그리 인면견 무리를 해치우는 동안.
왼쪽 구릉을 차지한 특임대, 변방수비대가 원거리 공격을 퍼부었다.
장궁과 쇠뇌 부대다.
장궁수 다섯과 쇠뇌수 열다섯.
한쪽 면을 틀어막아 화살과 볼트를 쏟아 내니, 그걸 피해 인면견이 한쪽으로 몰리고.
몰린 쪽은 중장 보병이 막았다.
엔크리드와 렘도 구경만 하지 않았다.
쉰 마리의 인면견 무리 뒤편으로 어디서 계속 꾸역꾸역 나와 합류하는 놈들도 있었다.
“저건 우리가 잡는 게 맞는 거 같수다!”
렘이 전에 없이 신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엔크리드는 대답하는 대신 발을 뗐다. 그가 오히려 렘보다 더 빨리 뛰쳐나간 셈이었다.
아직 가슴 속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검을 휘두르고 또 휘둘러 몸에 밴 것을 증명하는 시간.
그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는 중이었다.
목숨을 걸고 싸우되, 죽을 것 같진 않다.
언제 이런 경험을 해 본 적이 있던가.
그게 엔크리드를 묘한 기분으로 만들었다.
겨우 인면견 열댓 마리 사이에서는 죽을 것 같지 않기에, 죽음의 위기 따윈 없을 듯했다.
왜 이런 확신이 드는가.
렘이 함께라서?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생각은 나중 일이었다.
달린다. 중갑보병은 보일 수 없는 속도와 역동성이다.
대담함과 집중력으로.
뛰다 말고 허리를 낮추며 검을 휘둘렀다.
땅과 수평으로 날아가는 검이다.
스컥! 퍽!
그러자 첫 번째 마중 나온 인면견의 주둥이가 잘리고, 주둥이를 가르고 마저 휘두른 검에 다른 인면견의 머리가 걸렸다.
두 번째 놈, 머리통을 맞은 놈도 눈깔과 이마가 찢어져 터졌다.
검을 뽑아 휘두름과 동시에 두 마리를 처리한 셈.
엔크리드는 그대로 왼발로 땅을 찍어 몸에 제동을 걸며 스텝을 밟았다.
왼발을 축으로 삼아 오른발을 그 뒤로 빼며, 몸을 한순간에 옆으로 돌린다.
몸을 돌림과 동시에 검을 수직으로 들었다가 내리쳤다.
교본에 나와도 할 말 없는 중검식 수직 베기였다.
쩍!
거기에 걸린 인면견의 머리가 쪼개졌다.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친다. 검을 베고 휘두르고.
다시 앞을 바라보고 다가오는 인면견의 머리를 주먹으로 후려친 후, 그사이 정강이를 물려던 놈은 검 끝을 수직으로 꽂아 머리통에 구멍을 뚫어 줬다.
두개골을 부수는 느낌이 손에 오롯이 남았다.
검을 뽑을 틈을 주지 않으려고 하는데, 옆에서 번쩍 하고 도끼가 궤적을 그려 냈다.
렘이었다.
호쾌한 돌격과 호쾌한 참격이다.
그 도끼에 걸린 놈들은 가차 없이 몸통이든, 머리가 잘렸다.
엔크리드는 눈을 돌려 달려드는 마물 무리를 보았다.
이전이었다면 겁부터 났을 듯한 광경이나, 이제는 아니다.
담대함의 심장이 뛰기에 덤덤하게 싸울 수 있었다.
머리는 더없이 차갑다. 짓쳐들어오는 마물을 베기 위해 최선을 동선을 거듭 떠올리기 바쁨에도 어디로 움직여야 유리한지를 계산했다.
머리는 차가우나, 반대로 심장은 더없이 뜨거웠다.
고양감.
타오르는 감각이 몸과 감각을 상승시키기에.
‘된다.’
하수도의 마법사를 상대하며 배운 것들이 몸에 붙는다. 분대원과 머리통 싸매며 훈련하던 것들이, 실전을 통해 하나씩 쌓이는 과정이었다.
옆에서 지켜보는 렘은 엔크리드를 보며 성벽 축조 과정을 떠올렸다.
한때 일꾼을 가장해 성벽 축조에 동원된 적이 있었는데.
묵직한 돌을 어찌어찌 들고 와 하나씩 쌓아 올리는 과정.
언제 끝날지 모르는 지루하고 지난한 과정.
결국, 인내심을 요구하는 과정.
‘신기하긴 해.’
엔크리드의 성장세를 보다 보면 신기하다는 생각만 들 뿐이다.
기실 그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보기에 이해할 수 없는 일의 연속이다.
매일 돌을 하나씩 쌓는 것도 못 하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수십 개의 돌을 쌓는다.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한 걸까.
모른다. 알고 싶지도 않았고.
그저 흥미를 더 돋울 뿐.
‘재밌수다. 재밌어.’
“꾸엑!”
마지막 남은 인면견의 머리에 볼트가 박혔다.
어느새 한쪽으로 몰아 마물 무리를 죽인 뒤, 다가온 토레스다.
토레스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아쉬워, 우리 부대로 넘어와야 했는데. 왜 아직도 분대장질을 하는 거야?”
그건 1중대 소대장도 궁금한 참이었다.
저만한 실력으로 왜?
렘과 인연이 있는 병사 몇이 그를 노려보는 걸 엔크리드가 몸으로 슬쩍 가렸다.
1중대에서 상관을 두들겨 패고 온 렘이다. 저들과는 항상 사이가 나빴다. 특히나, 렘이 더 도발하는 경향도 있고.
그렇게 사고를 예방한 뒤에야 엔크리드가 입을 열었다.
“제 분대를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아직 없습니다.”
엔크리드는 현실적인 문제를 짚어 냈다.
만약 그가 소대장이 된다면, 당장 444분대는 누가 맡을 것인가.
“어쨌든, 수고했다.”
한껏 차오른 고양감은 이제 슬며시 가라앉았다.
앤크리드는 물음에 답하긴 했으나, 그리 심각하게 듣지도 답하지도 않았다.
엔크리드의 머릿속에는 오롯이 하나의 생각뿐이었다.
‘정리가 필요해.’
싸워 보니 알겠다. 자신의 가진 것을 한 번쯤은 깔끔하게 정돈할 필요가 있다는걸.
그동안 몇 가지 기술을 엮어 써서 상승 작용을 일으키기도 했고.
검술에 적용하기도 했다.
이제까지는 되는 대로 상황에 맞춰 썼기에, 오히려 정립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리고 이런 경험 또한 처음이었기에 엔크리드는 새삼 다시 희열을 느꼈다.
스스로 필요한 걸 찾는 것.
그 자체가 흔치 않은 일이었다.
언제나 앞은 까만 어둠이었고 길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그 보이지 않던 길에 자꾸 이정표가 생기니.
너무 기뻐 참을 수 없었다.
그게 엔크리드가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보인 이유다.
렘조차 그의 속을 짐작할 수 없었고.
당연하게도 토레스와 중갑보병 소대장도 마찬가지였다.
싸움이 끝난 시점이다. 승리에 취해 기뻐하는 일? 그런 싸움이 아니다.
이기는 게 당연하고, 죽이는 게 당연한 토벌이었다.
그런데 피를 뒤집어쓰고 날뛴 병사 하나가 갑자기 더없이 즐겁다는 듯 웃질 않나.
중갑보병 소대장은 그걸 보며, 한겨울에 뜨거운 물 속에 몸을 담글 때나 나올 법한 그런 미소라고 생각했다.
“……그, 살짝 이상이 있소?”
1중대 소속 소대장이 토레스의 곁으로 붙어, 제 손으로 슬쩍 제 머리를 가리키며 물었다.
물론, 시선은 엔크리드를 향해서다.
“정상이라고 말하기 힘든 사람이긴 한데.”
토레스가 말끝을 흐렸다.
지금의 웃음보다, 그는 엔크리드의 평소 생활에 무게를 두고 한 말이었다.
어떤 미친놈이라도 부대 내에서 사고뭉치 분대장처럼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진 않을 테니.
“뭘 봐?”
“……이 개새가.”
엔크리드가 방심한 사이, 렘과 1중대 사이에 시비가 붙었다.
엔크리드는 급히 렘을 말리려고 돌아갔고, 토레스를 비롯한 이들도 장내를 수습하기 시작했다.
* * *
의뢰 두 번, 하나는 중대장 선에서 묻었기에 마법사를 죽인 건 아무도 몰랐다.
하지만 마물 토벌은 전부 알았다.
렘과 둘이서 늑대 마수를 벤 것부터.
하피를 검으로 상대한 것까지.
렘이 한 일에 놀라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를 모르는 사람이야 한두 번은 놀라겠지만, 애초에 뛰어난 실력 덕에 부대에 붙어 있는 존재였으니까.
“렘 새끼가? 원래 잘 싸우는 놈이라.”
“성격만 좋았으면 대대장도 해 먹지 않았을까?”
부대 내에 소문이 퍼졌을 때 병사 무리를 놀라게 한 건 엔크리드 때문이었다.
상급 병사, 병사 등급제에서도 상위는 맞다.
하지만 모든 상급 병사가 그런 짓을 할 순 없을 것이다.
하피를 상대로 칼질을?
아니, 그런 무식한 짓을 왜?
그런데 그 무식한 짓으로 하피를 죽였다고?
한 마리만 간신히 죽였다면 우연이라고 할 텐데.
세 마리다.
소문은 무섭게 퍼졌다.
“아니, 뭘 어떻게 했길래.”
“언제라도, 이렇게 될 줄 알았지.”
“엔크리드? 그 사고뭉치 분대장이?”
“저번에는 주술 파괴했다고 하지 않았어?”
“허, 전에 붙었을 때는 간신히 상급 아닌가 싶었는데.”
말이 많이 나올 법도 했다.
인면견 무리를 해치운 것도 인상적이었는데, 그걸 본 이들이 한둘도 아니었기에.
“그런데 왜 아직도 분대장이냐?”
소문과 의문이 부대 내에 퍼진다. 대대장의 귀까지 들어가는 게 당연했다.
대대장은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덕분에 요정 중대장이 불려 가서 질문을 받았다.
“고작 분대장에 머물게 하는 게 맞나?”
“분대가 워낙 특별한지라.”
“포상금을 줄 여력이 없으니, 지위를 높여 주는 게 맞을 것 같은데.”
나우릴리아 왕국의 제도는 명확했다.
잘하면 잘한 대로 더 준다는 것.
그게 핵심이었다.
괜히 병사 등급제나 병사 용병제 같은 정책을 쓰는 게 아니다.
대가는 포상금 또는 명예.
대대장은 제 잇속을 위해 포상금 대신 지위를 주자고 했다.
중대장은 사고뭉치 분대의 특이성을 잘 알았다.
엔크리드를 소대장으로 올려선 통제 불가한 분대가 될 것이다.
그럼 색다른 방법을 통용시키면 될 것이다.
“그러죠.”
군례를 보이고 중대장은 돌아섰다.
그녀는 대대장도 만족하고 현재 편제도 유지하는 기책을 떠올렸다.
그렇게 엔크리드는.
“제 휘하 대원은 열이 전부입니다만.”
“그거랑 상관없이 오늘부터 소대장의 위와 같은 직급을 가진다. 불만 있나?”
“없습니다.”
상관의 말이다. 엔크리드는 굳이 따질 이유가 없다.
하물며 상대가 요정 중대장이다. 괜히 농담의 대상이 되는 게 더 껄끄럽다.
“가 봐.”
그렇게 소대장의 위를 받게 된 거다.
“이제 소대장이라고 불러야 하는 거요?”
“오, 소대장님, 봉급이 오른 겁니까?”
“그럼, 우리는?”
“형제님, 축하드립니다.”
“내 검 칼날이 다 나갔던데.”
이게 축하의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지막 라그나는 확실히 축하의 말도 아니긴 하지만.
실상 소대장이 됐다고 해서 변하는 것도 없었다.
아, 이제껏 대강 넘어간 분대의 빈자리를 채워 주겠다는 말이 오가긴 했다.
본래 분대는 열 명이 정원이다.
다만, 지금까지는 열 명이 아니라 엔크리드를 포함해서 여섯이 전부였다.
정식 명칭, 4중대 휘하 독립 소대.
이제 4분대가 아닌 거다.
소대원을 보충하고 싶다면 더 해도 된다고 했지만.
‘굳이?’
말이 독립 소대지, 개별 작전에 나설 일은 거의 없을 터였다.
주어진 특혜 중 유일한 거라면.
소대장은 일반 근무를 서지 않는다는 것.
“그건 좀 치사한데?”
렘이 불만을 표하긴 했으나, 일단 이 분대가 그대로 유지된다는 말에 어지간한 건 그냥 넘어갔다.
소대장이 되고 부대 내에 소문이 퍼진 뒤에 생긴 변화다.
다만, 그렇다고 엔크리드의 일상이 변하는 법은 없었다.
“더 배우고 싶다는 거지요?”
시작은 아우딘이다. 가진 것을 정리하는 것과 별개로.
시간 낭비는 싫었다. 시간이 날 때 배우고 익히는 걸 멈춰서는 안 된다는 것.
그게 엔크리드가 생각하는 반복하는 오늘을 활용하는 핵심이다.
그래서 아우딘을 찾았다. 몸에 익혀 무르익은 기술의 그다음을 바라니.
“침대 전투라고 들어 보셨는지.”
이건 또 무슨 헛소리인가 싶긴 한데.
“성기사 발라프가 만든 훈련 방법이지요.”
아우딘의 설명이다.
발라프 식 무투술.
때리고 패는 게 아니라 잡고 꺾는 기술의 향연.
침대 위에서 눌리고 꺾이는 일상의 추가다.
물론, 아우딘에게만 새로운 걸 배우는 것도 아니었다.
어느새 겨울의 상징인 혹한의 추위가 물러나는 중이었고.
엔크리드는 여전했다.
꿈에 뱃사공이 나오면 숫제 너는 뭐 하는 새끼냐 물을 정도로 반복하는 그런 일상이었다.
그리고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지금처럼 국지전이 아닌, 전면전이 벌어질 거라고.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이전 전장에서 상대는 주술을, 아군은 스콰이어를 보임으로써 전장의 판도를 바꿨다.
전보다 더 치열한 전장, 봄이 다가오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봄이 다가오기 전 엔크리드는 자신의 것을 정리하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