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 걷는 길에 확신이 있다면
“얘들 왜 없냐?”
준기사 셋이 포함된 아즈펜 공국의 별동대는 적군의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본래 후미를 막는 군대가 이쯤 있어야 하지 않나?
아니면 뭐, 이런저런 흔적 같은 거라든가.
크로스 가드로 향한다며? 근데 얘들 왜 없냐.
하물며 이쪽의 움직임을 확인하는 정찰대도 없다.
본래 본격적으로 싸우기 전에 정찰대가 만나서 서로 욕도 좀 하고, 틈나면 화살도 좀 날리다가 그러면서 맞붙는 게 정석인데.
만나야 치는데, 그러려고 전력 일부를 빼 왔는데.
무려 준기사가 셋이다.
기사단원 중 일부를 빼서 돌렸다는 거다.
아군 중에 거인이랑 특수 전력 몇을 붙여 두긴 했어도.
이 정도면 정말 본대 전력 중 크게 빠져나간 셈이다.
그러니까 이들은 싸워야 했다. 싸워야 하는데.
잘그락, 잘그락.
지휘관의 발밑에서 자갈이 튀었다.
없다. 오면서 본 거라곤 강변에서 튀어나온 구울 몇 마리?
대략 사흘쯤 지난 야영의 흔적들?
“매 발톱은?”
“연락이 끊겼습니다.”
그 와중에 이 일대를 감시하고 합류해야 할 유격대도 사라졌네?
“죽은 것 같지?”
준기사이자, 지휘관이 물었다.
부관이 눈치를 보다가 말했다.
“네. 그런 듯합니다.”
그런 듯하긴 뭐가 그런 듯하냐.
다 뒈진 거지.
지휘관은 생각했다. 그러면 이대로 후미를 쳐 볼까?
그럼, 어떻게 되려나?
꼬리에 불붙은 말처럼 날뛰려나?
나우릴리아의 반응이 보고 싶어지는데?
그리 마음먹은 순간이다.
“봉화가 올라왔습니다!”
눈 밝은 전령 하나가 달려와서 말했다.
막 산을 타고 넘은 참이었다. 지휘관의 시선이 뒤로 향했다. 본대가 있던 방향이다.
봉화는 언제 올리나, 본대가 위기에 빠졌을 때.
그럼, 지금 올린 봉화의 의미가 뭐겠나.
“돌아간다.”
지휘관은 주저하지 않았다. 그게 신의 한 수였다.
본대로 곧장 합류한 덕에 전멸은 면했으니.
* * *
마커스의 보병대로 합류한 후 엔크리드가 입을 여는 일이 드물어졌다.
병사들이 힐긋거리며 미치광이 소대를 보곤 했지만.
쉬이 말을 거는 사람은 없었다.
“왔냐?”
그나마 벤젠스가 와서 툭 말을 뱉는 정도였다.
엔크리드는 대강 고개를 끄덕이고 걸었다. 걸으며 생각했고 생각을 거듭하며 자신의 안에 침잠되어 가라앉아, 싸움을 되돌아봤다.
‘회피의 감은 못 썼다.’
괴력의 심장도 끌어내기 위해선 긴 준비가 필요했고.
가진 모든 걸 꿰맞추듯 싸우긴 했다.
‘왼손을 상대의 머리에 심고, 오른손으로 베고.’
기반이 된 건 ‘미리 보여 주기’와 괴력의 심장이다.
그 싸움 자체에 희열을 느끼긴 했다. 두 개의 검을 쓰는 방법 일부가 먹혔으니.
그래서 그다음은?
복기다. 싸움을 되새겼다. 이긴 싸움이라고 해서 배울 게 없을까? 아니다. 많다. 배울 건 언제나 있으니.
자그락, 자그락.
자갈밭을 통과한 부대는 그대로 본대 후위 쪽으로 향했다.
그렇게 행군이 이어졌다.
사흘 내내 먹고 걷고 자는 일을 반복하자, 그제야 본래 머물던 아군 진지가 나왔다.
물론 엔크리드에게는 진지가 나오든 말든 상관할 일이 아니었다.
그는 복기하고 또 복기하기 바빴다.
주변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지도 듣지도 않았다.
‘기본기.’
콧수염의 검은 어땠나. 기본에 충실했다. 날카롭고 섬세했다. 묵직하고 날렵했다.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만큼 변했다.
기본기의 차이다.
이기고 지는 일이 문제일까?
물론 그것도 문제겠지. 졌다면 죽는 싸움이었으니.
이길 수 있는 싸움에서 일부러 지는 것도 의미는 없을 것이다.
언제나 최선을.
반걸음이라도 굳건하게.
내일보다 나은 오늘을 위해.
이겼다고 해서 갈망과 갈증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기본기를 한 번 몸에 붙였으니 끝냈다고 생각했나?
‘내가 건방을 떨었나?’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있는 건가.
그저 발악하기 바빴던 지난날을 떠올리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짓임에.
엔크리드는 반성했다. 기본을 갈고 닦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고립의 기법을 단련할 때만 봐도 알지 않나.
매일의 반복이다. 같은 동작의 반복.
발라프 식 무투가 됐건 중검식이건, 유검식이건.
정중환쾌유, 무엇이든 기본, 다시 기본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참을 수 없었다. 손이 근질거리고 심장이 요동쳤으며 피부가 움찔거렸다.
아직 행군 중이었는데도.
치링.
검을 뽑아 버렸다. 그러곤 수직으로 곧고 바르게, 갈고닦아 명인의 작품처럼 보이던 그 칼질.
콧수염의 그것처럼 정수리 베기다.
슝.
걷다 말고 갑자기 칼질이다.
누가 뭐라고 할 법도 했지만, 이 일을 한 게 바로 엔크리드였다.
“어디 뭐냐? 기습이냐? 아, 엔크리드 소대장이라고?”
“저치도 약간, 맞지?”
병사 하나가 손가락을 귀에 대고 빙글빙글 돌렸다.
“미치광이 소대장이야?”
“어, 갈 길 가자.”
다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어디 이런 일이 한두 번인가.
무엇보다 이전 전장에서 보여 준 미치광이 소대의 활약은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들은 반쯤 영웅이 된 채였다.
우러러보는 존경 어린 시선도 섞이긴 했다.
‘저렇게 훈련에 미쳤으니까.’
그렇게 잘 싸우는 건가?
그런 생각들, 그런 게 병사들의 뇌리에 남기도 했다.
주변 소대장급 지휘관도 이들은 놔뒀다. 마커스 대대장의 지시가 따로 있지 않았나.
누가 봐도 특별하게 대하는 중이다.
모든 근무 열외, 식사 당번 열외.
이런저런 이유 덕이다.
다들 그리 본체만체 넘어갔다.
미치광이 소대원도 딱히 주변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았다.
라그나는 갑자기 검을 휘두른 제 소대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돌아가면 해 줄 말이 있었는데, 이제는 의미가 없겠노라고.
“기본을 몸에 다시 붙이십시오.”
절단을 보여 줬는데 아직 가르치는 건 시작도 못 했다.
그걸 위해서 쌓아야 할 것, 다시금 말해 줘야 할 것들.
절망의 벽이 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인가.
알려 주고 보여 줘야 했다.
할 말이 많았다. 흔히 실력을 늘고 나면 잊는 것들.
그런 것을 되새겨 주려도 했다.
라그나는 심히 궁리했다.
현재 제 소대장에게 필요한 건 무엇인가.
그렇게 고민 끝에 할 말을 정리했는데.
달그락.
자갈밭이 끝나간다. 라그나는 발을 멈췄다.
“네, 맞습니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소대장에게는 잔소리가 필요 없었다. 홀로 되새기고 부족한 걸 채운다. 본래 저런 인간이었음에야.
멈춰서 중얼거린 라그나는 전신이 찌르르 울리는 걸 느꼈다.
자신은 금세 잊은 것, 지나친 것, 되새길 필요조차 없는 것.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쌓는다. 그 모든 걸 주춧돌로 삼는다. 소대장이 그랬다.
라그나는 가슴 속에서 또 멋대로 의욕이란 불꽃이 피어오름을 느꼈다.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지만.
제 소대장을 보면 검을 휘두르고 싶어졌다.
“돌아 버렸나? 뭐가 맞아?”
옆에서 걷던 렘이다. 미친 야만인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허허, 홀로 기도라도 올리셨습니까? 주께서 답을 하시던가요?”
반대쪽에서 덩치 큰 종교쟁이도 말을 걸었다.
라그나는 대꾸하고 싶지 않았다. 이 좋은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으니.
하지만 렘은 집요했고.
아우딘은 성실했다.
“야, 뭐가 맞냐고, 머리통에 유령이라도 들어왔냐? 야, 덩치. 얘 물리쳐야 하는 거 아니냐? 응? 유령 잡는 주먹 같은 거 없냐?”
“허허, 형제님, 빙의는 그리 쉽게 되지 않지요. 특히나 군기가 살아 있는 이런 부대에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경우는 드뭅니다. 제가 생각할 때는 기도를 올리신 듯합니다. 그래서 주께서 뭐라고 하시던가요?”
좀 꺼져 줬으면 좋겠는데.
라그나는 슬슬 간절해졌다.
간절함이 살기로 변하는 건 금방이었다.
‘다 벨까?’
불현듯 뿜어진 살기에 렘과 아우딘이 동시에 반응했다.
“어이, 그 머리 여기다 놓고 가게? 도와줘?”
“형제님, 주의 답을 받지 못하셔서 심통이 나신 겝니까? 그렇다면 땀을 흘리는 것도 나쁘진 않지요.”
살기가 일면 싸운다. 그건 미치광이 소대의 철칙 같은 거였다.
물론 엔크리드가 말리면 그만이지만, 현재 그는 자신의 세계에 빠져든 채이니.
챙.
라그나가 검을 뽑으며 휘둘렀다.
렘도 반응했다.
땅!
도끼와 검이 만났다. 불똥이 튀며 라그나와 렘 사이로 살기도 함께 튀었다.
반대쪽에 있던 아우딘도 멈춰 있을 수 없었다. 라그나가 그걸 두고 보지 않았다.
렘의 도끼를 때린 반탄력으로 그대로 아우딘의 가슴을 벴다.
아우딘은 물러나며 손바닥으로 검면을 쳐 내는 것으로 검을 흘렸다.
묘기, 그것도 상급의 묘기라 할 수 있는 짓이었다.
렘도 라그나도 아우딘도.
그런 걸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게 되려 신기할 만큼.
곧 셋이 어울리고.
한쪽에서 그걸 지켜보던 작센은 셋 다 참 머저리 같은 놈들이라 생각했다.
그의 눈이 자연스레 셋에서 떨어져 제 소대장에게로 향했다.
조금, 아주 조금이지만, 불만이 있기도 했다.
회피의 감, 어떻게 하는지는 제대로 안 것 같은데.
몸의 협응력을 늘리는 게 어려운가?
쉽진 않지, 정말 쉽진 않다.
하지만 이건 약간 차별대우 같지 않나?
괴력의 심장은 그렇게 빨리 익히고 회피의 감은 왜 더뎌?
신경을 덜 쓰나? 내 기술에만 노력을 덜 해?
“거슬리네.”
작센이 중얼거렸으나, 그 누구도 답을 하는 사람은 없었나.
셋은 싸우기 바빴고.
그 싸움에 휘말리기 싫은 앤드류와 맥은 자리를 피했고.
핀은 이게 과연 제대로 돌아가는 소대인가 의문을 품기 바빴다.
크라이스만이 익숙했기에 제 할 일을 했다.
소대장 대신 요정 중대장을 통해 명령받았고.
“왜 네가?”
괜히 불만을 표하는 중대장에게.
“저럴 때 건드리면 소대장도 싫어하고 소대원도 싫어하고, 그래서 난장판이 되거든요.”
“지금보다 더?”
엔크리드는 걸으며 홀로 검을 휘두르고.
나머지 셋은 싸우기 바쁘며.
그 외 작센은 딱딱한 무표정이다. 순전히 감이지만, 지금 건들면 좋은 소리가 나올 것 같진 않았다.
음, 지금도 충분히 난장판이긴 하지만.
“네, 지금보다 더.”
크라이스는 확신을 담아 말했다.
저걸 말리면 더 난리가 날걸?
경험으로 아는 일이었다.
“그렇군. 본대는 복귀한다.”
중대장은 시답잖은 농담을 하지 않았고, 쓸데없는 얘기도 하지 않으며 본론만 말했다.
크라이스는 괜한 장난기가 돌아 물었다.
“우리 소대장 탐나죠?”
중대장이 그런 크라이스를 바라봤다. 요정의 녹색 눈은 인외의 미모를 완성하는 보석 같았다.
보석 같기에 무기질적이었고, 그 눈에서 감정을 읽어 내는 건 크라이스로서는 무리였다.
다만 눈치로 느껴지는 건 있었다.
“탐나지.”
지금 한 말이 남자로서 탐난다는 건 아니라는 것.
말하고 중대장이 돌아서서 떠난다. 크라이스는 괜히 소름이 돋아 팔을 슥슥 훑었다.
그러곤 제 소대장이 언제 본래대로 돌아오나 기다렸다.
거의 하루가 다 지나갈 때쯤, 그러니까 멈춰서 야영 준비를 할 때가 돼서야 엔크리드가 멈췄다.
근데 걸으면서 검을 휘두르는 게 도움이 되나?
크라이스야 모를 일이었다.
렘을 포함한 셋의 싸움은 의외로 금세 끝났고.
셋 다 그대로는 끝나지 않으리란 걸 아는 걸까.
아니면 소대장이 적당히 말리지 않으니, 재미가 없는 걸까.
그거야 알 수 없는 일이다. 굳이 알고 싶지도 않고.
“대장.”
땀을 흠뻑 흘린 엔크리드의 눈이 크라이스에게로 향했다.
“도시로 회군이래요.”
“음?”
크라이스는 눈앞의 제 대장이 긴 설명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안다. 입이 근질거리긴 했지만, 뭐 어쩌겠나.
지금은 단순명쾌하게 말해 줘야 하는 게 맞을 터다.
“우리 작전이 먹혔을 때, 그러니까 적이 전력 일부를 우회로로 돌렸을 때, 본대가 진격전을 벌였답니다.”
크라이스가 본래 고안한 작전의 요지는 무엇인가.
미치광이 소대로 뒤통수를 때리고.
매 발톱인지, 매 손톱인지 하는 부대를 끌어들여 쓱싹하고.
그사이 마커스 대대는 크로스 가드에 가는 척을 한다. 가는 척만 해도 충분했다.
‘이미 밀린 전장.’
자신이 적의 지휘관이라면 어떤 생각이 들까.
도시를 공격당한 그런 치욕을 안고 가고 싶을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었다.
어느 쪽도 손해 볼 건 없었다.
그저 시늉만 하는 것만으로 얻을 건 많았으니.
크라이스의 목적은 안전 보장이었으니.
그리 시늉하면 마커스 대대가 본래의 진지로 돌아가겠다는 핑계를 대기도 좋지 않나.
적과 멀어지는 것 자체를 상수로 본 거다.
시간이 지날수록 변수는 줄었고, 그의 생각대로 맞아떨어진 셈이었다.
물론 크라이스의 예상과 아예 다른 것도 있긴 했다.
일단 미치광이 소대의 전력이랄까?
‘잘 싸우는 줄은 알았지만.’
정말 미치도록 잘 싸우지 않나.
독립 소대로서, 소수 정예의 부대로는 어찌 보면 변방의 학살자보다 더 대단한 것 같은데?
이후 마커스 대대에 합류했고.
그사이 그린 펄 평야에 주둔한 기사단을 위시한 일부 병력이 그대로 진격했다.
이게 또 크라이스 예상과는 조금 엇나갔다.
‘그걸 진격하네?’
지금 이대로 끝내도 영토는 넓어진 셈이고, 아즈펜에게는 치명적인 타격을 준 것 같은데.
그대로 진격, 승기를 휘어잡는 걸 넘어 심대한 타격을 줘 버렸다.
숨도 안 쉬는 돌격에 이은 접전인데.
전력 차이가 꽤 벌어졌다고.
압승이었다고 들었다.
그 덕에 마커스 대대, 보더 가드 상비군은 이대로 도시 복귀를 명 받았다.
혹, 적군 중 일부가 미친 척하고 도시를 공격하면 그걸 수비할 군대도 필요했을 테고.
공적을 세운 부대이니, 우대해 주는 그런 의향도 있겠지.
크라이스는 이 모든 걸 말하는 대신 짧고 간단하게 전했다.
“집으로 가랍니다.”
“나쁘지 않은데.”
엔크리드, 소대장은 이 모든 걸 이해했을까.
모른다. 나중에 천천히 말해 주지 뭐.
일단은 돌아가도 된다고 하니.
크라이스는 그게 퍽 만족스러웠다.
무엇보다 제 가슴에 품은 지도 한 장이 그를 더 따듯하게 해 줬다.
적군이 숨겨 둔 보물 중 하나였는데, 크라이스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이건 진짜야.’
엔크리드도 돌아가는 것에 불만은 없었다.
오히려 만족했다.
이번 전장, 전투에서 배우고 익힌 게 많다. 그 모든 걸 되새기며 몸에 새겨 두고 싶었다.
고로 시간이 필요했다.
둔재는 본래 바둥거리고 달려가야 하는 법이니.
엔크리드는 그리하기로 했다.
갈망과 갈증.
그게 가슴을 태워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만들었으니.
‘근데, 저 자식은 왜.’
엔크리드는 가끔 느껴지는 살기에 시선을 돌렸다. 작센이었다.
잊을 만하면 따가운 시선을 보내지 않나.
뭔가 불만이 있어 보이는데, 딱 봐도 물어봤자 답도 안 할 것 같았다.
그럼 어쩌겠나.
놔둬야지 뭐. 이 자식들 불만이 어디 하루 이틀인가.
“돌아간다고? 거, 서운하겠수. 기사가 싸우는 걸 못 봐서?”
렘이 괜히 대거리하는 걸 들으며 엔크리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서운하긴 한데.”
반대로 상관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자박.
걷는 걸음에 맞춰 엔크리드가 제 손을 바라봤다.
굳은살이 가득한 손바닥과.
양쪽 허리춤에 걸어 둔 검 두 자루의 무게.
몸에 두른 갑옷.
냐-아.
언제 돌아왔는지 한쪽에서 걷는 표범과 소대원.
엔크리드, 자신 또한 걷고 있었다.
그리고.
걷는 길에 확신이 있다면.
굳이 목적지를 확인할 필요가 없는 법이었으니.
“괜찮네.”
엔크리드는 답하고 고개를 들었다. 봄의 마력이 퍼져, 안온한 햇살이 그의 어깨 위로 내려앉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