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 홀로 아들을 키우던 어미에게 감사를 받았다.
아즈펜은 패배했다. 하지만 무너지진 않았다.
이기고 지는 건 반복되는 일이니까.
아무리 철저히 준비해도 문제는 생긴다. 패배는 그래, 감내해야 하는 문제일 뿐이었다.
‘질 수도 있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렇게 져? 준비한 게 번번이 다 깨진 채로? 준비한 전략은 초반에 깔딱 먹히는가 싶더니 전부 부정당했다.
아무리 한발 물러선 전장이라지만, 이렇게 부정당한다고?
아즈펜의 천재 전략가, 아브나이어는 꽤 자신만만했다.
완벽한 승리까진 아니더라도 쉬이 밀리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럴 만한 안배가 어디 한두 개였나.
거인을 끌어들였고.
전력을 숨겼으며.
적군의 방심도 유도했으며, 개략적인 전략도 던져 줬다.
전략의 요지는 이거였다. 우회로 전투에서 승리함으로 나우릴리아의 본대를 쪼개는 것.
그렇게 그들의 본대 전력을 나누는 게 기본인데, 시작부터 글러 먹었으니.
져서는 안 될 전투에서의 패배, 그게 엉망진창으로 헝클어진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책장 하나가 넘어지면 요란하게 주변 책장을 우수수 넘어뜨린 격이다.
“얼토당토않은데.”
황당하다. 그러하기에 절로 혼잣말이 나왔다. 아브나이어가 제 녹색 머리칼을 손으로 쓸어 올렸다.
환한 햇살 아래, 창문 밖에 노니는 아이가 보였다.
시종 몇이 아이를 쭐레쭐레 쫓는다.
그러던 아이가 창문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아브나이어는 창문을 연 채, 창가에 팔꿈치를 기댔다.
아이에게 손을 흔들어 준 뒤, 햇볕을 즐겼다.
날이 좋았다. 기온이 올라가는 계절이다.
아이가 밖에 매단 그네에 몸을 올리는 게 보였다.
눈으로는 아이를 보고 속으로는 작전의 시작을 곱씹는다. 아브나이어는 그렇게 했다.
‘왜?’
왜 패배했는가.
전장 전체의 패배는 우회로가 시작이었다.
몇 가지 서류가 머릿속을 스쳤다.
거슬러 올라가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함에.
그 시작의, 시작의, 시작을 찾아가 보니.
‘병사 결투부터.’
거기서 막힌 게 시작, 이후 미치 휴리어가 죽고.
결국에는 우회로 전투에서 예상치 못한 무력을 보인 이들의 활약이 있었다.
그 중심에 무엇이, 누가 있었나.
아브나이어가 받은 보고서에 이름이 있었다.
아군 지휘관이 죽기 직전 보낸 내용이다.
미치광이 소대, 소대장 엔크리드.
이름이 낯설지 않아 곱씹어 보니, 휴리어 가문에서 암살자를 보낸 작자였다.
고작 소대장이? 그런 작자가 이 모든 싸움의 시초였을까.
모르겠다. 지금부터는 순전히 감이었다.
책사의 감이자 군사의 감.
‘손해는 아닐 테니.’
휴리어 가문이 암살자를 보낼 때는 참 쓸모없는 짓 같았는데, 그게 정답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브나이어는 미래를, 정확히는 화평 이후 다음 전쟁을 위해 암살자를 쓰기로 했다.
여전히 고작 소대장 하나를 죽이고자 했다.
아즈펜에서 활동하는 유서 깊은 길드가 있으니, 그걸 쓰면 꼬리도 안 밟힐 것이고.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뒤, 움직였다. 창틀에서 몸을 뗀 뒤 곧바로 시정시켜 암살 길드를 호출해선 왕궁의 이름으로 의뢰를 넣었다.
“국경을 넘으면 보수가 세 배요, 무리한 의뢰는 거절할 거고.”
암살 길드의 답에, 아브나이어도 답을 전했다. 크로나가 적힌 쪽지면 충분하리라.
“소대장 하나? 그 하나에 이만한 크로나를 쓴다는 건가?”
아즈펜 공국 수도에 저택을 구할 만한 의뢰비다.
암살 길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이름 있는 귀족을 죽여 달란 것도 아니고, 군부의 핵심 인사를 노리는 것도 아니니.
겨우 소대장 하나, 국경을 넘어야 한다는 위험 부담을 제한다면 쉬운 일이다.
암살 길드는 의뢰를 수락했고 움직였다.
그렇게 암살자를 셋을 추려서 보냈다.
“실패?”
길드장은 너무 일을 쉽게 봤다고 생각했다.
“중급 암살자로.”
생각해 보면 이전에 혼혈 요정도 실패하지 않았나.
그녀도 중급이었다. 뭐, 그것까지 감안해서 셋을 보낸 거지만.
“둘 보내.”
그렇게 보낸 암살자다.
“보스.”
“또 실패?”
아니 이건 좀 이상한데, 왜 보내는 족족 뒈지는 거냐?
“중급 암살자 둘인데?”
“네.”
뭐지.
상급 암살자를 보내야 하나, 이 정도면 슬슬 손해를 따져 볼 참인데.
“상급 보내.”
맡은 일은 해낸다. 무엇보다 왕궁 직속 명령이다. 대외적으로야 암살 길드로 움직이지만, 본질적으로 ‘몽테르의 늪’이란 길드는 왕궁 소유다.
길드장도 그걸 잘 알았다.
왕궁과 척을 지면 여기서 암살로 끼니 채우는 건, 물 건너간 셈이니.
그렇게 상급 암살자가 떠났고.
“뭐냐, 이건!”
몽테르의 늪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암살자의 실패다. 연락이 닿지 않았다.
갑자기 어디 친절한 마법사가 나타나 몸에 새겨 둔 각인 주문을 해제해 준 게 아니라면, 죽은 게 맞을 터.
아니나 다를까, 이틀 뒤 암살자의 목이 배달됐다. 무려 몽테르의 늪이 숨겨 둔 비밀 저택으로.
“왕궁에 기별 넣어.”
이대로 진행하면 피해가 극심하다. 상대 쪽에 뭔가 있었다. 상급 암살자가 탈출도 아니고 썰렸다.
거기에 위치도 털려?
이쪽보다 우월한 집단의 개입이 있다.
“그게 내 판단이다.”
길드장은 그대로 왕궁으로 입성.
있었던 일을 전부 말했고.
더는 진행이 어렵다고 전했다.
아브나이어는 속으로 헛웃음을 삼켰다.
‘암살 길드가 실패해?’
그로서도 황당할 따름이었다. 더 손을 쓸 여력도, 여유도 없음에.
“놔두는 거로 합시다.”
아브나이어는 포기했다.
이쪽에 더 힘을 쏟기에 아즈펜 내부의 일이 바빴다.
그 작자에게 뭔가 있다면.
정말 뭔가가 있다면.
‘다음에 또 보겠지.’
아브나이어는 그리 엔크리드란 이름을 뒤로 던졌다.
전장에서 만날 운명이라면.
그 운명에 순응하면 될 일.
암살로 끝날 사람은 아니란 소리였다.
* * *
막사 주변에서 며칠째 서성거리는 그림자다. 익숙한 몸놀림, 어설프게 관찰하면 같은 사람임을 짐작게 하기 어려운 변장술.
놈을 앞에 둔 작센은 발소리를 죽이고 호흡을 참았다.
감각의 교란을 위해 기척을 완벽히 죽인 채다.
‘이건 뭘까.’
암살자다. 한눈에 알아봤다. 동종업계였다.
작센의 손에서 가는 실이 풀렸다. 빛 반사가 되지 않도록 검은 잉크와 특수한 기름칠을 한 두꺼운 실이다.
그게 암살자의 목에 감겼다.
암살자가 어떤 반응을 보이기도 전, 뿌드득 실을 당긴다. 팔꿈치로 등을 찍어 바짝 당기는 힘으로 목뼈를 반쯤 분질렀다.
똑- 하고 고개가 옆으로 꺾였다.
목뼈가 부러지면 죽는다. 당연한 사실이다.
작센은 그대로 죽은 자를 살폈다.
자신이 아니라면 상대하기 까다로웠을 수준인가?
보더 가드에 작센 쪽 사람은 전투원이 아니라 정보원 쪽이다.
그렇다고 해서 넋 놓고 당하진 않겠지만.
‘세 번째.’
전투가 끝나고 돌아와 석 달 동안 습격만 세 번째다.
세 번째는 작정하고 병영 벽에 붙은 채 머무는 놈이었다.
사흘 동안 거지, 노인, 상인 흉내를 내며 매번 다른 변장을 하고 오던 상대다.
‘꽤 하는 놈.’
이런 놈들이 자신이 머문 도시에 들어온다. 노리는 표적은 병영 안쪽인 듯한데.
만약 중대장이나, 대대장, 귀족 따위를 노렸다면 다른 방식으로 움직였을 텐데.
첫 번째 온 놈들은 신병을 가장했고.
그들의 목표는 너무 명확했다.
‘미치광이 소대.’
흐름을 따라가니 표적이 보였다.
소대장이었다. 엔크리드를 노렸다.
근데 그 엔크리드가 석 달 내내 병영, 연무장에서 나오질 않으니, 역으로 들어가려 한 거다.
“미친 새끼들이군.”
겨우 소대장 하나를 잡자고 이만한 전력을 투입해?
큰 나무 두 그루에 가려진 병영 벽 쪽에서 시신 하나를 어깨에 둘러업은 작센이 사람들 시선을 피해 움직여, 부랑자가 머무는 쪽 골목길 어림에 시신을 내려놨다.
대강 잠든 자세를 잡아 주고 술 한 병을 사 와, 몸 주위에 뿌리고 옆에 뒀다.
이러면 굳이 사인을 찾지도 않고 죽은 부랑자쯤으로 여길 것이다.
작센은 시신을 처리한 뒤 홍등가로 들어섰다.
그는 홍등가의 단골손님이었다.
그가 찾아오자, 창부 몇이 그를 흘낏 봤다.
저런 외모가 정말 흔하지는 않으니.
작센은 모든 시선을 무시하고 단골손님이 되어 방에 들어섰다.
그 안에 금발의 젊은 미녀가 반라로 그를 맞았다.
작센이 왼손가락 몇 개를 굽혔다 펴며 수화로 뜻을 전하자, 여자가 입을 열었다.
“듣는 귀 없어요.”
“문제는?”
“문제도 더는 없고요.”
이전, 혼혈 요정 암살자가 도시에 들어온 걸 놓쳤다.
아무리 도시 전체에 눈을 뿌려 두지 않았다곤 해도, 이게 말이나 될까.
작센은 그 일이 마음에 걸렸다. 자존심이 상했다.
이후 또 암살자가 속속 들어오기에 오는 족족 죽여 버렸다.
보더 가드에 자신이 머무는 이상, 다른 암살자 또는 비슷한 짓거리를 하는 놈 누구도 들여보내지 않으리라.
이게 꼭 누군가 소대장을 노려서 한 일은 아니었다.
절대로 아니었다.
문 쪽에 등을 기댄 작센은 언제나처럼 무표정이다.
그 표정을 유심히 보던 여자가 마저 입을 열었다.
“몽테르의 늪 쪽 애들인데, 어떻게 할까요?”
몽테르의 늪은 아즈펜에 뿌리를 두고 활동하는 암살 길드였다.
“여기가 내 구역이라는 걸 알려 줘. 우리 방식으로.”
들어오는 족족, 선을 넘으면 죽이란 소리였다.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길드 간의 항쟁이 될지도 모르나.
아마 아무도 모르는 전쟁이 되겠지.
그녀가 속한 곳은 본래 그런 곳이다.
이후, 작센은 그녀와 밤을 보냈다.
일로 엮인 사이나, 육체적으로 서로를 탐하기도 했다.
둘은 연인에 가까웠으니.
여자는 이른 새벽에 눈을 떠, 부하 몇을 시켜 작센이 죽인 시신의 목을 잘랐다.
그걸 그대로 몽테르의 늪 근거지 중 한 곳으로 보냈다.
경고였다.
경고에도 덤비면, 후회는 덤비는 자의 몫일 터.
이후, 몽테르의 늪이 덤비는 일은 없었다.
그럴 만했다.
저쪽이 아즈펜을 무대로 움직인다면.
이쪽은 대륙을 무대로 움직이는 이들이었으니.
* * *
“이쪽이 맞아요?”
크라이스가 음습한 뒷골목을 보며 물었다. 고약한 냄새와 보기만 해도 밟기 싫은 오물 섞인 바닥이 보였다.
부랑자가 머무는 곳 근처의 골목길이었다.
크라이스의 물음은 작센을 향한 거였다.
엔크리드도 슬쩍 시선을 돌렸다.
이런저런 물건을 구하는 김에 휘슬 대거를 구할 수 없냐고 물었더니.
“구할 수 있습니다.”
그리 말한 작센이 따라오라 했다. 그렇게 나선 길이다.
요새 하도 바쁘기에 이럴 만한 시간이 없을 줄 알았다.
홍등가와 이런저런 곳을 둘러보느라 병영에는 거의 들어 오지도 않더니.
작센은 크라이스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면 반응하지 않는다. 평소의 작센이었다.
여기가 맞다는 의미가 담긴 침묵이다. 때로는 침묵이 대답이 되기도 하는 법.
크라이스도 묻긴 했지만, 따지진 않았다.
좀 더럽다고 못 들어갈 것도 아니고.
“이쪽으로.”
작센은 무심히 말하고 안으로 들어섰다.
엔크리드가 그 뒤를 따랐다.
대장간, 그것도 실력 좋은 대장장이를 찾으려 했는데.
그쪽도 답이 없다는 건 이미 알고 있긴 했다.
크라이스를 시켜 이미 알아볼 만큼 알아본 뒤 아닌가.
엔크리드의 뒤로 프록도 따라왔고.
어쩐 일인지, 에스터도 같이 왔다.
오물이 쌓인 골목길에 들어서자, 에스터가 벽을 타고 올라가 지붕을 길 삼아 걸었다.
“저거 요물이네.”
그걸 본 루아가르네가 말했다.
엔크리드는 반쯤은 동의했다. 영 사람 같다니까.
루아가르네는 프록 전용 부츠를 신었다. 발등을 꽉 조여 주는 여덟 개의 줄과 단단한 나무로 받침을 만든 독특한 형태였다.
그녀가 걸을 때마다 돌바닥과 신발이 만나며 딱딱 하는 소리가 났다.
“여깁니다.”
작센이 멈추며 말했다.
여행, 그것도 임무를 위해 떠나려면 준비할 물건이 많았는데, 엔크리드는 그중에서도 휘슬 대거를 좀 챙겨 두고 싶었다.
“……오늘은 손님이 많네.”
문을 열어 둔 채로 문 바로 앞에 좌판을 깔아 둔 노파가 말했다. 수정구와 색 바랜 곱슬머리 금발, 주름진 손등, 점쟁이였다.
“여기에 있다고?”
엔크리드도 이런저런 일을 다 겪어 본 몸이다. 암시장? 꽤 다녀 봤다. 용병 시절 암암리에 열린 불법 노예 시장도 본 적이 있다.
암시장도 아니고 점쟁이 노파?
휘슬 대거는 구하기 어려운 물건이었다. 암시장에서도 쉬이 볼 수 없는 그런 무기.
그게 이런 점쟁이에게 있다는 건가?
“네.”
작센은 답하고 손짓으로 말했다. 수화였다. 그 수화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나, 적절한 신호였는지 점쟁이 노파가 흐응 하고 콧김을 불었다.
그 콧김을 불어내는 행위가 허락처럼 보이는 게 엔크리드만의 착각은 아니었으리라.
“구하는 물건이?”
점쟁이가 물었다.
“휘슬 대거, 많을수록 좋고.”
답은 엔크리드가 했다.
“대금은?”
“이쪽에서.”
엔크리드가 크라이스를 내세웠다.
“네, 제가 내야죠.”
마지못해 나서는 걸 아는데도, 겉으로만 보면 호쾌했다. 기왕 쓰기로 한 거 크라이스는 제대로 주머니를 풀었다.
투자해야 이득을 취하는 법 아니겠나.
“부대로 보내지요.”
“내가 누군지 알고?”
엔크리드가 되묻는 말에 점쟁이 노파가 끌끌끌 웃었다.
“지금 이 도시에 대대장 이름은 몰라도 당신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지.
더 물으려 했으나, 점쟁이는 그대로 좌판을 걷더니 수정구와 제 도구를 주섬주섬 챙기기 시작했다.
“그럼, 이만.”
그대로 제집으로 쏙 들어가는 노파를 붙잡고 뭘 물을까.
물건 정리하는 걸 보니 한두 번 해 본 솜씨도 아니었다. 뚝딱하고 좌판을 접는데, 고작 숨 몇 번 돌릴 시간에 정리가 끝났다.
가끔이지만, 의문이 들긴 했다.
작센은 어떻게 이런 곳을 아는 걸까.
크라이스도 못 구한다고 두 손 든 물건인데.
그렇다고 어떻게 아느냐고 묻진 않는다. 목적은 휘슬 대거지, 작센의 과거가 아니니.
“정말 구해 줄까요? 영 믿음이 안 가는데.”
크라이스가 옆에서 중얼거렸다. 매사 의심하는 게 기본인 친구다.
“못 구하면 그만이다.”
엔크리드는 말하고 걸음을 옮겼다. 나온 김에 시장에서 이런저런 걸 좀 챙길 생각이었다.
가령 양념이 끝내주는 육포 가게와 대장간에 들러 방어구도 손보고 싶었다.
날이 더워서 갬비슨을 껴입고 가긴 무리다. 그렇다고 해서 맨몸으로 나설 순 없으니.
품이 넓은 가죽 방어구가 어떨까 생각했다.
본래 입던 가죽 갑옷은 버렸다.
대강이라도 입어 보려는데, 어느 날 에스터가 발톱으로 다 헤집어 놔 버렸으니.
“갑옷값은 네 발톱을 팔아서 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은데.”
그 생각에 지붕 위를 걷는 에스터에게 말하자.
“키르.”
표범이 낮은 울음을 토했다.
그게 마치 웃기지 말란 말처럼 들렸다.
엔크리드도 그냥 던져 본 말이었다. 농담이란 소리다.
그리 나서서 육포집에 들러 이런저런 주문을 하려니.
“고맙습니다.”
주인이 대뜸 인사부터 했다.
“무슨?”
엔크리드가 고개를 갸웃하자, 주인이 숫제 고개를 두 번 더 숙였다.
정수리 사이로 점점이 하얀 새치가 보였다.
“감사해서요. 못난 아들의 둔 어미로, 어찌 아들을 구해 준 사람한테 크로나를 받겠습니까. 원하는 만큼 가져가세요.”
“에?”
엔크리드는 몰랐다. 그는 그저 최선을 다해 싸웠고.
목숨을 걸고 덤볐고.
그저 나아가기 위해 발악했는데.
발악하고 그리 나서서 싸운 덕에.
“감사해요, 아들놈이 없으면 이 몸도 살아갈 의미가 없으니.”
홀로 아들을 키우던 어미에게 감사를 받았다.
전장, 그곳에서 일어난 일.
엔크리드 덕에 목숨을 구한 사람이 많았다.
그리고 그들은 전부 보더 가드에 뿌리를 둔 이들이었다.
“갑옷, 그거 반값만 주쇼.”
“가죽 물통이라면 이쪽이 더 좋을 것 같은데.”
“부츠는 아직 멀쩡합니까? 새로 만든 것도 있소. 그 소대원을 데려오면 내 치수를 재서 전부 만들어 줄 생각도 있고.”
“꽃밖에 드릴 게 없네요.”
“이거 가져가세요.”
“사과라도 하나 먹어 볼 텐가?”
“말린 과일을 모아 둔 겁니다.”
“숯이라도 좀 드릴까?”
그리 석 달 내내 엔크리드를 보지 못했던 시장 상인은 그들의 영웅을 대접했다.
엔크리드로서는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쳇, 괜히 기분이 좋네.”
옆에서 크라이스가 하는 말, 엔크리드도 같았다.
꼭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발악한 건 아니었으나.
제 주변에 있는 이들을 지키는 것 또한 마음에 담아 두긴 했으니.
새삼 드는 생각이다.
기사란 무엇인가.
‘지키는 사람.’
제 사람의 웃음을 지키고, 신념을 세워 나아가야 하는 사람.
엔크리드에게는 퍽 만족스러운 외유이자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