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화 (14/103)

꿈의 해석

혹시 내가 방금 피웠던 게 담배가 아니라 대마인가?

기겁을 하면서 창문에서 멀찍이 떨어지려고 하자, 거울 속 그가 진정하라는 듯 워워, 하며 말했다.

- 진정하게. 진정. 나는 그냥 상상의 친구 같은 거라고.

“늙다리가 내 상상 친구라고? 돌아버리겠네.”

아직 스물도 채 안 된 내 정신세계가 그토록 황폐하단 말인가? 

차라리 이중인격이 낫지. 그냥 정신분열증이 왔다고 해주면 안 될까? 미래 연구에 따르면 천재나 비범한 예술가 같은 사람들은 다 정신질환 하나씩 달고 다닌다고 판명 났다며. 그냥 그런 거로 치면-

- 아니라니까, 이 멍청아. 차분히. 차분해지게. 시가라도 한 대 피우든가.

나는 이 어처구니없는 조언에 따라 시가를 입에 물고 다시 창문을 봤다.

조범석은 사라지고 없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을 부여잡은 나만 비쳐 보였다. 흠. 잘생겼군.

미칠 듯이 두방망이질 치던 심장이 진정되자 이제 슬슬 원리가 이해되는 듯했다. 

내가, 이 아르민 로젠바움이 상상 속 대화 상대를 떠올리니까 당연히 내가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인물 - 그 평생 삶의 자취를 모조리 알고 있는 인물인 조범석이 튀어나온 셈이다.

보통 사람들과 달리, 내 머리통엔 남의 기억 약 60년 치가 들어가 있다. 그걸 기반으로 누군가를 상상하면, 당연히 고스트 조범석이 튀어나올 수밖에.

내가 다시 한번 창문 유리를 응시하며 이 망할 노친네를 상상하자, 흐릿하게 그가 보이기 시작했다. 지워졌다가, 나타났다가, 지워졌다가. 노인네 얼굴을 강제로 ^오^ 모양으로 웃게 만들었다가, 입꼬리는 축 내렸다가-

이거 재밌네. 남의 얼굴로 장난치는 거. 그러면 머리카락도 어디 한번 완전 민머리로···.

- 계속 이렇게 놀 텐가? 창문 바라보면서 이상하게 실실 웃는 거, 혹 누가 보기라도 하면 정신병자라는 평가가 박힐지도 몰라.

“크흠.”

- 아무튼 대충 이해한 것 같구만. 나는 유령이 아니라, 굳이 따지자면 AI 비서 같은 존재겠지. 혹시 AI가 뭔지는 이해하겠나? 이 원시적이고 야만적인 19세기를 사는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AI란 인공지능의 약자로-

“당신이 떠들 수 있는 거면 나도 알고 있단 뜻이지.”

- 바로 그거야. 이중인격 그런 게 아니라 그냥 네 머릿속 대화상대일 뿐이지. 설마 내가 백 년의 시간을 떠내려와서 유령처럼 들러붙어 있을까?

“그러니까 이게 귀신이나 망령이 아니다?”

- 네 내면의 생각이지 전부.

“근데 유령이 없다고 할 순 없잖아? 당장 미래 지식도 머리에 박히는 판에 유령이 없다고 우기는 것도 좀.”

- 네 알아서 해라.

정신과를 가야 하나.

하지만 이 시대 정신의학이래봐야 오십보백보, 그 나물에 그 밥 아니겠나. 

참고로 올해에 그 유명한 프로이트가 <꿈의 해석>이란 책을 냈다. 프로이트에게 진찰을 신청해볼 순 있겠네. ‘거울 속 조범석은 사실 노인 남성과 성행위를 하고 싶다는 내면의 욕망을 상징합니다’ 같은 진단이나 받겠지만. 오 씨발 주여.

아무튼 유령이든 아니면 내 내면의 대화든, 확실히 생각 정리하기엔 편하다는 걸 부정할 순 없다. 어디 한번 내 의식의 흐름이라는 걸 우리 패배자 조 아저씨의 입으로 들어보실까.

- 영혼이란 게 존재하는지. 남의 기억이 주입되면 그 사람은 누구인지. 그런 건 21세기 과학자들도 모를 일이야. 왜냐면 이런 일을 겪은 건 오직 우리뿐이니까. 단 하나 확실한 게 있다면, 네가 내 영향을 제법 많이 받았다는 것뿐이지.

“내가? 영향을 받아? 당신의?”

- 설마 애미애비 둘 다 개차반인 가정에서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어깨 쭈그린 채 살던 꼬맹이가 60년 치 기억의 영향을 하나도 받지 않았다고 주장할 셈인가? 때려치우게. 그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이나 당당함, 철면피는 전부 내 성격이야. 머저리 같은 네 양친이 물려준 게 아니라.

“그럼 역시 이 엉망진창 생활도-”

- 그건 유전자에 따져야지. 나는 평생 한 여자만 보고 살았네만.

“아따, 영감님 말 맵게 하시네.”

하도 세게 처맞아서 턱 돌아간 것 같다. 이 주제로 더 이야기했다간 본전도 못 찾을 것 같네.

잠시 정신을 집중하자, 비로소 거울 속 그는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 이제 카이저를 골수까지 짜먹으면서 사업을 궤도에 올려야지.

“그게 쉬울까?”

- 백작과 사돈을 맺고, 늙은이를 뒷방에 처박은 뒤 회사를 장악해. 체펠린은 비행선 개발할 돈만 대주면 아마 마음껏 자기 이름 팔아먹게 허용해 줄 테니까, 우린 우리 사업을 키우자고.

“그다음엔?”

- 무조건 프랑스에 줄을 대야지.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독일 제국이 패망하면 이 나라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놈들은 프랑스야. 영국이나 미국은 온건파고 프랑스가 강경파란 말이지.

그러니 프랑스랑 지금부터 친목을 다져 놓는다면 베르사유 조약의 칼날을 피할 수 있다, 라는 논리.

하지만 나는 못내 찝찝함이 느껴졌다.

어렵겠지만, 기왕 브레인스토밍을 해본다면 당연히 최선책인 ‘독일이 전쟁에서 승리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하지 않겠나?

그리고 이 앞의 귀신은 그 분야에만 평생을 일한 전문가고.

“독일이 이길 방법으로 고민을 해보면 좋겠는데.”

- 택도 없는 소리.

하지만 내 무의식이라고 주장하던 이 양반은 무척 단호했다.

“어째서?”

- 근본부터 썩었으니까. 내부 모순이 가득한 신분제, 군주제 국가가 어떻게 승리하겠나?

“그건 그냥 평생 북괴를 증오하고 살아온 분의 편견 같은데.”

- 아르민 로젠바움 대신 카이저 빌헬름에게 미래 지식이 주입됐다면 어떻게 해봤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이 나라는 융커들이 지배하는 나라고, 융커는 군사귀족이야. 절대로, 절대로 그들은 융커 아닌 다른 놈팽이가 군대 일에 끼어드는 걸 용납하지 못할걸세. 그랬다간 자신들이 존재할 이유가 없어지니.

“하지만 어떻게든 뭔가 미래 지식을 이용해 보면-”

- 아직 대가리가 덜 돌아가나? 카이저의 힘을 빌어 사업을 키운다는 건 반대로 말해 카이저가 죽이기로 작심하면 모조리 잿더미가 될 수 있단 뜻이야. 죽는 그 날까지 팔병신 똥구멍이나 핥아줄 텐가?!

나는 거울에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거울 속에선 계속해서 고함이 터져나왔다.

- 절대로! 절대로 정치하는 새끼들을 믿어선 안 돼! 알겠나? 미국 같은 나라라면 또 몰라도, 이 나라에서 백날 사업을 잘 일구고 위대한 인물이 된다고 쳐봐야 답이 없어!

“입헌군주제라든가, 융커들 힘을 뺀다든가 하는 생각은 고려도 하지 않고 아무튼 안 된다고만 하는 게 조언이냐고!”

이래놓고 어딜 봐서 AI 비서란 소릴 하나? 누가 봐도 그냥 원한이 골수까지 들어찬 망령이잖은가?

바로 그 순간.

문이 빼꼼 열렸다.

“실례해요, 로젠바움 씨.”

“아, 네. 무슨 일이십니까.”

“한밤중인데 방 안에서 자꾸 큰 소리가 들려서··· 혹시 뭔가 문제가 있으신가 해서.”

이 집의 차녀, 에르나 폰 체펠린이 눈만 살짝 내민 채 나와 방 안 상태를 힐끗 확인하고 있었다.

예상대로··· 훌륭한 정신병자라는 게 까발려진 모양이었다.

“잠깐 들어가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들어오시죠.”

그녀는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다시금 문을 닫았다.

“아버지를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아닙니다. 전 단지 제가 생각하는 최선의 행동을 했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 여자 보자마자 폼부터 잡고 보는 새끼···.

나는 거울 속에서 조용히 들리는 소리를 무시한 채 그녀에게만 시선을 집중했다.

“방금 아버지께서, 제게 이야길 하셨어요.”

“저는 절대로 부담을 드릴 생각이-”

“로젠바움 씨처럼 성실하고 멋진··· 분이라면, 평생을 같이해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랬다간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받을 겁니다.”

“괜찮아요. 그, 그럼 저는 들어가 볼게요. 저를 배려해주시는 건 좋지만, 너무, 그러실 필요도 없어요.”

내가 무어라 대답하기도 전에, 그녀는 한번 고개를 꾸벅하고는 다시 쏜살같이 밖으로 나가버렸다.

“···AI 비서 씨.”

- 왜.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여전히 타들어가고 있는 시가를 커터로 잘라냈다.

“방금 체펠린 양, 별채까지 찾아와서 외간 남자 방에 들어온 거 맞습니까?”

- 그랬지. 아무리 봐도 나쁜 남자한테 속아서 인생 조질 관상이더군. 솔직히 네놈 같은 난봉꾼한텐 분에 넘치는데.

나는 부정하지 못했다. 

근데 서양인한테도 통용되는 거였냐. 관상.

***

범석이 형이 젯밥을 얻어먹지 못해 성불하지 못한 귀신이든, 또 하나의 나든, 절대반지의 부작용으로 생겨난 괴물이든 내 알 바 아니다.

그는 ‘우리가 독일 제국에 있는 한 미래는 밝지 않다’라는 입장에서 결코 물러나지 않았다.

오스트리아-헝가리도, 오스만 투르크도, 러시아 제국도 모두 안전하지 않다.

그러니 영국과 프랑스, 특히 프랑스에 미리미리 친한 사람들을 많이 만들어 두고 사업체도 좀 키워놔야 한다··· 라고 하는데, 이거 그냥 매국노 아닌가? 친불파라니.

이런저런 고민을 끌어안은 채, 나는 인생 두 번째로 카이저가 기다리는 황궁으로 입성했다.

“어서 오게, 젊은 로젠바움. 그대의 명성이 독일을 넘어 어느덧 온 세계로 퍼지고 있으니 어찌 제국의 황제인 내가 덕담을 아끼겠는가?”

“은덕에 감사드립니다, 폐하. 저는 오로지 제국과 폐하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봉사할 뿐입니다.”

카이저와의 첫 번째 만남에서 우리는 일종의 거래를 했다. 그는 자신의 후광을 빌려줬고, 나는 내 이름을 빌려줬다.

하지만 내 이름값은 당연히 지금도 실시간 감가상각이 진행되고 있었고, 황제 입장에선 이게 공정거래가 아니란 생각이 들지도 몰랐다.

그가 내게 호의를 갖고 두 번째 만남을 수락했을 때, 확실하게 그에게 큰 인상을 남겨줘야만 했다.

“폐하. 저는 이제 가칭 <로젠바움 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전 세계에 독일의 항공기를 선보일 준비를 하고자 합니다.”

“듣던 중 참으로 기쁜 이야기로다.”

“하지만 이를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중대한 일이 있사옵나이다.”

“무엇인고?”

“그것은 바로 프로이센의 신민인 제게 부과된 성스러운 의무, 바로 병역의 의무입니다.”

카이저의 표정에 ‘그러고 보니 너 미필이었지’라는 놀람이 담기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혹시 군대 빼달라고 온 거니?’라는 미묘한 실망이 드러날랑말랑했다.

그럴 리가요.

“제 육체와 정신이 이토록 강건한데 어찌 병역을 회피하겠습니까? 하지만 저는 대학에 입학하여 제 지성을 증명하였기에, 폐하께서 내려주신 복무 방안 중 1년 학사장교로서의 복무를 신청하려 합니다.”

“그렇군. 1년이든 3년이든 기간은 중요치 않다. 무릇 신민들에겐 신분과 재산 등의 고하가 있으니 이를 반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복무기간이 아니라 나라를 지키기 위해 헌신하겠다는 그 마음인 법.”

역시 사람 위에 사람 있는 게 당연시되던 시대의 매콤한 맛.

그리고 카이저가 이토록 정론을 말한다는 건, 지금 내 말에 전혀 반응할 가치나 재미를 못 느끼고 있다는 뜻.

나는 그가 이제 그만 집에 돌아가라고 하기 전에 얼른 본론을 꺼냈다.

“폐하. 비행기는 개발되었고, 온 세상의 무수한 이들이 새로이 자신들만의 비행기를 만들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소인이 감히 생각해 보았건대, 앞으로 제국을 수호하기 위해서는 땅과 바다는 물론 하늘을 수호할 방안 또한 마련되어야 할 것입니다.”

내가 군대 이야기를 꺼내자 카이저의 눈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 무엇보다 정강한 황제 폐하의 <항공대>가 적들의 비행기를 유린하고, 아군 포병대의 등대가 되어주며, 적의 수도에 폭탄을 떨어트리고, 적함을 향해 어뢰를 쏘는 모습을 생각해 보시옵소서. 전쟁은 육군과 해군의 일이지만, 하늘을 장악한 군대는 그렇지 못한 군대를 훨씬 손쉽게 쳐부술 수 있을 것입니다.”

“짐의 뜻이 바로 그러하다!”

“폐하. 소인에게 청이 있다면, 제 1년을 폐하와 이 나라의 군대를 위해 바치오니, 부디 제가 제국의 하늘을 지킬 항공기를 만들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그대만큼 이 나라를 생각하는 이가 이 나라에 과연 몇 명이나 있겠나! 어서 무릎을 펴고 고개를 들라!”

됐다.

저 표정.

선물상자를 연 어린애도 저것보다 기뻐 보이진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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