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늘만 사는 기사-154화 (154/170)

154. 이 새끼가 제일 미쳤구나

막 숙소에 들어서자마자다.

“소대장은 확실히 정상은 아닌 것 같수.”

렘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온 것에, 엔크리드는 묘한 기분을 느꼈다. 어째 이 새끼는 제 상태를 생각 안 하고 매번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건지.

“그게 네 입에서 나올 말이냐?”

농담 삼아 말을 나누는데, 나무라는 말에도 렘이 히죽 웃었다.

또 뭐가 좋아서 이렇게 웃는 걸까. 미소가 무척 마음에 안 들었다. 그렇다고 뭐라고 할까, 웃는 게 재수 없다고? 비위가 상하는 것 같다고? 다 괜한 말이다.

엔크리드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서, 훈련은 끝내셨습니까? 형제님?”

아우딘은, 음, 후광이 비추는 것 같았다.

빛을 뿜어내며 다가오는 곰 같았다. 기분이 상당히 좋아 보인다는 소리다.

그런데 왜 램프 불빛을 등지면서 오는 거냐.

온화한 미소는 고립의 기법 중 무게를 올렸을 때와 같은 미소였다.

“어, 음. 그랬지.”

정확히는 부족한 오전 훈련과 더불어 오후에 할 훈련을 덧붙였다.

그렇다고 다리가 후들거리진 않았다.

그러고 보면.

‘언제부터였지?’

모든 훈련을 끝내도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들진 않았다. 버틸 만했다.

괴력의 심장을 발동한 채로 무식하게 버틴다면 모를까.

잠시 그런 생각을 한다고 서 있었더니.

“전 일이 있어서.”

작센이 쌩하니 곁을 스치고 나가 버렸다.

쟤는 부대로 돌아오고 나서 숙소에 있는 시간보다 밖에서 나돌아다니는 시간이 더 긴 것 같았다.

근데 오늘은 좀 늦게 나가는 것 같은데.

“크릉.”

에스터가 엔크리드의 침대에 떡하니 자리를 잡은 채 앞발을 흔들었다.

그게 어서 오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 왔다.”

누가 보면 표범에게 인사하는 미친놈처럼 보이려나?

하긴, 그게 무슨 상관인가.

‘기사가 되겠다고 아등바등 발악하는 게 더 미친놈처럼 보이겠지.’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자신이 걸어온 길에 신념과 그 이상의 고집을 부린다고 해서 눈과 귀를 닫고 사는 건 아니었다.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엔크리드는 자신이 사람들에게, 특히 자신을 처음 본 사람에게 대강이지만, 어떻게 보이는지 짐작은 했다.

‘반쯤 미친놈처럼 보이려나.’

겉으로 보면 멀쩡한데, 하는 짓은 이해할 수 없는 그런 형태의 미친놈일까?

적어도 렘보다는 낫겠지.

큰 위안은 되지 않지만, 저렇게 미치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나. 상관 머리통에 도끼를 휘두르는 것보다야 암, 백배 낫지.

뭘 느꼈는지 렘의 입이 열렸다.

“눈빛이 뭔가 되게 기분 나쁜데?”

렘은 감이 참 좋았다.

“아니다.”

엔크리드는 그의 회색 눈깔을 외면하고 식사나 하자고 했다.

먹고 마실 때다. 쉴 때는 쉬어야 하는 것 아니겠나.

“그럴까요? 식당 자리를 먼저 봐 두러 가겠습니다.”

크라이스가 먼저 움직였다. 엔크리드는 그사이 병영 내에 있는 욕실에서 몸을 대강 씻었다.

다들 어기적거리지 않고 식당으로 향했고.

엔크리드도 몸만 대강 닦아내고 에스터를 품에 안고 나섰다.

특식까진 아니지만, 보더 가드의 병역 식당은 나쁜 편이 아니다. 물론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이라면 꽤 싫어할 것 같긴 하지만.

“빵 없나?”

라그나가 그랬다.

“생긴 건 어디 흙도 퍼먹게 생겨서 맨날 뭘 따져?”

식탁에 둘러앉은 일행이다. 식당 한가운데를 차지한 채였고.

다들 힐끔힐끔 보기 바빴다.

평소 미치광이 소대라면 뭐, 이렇게까지 주목받을 일은 없지만.

여기에 프록이 끼어 있지 않나.

꾸르륵.

렘이 라그나에게 핀잔을 주는 걸 프록이 유심히 관찰하는 것처럼 보였다.

개구리를 닮은 툭 튀어나온 눈깔이 둘을 주시했다.

“미천한 야만인과 말을 섞고 싶지 않은 밤이다.”

“응? 직접 음식을 퍼먹여 달라고? 입으로 먹고 소화시키기 귀찮은데 내장에 직접 넣어 주랴?”

말하며 렘이 손날로 배를 가르는 시늉을 해 보였다.

참 한결같은 새끼들이었다.

“양고기가 맛이 괜찮다. 양념이 잘 됐어.”

타이밍 좋게 엔크리드가 끼어들었다. 렘과 라그나가 식당 한복판에서 도끼와 검으로 대화를 나누기 직전이었다.

“……씁.”

“그렇습니까?”

렘과 라그나가 서로를 노려보던 눈빛을 거뒀다.

어째 요새 이들이 제 말을 부쩍 잘 듣는 것 같아, 엔크리드는 매번 그게 신기한 참이었다.

기실 이전부터 묘한 느낌을 받긴 했다.

‘내가 뭐라고.’

왜 자신이 말리면 싸움이 끝나는가.

어째서 자신은 이곳의 분대장을 할 수 있었는가.

자신이 한 일이라고는 그저 곧게, 정직하게 이들을 대한 것뿐인데.

할 말은 하고 궁금하면 묻고.

직설적으로 대하되 존중했다.

그게 전부였다.

‘아니, 내 말을 듣는 게 아니라 사이가 좋아진 건가?’

엔크리드만이 느끼는 거지만, 최근에 이들의 싸움이 싸움 같지 않다고 해야 할까.

서로 실력을 확인하는 선에서 끝나는 수준이었다.

전에도 말은 험해도 서로 영역은 존중하는 편이었는데, 지금은 완벽하게 그 영역의 경계를 그어 놓지 않았음에도 싸우지 않는 것 같았다.

‘초원에서 친해진 맹수를 보는 기분 같기도 하고.’

엔크리드가 그리 속으로 감상을 내뱉고 있자.

꾸륵.

옆에서 프록이 주섬주섬 샐러드 따위를 입에 넣고 씹으며 말했다.

“신선한 채소라니, 이 도시는 풍요로운 편인가보다.”

“농사보다는 교역이 먼저라서 오히려 신선한 채소를 먹을 수 있죠.”

크라이스가 받아치고.

프록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숙소에 자리가 남던데, 나도 며칠 머물도록 하지.”

“……?”

샐러드 외에는 프록이 먹을 만한 게 없었다.

그들은 벌레나 풀만 먹으니.

그렇게 먹으며 뱉은 말에 아무도 반응하지 않았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엔크리드부터 의문이 생길 판이니.

이자는 프록이다.

본대에서 귀환하던 귀하신 몸이다. 그런데 어디에 머물겠다고?

다들 의문이 담긴 시선을 던졌다.

먹으며 시선도 주지 않고 말한 프록이다. 엔크리드가 물었다.

“어디서 머물겠다는 겁니까?”

프록이 답했다.

“네 옆자리면 되겠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대하든, 엔크리드는 최소한의 예의는 지켰다.

자신은 소대장 아닌가. 처음 보는 사람에게야 반쯤 미친 것처럼 보일지라도.

가까이한 이들은 알지 않겠나.

자신이 미치광이 소대에서 거의 유일한 정상인이라는 걸.

그런 연유로 높임말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엔크리드는 눈앞의 개구리 인간이 곧 돌아갈 줄 알았다.

프록은 본래 이쪽 소속이 아니니.

엔크리드에게 기사가 될 수 없다고 말하기 위해 남은 것치고는 불필요할 정도의 시간을 소모했다고 생각했다.

이미 하루가 지났으니, 가도 진즉에 갔어야 했다.

일행이었던 준기사는 떠났는데 혼자 남아 있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 아닌가.

물론 다들 짐작은 했다.

라그나, 프록의 관심이 그에게 있으리라는 짐작.

그러하기에 누구도 그의 거취에 관해 묻지 않았다.

렘을 비롯한 소대원이야 애초에 관심도 없었다.

제가 남고 싶다는데, 뭐, 그런가 보다 했으니.

“굳이?”

속내를 숨길 필요가 없으니, 엔크리드는 곧이곧대로 물었다.

묘한 침묵이 식당에 잠겼다.

자기들끼리 떠드는 다른 테이블의 소리만 울렸다.

도박이 어떻고, 전장이 어떻고, 여자가 어떻고 하는 그런 얘기들.

엔크리드는 소음을 한 귀로 듣고 흘리며 프록을 바라봤다.

프록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곤 더는 말을 뱉지 않았다.

엔크리드는 잠시 그리 바라보다가 이후, 곧 의문을 거뒀다.

정확히 말하면 놔뒀다. 오롯이 느낌이지만, 자신에게 적대적으로 보이진 않는다.

무엇보다 프록이다. 있는 게 도움이 됐으면 됐지, 방해는 안 될 것이다.

굳이 숙소에서 함께 지내겠다고 하는 건 이상한 일이지만, 말릴 이유도 없다는 거다.

“나도 나도, 이제 숙소에서 지내고 싶은데.”

핀도 손을 들며 말했다. 그녀의 입가에 양고기 양념이 가득 묻었다. 교양 있게 식사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그녀는 레인져, 달을 벗 삼고 밤하늘을 이불 삼아 살아가는 이들에게 훌륭한 식사 예절을 바라는 것도 우스울 따름이다.

하물며 여긴 병영이다. 누구도 그따위로 예의를 차려 배를 채우진 않았다.

프록에게만 그런 교양이 엿보였을 뿐.

엔크리드도 모르지만, 귀족이라면 저렇게 먹지 않을까 하는 모습이었다.

풀을 접시에 옮겨서 잘게 잘라 입에 쏙 넣는다.

물론 먹는 모습 자체는 프록 특유의 형태였다. 혀를 내밀어 낚아채는 식사다.

“그래라.”

엔크리드가 허락했다.

공식적으로 소대에 들어온 건 아니었으나, 숙소에 머무는 정도야 문제가 되지 않을 거다.

‘보고는 해야 하나?’

그래야 할 것이다. 머물고 싶으면 머물게 두면 되겠지.

엔크리드는 속으로 생각하고 입이나 놀렸다. 우적우적, 양고기 양념이 정말 썩 괜찮았다.

은은한 허브 향과 적당한 기름기, 그 사이로 알싸하고 달달한 맛이 입 안을 채웠다.

정말 양념이 잘 됐는데.

식사는 평소에 비하면 확실히 단란한 편이었다.

“형제님, 오늘의 양고기는 정말 훌륭하군요.”

아우딘은 껄껄 웃었고.

“그건 또 입에 맞냐?”

“남 일 관심 끄고 손을 놀려라. 아, 그 옆에 있는 건 포크라는 건데 쓸 줄 모르면 놔두고.”

렘과 라그나는 투덕거렸으나, 살기가 오가진 않았으니, 이 정도면 뭐, 화목하지.

뭔가 자신이 막 숙소에 들어섰을 때는 공기가 답답한 것 같았는데.

“재밌어. 진짜 다 정상이 아니야.”

핀이 중얼거렸다. 핀은 경험 많은 레인져였다.

이런저런 일로 별의별 사람을 다 만났으나.

지금 미치광이 소대만큼 특이한 이들은 처음이었다.

실력과 성격, 두 가지 다 평범이란 말이 쏙 들어가는 이들이었다.

핀은 연신 고기를 씹었다.

오늘은 양념에 잘 재운 양고기가 일품이었으니.

“근데 앤드류랑 맥은요?”

양고기를 우물거리던 크라이스가 물었다.

빨리도 찾네.

엔크리드는 이전 밤에 있었던 앤드류와의 대련을 떠올리며 답했다.

“전역한다고 했다.”

“에?”

본래 앤드류는 가드너 가문의 적자.

그에게는 가문을 살려야 할 의무가 있다.

떠나기 직전, 그가 뭐라고 했더라.

“당신을 보면서 포기하지 않는 법을 배웠으니, 저도 그렇게 할 겁니다. 나중에, 가드너의 이름으로 만나게 될 겁니다.”

그 말투, 자신만만했으며.

그 눈, 열망이 엿보였고.

그 몸짓, 확신이 가득했다.

그러라 했다. 그날 밤 앤드류와 맥은 부대를 이탈.

보고는 엔크리드의 몫이었는데.

요정 중대장은 흔쾌히 넘어갔다.

“숫자가 줄어서 서운하다면 머릿수를 채워 주겠다. 소대장.”

그렇게 던진 말에 엔크리드는 고개를 저었다.

독립 소대란 이름이야 듣기 좋지만.

어중이떠중이를 받아서야 버틸 수도 없을 것이다.

앤드류 정도가 돼야 숨이나 쉴 수 있을 테니.

‘이전 분대장도 다 갈렸다고 들었고.’

여기서 굳이 머릿수를 늘리는 것보다야, 현 상태를 유지해도 문제가 없다면 지금이 나을 터다.

“괜찮습니다.”

좋은 말로 밀어내자, 그럼 나라도 들어가 줄까? 하고 요정 중대장이 농담을 뱉었었다.

괜찮다고 극구 사양한다고 단출하게 말하고 자리를 비켰었다.

엔크리드는 지난밤의 기억을 밀어내며 이어 말했다.

“이제 안 돌아오고 당분간 편제는 이대로 유지한다.”

“아, 네.”

크라이스도 아는 바가 있는지 그냥 넘어가고.

“뭐요? 내 장난감 하나가 나한테 말도 없이 갔다는 거요?”

그 말에 렘이 벌떡 일어났다.

“음?”

“나 먼저 가 보겠소.”

이후 렘이 뛰쳐나갔다.

“전 졸려서 이만.”

라그나도 배를 채우자마자 일어났다.

“기도 시간이 되어.”

아우딘도 떠났다.

남은 음식을 말끔히 해치운 엔크리드는 식당에 있는 싸구려 차로 입 안을 헹구고 밖으로 나섰다.

숙소 방향이 아니라 연무장 쪽으로 걸음을 옮기자, 뒤에서 프록이 물었다.

“어딜 가나?”

엔크리드는 무심히 답했다.

“아직 훈련이 남아서.”

이제 저녁 훈련 시간이었다.

그걸 들은 프록이 처음으로 걸음을 멈췄다.

“훈련을 또 한다고?”

프록이 엔크리드를 본 이후로 처음으로 당황한 소리 비슷한 걸 뱉었다.

“물론입니다.”

엔크리드는 여전히 무심했다.

프록이 남든 말든, 무슨 일이 일어나든 말든.

기사가 될 수 없다고 다들 말하든 말든.

할 일은 할 일이다. 그럼, 하면 그만이었다.

오늘의 일을 내일로 미루는 것?

엔크리드는 그럴 수 없는 인간이었다.

그는 오히려 내일 일까지도 끌어다가 오늘 하는 그런 미친 인간이었으니.

‘이 새끼가 제일 미쳤구나.’

프록은 내심 생각했다.

미치광이 소대라니, 과연 이 작자가 가장 미친 작자라고.

엔크리드는 자신이 가장 정상인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거야 어디까지나 본인의 생각일 뿐이었다.

타인의 시선은 무척, 꽤, 상당히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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