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부푼 볼
‘버려둘 순 없으니.’
요정 중대장이 사고뭉치 분대원, 이제는 소대원이 된 이들을 전부 데려간 건 의외였다.
엔크리드도 빈 숙소를 보지 않았다면 못 믿었을 테니, 벌써 며칠이나 막사를 비운 크라이스는 당연히 몰랐을 거다.
그러니까 라그나를 불러 달라는 말을 한 것일 테고.
‘용케 출정 때 안 끌려갔네.’
엔크리드 자신이 남았으니, 같이 합류하겠다는 핑계를 댔을까?
아니면 요정 중대장의 배려로 크라이스를 두고 간 건가.
어찌 됐든 크라이스는 남았고, 분대원은 없다.
엔크리드 혼자 구해야 한다는 거다.
당장 전장에 나간 분대원을 불러올 수도 없고.
그렇다고 길핀 길드 내부의 일에 상비군을 동원해?
‘어림도 없는 소리.’
잘도 도와주겠다. 그래, 기대 볼 사람이라도 있으면 모르겠다.
요정 중대장 말이다. 그녀가 남아 있다고 해도 도박에 가까운 일인데.
토레스라면 어떨까. 변방수비대 소대장으로서는 어려워도, 개인으로는 도울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변방 수비대도 일부만 빼곤 바로 출정이라고 했으니.’
복귀 신고 후에 하릴없이 하루 쉬게 해 준 것만으로도 부대는 엔크리드를 챙긴 거였다.
그만큼 이번 임무를 통해 얻은 게 크단 소리일까?
엔크리드는 고개를 좌우로 가볍게 털었다.
자꾸 잡생각이 머리를 채웠다.
할 것만 하면 된다.
여기서 할 일은.
“우리 크라이스 구하러 가는 거다. 그래, 그 왕눈이.”
가슴팍에 쏙 들어온 에스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에스터가 자꾸 힐끔거리며 의아한 눈빛을 보인다고 생각해, 눈이 큰 친구라고 재차 말해 줬다.
괜히 입 밖으로 내보인 목표다.
그걸 들은 에스터가 파란 호수 같은 눈으로 빤히 엔크리드를 바라봤다.
엔크리드도 비슷한 색의 눈으로 에스터를 봤다.
“왜?”
에스터가 답을 할 리는 없었다.
표범이 무슨 답을.
다만, 그 눈빛이 뭔가 말을 하는 것 같긴 했다.
마치 구하러 가는 게 맞냐고, 오롯이 이유가 그것뿐이냐고 그리 묻는 것 같았다.
“겸사겸사.”
엔크리드가 속내 일부를 보였다.
늑대인간, 아즈펜의 그레이독 부대, 그리고 마법사까지.
오는 길에서 토레스와 핀을 통해 제 실력을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런 욕구가 미친 듯이 끓어올랐다.
지금 내 위치는? 내 상태는? 내 검은 어디까지 닿았나?
‘얼마나 늘었지?’
모르겠다.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본래 그런 거였다.
알아야 보이는 법인데, 엔크리드의 하루는 매번 새로웠다.
그는 매일 새로운 땅을 발견하는 탐험가였고.
항상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패스파인더였으며.
산을 처음 타는 등산가이자, 생전 처음 보는 사냥터의 사냥꾼이었다.
이정표를 보며 나아가지만, 정작 제가 선 위치는 몰랐다.
그래서였다.
프록이 나타났다는 말에 냉정하게 제 몸 상태를 확인한 뒤, 하루를 푹 쉬고 나선 건.
이정표의 위치를 확인해 줄 상대라는 생각이 들어 버렸으니.
‘내 검이 통할까?’
일전에 프록을 마주쳤을 땐 한 대 얻어맞는 거로 갈비뼈가 제 허약함을 호소했는데.
이번에는 어떨까?
프록이라고 다 같은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비교할 상대로 이보다 더 훌륭할 순 없다.
만약 실패한다면 프록이 ‘오늘’을 가로막는 벽이 되겠지만, 괜찮다. 괜찮았다.
분대원 중 누구라도 있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
그러하기에 엔크리드가 나설 수밖에 없는 일.
공교롭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운이 좋다고 해야 할까.
그도 아니면 불운이 따른다고 해야 할까.
불운이야 뭐, 언제나 뒤를 따르는 친구와 같았다.
그걸 헤쳐나가는 건 불운의 강물을 헤엄치는 자의 몫이겠지.
렘을 비롯한 분대원에게 생각이 미치자 엔크리드는 자신이 보던 세계가 얼마나 좁았는지, 새삼 그걸 깨달았다.
‘우습다.’
한때 제 분대원을 중급 이상의 병사로 생각했었다.
중급? 우습다. 우스운 말이었다.
분대원 중 누구도 병사 등급제 안에 머물 이는 없다.
지금은 그걸 안다.
실상 분대원 중 하나라도 있었다면 고작 프록을 겁낼 이유 따윈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은 나 혼자.’
크라이스를 버릴 수도 없고.
물러서고 싶지도 않음에.
왼발을 떼며 렘을 상대하던 나날을 떠올렸고.
오른발로 바닥을 디디며 작센을 통해 배운 것을 되새겼다.
다시 왼발에 아우딘을.
오른발에 라그나를 담는다.
걷는 걸음마다 그동안 배운 것을 되새겼다.
수없이 만난 교관, 반복한 오늘.
프록이 상대라는 데 무섭지 않다. 이건 야수의 심장이 부린 조화일까.
평정심, 담대함, 대담함을 넘어 호승심이 피어올랐다.
엔크리드의 동공이 불꽃처럼 일렁였다.
탁.
에스터가 앞발로 가슴을 쳤다. 그게 마치 아직은 아니라고 말하는 듯했다.
“알아.”
엔크리드는 답하고 걸었고, 곧 저택에 다다랐다.
대머리 길핀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디?”
“응접실입니다.”
응접실이 어디더라?
길핀의 안내를 따라 저택 안으로 들어선 엔크리드는 응접실 문을 앞에 두고 멈췄다.
‘나는 지금 죽음을 작정하고 덤비는 걸까?’
아니면 그저 호승심에 미쳐버린 걸까.
모른다. 답은 문 너머에 있었다.
에스터가 가슴에서 떨어져 나와 옆으로 통통 튕기듯 움직였다.
그걸 보며 엔크리드는 생각했다.
‘말이 통할 상대일까?’
크라이스를 살려서 데리고 있는 것만 봐도 그럴 것 같긴 했다.
말이 통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일단 제압하고 볼 일이기도 했다.
싸우러 왔으면 싸우는 거지.
상대와 말을 나눠 뭐 한다고.
엔크리드는 짧게 호흡을 들이마신 뒤, 대화를 뛰어넘고 행동으로 말하기로 했다.
뻥.
문을 박차고 앞으로 구르며, 오른손을 앞으로 던지듯 뿌린 거다.
휘슬 대거가 무서운 속도로 공간을 접고서 날아갔다.
삐이이이익!
소리가 뒤따랐고.
기다렸다는 듯 프록의 팔은 섬광이 되어 움직였다.
* * *
이거 미친 새끼인가?
기척, 그다음은 투기.
살을 찌르는 투기 뒤에는 공격이다. 주저가 없었다.
문 앞에 서기 전부터 계획한 것 같은 그런 움직임이었다.
뻥 하고 문을 박차고 들어온 놈의 팔이 움직이는 게 프록의 눈에 보였고.
날아오는 칼날을 보자마자 프록은 제 무기를 뽑아서 쳐 냈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묘기에 가까운 움직임이.
프록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훙, 슉. 땅!
칼날 면으로 날아오는 단검을 쳐 냈다.
날아간 휘슬 대거가 푹 하고 벽에 걸린 조악한 가죽 장식에 박혔다.
단검을 던진 놈이 그대로 달려들며 검을 뽑는다.
치링!
뽑힌 검이 위에서 밑으로 호쾌한 궤적을 그리며 날아왔다.
프록은 손가락을 굽혀 검 손잡이 옆에 달아 둔 고리에 걸었다.
프록의 미끌미끌한 피부는 악력을 무기에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게 한다.
그 덕에 프록은 루프라는 이름을 붙여 무기를 제작했다.
그게 검이 되면 루프 소드가 되는 거니.
고리에 손가락을 걸고 굽히면 프록 특유의 둥근 세 개의 손가락 끝이 손바닥에 맞닿는다.
그 뒤는 휘두르면 되는 것.
훙, 쩡!
쇠와 쇠가 만나 시작을 알리고.
곧 검과 칼이 춤을 추며 오케스트라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따다다다다당!
허공에서 튀는 불꽃, 무지막지한 속도로 이어지는 연격.
프록은 서른 번을 넘게 제 공격을 막아 내고 간간이 반격까지 하는 상대를 보며 내심 감탄했다.
‘이 새끼, 재밌네?’
크라이스는 한쪽 구석에 앉아 있었다. 손발이 묶이지도 않았고 어디가 부러지지도 않았지만, 도망갈 순 없었다.
겨우 이틀이지만, 프록은 무식한 체력을 자랑했다.
겨우 눈 잠깐 붙이고 항상 자리를 지켰으니까.
크라이스는 볼일을 봐도 되고 식사도 문제없었다. 아예 저 프록 새끼랑 겸상도 했다.
하지만 도망가는 건 다른 문제였다.
‘내가 튀면 어떻게 되는데?’
다 죽겠지. 남은 길드원 전부가.
잡히면 자신도 죽은 길드원 옆에 같이 고깃덩이가 돼서 남을 거라는 건 당연했다.
저 프록 새끼는 그러고도 남을 것이다.
봄이 되고 한참 뒤에 온다면서 일찍도 왔다.
크라이스도 나름 믿는 바가 있긴 했다.
분대원 중 하나나 둘이라도 오면 어떻게든 될 터였다.
그러니까 렘이나 아우딘, 작센이나 라그나.
‘분대장 말고!’
문이 열릴 때, 크라이스는 기대했고.
박차고 들어온 사람을 한눈에 알아봤을 때는 실망했으며.
지금은 놀라 입을 벌린 채 다물 생각도 못 했다.
‘뭔데 이건?’
따다다다다다다당!
응접실을 부술 듯이 나는 소음의 연속.
눈앞에 보이는 건 궤적과 궤적.
칼날이 만들어 내는 무언가.
그 사이로 튀는 불똥뿐이다.
이게 뭐지?
분명 들어온 건 분대장인데, 그 분대장이.
‘프록과 맞서 싸워?’
그리 밀리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적어도 크라이스의 눈에는 그리 보였다.
엔크리드는 휘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상대의 무기를 주시하며 제 검을 옆으로 세웠다.
땅!
충격이 팔뚝을 지나 전신에 퍼진다.
그대로 힘으로 버티는 건 하수였다. 힘을 흘린다. 유검식을 섞는다. 이전에는 불가능할 것 같은 묘기가 지금은 가능했다.
까각!
칼날을 옆으로 튕겨 내듯 흘려 내곤 그대로 검을 찔러 넣었다.
훙 하고 허공을 가르는 칼날이다.
프록은 그대로 다시 검을 내리쳤다.
따당!
막는다. 또 막고 흘리고 피한다.
이런 게 어떻게 가능한가.
마법사의 가시넝쿨과 싸운 경험 덕분이었다.
수없이 쌓은 경험이 지금의 엔크리드가 검을 휘두르게 했다. 피하게 했다. 막게 했다.
기본은 수비.
막고 또 막는다.
상대의 무기는 넓적한 칼날을 가진 사냥칼 같은 거였다. 보통의 프록이 즐겨 쓰는 무기였다.
루프 소드라 하면 보통 이런 형태가 많이 보였다.
묵직함이 남달랐고, 상대는 프록 특유의 탁월한 근력으로 그걸 무슨 세검 다루듯 다뤘다.
엔크리드는 모든 걸 잊고 검에 빠져들었다.
상대의 검과 자신의 검.
점과 점을 잇는 선, 이어지는 선이 휘어지며 내려 떨어지는 벼락이 된다.
프록의 무기가 그랬다.
엔크리드는 떨어지는 벼락을 제 검으로 받아 냈다.
흘릴 수 없어 무릎이 반쯤 꺾인다. 꺾인 채로 그대로 검을 앞으로 부드럽게 내리치자.
프록이 반걸음 물러나며 제 칼을 찔렀다.
넓적한 칼날로 찌르기라니.
변칙이다.
그런데도 엔크리드는 그 찌르기를 날카로운 송곳처럼 느꼈다.
감각이 칼날 위에서 춤을 췄다.
본래도 어느 정도 예민했던 감각은 작센의 훈련 덕에 전에 없이 더 날카로워졌다.
그렇게 검과 자신과 상대만이 남은 세계.
시간의 흐름을 잊고 어울렸다.
막고 또 막고.
틈이 보이면 찌르고 내려치고 벤다.
발렌 식 용병검의 기술을 섞어도 봤다.
베는 척하다가 멈춰 찌르기.
이제는 완연하게 몸에 묻어나는 검술이다. 중검식에 이어지는 기검이라고 해야 할까.
프록은 어지간한 건 힘으로 뿌리쳤다.
인간보다 월등한 근력 덕이었다. 그에 수반하는 운동 능력과 운동 신경도 한몫했다.
따-당! 픽! 퍽!
어떤 건 피하고 어떤 건 뿌리쳐 내고.
칼날이 볼을 스치기도 했고 갑옷 위를 프록이 주먹으로 후려치기도 했다.
주먹을 받아 내며 검을 찔러 심장을 노리니, 프록이 몸을 반 바퀴 회전하며 피했다.
“그륵!”
흥분한 프록의 목구멍에서 거품 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엔크리드는 어떤 기합도 내뱉지 않았다.
그저 집중.
오롯이 하나에 집중했다.
‘흩뿌리지 말고.’
끌어모아 집중하는 것.
검을 보고 피하는 게 아니라 칼날의 감각에 의지해서 감으로 피한다.
그런 순간이 이어지며.
엔크리드는 순간 새로운 세상에 들어섰다.
고리에 걸린 프록의 손가락.
넓적한 발바닥의 흔들림.
미끌미끌한 피부 안에 감춰진 폭력적인 근육의 움직임.
그에 맞춰 자신의 손도 움직이고 팔도 내민다. 발도 떼고 몸통을 뒤틀기도 했다.
집중에 집중을 더한 순간.
점과 점도 잊고, 점이 만든 선도 잊은 순간.
엔크리드는 이어지는 전투의 향방에서 한 치 앞을 미리 봤다.
그저 지나가는 심상일 수도 있는 그런 순간.
봤기에, 보았고.
느껴지기에, 승산이 거기에 있다는 걸 알았다.
엔크리드는 그대로 행했다.
이제껏 틈만 나면 프록의 심장을 노렸다. 아니, 심장만을 노렸다.
지금의 찌르기도 마찬가지였다.
반드시 꿰뚫겠다는 의지를 담은 찌르기가 빛처럼 공간을 뚫었다.
프록이 오른발을 뒤로 빼며 스텝으로 피했다.
핑. 드득.
호심갑 위로 칼날이 스친다. 그걸 본 프록의 볼이 부풀었다.
부룩!
심장을 건드려?
참지 못한 프록의 칼날이 전보다 더 빠르게 엔크리드의 목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벼락같은 칼질이었다.
찰나라 할 수 있는 틈.
엔크리드는 찔렀던 검을 당겼다.
따-앙!
연격으로 이어지던 검 두 자루가 만나 허공에서 멈췄다.
“나랑 힘으로 싸우자는 거냐? 멍청한 인간아.”
프록이 짐승처럼 으르렁댔다.
엔크리드는 대답 대신 자신이 봤던 장면을 재현했다.
‘이렇게 하면.’
티딩.
멈춰 선 상태에서 무릎을 반쯤 굽혀 부드러움을 만들고.
상대의 힘을 받아내며 유검과 정검을 섞는다.
제힘을 믿는 프록의 칼날이 그대로 내려와 엔크리드를 이마부터 쪼갤 것 같았다.
“이런 씹, 대장!”
크라이스의 외침이 들렸으나, 둘 다 무시했고.
엔크리드는 한순간 힘을 줘, 프록의 칼면을 따라 검을 힘있게 앞으로 그었다.
일순간이지만, 프록의 힘을 밀어낸다.
티디디딩!
칼날을 타고 엔크리드의 검이 질주하고.
힘만 믿고 내리누르던 프록의 자세가 한순간 흐트러졌다.
프록이 반사적으로, 칼을 쥔 오른 팔뚝으로 심장 어림을 막았다.
심장을 노리면 또 의미 없는 일격이 되리라, 그러니.
엔크리드의 검이 부드러운 호선을 그렸다.
서걱.
노린 건 프록의 왼팔.
프록은 그 또한 피했다. 푸왁 하고 피가 솟긴 했으나, 팔이 완전히 잘리진 않았으니.
미끌미끌한 피부를 가르고 들어온 칼날이다.
볼을 부풀릴 대로 부풀린 프록의 칼날도 움직였다.
그도 당하고만 있진 않았다.
튕겨 나간 넓적한 칼날을 다시 내리꽂았다.
엔크리드는 그걸 오른손을 들어서 막았다.
시체애호가 마법사에게서 빼앗은 건틀렛 위로 칼날이 떨어졌다.
뻑! 뿌득.
듣기 고약한 소리와 함께 옆으로 칼날을 튕겨 냈다. 건틀렛 겉이 잘리고 베였으나, 손목이 잘리진 않았다.
아우딘에게 배운 타격 흘리기와 질기디질긴 건틀렛이 만든 조화였다.
“너 미친 새끼구나.”
프록이 말했다.
덜렁거리는 왼팔, 재생력이 있다고 해도 이런 게 즐거울 리 없었다.
프록은 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무서운 눈빛을 쏘아 냈다.
‘아.’
엔크리드는 ‘오늘’의 마지막을 예감했다.
오른 손목에 힘이 들어가질 않아 검도 놓친 판이었다.
왼손으로 받아 내긴 했으나.
몇 수나 버틸까.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의 일격만큼은 나름 흡족했다.
심장을 노림으로 틈을 만들어 낸 일격.
정말 괜찮았다.
프록은 재능 판독자이기도 한 종족.
그는 엔크리드를 보며 불쾌함을 느꼈다.
왜? 재능이 출중해서?
아니다. 처음 보는 타입이라서다. 이건 죽여야 했다.
반드시 죽어야만 했다.
분명 한계에 다다른 인간으로 보였는데, 어떻게 그런 짓을 했을까.
자신의 내려베기를 이용하고 심장을 노리는 것처럼 반복하다가.
‘그렇게 왼팔을 가져가?’
그 짧은 순간, 인간은 굽혀진 무릎으로 무게를 받아 내곤 발바닥으로 땅을 긁듯이 움직여 앞으로 발을 밀어 넣기도 했다.
한 수에 승부를 걸었고, 당한 건 자신이다.
만약 지금 상대의 오른 손목이 멀쩡했다면?
‘내가 지는 싸움이었다고?’
프록의 볼이 더 부풀었다. 반드시 죽여야 했다.
그의 칼이 위로 솟았다. 내려치면 끝날 순간이었다.
엔크리드는 덤덤했다. 프록은 그 태도가 더 마음에 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