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늘만 사는 기사-122화 (122/170)

122. 어이, 물건도 아직 덜 여문 놈들아

“며칠 사이에 뭐가 또 바뀐 것 같습니다. 형제님.”

수수한 웃음 뒤에 숨겨진 악마적인 혀 놀림의 대가, 아우딘이다.

툭하면 훈련을 그만하라, 쉬어도 된다고 말해 놓고선, 정작 그리하면 사람을 쥐잡듯 잡았다.

아니, 실제 쥐도 그렇게는 안 잡을 거다.

물론 엔크리드는 그게 퍽 만족스러웠다.

제 가슴 속에 있는 탐욕은 어디로 가지를 뻗었나.

배움, 나아가고자 하는 걸음에 있다.

그러니 이런 가르침이라면 언제든 환영이었다.

아침 안개를 헤치고 나아간 덩치 아우딘의 옆, 엔크리드는 어깨너비로 벌린 채로 천천히 앉았다 일어나며 대퇴부 근육에 부하를 주는 중이었다.

그런 엔크리드에게 아우딘이 대뜸 손을 뻗었다.

엔크리드가 반사적으로 그 손을 막았다. 탁탁, 레슬링 또는 체술, 발라프 식이라면 격투술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기술이다.

한 번 쳐 낸 손이 연속으로 꺾이며 엔크리드의 몸을 노렸다.

어깨를 잡으려는 아우딘의 손을 잡아 밀고 꺾고 어깨로 막자, 발이 들어오고.

그걸 쳐 내면 다시 어느새 커다란 손바닥이 시야를 가리며 몸 전체로 짓누르듯 밀쳤다.

그리 딱 달라붙은 채로 아우딘이 입을 열었다.

“많이 늘었군요.”

후방 진지에서 봤을 때도 들었던 말이다.

에일 카라즈 식 체술을 몸에 붙인 핀 덕에 기술 자체는 늘었으나, 그래도 아직 아우딘을 당해 낼 수 없었다.

애초에 신장, 골격이 다르고 근육의 밀도도 달랐다.

아우딘은 엔크리드보다 완력도 월등했고, 커다란 덩치에 맞지 않게 순발력도 탁월했다.

어느 순간 아우딘의 손이 보이지 않는 각도로 들어와 엔크리드의 목덜미를 잡아챘다.

아우딘이 힘으로 끌어당기니, 어떻게 반항할 수가 없었다.

근접전, 레슬링과 체술의 간격에 들어오면 몸집조차 무기라 했다.

체격이 다르면 붙지 마라.

아우딘이 레슬링을 가르치며 몇 번이고 한 말이다.

엔크리드는 역으로 체격 차를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묻기도 했었다.

“기술이 다르면 됩니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어떻게 하긴, 죽어라 굴러야지.

침대 위에서 몇 번이고 꺾이고 맞으면 들은 말이다.

아우딘은 어느새 엔크리드를 제압하곤 굵은 목소리로 노래 비슷한 걸 불렀다.

“주께서 말씀하시니, 관절을 또각 부러뜨리라 하셨으니.”

아니, 신이 그런 말을 하진 않을 것 같은데.

당연히 농담이었다. 아우딘은 목덜미와 한쪽 어깨를 내리누른 채로 더 힘을 주진 않았다.

물론 이대로만 있어도 충분히 괴롭다.

‘감각으로는 잡아챘는데.’

반응이 느렸다. 여러 가지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중 부상도 이유 중 하나가 될 것이고.

통증은 반응을 느리게 하는 원인이 되는 법이다.

“전투에 나서면 또 싸우겠지요. 소대장 형제님은.”

그걸 말이라고.

당연한 소리였다. 오른 손목이 좀 거슬리긴 해도, 아예 못 쓰는 것도 아니고.

하물며 자신을 이곳에 부른 이유가 이들 때문인바.

전투가 일어나면 당연히도 전장에 나서고 또 싸울 것이다.

“이런 몸으로는 무리입니다. 형제님.”

제압한 채로 아우딘이 말했다.

오른 어깨는 베였고, 왼쪽 팔뚝은 찔렸다. 오른 손목은 아직도 부목을 댄 채고, 몸 곳곳에 멍도 들었다.

작센의 연고도 진즉에 다 써 버린 탓에 약초 따위를 개어서 붙여 놓은 게 전부였다.

하도 다치다 보니, 연고가 남아날 턱이 없었다.

애초에 많은 양도 아니었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작정인데.”

무슨 짓인가 싶었다.

제압한 뒤에는 언제나 대련 과정을 되짚는 과정이 있었다.

이제 풀어주고 그 과정에 들어설 때였는데.

아우딘의 억센 손아귀의 힘이 그대로다.

“소대장 형제님.”

그런 상태로 자신을 부른다. 엔크리드는 타의로 반쯤 상체를 수그린 채 답했다.

“왜.”

새벽안개가 자욱하게 껴서 주변이 선명히 보이지 않았다.

몇 걸음 안쪽에 들어와서야 서로 얼굴이 확인될 그런 안개다.

한쪽에는 불침번이 있었지만, 그도 처음에는 힐끗거리더니, 지금은 이쪽 일에는 관심도 없었다.

상황을 인지한 아우딘은 결심했고 행동했다.

부스으.

엔크리드는 생전 처음 들어 보는 소리를 들었다.

그것도 귀가 아니라 몸에 직접 때려 박는 그런 느낌의 소리였다.

곧 새벽안개가 낀 강변에서는 흔히 느낄 수 없는, 아침 해가 뜨기 전인 이 시간에는 더욱 느끼기 어려운, 그런 따스함이 몸에 스며드는 듯했다.

오후의 햇살, 한가로이 앉아 책이나 읽는 그런 기분이었다. 또는 낮잠이라도 자면 딱 좋을, 무언가다.

이런 걸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안온함?

하여간 뭔가가 전신에 스며들었다.

안온함, 따뜻함, 안락함과 더불어 다친 곳에서부터 피어나는 은은한 저림까지 짧은 순간이 지나갔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다.

그제야 아우딘의 억센 손이 엔크리드의 목을 놓고.

엔크리드가 고개를 들어 아우딘을 바라봤다.

종교쟁이 분대원, 한때는 그를 그렇게 불렀다.

그는 사제만큼이나 신실해 보였으며.

신을 믿는 사제는 가끔 이적 또는 기적을 보이곤 했다.

사람들은 그 기적을 신성력이라 불렀다.

“이거.”

“아니요. 형제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 겁니다. 주께 맹세코 그리하는 겁니다.”

엔크리드는 아우딘의 눈을 바라봤다. 옅은 노란색이 감도는 흐릿한 눈동자 안에 빛이 머물렀다.

빛이, 광휘 따위가 머무른 것 같았다. 엔크리드의 눈에는 그리 보였다.

“맹세해 주시지요.”

“그러지.”

아우딘은 더 말하지 않고 몸을 돌렸다.

“강변의 안개 또한 주의 축복인지라.”

한쪽으로 물러난 아우딘이 무릎을 꿇고 아침 기도에 들어갔다.

이거야 원.

엔크리드는 머리를 몇 번 긁적였다.

‘대체 뭘 믿고.’

가끔 제 소대원이 자신에게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궁금하긴 했다.

보기만 해도 불쌍해 보이나?

막 바둥거리는 걸 보면 아련해지고 그런가?

모른다. 궁금증은 금세 스러졌다.

그게 뭐가 중요한가.

아우딘 픔레이, 아무도 그가 신성을 다루는 걸 모른다. 신성을 쓰는 것 자체가 계율 따위에 엮여 있을지도 몰랐다.

확실한 건 느낌이지만, 아우딘이 위험을 감수했다는 거다.

“주여, 용서하소서.”

기도의 시작이 저런 걸 보니, 맞는 것 같은데.

‘이렇게까지 해 줄 필요는 없지 않나.’

그래도 받은 걸 물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

엔크리드는 손목 붕대를 풀었다.

오른 손목을 몇 번 까닥였다.

그동안 수차례 구르고 다치며 얻은 경험으로 봐서는.

‘하루 이틀이면.’

손목은 쓰기에 무리가 없을 거고.

그 외 붕대 안에 감춰진 상처도 상당히 호전된 듯했다.

아릿한 통증이 상당히 사라졌으니.

“고맙다.”

기도하는 덩치 큰 소대원에게 말했으나, 아우딘은 기도에 심취한 채로 답이 없었다.

‘주여.’

곳곳에서 풍겨 오는 젖은 흙의 냄새 사이로 날 선 전장에서 으레 풍기는 죽음의 냄새가 섞였다.

아우딘으로서는 분대장을 그냥 두고 보기 어려웠다.

‘주여, 당신이 언제나 그 자리에 계시기에.’

대답 없는 제 주인께 묻노니.

지금 자신이 한 행동은 과연 옳은 것인가.

신성을 썼다는 게 발각되면 이단 심문관이 올 것이다.

많은 제약을 안고 교단을 나온 몸이다.

맹세까지는 아니어도, 그때 서약 수준으로 몸에 금제를 가하기도 했다.

금제를 견디고 신성 일부를 발휘한 탓에 누군가가 머리통을 송곳으로 쑤시는 통증이 일었다.

그래도.

‘도저히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주여.’

제 몸을 노력이란 불꽃에 태우는 작자가 보답받는 중이었다.

그 불꽃을 여기서 꺼뜨리게 둘 수는 없었다.

변덕이라고 해도 좋았으나, 아우딘은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고, 그렇게 했다.

엔크리드를 만나고, 주의 말이 자신의 안에 있다고 믿었다.

‘그러니 마음 가는 대로 하겠나이다.’

아우딘은 기도를 끝마쳤다.

어느새 오전 햇살이 비추며 안개가 걷히는 중이었다.

신성을 발휘해 몸을 회복시켰다곤 해도 한 번에 모든 상처가 치유되진 않았다.

그렇게 하면 예민한 누군가는 발휘된 신성을 느낄 것이고, 금제 때문에 이보다 더 신성을 쓰기도 힘들었다.

그래도 소대장을 보니 전보다는 훨씬 나아 보였다.

“후.”

숨을 내뱉고 몸을 움직이는 엔크리드의 몸이 한결 가벼워 보였으니.

신과 사람, 축복과 저주.

화두는 아직 풀리지 않았으나.

적어도 저런 소대장을 보고 있으면 제 마음이 편하긴 했다.

통증을 견디는 탓에 미간을 찌푸렸으나, 아우딘은 오늘 일을 후회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예감이자, 직감이었고 확신이었다.

* * *

오전 훈련을 끝내고 붕대를 새로 감아야 할 참이었다.

“왕눈아.”

크라이스를 부르는데.

막사 천막 입구가 펄럭이며 열렸다.

“여긴가?”

녹색 눈의 아담한 체구.

아담함과 어울리지 않는 실력의 소유자이자, 상관이었다.

달리 말하면 현재 미치광이 소대를 만드는 데 일조한 사람이라고 해도 좋았다.

독립 소대로 꾸리고 엔크리드 없이 이들을 전장으로 데려온 요정이니.

“다쳤다고 들었는데?”

“네.”

들어오자마자 대뜸 엔크리드를 보고 말하더니, 중대장이 뭘 던졌다.

휙 하고 날아온 걸 엔크리드가 잡아챘다.

둥근 나무통이었다.

작센에게 받은 연고랑 비슷한 크기의 납작한 나무통.

뚜껑에 잎새 모양의 각인이 새겨진 물건으로, 어지간히 손재주가 좋은 사람이 만든 거로 보였다.

“중대장님?”

“발라라. 요정의 약은 천금을 줘도 못 구한다. 약혼 선물이다.”

엔크리드는 여전히 요정의 농담에 익숙해질 수 없었다.

무엇보다 지금은 예상치 못한 순간이었던지라, 멍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대뜸 들어와 뭘 던지곤 약혼 선물이라니.

“그 표정 좋군. 보기 좋아.”

중대장은 그 말만 남기고 돌아서 나갔다.

정말 연고만 주러 온 거였나?

“나 진짜 궁금해졌습니다. 소대장님, 대체 비결이 뭡니까?”

크라이스가 옆에서 보다가 물었다.

엔크리드도 황당함에 입을 열었다.

“나도 궁금한 참이다.”

아니, 왜 갑자기 와서 연고를 던져 주고 가나.

중대장의 말대로 요정은 이런 약을 다루는 데 탁월한 재주가 있는 이들이다.

의무 막사 암살 사건 때 독을 판별하는 걸 봐서는 중대장도 약학 쪽에 조예가 깊은 듯했고.

“제 것보다 나을 것 같네요, 마성이 이럴 때는 쓸 만하군요.”

뒤에서 작센이 말했다. 한가로이 제 장비를 닦고 정비하며 고개도 안 돌린 채다. 안 보는 것 같으면서도 주변 모든 것에 신경을 쓰고 있는 놈이다.

그러니 전장 상황도 가장 면밀하게 잘 아는 거고, 분위기도 예민하게 받아들일 터였다.

“그런 이유는 아닐 것 같은데.”

엔크리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런 농담을 한다는 것 자체가 그런 이유가 아니라는 방증 아닌가.

옆에서 렘이 낄낄 웃기 시작했다.

“애는 셋만 낳으슈.”

미친 자식.

“소대장님. 그러지 말고 군대 나와서 저랑 같이 샬롱이나 차립시다.”

왕눈이는 한술 더 떴다.

곧 그런 재능은 쉬이 가질 수 없다느니.

늦깎이로 피운 검술 재능보다는 타고난 마성의 재능을 키우는 게 낫다느니 하는 헛소리를 뱉었고.

아무리 할 일이 없더라도 엔크리드는 귀부인 등이나 처먹고 살고 싶진 않았기에 조용히 입이나 닥치라는 의미로 말했다.

“헛소리하지 말고 붕대나 벗겨 줘.”

라그나는 그때까지도 상황만 유심히 지켜보다 말했다.

“그럼, 대련 가능?”

어째, 최근에는 엔크리드보다 라그나가 더 적극적인 것 같기도 했다.

“미친 게으름뱅이야, 연고 하나 바른다고 상처가 뚝딱 낫겠냐?”

렘이 핀잔을 줬으나.

“흠.”

라그나는 대거리하지 않고 실망한 눈빛만 보였다.

그래, 연고 하나로는 안 나을 것 같긴 한데.

연고 하나가 문제가 아니라 오전에 이미 고위 귀족이 아니라면 구경도 못 하는 이적을 몸소 받고 온 참이라.

크라이스가 붕대를 벗기고, 엔크리드는 교묘하게 상처가 안 보이도록 어깨를 틀어 연고를 직접 발랐다.

“제가 발라 드리겠습니다.”

크라이스가 말했으나, 엔크리드가 고개를 저었다.

“됐다.”

“쳇, 연인이 준 거다, 이겁니까?”

퍽.

엔크리드는 침상에 걸터앉은 채로 한쪽 발만 뻗어 크리이스의 허벅지를 한 번 차고 연고를 어깨에 조심스레 펴 발랐다.

왼쪽 팔뚝에도 같은 짓을 반복하자, 싸르르 하고 청량감이 상처 부위로부터 퍼져 나갔다.

‘좋은 약인가 본데.’

작센이 줬던 연고보다 청량감이 더했다.

엔크리드는 다시금 붕대를 감았고.

그리고 나자, 이제 어지간히 움직일 수준은 될 듯했다.

괜찮은데, 검 몇 번 휘둘러 볼까?

당장 전투가 일어날 것 같지도 않고.

서로 대치 상황에서 노려보기만 하는 판국이다.

이러다가 수틀리면 당장이라며 싸움이 시작되겠지만.

“하여간 심심한 것들, 싸우기로 했으면 신나게 머리통 깨질 때까지 싸울 것이지.”

렘이 이리 욕구불만이 될 때까지, 대단위 전투가 없었다고 했으니.

검을 휘둘러 볼까.

아니면 아직 휴식을 취해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다.

뿌우우.

바깥에서부터 뿔 나팔이 울었다.

기습을 대비할 때는 호루라기.

전장에서는 뿔 나팔을 부는 게 나우릴리아의 전통이었다.

“적군이 온다! 전군 집합! 집합! 부대별로 집합!”

천막 바깥에서 전령이 뛰어다니며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또 왔네, 미친 새끼들.”

그 말에 렘이 입술을 내밀며 툴툴거렸다.

“그거 아슈? 저것들 참 할 일 없는 새끼들이우, 마성의 소대장.”

“마지막 별명은 빼고 말하지?”

당최 무슨 일인가 싶었다.

그리 장비를 대강 걸치고 나서려 하자.

“혹 싸움 나도 나서서 싸울 생각 마쇼. 몸부터 챙깁시다. 좀.”

렘이 한마디 하고.

“대련이 가능할 때까지 회복에만 전념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라그나도 거들고.

아우딘은 미소만 보였다. 저 덩치에 자애라는 두 글자가 떠오르게 웃는 걸 보면 신기할 따름이었다.

“싸울 생각이었습니까? 미치지 않고서야, 그 몸으로 무슨.”

작센은 숫제 혼내는 투다.

이거야 원, 강에 내놓은 아이 취급인가.

실제로 소대원들이 자신을 그리 취급하진 않을 것이다.

다만.

또 다치는 걸 두고 보진 않겠다.

제 눈앞에서 다칠 생각은 하지 마라.

뭐, 이런 의미로 들렸다.

신성을 쓴 아우딘이나 나머지나, 매한가지였다.

이들은 제 소대원.

이렇게 보면 자신을 이곳에 부른 대대장의 선택은 탁월했다고 할 수 있었다.

어찌 됐든 이들이 자신 휘하에서 움직이긴 하니까.

‘이걸 통제라고 불러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엔크리드는 제 소대원을 마음먹은 대로 다룰 자신은 여전히 없었다.

그럴 의지도 없었고.

“집합입니다. 소대장님!”

천막 밖, 경계 근무에 나갔던 앤드류의 목소리였다. 맥과 엔리까지 세 명이 함께 나갔으니, 같이 있을 터였다.

일부러 셋 근무를 붙여 줬다고 했던가.

하도 렘이 괴롭히자, 근무를 조정하는 병사가 해 준 배려였다. 대체 얼마나 괴롭히면 알아서 이런 배려가 들어오는 건지.

“가자.”

엔크리드가 일어나며 말했다.

어깨 부근이 잘리긴 했어도 가죽 갑옷은 여전히 탄탄했다.

그 위로 갬비슨과 양쪽 허리에 찬 검까지.

음, 조금 든든하기도 한데.

전장 구경 갈 시간이었다.

과연 적군이 무슨 짓을 하는지도 궁금했다.

또 결투 신청이라도 줄기차게 하는 건가.

병급이 나와서 일대일로 붙자고 계속 그랬다던데.

“그런 싸움은 지겹수다. 내 소대장을 위해 도끼 한번 세차게 휘두르려 했는데, 전투가 없지 않수, 전투가.”

어젯밤 전황을 들었을 때, 결투는 귀찮다고 피했으면서 잔뜩 투정 부리는 렘의 말이었다.

그리 나선 전장.

“어이, 물건도 아직 덜 여문 놈들아!”

적군의 목소리가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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