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늘만 사는 기사-162화 (162/170)

162. 반기지 않아도 상관없음에

하이에나 마수 무리를 해치운 뒤, 냇가를 찾은 일행은 씻고 육포도 꺼내 먹었다.

먹고 마시고 씻는 일은 중요하다. 특히나 긴 여행길에는 더더욱.

괜히 감기라도 걸리면 여행의 고난 정도가 급격히 상승하게 될 테니.

“진짜 이 맛은.”

핀의 기분도 조금 나아진 것처럼 보였다.

양념 육포의 위력이었다.

루아가르네는 마른 과일과 손수 준비한 식용 애벌레 따위를 먹었다. 매미 비슷한 곤충도 몇 마리 잡아먹었고.

비위가 상하진 않았다.

저게 프록의 식사라는 걸 이미 잘 알고 있다.

“곤충은 몸을 튼튼하게 한다.”

말린 애벌레를 씹으며 하는 말이다.

보더 가드에는 프록을 위한 편의 시설이 없었다.

즉, 저 도시락은 루아가르네 자체 제작이었다.

먹는 거야 본인만 만족하면 그만이긴 했다.

그런 면에서 에스터도 육포를 즐겼다. 질겅질겅 몇 번 씹고 삼키더니 만족하는 고갯짓.

저거 표범 맞나, 저 정도면 사람이라고 해도 되지 않나.

다들 가죽 수통에 물을 채우고 마셨다.

냇가의 물은 맑고 시원했다.

가도를 따라가다 작은 둔덕을 넘을 때쯤, 엔크리드는 불쾌한 향을 맡았다.

‘피비린내?’

죽음, 전장, 그런 냄새다.

피와 쇠붙이의 냄새, 전장의 향.

둔덕을 넘자, 향기의 진원지가 보였다.

곳곳에 널브러진 마수의 사체가 보였다.

늑대 마수, 뱀, 염소가 변한 것도 보였다.

숫자가 그리 적지 않았다.

무기에 잘리고 맞고 찢긴 상처가 보였다.

그 외 무슨 갈기갈기 찢긴 시신들도 많고.

들개 무리가 뜯어먹은 흔적 따위도 보였다.

마수란 무엇인가, 마물의 마기나 마경의 영향을 받아 짐승이 변한 걸 말한다.

육식성에 공격성이 강한 성향일수록 쉽고 깊게 영향을 받아 변하는 편이다.

그렇다곤 해도.

‘많아.’

핀이 화가 나서 했던 말처럼, 이 땅이 무슨 마경도 아닌 바에야, 이렇게 많은 마수가 있을 수 있나 싶었다.

널브러진 시신의 숫자만 물경 서른을 헤아렸다.

마경은 인간이 침범할 수 없는 땅.

마물과 마수의 근원지다.

몇 번이고 그곳을 토벌하겠다고 덤비는 왕국이 있었지만.

토벌은커녕 국력이 약해져 이웃 나라에 잡아먹히는 꼴만 나올 뿐이었다.

마경의 중심부에는 마물을 토해내는 무언가가 있으리란 추측이 다분한 곳.

당연히도 정말 마경 근처였다면 이 정도 무리는 고작이란 말이 붙을 판이었다.

이후, 마수 무리를 만나는 일은 없었다.

“이게 정상이라고 하고 싶지만.”

핀이 중얼거렸다.

그녀도 곳곳에 죽어 나자빠진 마수 시신을 봤다. 구울도 몇 마리 봤지만, 대부분 마수였다.

마물보다 마수의 숫자가 월등히 많았다.

그렇게 스무날 대부분을 투자한 일행은 곧 개척마을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숱한 마물과 마수와의 만남 덕에 이틀이 늦어, 스물하고도 이틀.

목적지였다.

높게 솟은 나무 울타리.

적의 침입을 방비하기 위한 단단한 방벽.

그 위로 망루 비슷한 것도 두어 개 보이니.

규모가 작진 않았다.

나라에서 작정하고 밀어주는 마을이라면 그래, 이 정도 규모가 될 수도 있는 법이다. 성을 방불케 하는 그런 크기의 마을이었다.

“큰데요?”

크라이스가 감상평을 말했다.

“그러게.”

핀이 한가로이 답하며 주변을 살폈다.

레인져로서의 그녀는 짜증을 내기도 했지만, 어쨌든 도착했다. 그거로 만족하기로 했다.

모든 일에 완벽할 순 없으니.

엔크리드야 그런 건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는 그저 목책 앞으로 향했다.

꽤 잘 만든 방어 시설, 보자마자 든 생각이다.

본격적으로 전력이 투입된 개척마을이란 의미였다.

엔크리드가 앞에서 제 소속을 밝히자, 곧 목책의 문이 열렸다.

망루 위에 있던 눈매가 매서운 남자의 눈썹이 씰룩였다.

인상이 굉장히 안 좋은.

‘패고 싶게 생겼네.’

그런 얼굴이었다.

엔크리드가 타인의 일에 관심이 없는 편인데도, 때려 주고 싶게 생긴 얼굴이었다.

안에서 보니, 방책도 문도 전부 두꺼운 통나무로 만들었다.

상당히 튼튼한 울타리였다. 성벽 수준은 아니지만, 그와 준하는 크기와 높이 아닌가.

마을 중앙에 긴 깃대와 단상이 있었고, 그곳이 마을 광장이라는 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마을의 대표인 이장이 나왔다.

이장은 젊은 남자였다. 나이는 엔크리드와 비슷했고.

얼굴은 평범했지만, 눈빛은 자신감으로 충만했다.

“어서 오시오.”

이장이 말했다. 엔크리드는 그의 말투와 태도, 눈빛에서 자신들이 영 환영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육감과 직감의 발달 덕분일까.

프록을 일행으로 대동했음에도, 이장은 정말 일행을 반기지 않았다.

* * *

“이곳은 우리만 있어도 충분하오.”

“근처에 있던 대형 도적단도 쫓아냈지.”

“검은 칼 도적단이라고 들어 봤소? 그놈들도 감히 엄두도 못 내고 있지!”

“프록이 와 준 건 고맙고 지휘관이 온 것도 고마운 일이나, 보면 알겠지만, 작은 규모의 마을이 아니오.”

“그래서 소대장이시라고? 검은 잘 쓰는 편인가 봅니다?”

“우리 일행 중에는 소싯적에 용병단을 꾸린 사람도 있소. 들어는 봤는지 모르겠는데, 외눈의 글레이브라고. 지금은 우리 마을 경비대장이지.”

이들의 대우를 요약하자면.

“참견 안 해도 우리가 알아서 할게, 구경이나 하다가 돌아가면 말은 잘해 줄게. 의뢰? 그거 잘 수행했다고 해 주면 되잖아? 콜로니는 이미 처리했지.”

이런 말이었다.

이장을 위시한 이들, 아마도 마을의 핵심 권력이자 중추인 이들.

폭삭 늙은 사람은 없었다. 대체로 장년에서 청년 정도였다.

그들의 뜻이었다, 끼어들지 말라는 건. 마을 인력 대부분도 그들의 의견에 힘을 실어 주는 듯했고.

특히나 경비대인지 자경단인지 하는 것들은 숫제 적의 비슷한 것도 내보이는 것 같았다.

“그럽시다.”

엔크리드는 굳이 자신의 지휘권 확보를 위해 이들에게 뭔가를 강요하지 않았다.

쓸모없는 일이었다.

의뢰는 의뢰, 일은 일, 사람은 사람이니.

알아서 하겠다니, 알아서 하라고 놔뒀다.

다만 이곳에 머물기로 했다. 길면 이레, 짧으면 닷새, 정말 안전한지 잘 보고 돌아가서 보고만 하면 끝날 터였다.

어쨌든 그들의 의견이니, 엔크리드는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는 거다.

급조한 오두막 하나를 숙소로 쓰라고 받은 상태다.

크라이스는 마을 구경이나 한다고 나간 상태에서 루아가르네가 물었다.

“그냥 이대로 있는 건가? 구경이나 하면서?”

“훈련이나 하면서 시간을 보낼까 합니다.”

“여기서도? 그래, 그럴 수 있지.”

이제 루아가르네도 엔크리드란 인간에게 적응하는 중이다.

이 자식이라면 여기서도 검이나 휘두를 수 있었다.

오두막 근처 공터가 많았다.

아직 집을 짓는 곳도 많았고.

공터 한쪽, 엔크리드가 검을 휘둘렀다.

누가 보든 말든 언제부터 그런 걸 신경 썼다고.

정검의 기본, 거기에 회피의 감.

최근에 가장 빠져들어 탐닉하는 것들.

그 와중에 배운 게 올올이 몸에서 풀리니.

휘두르고 또 휘둘러, 자신을 잊고 검만이 남은 세계에 선뜻 발을 들였다.

그 안에서 엔크리드는 여기까지 오며 루아가르네에게 배운 걸 되새겼다.

엔크리드가 세차게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고.

크라이스는 마을 여기저기를 들여다보기 바빴다.

외지인이라고 배척받을 줄 알았더니, 용케도 잘 녹아든다.

‘저것도 재주지.’

루아가르네는 그리 생각했다.

크라이스란 인간은 상대의 속내를 읽고 가려운 곳을 긁어 줄 줄 알았다.

오가며 보니.

“연초 한 대 드릴까요?”

돌돌 만 연초 하나로 상대의 호감을 산다. 그렇게 채석장 근처를 오가는 덥수룩한 수염의 남자와 친분을 트더니.

“대단한 일 하시네. 위험을 감수하고 여기까지 온 거 아닙니까? 개척마을까지, 와. 응? 남자네, 남자.”

몇 마디 말로 환심을 샀다.

‘말재간도 좋네.’

저런 놈은 그러니까 왕국 내에 많기도 했다. 흔히 정치가라는 놈들, 귀족의 신분으로 나라의 녹을 먹는 이들, 관리다.

‘어울리려나.’

일반적인 상식에 비추어 봤을 때, 여기까지 온 여행길은 살벌하고 험난했다.

물론 일행의 무력을 생각하면 그런 큰 위험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저렇게 곧바로 활동적으로 움직이는 걸 보며 나름 신기한 일이었다.

프록의 시선이 다른 일행을 찾았다.

에스터란 표범은 오두막 창틀에 발을 걸치고 제 주인을 빤히 바라보고.

핀은 안에서 부족한 수면을 취하는 중이었다.

루아가르네는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시간이 남으면 뭘 해야 하나, 엔크리드를 보고 그의 훈련을 도우면 될 일, 그녀는 그렇게 했다.

그러다 보니, 과거의 인연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정확히는 그동안 자신의 손을 거쳐 간 천재라는 족속들이.

하나같이 참, 개의 혈육 같았지.

그랬다. 맞다. 개의 혈육, 참으로 그랬다.

“이 정도 했으면 된 것 같은데?”

“더 배워야 합니까?”

“오늘 저녁에는 살롱에 약속이 있어서.”

“아니, 저 좋아합니까? 전 프록이랑 뭐 그 정신적 사랑 그런 거 할 생각 없으니까, 좀 놔둬 주시면 좋을 것 같은데?”

“여기까지, 한계입니다. 더는 못 합니다.”

재능 있는 놈들은 하나같이 비슷했다.

조금만 해도 제 몸에 기술이 익어 버리니, 뼈를 깎는 단련이랄 게 없었다. 피를 토하는 훈련도 어렵다. 그저 훈련 시간을 채우기 급급했다.

시간 대비 효율이 끝내주게 좋은 몸뚱이를 타고난 덕에 아주 정신력이 말라 버린 우물 같은 놈들이 됐다.

검이란 결국 육체를 통제하고 뜻대로 움직일 줄 알아야 함이다.

그게 기본 조건이다.

그런 걸 타고난 이들이다. 몇 번 해 보면 알아서 기술이 몸에 익어 버리는 천재, 노력에 익숙하지 않은 놈들.

뿌르륵.

그 생각을 하니, 절로 볼이 부푼다.

그럼 기본 조건을 갖췄다면, 이후에는 무엇을 해야 하나.

‘하긴 뭘 하나.’

부지런히 휘두르고 뛰고 굴러야지. 그런데 그런 놈이 있던가? 정말, 정말 흔치 않았다. 참으로 드물었다.

태반이 다 그리 병신 같았음에도.

안 그런 사람도 있긴 했으나.

‘신은 공평하지 않으니.’

울적하진 않지만, 그리 즐겁지 않은 기억이 떠올랐다.

자신의 첫 번째 연인, 내일을 생각지 않고 항시 지금에 최선을 다하던 남자.

“훈련이 재밌어.”

그 남자가 한 말들. 그런 것들이 떠올랐다.

루아가르네는 추억을 곱씹었다.

그때의 그녀는 어렸고, 지금보다 훨씬 더 열정적이었다.

물론 프록이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열망이 식진 않을 것이다.

그들은 쾌락주의자.

본인의 욕구와 욕망을 따라 사는 전투 종족이니.

상념이 흐려지며 눈앞을 다른 인간 남자가 채운다. 그걸 보며 절로 입이 열렸다.

“재밌나?”

추억에 빠진 루아가르네가 물었다.

엔크리드가 슬쩍 루아가르네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재밌습니다.”

루아가르네의 눈에 땀을 흠뻑 흘린 남자가 보였다.

검은 머리칼과 푸른 눈, 자신이 연인이었던 남자와는 다르다.

그는 재능 또한 출중했다.

아마도 살았다면, 신의 불공평함이 그에게 머무르지 않았다면.

그는 기사가 됐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눈앞의 남자는 아니다. 그럼에도 왜 겹쳐 보이는지.

그저 추억, 빛바랜 과거, 쾌락이 아닌 아픔이 된 기억.

루아가르네는 프록이기에, 즐겁지 않은 기억을 던져 버렸다.

오늘을 충실히, 욕구에 몸을 맡기고, 언약을 지키는 그런 삶을 살면 그만이다.

“대장, 대장.”

아주 잠시, 루아가르네가 감상에 빠진 사이, 크라이스가 종종 다가오더니 엔크리드를 불렀다.

다가온 크라이스가 입을 열었다.

“아주 본격적인데요? 채석장에 훈련장에, 병영까지도 계획 중이던데. 뒷배에 무슨 귀족 나으리가 있다는 말도 있고요.”

반나절도 되지 않았는데 주워듣고 온 게 많기도 하지.

크라이스가 말하며 검지를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위쪽, 권력자의 입김이 들어간 마을이란 의미였다.

하긴, 그렇지 않으면 이만한 규모는 어렵지 싶다.

“방어는?”

고개를 끄덕인 엔크리드가 물었다.

만약 대규모 마수 무리가 몰려오면 어떻게 되는가.

본래 의뢰는 콜로니를 이룬 마수 무리의 처리다. 지휘권을 준 건 마을 자경단을 이용하라는 소리였는데.

그게 물 건너갔다면?

마을 자체적으로 콜로니를 해결할 수 있을까?

이후에도 일이 터지면 이들은 안전한가? 기왕 맡은 일이다. 제대로 보는 거다.

의뢰는 의뢰, 일은 일, 사람은 사람.

알 건 알아야 했다.

크라이스가 할 일이 없어 빨빨거리며 돌아다닌 건 아니었다.

그는 생각보다 엔크리드와 쿵짝이 잘 맞았다.

엔크리드의 눈짓만으로 알아 올 건 다 알아 왔다.

“훌륭합니다. 전직 용병단장인지 뭔지가 제대로 훈련을 시킨 것 같습니다. 제가 뭐 보는 눈이 있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군기는 잡혔던데요? 그리고 보통 군기가 잡힌 부대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 법이니까요. 망루에 있는 놈들도 눈빛이 아주 그냥, 혀는 친절한데 눈깔이 살벌합니다. 아주.”

망루, 그 눈, 얼굴.

참 마음에 들진 않았다. 감이 그렇다는 거다. 어디서 도적질을 겸한 용병 놈이었을까.

그럴지도 몰랐다.

어쨌든 이 정도면 딱히 걱정할 건 없지 않을까.

그리 생각했다.

그럼 뭘 해야 할까.

“이렇게 된 거, 대장, 우리 같이 보물이나…….”

“루아가르네.”

엔크리드는 크라이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프록을 불렀다.

감상에서 벗어난 프록이 툭 튀어나온 눈알을 굴렸다.

“붙어 봅시다.”

대련과 훈련, 평소와 똑같은 일을 하면 그만.

벌써 주변에서 엔크리드를 구경하는 이들이 생겼다.

별종 중의 별종이라.

여기서도 종일 검을 휘두를 것처럼 보였다.

“목검으로 할까?”

프록이 묻고.

“크라이스?”

엔크리드는 대답 대신 수완 좋은 부하의 이름을 불렀다.

환영받지 못한 손님이라 해도 목검 두 자루 정도는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보물 찾으러 안 갈 거죠?”

엔크리드의 요청에 크라이스가 되물었다. 진정성 담긴 말투다. 당연했다. 크로나가 걸린 일이니.

“가는 쪽으로 마음이 기우는 중이지.”

“……목검 구해 오겠습니다.”

엔크리드는 생각보다 음흉한 구석이 있었고 크라이스는 그걸 모르지 않았으나.

‘한번 말하면 지키는 사람이니까.’

엔크리드는 입에서 뱉은 말을 지키는 편이니.

기울고 있다지 않나.

그럼 반쯤 된 거였다.

크라이스가 다시 발을 재개 놀리는 걸 보는데, 뒤에서 킷킷 소리가 났다.

돌아보니 에스터, 표범이 웃고 있었다.

웃음소리가 무척 독특했다.

“너 전에도 그렇게 웃었냐?”

엔크리드가 새삼 궁금해 물으니, 에스터가 점잖은 척, 안 웃은 척, 목을 길게 빼더니 옆으로 돌려 제 앞발에 머리를 대고 누웠다.

대답 듣긴 글렀군.

곧 크라이스가 용케 목검을 구해 왔고.

대련이 이어졌다.

루아가르네가 목검을 구해 오란 이유가 있었다.

“수 싸움 놀이란 거다.”

한때 재능이 출중했던 제 연인을 가르쳤던 방식이었으나, 당연히도 엔크리드는 몰랐다.

그저 즐기기 바빴지.

새로운 훈련, 새로운 형태의 칼질이다.

재밌었다. 가진바 육체 능력보다 정검식의 기본을 갈고닦는 단련이었다.

상대가 내미는 검을 어느 쪽으로 막고 틀어 낼 것인가.

그 모든 게 다음 수를 위한 것.

승리를 위해 곳곳에 함정을 파는 수.

느리게 목검을 맞대며 수를 만들어 가니.

“저건 뭐냐?”

“놀러 왔나.”

“뭐? 왕국에서 온 지원? 휴양이 아니고?”

주변에서 그걸 보고 입을 터는 이들이 생겼다.

프록과 칼싸움을 하며 노는 놈이 있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규모가 크다고 해도 이곳은 개척마을, 자경단을 제하면 주민 숫자가 끽해야 이백 어림이었다.

보더 가드에서 지휘관으로 온 놈이 여자 하나에 프록 하나를 끼고 온 한량이란 소문이 돌았다.

프록은 호위, 여자는 길잡이라는데, 눈이 큰 시종과 애완동물도 데려왔단다.

엔크리드는 신경 쓰지 않았다.

사고뭉치 분대장일 때는 더한 소문에도 시달렸어도, 아랑곳하지 않았었다.

“으아, 여기까지 와서 또 칼질이야?”

푹 낮잠을 자고 일어난 핀은 일어나자마자 땀에 푹 절은 엔크리드를 보고 혀를 내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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