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 몸부터 회복합시다.
팅.
칼날을 손가락으로 튕겨 보니, 맑은소리가 울렸고.
빛에 비춰 보니 은은한 푸른빛이 감돈다. 독특한 철을 썼을 것이다.
‘발레리산 강철은 아닌 것 같고.’
미치 휴리어를 죽인 뒤, 냉큼 챙겨 온 검이다. 딱 봐도 고급, 상급, 비싼 검이었다. 놔두고 올 수가 있나.
어쨌든, 크라이스라면 알까?
엔크리드가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세 걸음 거리 옆, 앉아서 자신을 빤히 보는 크라이스가 있었다.
그 큰 눈으로 멀뚱히 시선을 던졌다. 궁금한 게 많은 눈치였다.
엔크리드는 마음을 열고 물었다.
“왜?”
검을 만든 철에 관해 물어보기 전에, 일단 저 이상한 눈빛에 답을 해 줘야 할 듯싶었다.
“신기해서요.”
“뭐가.”
“왼손.”
말하며, 크라이스는 눈으로 엔크리드의 왼손을 슬쩍 봤다.
본래 저리 왼손을 잘 썼던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동안 하루 이틀 함께 있었던 게 아니지 않나.
왼손, 너무 신기하다.
천재라는 게 이런 걸까.
자신은 검술이나 체술 따위에 재능이 없으니 그냥 봐서는 모르겠지만.
‘그동안 평범하지 않았나?’
하는 짓 말고, 실력은 평범 축에 속했던 것 같은데.
자신을 구해 줬을 때, 그러니까 반쯤 목숨 걸고 타인을 구하는 걸 보고, 뭐 이런 인간이 다 있나 싶었었다.
‘목숨 걸고 다른 사람을 지키는 거, 그런 건 말이 안 되니까.’
같은 분대원이라고 해서 구해야 한다? 그때 얼굴 본 지 일주일도 안 됐을 때였던 것 같은데.
그때의 실력과 지금은, 격차가 컸다.
기습한 적의 지휘관은 한눈에 봐도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그 보통내기가 아닌 자의 검을 왼손 하나로 받아 내?
“꾸준히 훈련해 뒀다.”
엔크리드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크라이스는 그러냐고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물었다.
“그, 음, 기습한 지휘관을 죽인 건요?”
왼손이 문제인가, 그 전투는 무엇이었나.
치열함? 아찔함? 그런 것이 교차한 현장이었다. 수틀리면 죽는 건 소대장이었다.
그랬다면 벤젠스인지 뭔지 하는 소대장과 자신, 에스터까지 손에 손, 손에 발을 잡고 죽음이라 부르는 강을 건넜을 건데.
그런데 그 아찔한 상황에서 소대장은 태연했다. 다가오는 이가 제 상대라는 듯 당연하게 맞섰다.
“개싸움.”
이번에도 대수롭지 않은 답이 돌아왔고.
크라이스는.
‘늦깎이 천재인 거로.’
재능이 뒤늦게 터진 거로.
그렇게 인지하고 끝내기로 했다.
더 깊게 파고들 이유도 필요도 없었다. 호기심과 별개로, 딱 봐도 나올 대답이 없지 않나.
무슨 의심을 하려고 해도 뭐가 있어야 하지.
뭔가 대단한 비밀이 있다? 여기에 그럴 만한 일이 뭐가 있다고.
혹시 소대장이 앞날을 예지하는 점쟁이라서 그 순간에 일어날 일을 전부 알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건 말이 안 되지.’
어떤 예언가도, 점쟁이도 이렇게까지 세심하게 상황을 예측할 순 없는 법이다.
하물며 크라이스는 그런 점쟁이 대부분이 그저 푼돈을 벌겠다고 발악하는 사기꾼들일 뿐이라 생각했다.
‘세상은 크로나.’
크로나로 움직이고, 크로나로 무너진다. 나우릴리아와 아즈펜이 싸우는 이유?
자기가 볼 땐 하나다.
그린 펄 평야, 이곳을 차지하는 왕국은 그야말로 제2의 곳간을 얻는 것과 같으니.
‘나라도 먹겠다고 덤비겠다.’
그러므로 두 국가의 전쟁은 필수 불가결이라 할 수 있었다.
전쟁과 투쟁의 시대에서 이득을 위해 검과 창을 드는 건 너무도 당연한 거니까.
그러니 크로나에 보탬이 되지도 않을 엔크리드의 천재성은 여기서 관심을 거둬도 되는 거고.
“이거 무슨 철 쓴 것 같냐?”
잡생각의 끝, 엔크리드가 상대 지휘관이 쓰던 검을 들이밀었다.
그 와중에 이걸 챙겨 왔네.
“좋은 철이요.”
“그딴 대답이나 들으려고 물은 것 같냐.”
당연히 아니겠지.
고심할 것도 없었다.
“아즈펜 왕국에 유명한 철광석 산지가 하나 있는데, 뎀프라고.”
“뎀프? 뎀프, 뎀프. 들어 봤는데. 그 강과 산 사이에 숨겨진 마을이라는?”
홀로 중얼거리던 엔크리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대륙을 떠돈 경력이 꽤 됐다.
크라이스는 고개를 끄덕이고 답했다.
“네, 그 뎀프의 철이 이렇게 묘한 빛깔을 보인다더라고요. 연한 파란빛부터 시작해서 더 진해지고, 결국에는 아무 색도 안 나오는 게 제일 상질의 철이라곤 하는데.”
어디까지나 들어서 알고 있는 얘기다.
다만, 하나는 확실했다. 뎀프산 철로 만든 검이라.
발레리산 강철보다도 비쌀 것이다. 누아르산 연철보다도 비싸겠지.
그러니 이건 꽤, 매우, 상당히 비싼 검인데.
“그거 팔면…….”
“안 팔아.”
“에? 검 바꾸게요?”
전장에 나선 이들에게 손에 익은 무기만큼 중요한 건 없다. 이건 상식이다. 크라이스도 아는 사실이다.
그러니 소대장이 제 손에 익은 검을 바꿀 일은 없을 것이다.
“둘 다 쓰면 어떨까.”
이건 크라이스를 향한 말이 아니었다. 홀로 중얼거리는 말이지.
서늘함 대신 온기가 섞인 봄바람이 엔크리드의 머리칼을 흩날렸다.
흩날린 머리카락 사이, 엔크리드의 시선이 검을 바라봤고.
크라이스는 그런 소대장의 눈을 봤다.
묘한 눈빛이라고 해야 할까.
뭐랄까.
선명하게 빛나는 눈, 생기와 활기가 넘치는 눈,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은 소년의 눈빛 같았다.
그 눈빛을 보니 크라이스는 차마 검을 팔라고 더 종용할 수 없었다.
소대장, 엔크리드의 파란 눈이, 에스터를 닮은 호수 같은 그 눈이 참으로 신이 나 보였으니까.
엔크리드는 크라이스가 자기를 보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
왼손을 잘 쓰게 된 이유? 그것도 딱히 대단한 핑계를 댈 필요가 없었다.
아니, 사실 변명을 댈 게 없다.
설명이 가능한 부분이 아니니까.
‘그동안 단련했었다’라고 말하는 게 전부라는 거다.
뭔가 천재 비슷한 무언가가 된 것처럼 들리긴 하겠지만.
달리 방도가 없음에야.
무엇보다, 엔크리드는 이번에 재능 비슷한 뭔가를 느꼈었다.
단숨에 도약하는 그런 기분.
실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하는 그런 경험.
백 번 휘두를 걸 단 몇 번 휘두름으로 깨우치는 것.
‘신기하긴 한데.’
그게 반복될까? 아니, 모르지. 사실 알 필요도 없었다.
그저 지금처럼 하면 되는 거니.
묵묵히 다시 걸으면 될 테니.
엔크리드에게는 처음부터 재능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몸이 회복되면.’
이것저것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후방 진지, 의무 막사 앞에서 간이 의자 삼은 바위 위에 앉아, 엔크리드는 복기에 심취했다.
단련, 왼손, 오른손, 개싸움, 미치 휴리어, 그의 검, 싸움, 전장.
그리 머리를 굴리고 있자니, 또 당장 일어나 움직이고 싶었지만.
“몸 굴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제가 여기서 왜 소대장을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크라이스가 옆에서 툭 말했다. 그래, 그 말이 맞지.
최소 며칠은 무조건 휴식을 취할 것.
다친 자신을 보고 의무병이 한 말이다.
후방 진지는 보급대가 맡았고, 방어를 위해서는 2중대 3소대, 그러니까 벤젠스 소대가 남은 상태였고, 곧 지원군이 합류한다고 했다.
지원군이 오면 엔크리드는 전방으로 향하기로 했고.
그러려면 일단 몸이 회복되어야 할 터였다.
오른손은 아직 부목을 뗄 수 없고.
어깨에는 그리 깊진 않지만, 자상이 남았다.
왼쪽 팔뚝에도 단검에 구멍이 났고.
하나하나 따져 보면 다 큰 부상은 아니지만, 크게 움직이면 덧날 상처이긴 했다.
‘이거야 원.’
무리한 관절기를 시도한 탓에 몸 여기저기가 쑤시기도 했다.
고립의 기법으로 단련하지 않았다면.
한 점의 집중이 없었다면.
야수의 심장이 받쳐 주지 않았다면.
칼날의 감각으로 느끼지 못했다면.
‘죽는 건 나였겠지.’
엔크리드는 멍하니 앉은 채로 회복에 전념했고.
쉬는 내내 머릿속으로 검을 휘둘렀다.
처음에는 오른손만으로, 나중에는 양손으로 검 하나를 쥐고.
심상 단련의 끝, 엔크리드는 오른손에는 제 검을, 왼손으로는 미치 휴리어의 검을 나눠 쥐었다.
‘될까?’
모른다. 다만 시도해 보고 싶었다. 뭔가 손에 딱 맞는 그런 느낌이 들어서.
쌍검이라.
‘일단 근력부터.’
그게 선행되어야 어디 시작이라도 해 볼 것이다. 두 손으로 검을 잡고 휘두르는 것과 한 손으로만 휘두르는 건 완전히 다른 얘기다.
자신을 가르친 교관 중에 이런 걸 보고 욕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거, 그러니까 어쭙잖게 검을 두 개 쓰는 걸 말이다.
“쌍검? 죽기 딱 좋은 지랄이라고 본다. 검 하나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서 쌍검? 어지간한 기검 숙련자도 잘 하지 않는 짓이다.”
딱 잘라 말한 교관이었다. 그 교관을 어디서 만났더라.
대도시였다.
정련된 검술은 정련된 육체에서 나온다고 했던 작자.
그의 가르침을 받고 난 뒤, 꽤 씁쓸한 경험을 했었다.
머리를 굴리고 있자니, 슬슬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아프면 잘 먹고 쉬어야 했다.
“식사요.”
마침 크라이스가 먹을 걸 가져다줬다.
얇은 밀 빵과 두툼한 베이컨, 말린 과일부터 치즈까지.
상찬이었다.
“보급 천막을 털어 왔냐?”
“아니요. 보급중대장이 소대장한테 고마운 것 같던데요? 수틀렸으면 뭐 자기 목이 날아갈 뻔했으니까요.”
말하며 크라이스가 손날로 제 목을 탁탁 쳤다.
그럴 만도 했다. 후방 진지는 보급을 위해 존재한다.
적습에 탈탈 털리면 이건 누구의 잘못일까.
책임자는 누구인가.
물어 뭐하나, 보급중대장이 책임자이며 그의 잘못인 거다. 보급 천막 어디에 불이라도 났으면 화끈하게 참수형을 당할 뻔한 거다.
전투에 패배한 지휘관은 용납해도 경계에 실패한 지휘관은 용납할 수 없는 법이니.
“먹자.”
엔크리드는 씹고 삼키고 마셨다. 술 대신 물을 마셨다. 지극정성까진 아니더라도 크라이스가 옆에서 그를 챙겼다.
그렇게 사흘.
“출발한다. 합류할 거냐?”
벤젠스가 완전 무장을 한 채 물었다.
지원군이 후방에 도착했다.
앞쪽 전선 분위기가 더 팍팍해지고 있다고 들었다.
제 소대원이 전부 전방에 있으니 엔크리드도 가야 했다.
검에 썰리고 찔린 상처가 다 낫진 않았지만, 걷는 것 정도는 문제없었다.
“가야지.”
옆에서 크라이스는 묘한 생각에 잠겨 있는 채였다.
‘소대장이 검 쓰는 걸 보니까.’
어디서 죽을 것 같진 않고.
후방에 빠져 있지 말고 따라다녀 볼까?
그러다 떨어진 전리품 몇 개만 챙겨도 한몫 두둑이 챙길 것 같은데.
무엇보다 보급 지휘관이 교체되고 지원군으로 온 3연대 소속 병사 중에는 아는 얼굴이 없기도 했다.
후방에 남아서 버티기 어렵다는 소리다.
이왕 이렇게 된바.
‘나가서 전리품이나 챙겨 보자.’
그렇게 크라이스도 합류.
“냐아.”
에스터는 사흘 내내 쉬었음에도 여전히 힘이 없어 보였다.
엔크리드가 그런 에스터를 안았다.
그리 무겁진 않았다.
얘는 뭘 잘 먹고 다니긴 하는 건가.
왜 몸이 전혀 안 크는 것 같지.
어린 짐승은 원래 쑥쑥 크고 그러지 않던가.
처음 봤을 때랑 덩치가 거의 변하지 않은 것 같은데.
“너, 잘 먹고는 다니는 거냐?”
엔크리드가 에스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괜한 말에 에스터가 끔뻑거리며 위로 고개를 올렸다.
그곳에 자신과 비슷한 눈을 한 남자가 있었다.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건지.
이번에도 뒈질 뻔했으면서.
툭툭.
에스터가 앞발로 엔크리드의 가슴을 때렸다.
남 걱정하지 말란 소리였는데.
“그래, 여유 생기면 먹을 걸 좀 챙겨 주마.”
이 작자가 뭘 잘못 알아들었다. 뭐, 크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멍청한 인간아, 가자.
에스터는 풀리지 않은 피로에 눈을 감았다.
엔크리드는 걸음을 뗐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양쪽 허리의 검이 두 자루로 늘었다는 것뿐이지.
“검이 두 자루?”
벤젠스의 물음에 엔크리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왼손을 쓰는 걸 봤고, 대련도 해 봤다.
워낙 신기한 짓을 많이 하는 놈인지라.
그러려니 했다.
그렇게 벤젠스 소대에 합류한 채 전방으로 행군, 이동 중 이상은 없었다.
전방에 도착하니, 싸늘한 전장의 공기가 그들을 반겼다.
피 냄새, 쇳내가 뒤섞인 길을 걷는 사이 하늘이 어둑어둑해지더니 비라도 내릴 것 같았다.
칙칙한 물 냄새와 피와 쇠, 여러 가지 냄새가 섞여 죽음의 향기를 풍기는 곳.
전방 기지였다.
그리고 이곳에.
“염병, 기다리다 목 빠지는 줄. 어라, 뭐요? 쉬고 오라고 했더니 왜 더 다쳤어? 앙?”
“어쩌다 보니.”
엔크리드의 소대원이 있었다.
숫제 성을 내려는 렘을 대강 손을 들어 말리고.
어째 이들과 떨어지기만 하면 뭔 일이 터지는 것 같은 그런 기분도 들었으나, 어쩌겠나. 일이 이렇게 돌아간걸.
복귀 신고를 벤젠스가 대표로 한 덕에 곧바로 막사로 합류한 엔크리드는 후방에서 있었던 일을 단출하게 말했다.
“나 없는 곳에서 자꾸 재밌는 걸 해.”
흥분했던 렘이 코를 파며 투덜거렸다.
그거로 끝이다. 살아남았고, 여기에 있으면 다 된 거다.
엔크리드가 천막 한쪽에 자리를 잡아 전장 상황이나 읊어 보라고 하니, 작센이 옆에 다가와 조곤조곤 말해 줬다.
“서로 간만 보고 있습니다.”
와 보니 그동안 뭐 이렇다 할 전투가 없었단다.
이곳에 모인 병력은 지원군 포함 보병 2개 대대 이상이다.
그러니까 천 명 이상의 보병이 뭉쳤다.
여기에 직할대도 있고 정찰대, 보급선을 지키는 후방 호위까지.
‘이게 전면전의 시작이라고 했던가.’
본대 전투.
그러니까 기사와 마법사, 주술이 판을 치는 그런 전장은 그린 펄 평야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양군 모두, 이쪽 싸움을 주시하고 있다고.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으나, 분위기가 그렇게 꼬였다고 들었다.
우회로를 막기 위한 양쪽 보병 전투가 모든 전투의 시작이 됐다는 건.
누가 이기고 시작하는가, 이곳에서의 전투가 그걸 판가름하는 전장이 돼 버렸다.
이 싸움, 당연히 본대 전투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단순하게는 사기 문제부터 시작해서 이쪽 전장에서 승리하면 아군이 활용할 수 있는 필드도 넓어질 것이다.
우회로를 여는 셈이니 별동대를 쓰기도 좋을 거고.
양 국가의 본대는 서로 눈치만 보며 보병 외 지원군 투입은 꺼리고 있는 상태, 그러니까 대치 중이란 소리였다.
당장이라도 전면전이 벌어질 것 같기에 부대 내에는 파리한 긴장감이 가득했다.
다들 신경이 날카로워진 게 눈에 보일 정도였는데.
미치광이 소대에는 적용되지 않는 얘기였다.
그러니까 엔크리드는 ‘아, 싸움이구나. 곧이구나. 그럼 뭘 해야 하나? 단련이나 하자.’라는 생각으로 무덤덤했다.
새벽 나절에 일어난 엔크리드는 평소와 똑같이 고립의 기법으로 몸을 단련.
그걸 본 불침번은 역시 미치광이 소대장답다고 생각했다.
사고뭉치 분대장부터 이어져 온 유구한 전통을 보는 기분도 들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검을 휘두르던 그 악바리.
그게 저 작자다.
“소대에 정상인이 없네.”
불침번이 엔크리드를 보고 중얼거렸다.
“새벽부터 움직이시는 겁니까, 형제님.”
해도 뜨기 전, 불침번은 친절한 미치광이와 훈련 미치광이가 서로 몸을 잡아 꺾는 걸 보고 눈을 돌렸다.
얘기 몇 마디 나누는가 싶더니, 갑자기 손목을 비틀고 껴안고 난리다.
‘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
당장 죽고 죽이는 전투가 벌어질 것 같아서 오금이 저리는 판에.
안 그래도 사기가 바닥이라 부대 분위기가 최악 중의 최악인데도.
저들은 별짓을 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