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개싸움
‘이제 반반.’
손이 멀쩡한 미치 휴리어를 상대로 이길 자신은 없었다.
재능에 눈을 뜨고 오른손이 갔던 길을 왼손으로 다시 밟으며 나아간다.
이 모든 것을 다 했다고 해서 왼손을 오른손만큼 쓸 수 있는가.
아니다.
그럼 한 손으로 검을 쥔 채로 미치 휴리어의 양손이 내는 전력을 감당할 수 있는가.
‘어림도 없지.’
이미 수차례 겪어 본 일이다.
더욱이 그동안 무슨 짓을 한 건지, 저 새끼는 몸에 나쁜 버릇도 없다. 패턴을 읽고 싶어도 읽기가 어렵단 거다.
매번 응용식이 매끄럽게 튀어나오니.
여전히 기본은 정검과 유검 쪽인 것 같은데.
엔크리드의 기본은 중검식이었다. 불리한 건 아직도 이쪽이었다. 한 손으로 쓰는 중검이니.
저쪽은 엄지를 날리긴 했어도.
양손으로 검을 쥘 수준은 되니까.
수틀리면 통증을 참고 몇 번쯤 검을 휘두를 수도 있겠지.
‘어쩔 수 없지, 뭐.’
깔끔하게 검으로 목을 베고 싶지만.
그게 안 된다면.
발렌 식 용병검, 개싸움을 보여 줄 수밖에.
“살짝 미안한데.”
“무슨 헛소리냐?”
엔크리드는 진심이었다. 조금이지만 미안함을 느꼈다.
미치는 앞으로 나아감에 있어 자신을 걸림돌로 여겼다.
맞수이자 적수로 보았다.
몇 마디 말뿐이었지만, 충분히 느꼈다. 이름도 외우고 있었다.
기다렸다는 듯 자신을 보고 반가워도 했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것.
검으로 그동안 쌓은 것을 확인하고 싶은 투쟁심이다.
그래서.
‘진짜 미안하다니까.’
엔크리드는 이미 다 확인했다. 미치의 실력도 그가 쌓은 것도, 그의 투쟁심도.
그러하기에 승산이 개싸움에 있다는 걸 깨달은 거고.
다시 하루를 반복해 왼손으로, 검술로 상대를 꺾는 것이 옳을까.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는 오늘을 보내며?
아니, 그건 아닐 것이다.
엔크리드는 현재의 오늘에서 머무는 게 의미가 없다고 느꼈다.
왼손도 더 나아가려면 새로운 계기가 필요했다.
미치 휴리어는 좋은 상대지만.
‘뽑아 먹을 건 다 뽑아 먹은 것 같다.’
패턴을 읽을 순 없지만, 버릇 몇 개는 외웠다.
가령.
“여전히 이상한 새끼.”
지금처럼 왼쪽 눈썹이 움직이면 곧바로 공격이 이어진다는 것.
말이 끝나기 무섭다. 팍 하고 땅을 차고 놈이 달려들었다.
예상한, 아니, 확신했다. 상대가 저리 내달릴걸.
엔크리드는 미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발끝으로 땅을 걷어찼다.
발끝에 걸린 자갈이 미치의 얼굴로 날아갔다.
땅!
미치가 검면으로 자갈을 튕겨 냈다. 덕분에 약간 주춤.
그래도 계속 짓쳐들어 왔다.
역시나 반응이 좋다.
엔크리드는 검을 땅에 꽂곤 왼손으로 허리춤을 튕기며 앞으로 뻗었다.
삐이이익!
휘슬 대거다.
“같잖은!”
미치가 화를 내며 검을 몇 번 틀어 냈다. 무서울 정도로 눈이 좋았다. 따당, 휘슬 대거 또한 소용이 없었고.
어느새 검이 닿는 거리가 됐다.
엔크리드는 도로 검을 뽑아 찔러 넣었다.
미치는 몸을 옆으로 틀며 검을 휘둘렀다. 검날이 휘어지는 것처럼 보일 만큼 빠른 사선 베기였다.
궤적을 눈에 담고 엔크리드가 검을 옆으로 당겼다.
까-앙, 뜨드득.
맞서는 순간, 힘이 부족함을 느꼈기에 칼날을 비켜 내리며 상대의 손을 노렸다.
미치 휴리어는 양손으로 검을 잡고 휘두르고 이쪽은 한 손이었다.
밀리자마자 유검식으로 흘리려 시도했고, 그걸 느낀 미치가 힘으로 밀어붙였다.
엔크리드는 또 검을 놔 버렸다.
다시 한번 상대의 빈틈을 노려 거리를 좁히려 하자, 투둑 하고 땅을 차는 소리와 함께 미치의 몸이 일렁이더니 뒤로 사라졌다.
같은 수에 두 번 당할 놈은 아니었다.
엔크리드도 걸리지 않으리라 예상했다.
물러난 미치가 검을 다시 내리긋고.
엔크리드는 바닥에 떨궜던 검을 발로 찼다.
계산된 움직임이었다.
탁.
발등에 걸린 그립, 그대로 칼날이 앞으로 뻗어 나가며 미치의 목덜미를 노렸다.
보통은 검을 놓치면 안 된다고 배운다. 그게 검의 기본이었다.
가끔 환검을 다루는 놈들이나 검을 놓고 이런 방식의 싸움을 걸긴 하지만.
이걸 차?
변칙에는 변칙이다.
“핫!”
미치는 기합과 함께 내리치던 검을 한 손으로 잡곤 정수리 베기 하듯 그대로 그었고.
반대쪽 손에 낀 건틀렛으로 엔크리드가 찬 칼날 끝을 막았다.
팍.
막으며 검 끝을 틀어 옆으로 흘렸다.
과연 미치 휴리어였다. 건틀렛 손등 부분이 좀 파이긴 했지만, 손등에 구멍은커녕 큰 충격도 없어 보였다.
엔크리드는 모든 그림을 이미 그려 낸 뒤였기에 놀라지 않았다.
진짜 노림수는 다음이었으니까.
정수리 베기에 힘과 속도가 빠진 틈이다. 양손 베기가 한 손 베기가 되지 않았나.
엔크리드는 검을 차자마자 다시 앞으로 달렸다.
시간상으로는 검을 놓고 바로 찬 뒤, 다시 내달린 수준이었다.
그에 맞서 미치는 뒤로 물러났다가 정수리 베기의 형태로 검을 휘두른 후 손등으로 날아온 검을 막은 셈이었고.
퍽.
미치의 검이 엔크리드의 오른 어깨 위를 때렸다.
살은 내준다.
동시에 왼손을 앞으로 뻗었다. 악력은 엔크리드가 우위였다.
단숨에 목을 잡으려 하자, 미치가 뒤로 고개를 젖혔다.
아니, 허리까지 젖히며 공간을 열었다.
엔크리드는 속으로 토레스에게 감사했다.
왼손 감각을 기르는 훈련으로 그만한 게 없었으며 이번 한 수에 상대를 노리게 만들어 주었으니.
손목을 비틀어 손목 아래 근육을 움직이니, 툭- 단검 한 자루가 튀어나온다. 손목에서부터 튀어나온 단검이 엔크리드의 손에 잡혔다.
그 순간 엔크리드는 미치의 눈을 봤다.
확연히 커진 동공, 흔들리는 눈.
엔크리드는 그 눈깔을 향해 단검을 그었다.
사악!
칼날과 피륙의 마찰음과 함께다.
“끄으윽!”
통증을 씹어 삼키는 신음이 터졌다.
“음.”
엔크리드의 입에서도 작은 신음이 함께 흘렀다.
그럴 만했다.
엔크리드의 손에 들린 단검이 미치 휴리어의 눈깔을 잘랐다.
정확히는 볼에서부터 눈썹 위 이마까지 찍었고.
미치 휴리어는 제 눈을 잃으면서도 엔크리드의 배를 걷어차며 검을 안으로 당겼다.
엔크리드의 어깨 위를 때린 뒤, 걸려 있던 미치의 검이 사악- 하고 안에 받쳐 입은 가죽 갑옷을 베어 어깨에 칼자국을 남겼다.
화끈하지만, 서늘한.
쇠붙이가 어깨를 가르는 감각이다.
안 그래도 엉망인 오른 손목인데, 이제 어깨까지 베였다.
‘이거 안 좋은데.’
그렇게 생각하면서 엔크리드는 단검을 집어던졌다.
팽- 하고.
눈깔을 잃으면서도 반격했던 놈이다. 미치가 검을 휘둘러 단검을 쳐 내려 했다.
하지만 단검은 그대로 놈의 팔뚝에 박혔다.
눈 하나가 날아갔으니, 당분간 원근감이 개판일 거다.
그러니까 기회라는 것.
발렌 식 용병검 개싸움.
그건 무조건 붙어 싸우는 것, 종내에는 물어뜯어서라도 이기는 싸움을 하는 거다.
가진 걸 전부 써서, 추잡한 방법이든 뭐든.
엔크리드는 그렇게 했다.
또 검을 던지곤 냅다 달려들었다.
조금 전 배를 차인 것도 충격이 있었고 어깨도 베였지만.
심장이 쿵덕쿵덕 뛰며 몸에 피를 돌렸다.
지금은 평정심이 아니라 대담함이 필요할 때였으니.
엔크리드는 그렇게 대담하게 달려갔다.
“끄앗!”
비명과 기합의 중간쯤 되는 소리를 토해 내며 미치가 검을 휘둘렀다.
‘보여.’
그럼 피할 수 있다.
그때, 레오나를 구할 때와 같다. 날아오는 단검을 피할 때처럼.
한 점에 집중을 발동.
감으로 칼날의 궤적을 예측하고.
안으로 파고들었다.
퍽.
계산이 맞아떨어져, 칼날 대신 검을 쥔 주먹에 얼굴을 맞았으나. 턱을 바짝 당기고 이마를 앞으로 내린 채였다.
그러니, 충격은 얼마 안 됐다.
“맞을 거면 잘 맞는 겁니다. 잘 맞으면 다음 기회는 이쪽에 있는 법이죠.”
아우딘의 말이다. 그에게 배운 잘 맞는 법은 언제나 유용했다.
그리 거리가 좁혀진 순간이다.
“그래, 덤벼라. 바라던 바다!”
미치가 자신도 검을 놓고 손으로 엔크리드의 어깨를 쥐었다.
상처가 벌어지며 통증이 밀려 들어왔으나, 죽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무엇보다 엔크리드의 생각보다 상처가 옅기도 했다.
옷 안에 받쳐입은 가죽 갑옷이 잘리면서도 제 할 일을 한 거지.
서로 손이 엉킨다.
숨을 헐떡이는 남자 둘이 자갈밭을 구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미치가 분이 차오르는지 입을 열었다.
“추잡한 놈, 레슬링으로 하면 이길 줄 알았나?”
‘어.’
이길 줄 알았다.
몇 번 손을 섞어 보니 알겠던데.
발라프 식 무투를 익힌 뒤에 에일 카라즈 식의 핀과 대련하며 느낀 건데.
이쪽 계열은 재능도 재능인데, 시간을 무지막지하게 투자해야 했다.
꿈에 나올 정도로 몸에 익혀 둬야 하는 기술이란 거다.
엔크리드는 자신 있었다.
붙기만 하면, 승산은 이쪽에 있다고.
이거 때문에 개싸움도 마다하지 않았으니.
우득.
엔크리드가 팔을 꺾으려 시도하다가 귀를 물어뜯자.
“끄악!”
미치가 비명을 질렀다.
엔크리드는 그대로 상대의 발목을 잡았다.
미치의 발을 당겨 옆구리에 끼고 손으로 발등을 누르며, 양다리로는 미치의 다리 하나를 꽈배기처럼 감싸곤 손으로 발등을 눌러 꺾었다.
설명은 길었지만, 행동은 순식간이었다.
뚜둑. 뚜-욱!
끔찍한 소리, 아마도 통증도 무시무시할 터였다.
이건 당해 본 사람만 아는 건데.
부러지지 않아도 끔찍하게 아픈 부위였다.
갈비뼈에 붙인 채로 손으로 찍어 눌러 발목 뒤축을 부숴 버린 거니.
그대로 반대쪽 다리로 옮겨 와서.
휘리릭.
양다리로 상대의 다리를 감싸, 발을 다시 품에 안고 양손을 맞잡은 뒤에 회오리처럼 몸을 뒤튼다.
우드드드득.
이번에는 무릎 관절이 역방향으로 틀어지며 꺾였다.
“끄아아아아아!”
끔찍한, 참혹한 비명이 터졌다.
미치가 침을 질질 흘리며 눈에 핏발이 선 채로, 언제 단검을 뽑았는지 삐죽한 칼날로 엔크리드의 목덜미를 찍었다.
엔크리드는 그걸 몸을 틀어 피했다. 단검이 팔뚝에 푹 꽂혔다가 뽑혔다.
엔크리드는 그대로 상대의 다리를 놓고 뒤로 굴렀다.
그거로 끝이었다.
이미 저쪽은 전투 불능이었으니.
“후우.”
엔크리드가 깊은숨을 내쉬었다. 그도 몸이 정상은 아니었다. 무리한 관절기는 제 몸에도 충격을 주는 법이니.
거기에 칼질에 팔도 찔렸고.
당겨 베서 생긴 어깨 상처도 만만치 않았다.
어느새 옷의 반이 축축해졌다.
전부 자기 피일 터였다.
물론 그래도 미치보다는 엔크리드의 상태가 몇 배는 더 나았다.
“크라이스, 내 검.”
비전투원이라곤 해도 그대로 도망갈 수는 없었는지, 주변에 있던 크라이스가 잽싸게 엔크리드의 검을 들고 다가왔다.
그걸 왼손에 쥐자, 팔뚝에서 피가 울컥 흘렀다.
이쪽은 생각보다 상처가 깊었다.
“씨, 죽는 줄 알았습니다. 대장.”
크라이스의 말에 답할 여력도 없었다.
엔크리드는 검을 들고 다가갔다.
팔과 어깨는 다쳤어도 발은 멀쩡하니.
“소대장님!”
그러자 기습한 적군 병사 몇이 반응했다. 미치 휴리어가 쓰러진 걸 보고 덤빈 건데.
늦어도 한참 늦은 참이었다.
적병 전부는 자신들의 소대장, 미치 휴리어가 질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천재였다. 재능을 타고난 남자였다.
노력하지 않는 천재.
한때 그런 별명을 지녔던 남자가 전장에서 무슨 일을 겪었는지, 돌아온 뒤부터 밤낮으로 검을 휘둘렀다.
저렇게 죽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
이제 빛을 발하기 시작한 별인데.
검의 격돌도 아니고 단검을 던지더니.
양쪽 다리가 박살 났다.
이건 뭔가. 이건 대장이 원하는 싸움이 아니다.
검을 들고 싸워라.
정당하게 검대 검으로 결투로 그렇게 승부를 나눠라!
부하 대부분의 마음이 이와 같았으나.
“이건, 이걸 원한 게 아니다.”
미치 또한 같았다.
검 끝을 바닥으로 땅과 수직으로 든 엔크리드와 눈이 마주친 미치가 마저 입을 열었다.
“너, 너.”
“여긴 전장이야.”
엔크리드가 말하고 검을 꽂았다.
푹.
뒷덜미를 관통한 칼날이 목 앞으로 빠져나와 까각 소리를 내며 자갈 몇 개를 갈랐다.
미치 휴리어는 눈을 부릅뜬 채로 꺽꺽 하고 피를 토하며 바닥에 처박혔다.
칼날을 목의 장식품으로 삼아 꽂고서.
곧 고개가 옆으로 꺾였고.
“……죽여 버려!”
흥분한 적병 몇이 엔크리드에게 달려들었다.
“병신들.”
엔크리드는 그들을 욕했다. 오늘을 그리 수차례 반복하며 생각한 건데.
아군 지휘관이 머저리도 아니고, 적습을 이 정도로 예상하지 못했을까?
아니지.
오히려 이걸 기다린 거다.
물론 상대도 이 모든 걸 알면서 온 걸지도 몰랐다.
전장은 본래 먹고 먹히는 싸움인 법이니.
전술이란 거짓과 기만으로 속이는 기법 아니겠나.
그러니까 요는, 시간만 끌면 되는 거였다.
따다당!
적병 중에 미치 수준의 실력자는 더 없었다.
엔크리드의 왼손에 든 검이 쑥하고 미치의 목에서 뽑히고 곧 나비처럼 날며 상대의 창날을 쳐 내고 막았다.
섬세함이 깃든 검이다. 중검식과 유검식, 쾌검까지 묘하게 섞인 듯한 그런 검.
“합류한다! 다 쓸어!”
벤젠스도 살았는지, 뒤에서 외침이 들렸다.
상대는 정예병이지만, 그렇다고 수적인 열세를 이길 순 없다.
무엇보다 궁병이 섞이면 뭐, 답이 없는 법이다.
“쏴.”
딱 봐도 소대급 병력, 마흔 명의 쇠뇌병이 남은 적병을 고슴도치로 만들기 시작했다.
누군가 궁병대를 수습해서 데려왔다.
그걸로 싸움은 끝이라고 봐야 했다.
자신도 당해 봐서 잘 알지 않나.
모인 궁병이 쏘아 대는 화살 다발을 다 쳐 내고 피할 순 없다는 걸.
엔크리드는 거기까지 보고 주저앉았다.
진짜 몸이 남아나질 않는 기분이었다.
‘더럽게 힘든데.’
그래도 남은 건 있다. 왼손이다.
그게 못내 뿌듯해 웃음이 나왔다.
개싸움을 통해 살아남은 것 또한 자신이었다.
살아남고 오늘을 넘고.
새로운 길을 향해 나아가고.
찢기고 바란 꿈을 누가 어설피 꿰매 둔 듯한 기분, 엔크리드는 그런 걸 느꼈다.
봄바람이 불어오는, 전장이 된 진지 한복판에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