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 행운과 불행은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온다.
핀과 토레스는 보고 때문에 먼저 들어갔다.
전반적인 보고는 토레스가 할 테고, 나머지는 핀이 보조하는 거니.
엔크리드는 복귀 신고만 하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숙소 앞.
예상치 못한 인물이 보인다.
길핀이었다.
옷은 여기저기 찢어져 있고 얼굴에는 푸른 멍이 들었다.
한쪽 눈은 반쯤 부었는데, 이제 나아가는 중인 것 같았고 걸음을 절뚝거렸다.
보니까 다리가 부러진 건 아닌 듯하고.
“좀 보자.”
슬쩍 살피니, 발목을 삔 듯했다.
“전 괜찮습니다.”
길핀의 어조에서 은은하게 조바심이 느껴졌다.
엔크리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인데?”
이쪽은 크라이스가 관리하는 사람.
당연히 길핀 길드에 일이 터졌으니 이 모양 이 꼴일 것이다.
“왔습니다.”
“뭐가?”
“전대 길드장과 붙어먹던 개구리 새끼요.”
아, 프록.
기억을 더듬을 것도 없었다.
그래, 봄이 오면 프록이 온다고 했었다.
그게 지금 왔다는 소리였다.
그런데 조금 이른 거 아닌가.
“설명부터.”
일단 얘기부터 들어 보고자 했다.
크라이스가 죽거나 정말 급한 일이라면 길핀과 이런 얘기를 나눌 것도 없이 당장 같이 가잔 말부터 했을 터였다.
* * *
크라이스는 벌써 엿새째 도시에서 먹고 잤다.
부대 밖에서 일주일쯤 지내는 거야, 크라이스의 일상이었다.
하물며.
‘곧 출전이라며.’
그럼 준비할 게 얼마나 많나.
연초부터 시작해서 먹거리, 이런저런 심부름까지.
크라이스를 찾는 사람은 많았다. 굳이 병사뿐 아니라 장교까지.
덕분에 이런 편의를 봐주는 사람도 많았고.
그렇게 엿새째였다.
되도록 출전 전에 처리할 일은 다 정리해 두고 싶었다.
무엇보다 길핀 길드를 먹은 뒤부터는 크로나 세는 재미도 늘었고.
이러니 부대에 돌아가고 싶나.
‘보자. 오늘은 얼마나 벌려나.’
나중에 샬롱을 차리려면 크로나가 많이 들 것이다.
그러니 벌 때 바짝 버는 게 최고였다.
최근에 분대장이 가져다가 판 물건 수수료도 꽤 받았고.
‘어디서 그런 거 또 안 주워 오나.’
하긴, 하수도에 마법사가 숨어 살고 있었다는데.
그런 일이 빈번할까.
“점심 먹을 시간이잖아. 끼니 때우자.”
그렇게 정오쯤이 되어서 길핀을 불러 점심을 해결하는 참이었다. 점심으로 나온 건 통밀을 빻아서 만든, 면 요리였다.
무슨 재주인지 얇게 면을 뽑아서 그 위에 올리브오일과 토마토소스를 얹은 볶음면 요리였다.
그럭저럭 먹을 만했다.
“그래서 그 구둣방 지하는 다 막았고?”
크라이스가 포크를 덜그럭거리며 물었고.
“진즉에 다 막았습니다.”
길핀은 입 안에서 우물거리던 면을 삼키며 답했다.
밤의 수호자까지는 아니더라도 밤의 경비병 정도는 해 보자는 취지였다.
그런 연유로 상비군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길핀 길드가 힘을 썼다.
구둣방 지하 매몰 작업도 그중 하나였다.
상비군이 그런 일까지는 신경 쓰지 않으니까.
털어 갈 건 다 털어 갔으면서 굴은 놔뒀다.
물론 그 전에 분대장이 먼저 털어 갔지만.
어쨌든 밤의 경비대란 무엇이냐.
도시에 들어오는 뜨내기를 적당히 요리해 주머니 터는 걸 제외하면, 도시에 사는 도시민에게 지키는 쪽이라는 인상을 주는 거다.
효과? 말할 것도 없이 좋았다.
상납금을 받을 때도.
보호세를 정리할 때도.
특히나 정보를 취합할 때, 도시 주민 전부가 크라이스의 귀가 된 셈이니.
‘작정하면 아즈펜 쪽 첩자를 다 솎아 낼 수도 있지 않으려나.’
길핀 길드가 주변 길드를 다 흡수하면 그렇게 될 것 같은데.
아직은 섣불리 나설 수 없는 일 같았다.
크라이스는 먹다 말고 멍한 눈으로 머릿속 계획을 곱씹었다.
‘무력은 분대장을 엮고.’
분대장이 움직이면 휘하 분대원이 움직일 계기가 되니까.
각 분대원이 원하는 게 명확하다 보니, 꼬드기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고.
‘관리하는 사람 숫자는?’
보더 가드에도 빈민촌이 있었다. 그 안에는 삶을 포기하고 널브러진 놈들도 있지만.
아득바득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빈민촌에서 일부 데려오고.’
다른 길드 부수며 자잘한 애들 흡수하고.
크라이스는 다른 건 몰라도 사람 보는 눈만큼은 자신 있었다.
어릴 때부터 신나게 구르며 자란 덕일지도 모른다.
구걸하던 시절 누구에게 구걸하면 뭐가 떨어질지 한눈에 알아보곤 했으니까.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매타작만 수백 대를 맞았다.
잘못 말 걸면 맞아 뒈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절로 본능의 감이 꽃을 피운 셈이었다.
‘얼추 될 것도 같은데.’
뒷골목 길드 통합 작전이라고 불러야 하려나?
1년, 아니 기반만 마련되면 반년도 안 돼서 뒷골목을 완벽하게 장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계획대로 된다면.
다만, 계획에는 언제나 변수가 존재하는 법이었다.
그 변수였다.
쾅!
행운과 불행은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온다고 했던가.
크라이스에게도 그랬다.
저택의 응접실 문을 부수고 누군가 들어왔다.
두꺼운 망토를 뒤집어쓴 작자였다.
크라이스는 여기까지 어떻게 왔지? 라는 생각 따윈 하지 않았다.
누구냐고 묻지도 않았다.
저택을 지키던 길드원이 십여 명.
그중 문 앞을 지키던 둘이 바닥에 널브러진 채다.
‘피는?’
바닥에 흥건한 피 따윈 없다. 죽진 않았을까? 그래 보였다.
크라이스는 짧은 시간 돌아가는 상황과 갑자기 찾아온 불행을 받아들였고 인지했다.
비상한 머리가 미친 듯이 돌아갔고 눈은 사방을 살폈다.
“네, 이쪽으로 오시죠.”
판단을 끝내고 나온 첫마디였다.
“내가 누군 줄 알고? 반응이 신선하네.”
망토 안의 괴인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 움직임에 망토가 흔들렸다.
목소리는 거칠고 깔깔했다. 성대라도 다친 건가 싶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아서.”
“감이 좋군.”
말하며 놈이 망토를 벗었다.
스르륵 흘러내리는 망토 안.
심장 어림에 철판을 덧댄 갑옷을 입은 상대가 보였다.
호심갑, 하트 아머다.
“……아.”
인간이 프록의 생김새를 알아보는 건 어렵다.
그런데도 길핀은 상대를 알아봤다.
목에 하얀 흉터가 남은 프록.
때마다 찾아오던 사신, 길핀이 말하던 놈이었다.
‘너무 이른 거 아니냐.’
봄이 되고 나서 한참 있다가 온다고 하지 않았던가?
“전에 있던 놈은 어디 가고?”
“이곳이 지겨워서 위로 먼저 가셨죠.”
크라이스는 태연하게 프록의 말을 받았다.
길핀은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말 한마디 잘못하면 곧바로 자신도 위로 가게 생겼으니까.
죽음의 공포가 드리운다. 압도적 무력 차이가 주는 위협이다.
이런 상황에서.
“식사는?”
크라이스가 태연하게 물었고.
프록은 입술을 비틀어 올렸다.
“재밌는 새끼네.”
말과 함께 프록이 움직였고, 길핀은 반항했고 두들겨 맞았다.
세 대로 끝이었다. 그것도 상대가 봐주지 않고 무기를 뽑았으면 일 합에 끝났으리라.
크라이스는 반항도 하지 않았으나, 맞았다.
“인간은 일단 맞아야 말을 잘 듣지. 내 지론이다. 전대 길드장을 죽인 놈 이름은?”
그렇게 두들겨 팬 뒤, 한 손으로 멱살째 잡아 크라이스를 들어 올린 프록이 물었다.
크라이스는 머리를 굴렸다.
분대원 중 누가 이런 괴물을 상대할 수 있지?
렘, 라그나, 아우딘, 작센.
그중 누구의 이름을 대야 할까.
누구를 찾게 해야 할까.
프록을 보는 순간, 동시에 했던 고민이기에 주저는 없었다.
“쿨럭, 그냥 물어봐도 대답해 줬을 건데요.”
“내가 싫어. 일단 두들겨 패고 듣고 싶어.”
미친 프록 새끼.
속으로 한 생각과 달리, 크라이스는 “그렇군요”라고 웃으며 답했다.
“보더 가드 상비군이 죽였습니다. 이름은 라그나.”
“네가 여기 앉아 있는 이유는?”
“대행이죠. 길드장 대행.”
“재밌네, 재밌어. 야, 대머리.”
순식간에 쓰러진 길핀은 자신이 어떻게 당했는지도 몰랐다.
그저 눈두덩이가 너무 아팠고, 허벅지가 저려 일어날 수 없었다.
“으, 네, 네.”
“라그나를 데려와라. 그럼 이놈은 놔준다.”
그 말에 길핀이 크라이스를 바라봤고.
“가요. 데려오세요. 우리 진짜 길드장님을.”
길핀도 눈치는 빨랐다.
프록 새끼를 죽일 만한 위인을 데려오란 거였다.
프록도 바보는 아니었다.
거짓과 진실을 구분할 순 없어도, 이 작고 예쁘장한 인간 남자가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단 건 알았다.
프록은 결심했다.
‘그 자식을 죽이고.’
이놈에게 족쇄를 채우기로.
원래 이곳을 관리하던 놈이 죽었으니, 새로운 관리자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본국에 연락해서 뭘 하려면 손이 많이 가니, 현지 조달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수틀리면? 몸 하나 빼는 거야 일도 아니었다.
* * *
“크라이스가 잡힌 지 며칠 됐지?”
엔크리드가 코를 한 번 긁고는 물었다.
“사흘입니다.”
“내 분대원은?”
“때마침 전부 전장으로 향했다고.”
“렘도?”
“그건 모릅니다. 없다는 얘기만 들어서.”
“왕눈이가 살아 있는 건 확인했고?”
“조금 전에도 보고 왔습니다.”
“팔다리를 전부 부러뜨렸나?”
“……네?”
“아니다. 팔다리도 멀쩡하게 놔뒀다면야.”
엔크리드는 홀로 중얼거리다 고개를 끄덕이고 일어났다.
엔크리드와 길핀은 부대 앞에서 물러나 한쪽 구석에 쪼그려 앉아 얘기를 나누던 참이었다.
일어난 엔크리드를 길핀이 고개를 위로 꺾으며 봤다.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어서.
당장 크라이스를 구하러 가야 하는 거 아닌가?
엔크리드가 마저 입을 열었다.
“일단 복귀 신고부터 하고 오지.”
“기다릴까요?”
“아니, 프록은 저택에 있지?”
“지금 바로 가는 거 아닙니까?”
지금 바로? 그럴 필요는 없어 보였다.
프록이 크라이스를 죽이려고 했으면 진즉에 죽였을 거다.
근데 사흘 동안 팔다리도 안 분질렀다는 건.
‘잘 버티고 있단 거잖아.’
크라이스가 노린 바도 명확히 보였다.
분대원 중 누구라도 불러 달라는 소리다. 그러니까 라그나란 이름을 꺼냈겠지.
렘, 아우딘, 작센은 어떻게든 불러올 수 있지만.
제일 부르기 어려운 길치에 게으름뱅이인 라그나를 콕 집은 이유는 뭐겠나.
누구든 와 달란 거지.
‘문제라면 남은 게 나뿐이란 거고.’
자신 없이 분대원이 전부 전장으로 향한 건 엔크리드에게도 의외였다.
그러니 크라이스도 예측하지 못했을 테고.
사고뭉치 분대원이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 말을 듣고 전장에 나갔단다.
데려간 사람도 대단하다 싶었다.
렘을 비롯한 그 친구들을 통제하다가 혈압이 올라 머리가 터져 죽지 않으면 다행일 테니.
“돌아가서 하루만 더 기다리라고 해.”
그 말에 길핀의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졌다.
“길드장이 죽습니다.”
길핀으로서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는 지금의 삶에 만족하는 중이었다.
밤의 수호자가 아니라 경비병 수준이 그에게는 딱 맞았으니.
골치 아픈 일도 적었고 이게 마음도 편했다. 그래, 더없이 마음이 편했다.
크라이스는 크로나를 밝히긴 했지만, 공평했다.
그래서다. 길핀은 이 평화를 지키길 원했다.
본래 프록이 오기 전에 길드가 산산이 찢기면 다 포기하고 튀려고 했던 길핀은 이제 없다.
그에게도 지켜야 할 게 생긴 셈이었다.
“가야 합니다.”
그가 재차 말했으나.
엔크리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가서 전해, 하루만 더 기다리라고. 그럼, 라그나가 찾아갈 거라고.”
말하고 엔크리드가 돌아섰다.
길핀은 여전히 선택지가 없었다. 그도 돌아서야 했다.
돌아가 말을 전해야 했다.
상황을 전하지 않으면 길드장을 찢어 죽일 것이다. 프록은 그렇게 하고도 남아 보였다.
길핀은 부서진 평화를 이어 붙이고자 발걸음을 옮겼다.
‘신이시여.’
믿지 않는 신을 찾는 그였다.
엔크리드는 부대 안쪽으로 향했다.
“벌써 며칠째인지, 무슨 일인데요? 물어도 아무 말도 안 하던데.”
부대 앞을 지키던 병사가 들어가는 길에 물었다.
‘의리가 있어.’
엔크리드는 길핀을 떠올리며 그리 생각했다. 상비군이 뒷골목 길드를 장악했다?
운 조금 나쁘면 사형을 당해도 할 말이 없었다.
그러니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지키고 싶었을 것이고.
그 마음은 잘 전해졌다.
“개 같은 일.”
엔크리드는 대강 답하고 부대 안으로 들어갔다.
하루가 더 지난다고 크라이스가 죽진 않을 것이다. 상대의 태도에서 그게 보였다.
‘멍청한 놈은 아닌 것 같고.’
프록은 단순 무식하다는 이미지가 있으나.
사람도 각자가 다른 것처럼 프록 또한 그렇다.
머리 좋은 프록, 무식한 프록, 섬세한 프록이 있는 거다.
그건 요정, 용인, 거인도 마찬가지지.
물론 각 종족 특징을 별개로 두고 말이다.
‘시간이 있다면.’
당장 갈 필요가 없다면.
엔크리드는 주먹을 쥐었다가 펴며 걸었다.
그는 바보가 아니었다.
이번 ‘오늘’을 통해 알게 된 것.
‘나아졌다.’
그게 아니라면 라이칸스로프나 적의 지휘관에게 진즉에 죽었을 테니.
그런데 마법사까지 벴다.
실력이 늘었다는 방증 아닌가.
그럼, 프록은 상대할 수 있나?
찌르기 변태를 상대할 때는 발차기 한 방에 옆구리가 다 작살나서 날아가 기절했는데?
그럼, 지금은?
‘될 것 같은데.’
이유 없는 자신감은 아닐 것이다. 크라이스가 찾은 건 자신이 아니라 분대원이겠지만.
‘프록, 프록, 프록.’
더 없이 어울려 보고 싶은 상대 아닌가.
그러기 위한 준비다.
크게 다친 곳은 없지만, 피로는 쌓였다. 이틀을 밤을 새우다시피 하지 않았나.
돌아오는 길에 쪽잠도 잤고 그냥저냥 쉬면서 왔지만, 완벽한 상태는 아니었다.
그러니.
‘복귀 신고하고 휴식부터.’
엔크리드는 그렇게 했다.
크라이스를 죽게 두는 선택지가 없다면.
프록을 상대해야 했다.
골치 아픈 일이라 할 수 있으나.
엔크리드는 상황이 이렇게 된 것에 묘한 흥분을 느꼈다.
‘묘하다. 묘해.’
본래라면 겁을 먹었을까? 아니, 겁을 먹기보다는 질 것을 알고도 덤볐을 것이다. 제 사람이 죽는 걸 보고 넘어갈 순 없다. 엔크리드는 그렇게 살아왔다.
다만, 이전이라면 패배를 직감하고 걸음을 뗐다면.
지금은 이길지 질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대장이?”
부대 내로 들어가 보니, 사람이 많이 빠져 있었다.
선발대로 요정 중대장이 사고뭉치 분대를 이끌고 나갔단 소식도 있었다.
누가 데려갔나 했더니.
그 덕에 엔크리드는 타 중대 소대장에게 복귀 신고를 해야 했다.
“독립 소대 중 혼자 남은 거로 하고, 곧바로 합류하는 건가?”
안면이 있는 상대였다.
“피로가 쌓여서, 이틀 뒤에 합류하는 거로.”
“그래, 어지간하면 빨리 가. 전장에 문제가 좀 있는 것 같으니까. 2차 출정이 있을지도 모르고.”
소대장이 전서를 흔들며 주저리주저리 말했다.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인 엔크리드가 돌아섰다.
휑한 숙소에 짐을 풀고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근 뒤, 포근한 모포를 덮고 잠이 들었다.
혹 프록에게 죽어 오늘을 반복하게 된다면.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잠이었다.
엔크리드는 금세 잠들었다.
아주 푹, 깊은, 꿈도 꾸지 않는 말끔한 수면이었다.
깨어난 엔크리드는 눈곱을 떼고 얼굴을 씻고 아침으로 고기를 씹었다.
“아침부터 잘도 드시네.”
식사 당번병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우걱우걱 고기를 씹어 삼킨 뒤에는 고립의 기법이다.
소화도 되고 몸에 열도 내기 좋은 훈련이었다.
그 뒤에 롱소드의 칼날을 갈아서 챙기고 남은 휘슬 대거 숫자를 셌다. 두 자루가 전부였다.
던진 걸 다 회수하지 못한 탓이었다.
‘그 작자가 만들어 줄 순 있으려나?’
속으로 도시 대장장이를 떠올리며 칼날을 눈앞에 비스듬히 들어 확인했다.
괜찮았다.
금 간 곳도 없고.
이가 나간 건 몇 군데 있지만, 이 정도야.
대장장이가 마법사를 베면 칼날이 망가진다고 했는데 생각보다 멀쩡했다.
마법사마다 다른 건가.
그렇게 준비를 다 하고 나서야.
냐아!
“어디 갔었냐?”
에스터가 나타났다.
안 보이길래 떠난 줄 알았다.
“좀 있어. 잠깐 다녀올게.”
그렇게 엔크리드는 다시 밖으로 나섰다.
“캬.”
뒤에서 에스터가 화를 냈다. 자기를 두고 어딜 가냐고 하는 것 같았다.
“같이 갈래? 대신 구경만 해라.”
엔크리드의 말에 폴짝 뛴 에스터가 품에 쏙 들어왔다.
따뜻한 체온을 느끼며 엔크리드는 걸음을 뗐다.
목적지는 크라이스가 붙들린 저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