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 굴러온 돌
마경 성지교는 대륙을 마경화시키는 걸 목표로 삼는다.
이유?
“마경이 왜 잘못된 것입니까? 우리가 발전하고 변해야 할 모습이 그 안에 있다는 생각은 왜 못 합니까? 미지를 두려워하는 건 당연합니다. 하지만 피한다고 전부 해결되는 건 아닐 것입니다.”
구울 나발 부는 소리였다.
그래서 왜 대륙을 마경으로 만드는데?
“그게 옳으니까요.”
광신이란 두 글자가 이리 잘 어울리는 놈들이 어디 있을까.
이유? 없다.
당위성? 그딴 건 찾아볼 수도 없다.
그저 믿는단다. 그저 그래야 한단다.
밑도 끝도 없는 믿음, 광신이다.
고로 사교도는 정말 미친 새끼들이었다.
이러니까 이단 심문관들이 눈에 불을 켜고 사교도를 잡아 죽이는 거고.
실제 사교도는 마경화 시도를 수 차례 시도했고, 이 땅에도 그런 비슷한 일이 있었다.
갓 잡은 어린 염소 백 마리를 제물로 놀을 모으고, 이 일대를 아예 마물과 마수의 땅으로 바꾸려 했다.
애초에 사교도가 마물을 모으기 시작한 건 개척 마을이 들어서기 전이었으니,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긴 했다.
처음에는 마물을 모아 이 일대에 놀의 왕국을 세우려 했다. 그게 중간에 마을 습격으로 변한 거고.
방벽과 망루, 작정하고 만든 개척 마을은 잘만 하면 작은 성이 될 수도 있었다.
그리 훌륭한 먹잇감이 제 발로 왔으니.
“신이 도우셨도다.”
사교도 무리는 진정 그리 믿었다.
지금 당장 마물의 살을 더 찌우고 몸집을 불리라는 계시 아닌가.
저 앞에 먹어 달라고 제물이 직접 제 살을 잘라 바치고 있었다. 그렇게 개척 마을 하나를 집어삼키는 행사가 시작됐다.
허투루 할 수 없는 일.
사교도는 심혈을 기울였다. 정체를 숨긴 채 용병단에도 들어갔고, 놀 무리를 더 모았다.
사교의 주문은 마물과 깊은 연관이 있었다.
세뇌와 현혹에 뛰어난 이들이 손을 썼다. 하급 신도와 사제까지 나섰다.
하이에나의 습성을 그대로 닮은 마물인 놀은 언제나 단체로 싸웠고, 몰려 다녔다.
콜로니를 이루기 쉬운 습성을 지녔다는 거다. 리더만 있으면 될 일이었다.
저주와 강화가 놀 한 마리에게 깃들었다.
그들은 그렇게 놀의 군대를 만들었다.
그리 만든 콜로니를 수백 단위로 불리는 일이 고작 하루 이틀 만에 이뤄질 순 없었다.
이 일에는 사교도의 피와 땀, 눈물이 얼룩져 있었다.
“성지를 이루리!”
황야 한가운데에서 제 뜻을 외친다.
크로나를 쏟아부어서 놀 무리를 무장시키고.
리더를 만들어 주문으로 현혹하고.
실제 들어간 자원으로 치자면 개척 마을 하나를 꾸려 나가는 것보다 더한 규모가 들어갔다.
그럴 가치가 있었다. 본래 큰 이득을 위해서는 주가 필요한 법이니.
이건 마교 성지교가 이루고자 하는 일의 시작이었다.
사교 무리가 시간과 자원을 투자하는 사이, 개척단은 방벽을 세웠다.
이게 모든 일의 진상이었다.
엔크리드가 알 수 없는 선상에서 일어난 일이다.
당연히 예상 밖의 일이고.
그래서 그게 뭐가 어떻다고.
알 바 아니었다. 안다고 변하는 게 없다는 거다.
엔크리드는 배경 이야기를 따지지 않았다. ‘왜’를 묻지 않았다.
마물이 몰려왔고, 이걸 다 잡아 죽일 생각만 했다.
마물과 마수다. 죽이면 그만인 일이었다.
“무슨, 마수 무리가.”
크라이스만은 어렴풋이 이런 상황을 대략 짐작했다.
황야와 들판에서 이런 무리가 뚝딱하고 만들어졌다? 거기에 무장까지 갖추고? 마을 안에는 첩자까지 심어서?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인가.
이장의 목에 칼을 들이댔고 방벽 너머에서 울리는 울음을 들었으며, 그사이 핀을 대강 치료했다.
그 뒤에 부리나케 망루에 올라 마물의 규모를 확인하고, 몸을 움직이는 사이 크라이스의 머리는 팽팽 돌아갔다.
‘사교.’
사교도의 짓이었다. 대륙 전체를 통틀어 봐도 제일 골칫덩이인 놈들이었다.
악의로 뭉쳐, 적의를 내세우는 것들.
저 마물 무리를 보라. 악의와 적의 외에 무슨 말을 할까.
대강이지만, 크라이스는 저 무리가 사교도의 피와 땀, 자원이 엮인 거라는 걸 짐작했다.
짐작만 했다. 안다고 변하는 게 없으니, 짐작에서 끝냈다.
‘그게 뭐가 중요하다고.’
살아남는 게 중요하지, 크라이스의 머리는 그때부터 더 팽팽 돌아갔다.
이후 내린 결론이다.
‘트리뷰셋도, 망고넬도 없다.’
투석기가 없었다. 대형 공성 병기 따위는 꿈도 못 꾼다. 병력은 많나? 마물과 마수의 숫자에 비하면 적다. 확실히 적을 터였다.
방벽이 천년만년 버텨 주면 좋겠지만, 놀과 하이에나 마수의 숫자가 물경 몇백 단위를 훌쩍 넘었다.
이게 버텨지나?
이대로 버틸 수 있는 건가?
하이에나 마수 몇 마리가 기어오르려고 방벽에 발톱을 벅벅 그었다.
저리 긋다 보면 어디 한군데는 어긋나지 않을까? 작은 균열은 곧 구멍이 될 것이고, 구멍은 곧 통로이자 입구가 될 터.
무기를 휘두르는 놀도 많았다. 쿵쿵 벽을 후려치는데, 도끼로 찍어 대는 놈들도 수두룩했다.
방벽에 무수히 많은 생채기가 쌓이는 중이었다.
어디 개구멍은 없을까? 뚫리면 막을 순 있나?
‘안 될 것 같은데.’
최소한 이건 제한 시간이 있는 싸움이 될 듯했다.
길게는 못 막는다. 결론은 그거다. 그럼, 지원군을 기다려야 하는데.
새를 몇 마리 기르는 건 봤다. 긴밀한 연락을 취할 때 흔히 쓰는 푸른 깃의 비둘기다.
그걸 보내면 원군이 올 때까지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었다.
결론은 같았다.
이거 버틸 수 있나?
크라이스는 불길함을 느꼈다. 이 방벽의 든든함을 얘기했을 때 크라이스가 예상한 건 일반적인 규모의 콜로니였다.
많아야 서른에서 오십 내외의 그런 무리, 그게 대략 열 배로 불었다.
“안 좋은데.”
크라이스의 안에서는 불길함이 치솟았다. 반사적으로 제 소대장을 찾았다. 움직이는 소대장이 눈에 들어왔는데, 엔크리드에게는 불안 따위의 낌새가 엿보이지 않았다.
은근히 여유가 있어 보이기도 했다.
묵묵히 걸어 방벽 위로 올라간다.
크라이스는 훈련에 미친 제 소대장이 주변을 돌아보지 않아서 그렇지, 머리가 꽤 잘 돌아간다는 걸 안다.
그러니 저런 태도를 보일 때는 뭔가 믿는 바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긴 했다.
어쨌든 지금 크라이스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핀을 치료하고 망루 위에서 한 번 쭉 살펴보고.
“야, 나 아파.”
밑에서 핀이 불렀다.
“내려갑니다.”
크라이스가 다시 밑으로 내려왔다. 붕대를 얼추 감아 놓긴 했는데, 배에 구멍이 났다.
정말 아슬아슬하게 내장이 상하지 않은 듯했다.
“에일카라즈식 내장 피하기를 썼지.”
핀이 말했다. 정말 그런 기술이 있나?
“농담이다.”
이 와중에 농담까지 하는 걸 보면 확실히 핀도 머리가 상당히 아픈 쪽이었다.
“렘의 부인처럼 말하네요.”
“모욕이다. 결투를 신청하지.”
“네, 그러시죠.”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크라이스가 상처를 재차 살폈다.
격하게 움직이긴 어려울 듯했다.
그래도 치명상은 아니니.
“죽진 않겠네요.”
“지금은, 이겠지.”
핀도 눈치는 챘다. 이 방벽이 얼마나 버티려나, 그런 불안감이다.
“네, 뭐.”
크라이스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혹시 일이 틀어지면 몸을 뺄 수단이 있긴 했다.
그게 남은 이들에게 잔혹한 일이 돼서 그렇지.
마을 안을 돌아다니며 괜히 발품을 판 건 아니었다.
크라이스는 언제나 최악을 대비했으니, 도망갈 길쯤은 이미 봐 뒀다.
* * *
방벽 위로는 길게 사로(射路)가 만들어져 있었다.
그 위에서 밑으로 바글거리며 구오오오! 괴성을 내지르는 놀과 하이에나 마수 무리가 그득했다. 이 정도면 거의 마물 밭이었다.
“이런 씹. 뭔데.”
“뭐냐, 이건 왜 마물이? 왜 이렇게 많이, 왜, 아니 너무 많잖아.”
“팸? 팸이 죽었어. 아니, 랄프도?”
마물과 아직 식지 않은 동료의 시신.
엔크리드가 올라갔을 때, 자경단은 아직이었다. 시위를 당기는 놈이 하나도 없었다.
공황 상태였다. 그나마 울부짖거나, 바지에 오줌 지리는 놈이 없어서 다행이려나.
쿵!
구우우우욱!
놀 특유의 묘한 울음과 함께다. 놈들이 몸으로 방벽과 문에 달려들었다.
찌르르하고 올라선 방벽 위가 흔들렸으나 무너질 정도는 아니었다.
엔크리드의 판단으로는 그랬다.
어깨를 들이받고 발로 차고 콱! 콱! 무기로 문과 방벽을 찍어 대기도 했다.
그래도 아직은 괜찮다.
이 정도로 무너지진 않는다. 방벽은 튼튼했다.
하지만 자경단의 정신은 그렇지 못했다.
놀 무리의 박력에 밀렸다. 다들 겁을 집어 먹어버렸다.
“……이게 다 뭐냐고!”
자경단원 중 하나다. 여긴 왕국 영토에서도 중앙이라 할 수 없는 곳, 보더 가드도 북단인데 이쪽은 조금 더 외곽이었다.
펜-하닐 대륙으로 치자면 이쪽도 북쪽에 속하니, 마물과 마수가 흔한 땅이다.
그래도 지금 저 숫자가 정상적이라는 건 아니었다. 쉬이 볼 수 없는 광경이란 거다.
공포, 압박.
마물의 박력이 주는 효과다.
변종으로 보이는 놀 몇 놈이 황톳빛 땅에 굴러다니는 돌을 집어 던졌다. 말이 돌이지, 숫제 사람 머리통보다 조금 작은 돌이 날아와선 방벽을 쿵 때렸다.
조금 더 작은 돌은 사람들이 있는 곳까지 날아왔다.
“익!”
휙 하고 날아가는 돌멩이 따위에 자경단 무리가 사로 벽 밑으로 몸을 수그렸다.
거듭 생각하는 거지만, 방벽 한 번 참 튼튼하게도 지었다.
크라이스도 확답하지 않았나, 어지간한 마물 콜로니에는 무너지진 않을 거라고.
그래도 놔두면 뚫리긴 할 거다. 이만한 숫자에 버티는 걸 전제로 깐 건 아닐 테니.
삐걱대는 문, 그 앞을 버티는 자경단, 이건 안 된다. 공포에 잠식되면 끝이었다.
마냥 뚫릴 걸 기다리면 죽음만이 기다릴 터, 그럼 아침부터 이 난리를 피운 게 헛짓거리가 되는 거고.
“안 쏠 거면 나 주지.”
그런 상황에서, 엔크리드가 가파른 계단을 밟고 올라와선 손을 벌렸다.
“에?”
“구경만 할 거면 달라고 했다.”
바로 옆에 있던 어안이 벙벙한 자경단 놈의 손에서 활을 뺏듯이 건네받았다.
숏보우, 짧은 화살.
긴 비거리는 아니지만, 마물이 수두룩하지 않나, 그냥 쏘면 되는 일이었다. 대충 쏴도 될 것이다.
‘활은 오랜만인데.’
활 쏘는 것도 얼추 배우긴 했었다.
몇 번 시위를 튕긴 엔크리드가 동작을 되새기고 손을 놀렸다.
왼손으로 활대를 쥐고 팔을 쭉 뻗어 겨누고, 화살을 시위에 재고 당긴다. 끼긱 하고 활대가 휘어지며 울었다. 힘은 부족하지 않았다.
대충 마물 한 놈을 겨눈 뒤, 쐈다.
쿵!
마침 놀이 다시금 어깨로 방벽을 들이받았을 때다.
퉁.
그 소리와 시위를 놓는 소리가 겹쳤다.
날아간 화살이 쌕 하고 날아가 박혔다. 그 많은 놀과 하이에나 마수를 전부 피해 바닥에 꽂혔다.
그것도 뚝 하고 금세 부러졌다. 놀 무리가 걷어차고 즈려밟으며 지나갔다.
‘아니, 이게 안 맞네.’
제대로 겨눴는데.
“싸움은 잘하더니만, 활은 처음이오?”
뒤에서 조장이란 작자가 올라오며 말했다. 당황했음에도 말렸고, 덤비면서도 뒤를 걱정하던 그 친구다.
더욱이 몇 번의 오늘에서 확인하길, 꽤 괜찮은 간담을 갖췄다.
지금도 그랬다.
조장이 올라오는 사이다.
또, 쿵!
다시 구우우우욱!
덕분에 목소리를 키우지 않으면 잘 안 들렸다.
엔크리드가 귀에 손을 대며 말했다.
“뭐라고?”
“다 들은 것 같은데.”
생각보다 간담이 좋은 친구라는 건 이미 알고 있지 않나, 그런 놈이다. 저 조장은.
“안 들렸는데.”
그리 답하고 나니, 조장은 엔크리드에게서 눈을 떼고 지나쳤다.
그러곤 흡 하고 숨을 삼키더니, 배에 힘을 잔뜩 주고 외쳤다.
“그냥 뒈질래애애애!”
조장은 목청이 끝내주게 좋았다. 외침, 커다란 고함, 그런 게 자경단 무리의 귀에 꽂혔다.
“팸 뒈진 건 놔둬! 동료 죽은 거에 정신 팔릴 때냐? 당장 급한 게 뭔지 안 보이냐? 정신 안 차릴래? 활 들어!”
크라이스가 그랬었다.
이쪽 군기는 제대로 잡혔다고.
마침 반대쪽 사다리로 도이치 풀만도 올라왔다.
한때 용병단을 이끌며 별명이 뭐라고 했더라.
외팔의 글레이브? 아니, 외눈이지.
안대를 찬 도이치의 얼굴이 보였다. 그가 하나 남은 왼쪽 눈으로 엔크리드를 매섭게 한번 노려보곤 고함을 내질렀다.
“쏴라! 방벽은 안 무너져! 돌멩이에 처맞기 전에 다 쏴 버리라고!”
자경단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화살은 많아 보였다.
거기에 궁수도 스물은 됐고.
“저기, 제 활 좀.”
엔크리드에게 활을 뺏긴 병사가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엔크리드는 순순히 활을 내줬다.
활은 영 손에 안 익으니.
나중에 이 또한 훈련이 필요한 일이다.
곧 궁사 스물, 아니 정확히는 스물이 조금 넘는 숫자가 밑으로 화살을 선물했다.
구우우욱!
귀청이 터질 것 같은 놀의 괴성과.
쿵!
어깨로 차징하듯 방벽에 몸을 비비는 사이.
투두두두둥.
시위 놓는 소리가 엮였다.
퍼버버벅.
엔크리드가 쏜 화살이랑은 달랐다. 바로 앞, 달려드는 마수와 마물의 머리, 팔, 다리 부위를 가리지 않고 화살이 꽂혔다.
어설프게 징 박힌 가죽 갑옷 따위를 입은 놈들도 보였지만, 맨몸인 놀들도 많다.
대체 저런 무기는 어떻게 구한 건지, 물경 오백이 넘는 듯하다.
병사 오백 명을 저리 무장시키려면 어지간한 영주의 허리가 휠 것이다.
단단히 뭐가 꼬인 일이었다.
누군가의 음모?
그야 뭐, 엔크리드가 알 바가 아니었다.
일단 자경단이 정신 차렸다는 게 중요하지.
엔크리드는 날아가는 화살에 죽어가는 마물과 마수를 보며 시선을 멀리 뿌렸다.
놈들 사이에서 쫓길 때는 찾을 수 없었지만, 지금은 여유가 있었다.
방벽이 있었고 시간도 있으며 하이에나 마수의 이빨을 피하겠다고 춤을 출 필요도 없었다.
그러므로 목표를 찾는 건 쉬웠다.
별종 사이, 홀로 유유히 서 있는 덩치 작은 놀이다. 작은 둔덕 위에 오른 채다.
본래 콜로니의 리더란 저런 자리가 필요했다.
힘의 논리로 찍어 누르기 위해, 상대적으로 주목받고 높은 곳에서 이끌어야 하는 거다.
다들 소리 지르고 난잡하게 뛰고 무기를 높게 쳐들고 난리인 무리 사이, 홀로 고고했다.
이미 저 새끼한테 몇 번이고 죽어 보지 않았나.
놀의 생김새를 구분할 지경이었으니, 알아보는 게 어렵진 않았다.
조금 더 죽었으면 예쁜 놀과 못생긴 놀, 개성 있게 생긴 놀을 구분할 판이었다.
“여긴 맡기지.”
엔크리드가 말하고 다시금 밑으로 내려갔다.
그냥 내려가려니 뭔가 허전했다.
구우우욱!
놀의 외침에도 다 들릴 정도로 엔크리드가 외쳤다.
“무슨 일이 있어도 놀라지 말고 계속 쏴라! 아군이 보이면 맞추지 말고!”
저건 무슨 개소리야?
문 앞에 있는 것들의 머리통부터 맞추라고 한창 악을 지르던 도이치가 엔크리드를 바라봤다.
뭐라고 짖고 내려갔는데, 당최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제 부하 몇을 벴다는데, 조장이란 놈은 그게 부하들이 이상했다고 말하고.
그 와중에 부하 하나는 보이지도 않았다.
똘똘한 놈이었는데.
물론 지금 따질 일은 아니었다.
도이치는 꽤 훌륭한 용병이었다. 상황이 최악으로 치달리자, 우선순위를 명확히 했으니.
일단 마물.
그 뒤에 저 미친 새끼의 머리통을 따 볼 심산이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부하를 벴는지, 칼로 물어봐야 할 것이다.
* * *
엔크리드가 도이치의 마음을 읽을 순 없었다. 사실 알았어도 상관하지 않았을 테지만.
그는 막 문 앞에 나무와 돌을 굴려 쌓는 이들 사이로 내려섰다.
“에스터.”
그때까지도 문을 지키던 표범이 총총 엔크리드 옆으로 다가왔다.
엔크리드는 정중히 물었다.
“내 뒤 좀 봐줄 수 있지?”
문 앞을 장애물로 쌓던 병사 중 하나가 시선을 돌렸다.
저거 왜 표범한테 말을 걸어.
“캬.”
그런데 표범이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시발, 저건 뭔데.
이런 상황에서도 눈에 밟히는 광경 아닌가.
“야, 뭐해!”
동료가 그를 불렀다.
“지금 간다!”
다시금 문 앞에 장애물을 채울 때다. 만약 문이 뚫리면 막아야 했다. 그때부터는 백병전이다.
침이 꼴깍 넘어갔다.
싸울 수 있을까? 훈련은 받았지만, 실전은 두 번이 전부인 병사다. 그는 긴장했다.
‘으.’
오금이 저렸다. 방벽 너머로 마물 무리가 있다는 게.
그런 상황이었다.
“지금부터는 모두 내 지휘에 따른다.”
굴러온 돌, 명령받고 온 소대장이자, 표범과 대화를 나누는 남자가 어느새 다가와 입을 열었다.
“이 문 살짝 열 수 있나?”
그러곤 짖었다. 이건 뭐, 들을 가치가 없는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