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2화 (32/103)

장미의 기사 (2)

1914년 현시점에서 봤을 때.

원래 비행선은 태생적으로 약점투성이인 무기체계지만 또 막상 그 약점을 제대로 찌를 수 있냐면 그것도 아닌, 최소한 바로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제법 유용한 병기라고 간주할 만했다.

먼저, 고도.

독일이 운용하는 체펠린 비행선의 경우 거의 고도 3천 미터까지 상승할 수 있었는데, 항공기들이 체펠린 비행선에 근접하기 위해서는 기체의 한계 성능에 도전해야만 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 시대에 ‘한계 성능에 도전’이라는 말은 21세기의 그것과 전혀 다른 무게를 지니고 있다. 조종사의 기량 이전에 그냥 엔진이 버텨주길 기도해야 하는 운빨 그 자체, 러시안 룰렛.

일단 비행선 근방까지 비행한다 쳐도, 비행선 곳곳에 거치된 기관총이 불을 뿜는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탄환 중 피탄되어도 괜찮은 총알 따위 없다. 캔버스천과 나무로 만든 이 시대 비행기는 수수깡이다. 맞으면 대개 죽는다. 사람이든 기체든.

아등바등 올라가서 이제 적을 공격한다 쳐도, 생각보다 수소엔 불이 잘 붙지 않는다. 비행선의 기낭은 수십 개가 있고, 총알 좀 갈겨서 구멍을 내준다 하더라도 그리 호락호락 격침되지도 않는다.

따라서, 충분히 적절한 화망을 구성한 채 비행선단을 돌입시킨다면 적의 요격 편대가 출격하기 전에 재빨리 싸들고 온 폭탄 다 던지고 후퇴가 가능하다.

이론상으로는.

어째서 나는 집요하게 파리 대신 런던 불바다를 제안했을까?

그건 바로 최대한 바다 위에 체공해 있는 시간을 길게 잡기 위해서였다. 너무 뻔한 이야기지만 런던은 바다 바로 옆이다.

그렇지만, 독일 본토 쾰른을 목표로 폭격하기 위해 날아온 저 영국의 비행선들은?

중립국 네덜란드를 지나치지도 못하고, 벨기에를 거쳐 지상 수백 킬로미터를 날아오는 저 친구들의 동선은 얼마나 진즉 따였겠는가?

저들은 우리의 관측용 열기구, 그리고 벨기에 쪽에 주둔 중인 육군의 눈을 모조리 피할 수는 없었다.

이 말을 요약하자면.

“역시. 놈들은 아직 충분히 부상하지 못했어!”

우리는 영국 비행선으로부터 고도를 빼앗았다.

수십 대의 붉은 전투기가 제 덩치의 수십 배는 되는 비행선들을 사냥하기 위해 다가갈 조건이 완성된 것이다.

- 심호흡해. 준비한 대로만 하면 이길 싸움이다.

“당연하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나는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적 요격용으로 준비한 이 기체는 두 명이서 탑승하는 복좌식이다.

“이봐, 후방 사수. 준비됐나?”

“예, 사장님!!”

“지금은 사장님이라 하지 말고 비행대장님이라고 해야지, 군터 사원.”

“예, 옙!!”

- 너도 사원이라고 하고 있잖아, 머저리야.

온몸에서 솟구치는 열기를 음미하고 있자니 거울에 비친 조스비의 왱알앵알 따위는 들리지 않고, 그 대신 몰아치는 맞바람이 총알의 비처럼 얼굴에 와닿았다.

서편에서 동쪽으로 접근하는 영국 놈들은 당연히 태양빛을 끼고 우위를 선점하고 싶을 터.

하지만 그 어드밴티지를 빼앗기 위해, 우리는 크게 서쪽으로 빠졌다가 다시 동쪽으로 선회해 그대로 놈들을 향해 진입.

타타타타타!! 타타타!!!

- 들켰군.

“상관없어. 엔진 소리가 이토록 요란한데. 오히려 너무 늦었지!”

“뭐라고 하셨슴까!!”

“혼잣말이야! 이제 이 악물어! 화망 안으로 들어간다!”

영국 비행선들끼리 번쩍이며 서로 발광 신호를 주고받더니, 이윽고 열한 척의 비행선이 일제히 기관총을 쏘며 우릴 떨쳐내려 시도한다.

아직 이 시대에 무전기는 없다.

오직 내 기체를 포함한 단 세 대에 모스 부호를 송신할 기기가 부착되어 있을 뿐. 수신은 불가능하고 오직 근방에 송신만 가능하다.

- 가자고!

“가자!!”

제아무리 큰 목소리로 외친다 한들, 손을 휘젓는다 한들 다른 파일럿들에게 닿을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렁차게 외쳤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내가 이 시대의 파도에 정면으로 맞서는 지금이야말로.

앞으로 나를, 가족을, 우리 직원들을.

그리고 우리나라를 기다리고 있는 절망스러운 미래를 바꿀.

영원히 기억될 순간이니까.

패전이 예정돼 있다고?

그래서 어쩌란 말이냐.

내 일신의 안녕을 원했다면 미국으로 갔다.

고작 패전하는 미래를 바꾸고 싶을 뿐이었다면 이렇게 멀리 돌아가는 대신 외교관이나 되었다.

무수한 피와 기름을 흩뿌려 세운 끝없는 전공으로, 

저토록 날뛰는 저 영국인들의 목숨을 빼앗아서.

“쏩니다!! 적이 쏘고 있습니다!”

“아직 아니야! 쏘지 마!!”

“아군기가 당했습니다!! 으아아!”

“입 다물어! 친구 따라 저승 가기 싫으면!”

나를 믿는 이들의 목숨마저 전쟁터로 내몰아서라도.

타타타타!!

지난 런던 공습 때 써먹었던 산개 대형을 영국인들이 그대로 써먹고 있다.

로젠바움사에 채용된 육해군 퇴역 군인들이 머리를 맞대 고안한, 최대한 화망을 넓게 펼치는 형태의 대형이었는데. 그거 만든다고 내가 임금을 얼마를 줬다고 생각하나. 하여간 지적재산권을 존중할 줄 모르는 해적놈들 같으니라고.

크게 돌아 동쪽으로.

더 위로.

엔진의 숨이 멎는 그 순간까지.

영국제 비행선이 있는 고도를 넘어, 저 하늘 끝까지!

일부 항공기가 아래에서 맴도는 사이, 나를 비롯한 몇 대의 붉은 전투기가 용맹하게 치솟아 올라 마침내 놈들의 정수리 위에 도달했다.

때가 왔다.

“폭탄 투하!!”

“폭탄 투하! 투하합니다!!”

그리고 장착한 폭탄 한 발을 아래로.

이것이 현시점에서 비행선을 상대로 써먹을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수단.

나는 다시 한번 엔진의 무리를 각오하고 기수를 계속해서 위로 올렸고.

--------!!!

무시무시한 지옥의 유황불 같은 화염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항공기가 미칠 듯이 요동쳤지만 아슬아슬하게 커트.

“해냈습니다! 해냈습니다!!! 한 발에 골로 가버렸습니다!!”

“이제 사냥 시간이다. 후방기총 잡아!”

우리는 곧장 기수를 아래로 내려 하강하기 시작했다.

후방 기관총이 신들린 듯 불을 뿜는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전방을 향해서도 기관총의 총탄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 싱크로나이즈 기어니 뭐니 하는 기술은 아직 깔 때가 아니지. 지금은 이 정도가 딱이야. 그건 좀 더 적이 오동통하게 살이 오르면 도입해야지.

서로가 서로를 향해 퍼붓는 살의.

하지만 내가 더 유리하다.

기관총의 숫자로는 저쪽이 훨씬 더 많지만, 나는 훨씬 더 정확하게-

“컥! 사, 사장니, 님-”

“군터?!”

- 늦었어. 정면에 집중해!

목덜미에서 분수처럼 피를 뿜어내는 군터의 모습을 지우기 위해 백미러에서 시선을 떼고.

거대한 정육점 칼로 큼지막한 돼지 한 마리를 지그시 가로로 그어버리듯.

그대로 사선을 그으며 하강하며 단숨에 기총소사.

순식간에 기관총에 장전된 총알이 바닥을 드러내고 탁탁대며 총알 대신 무의미한 딸깍임만을 내뱉는다.

하지만 내 알 바는 아니었다.

또 한 대의 비행선이 넝마주이가 된 제 기낭을 부여잡은 채 바닥을 향해 추락하고 있었으니.

내가 빌려준 하늘, 

이제 돌려받겠다.

죽은 이들의 이자까지 쳐서.

***

“말도 안 돼. 말도 안 된다고.”

영국군 비행선단은 불타고 있었다.

상공 수천 미터 위를 활공하던 대영제국 비행선단의 최후가 이토록 끔찍하다니.

“이건, 이건··· 사냥이잖아! 우리가 사냥감이라고?!”

범고래 떼가 훨씬 큰 먹잇감을 천천히 옥죄듯.

하이에나 무리가 코끼리를 노리듯.

콰아아앙!!

“또 한 척이 당했습니다!!”

“이, 이대로 죽기 싫어!!”

“하강해야 합니다! 놈들은 준비돼 있었습니다!”

“이제 와서 뭘 어쩌란 말이냐!!”

상식적으로 판단해야 했다.

적들이 대규모 비행선 운용을 통한 폭격 작전을 수행했다는 건, 반대로 그 폭격 작전을 막을 방안 또한 구상했다고 간주해야만 했다.

지금 여기서 열한 척이나 되는 비행선을 모조리 잃어버린다면.

어떤 식으로 독일 놈들이 비행선을 사냥했는지 본국에 전달하지도 못한다면.

“기관총탄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습니다!”

“또 한 대가 제압당했습니다. 8번선, 추락합니다!”

“로젠바움.”

지휘관의 입에선 신음 같은 이름 하나가 새어나왔다.

“로젠바움이다. 그자가··· 그자가 모든 걸 구상한 게 틀림없어. 항공에 누구보다 탁월한 그자가!”

프로파간다가 아니다.

영국의 피셔 제독은 <드레드노트>라는 새로운 전함을 탄생시켜 해군과 해전의 미래를 영구히 바꾸었었다.

그렇다면 가장 항공에 대해 박식한 사람이 공중전의 미래를 구상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그 순간 그의 마음은 꺾이고 말았다.

더 이상 이 무의미한 발버둥에 승무원들을 저승길 동반자로 끌고 가고 싶지 않았다.

“···항복을.”

“······.”

“항복을 타진한다. 발광 신호 준비. 아직 살아남은 모든 비행선은 사격을 멈추고 엔진을 끈다.”

열한 척의 영국군 비행선 중.

세 척 폭침.

네 척 추락.

두 척, 항복 후 예인 도중 고장으로 추가 추락.

쾰른을 향해 가던 비행선단은 독일 국경에 다다르는 순간 순시간에 소멸하고 말았다.

***

1914년 8월의 전쟁을 최대한 간략하게 풀어보면 이렇다.

독일의 몰트케는 벨기에를 거쳐 파리를 향해 달리고자 했다.

프랑스 육군참모총장 조제프 조프르(Joseph Jacques Césaire Joffre)는 전쟁이 터지는 시점에서 선택해야 했다.

독일군이 설마 벨기에로 올까?

유감스럽게도 조프르 씨는 융커뇌를 너무 과소평가했고, ‘아무리 그래도 중립국을 짓밟겠어?’라는 합리적인 답을 골랐다.

그리고 그다음, 전쟁이 터짐과 동시에 프랑스가 잃어버린 땅, 알자스-로렌을 향해 닥돌했다. 독일군은 수십 년 동안 알자스-로렌에 지어 놓은 요새와 각종 방어선에 힘입어 순조롭게 쳐들어온 프랑스군을 격퇴했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독일의 운빨은 여기까지였다.

알자스-로렌에서 개같이 처맞은 덕택에 프랑스는 군을 뺐고, 벨기에를 거쳐 파리로 달려오는 독일군과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만약 알자스-로렌이 뚫렸다면 진격했던 프랑스군이 파리로 돌아오기엔 너무 거리가 멀어졌으리라.

영국군은 예상보다 훨씬 빠른 8월 중순에 프랑스 땅으로 건너왔다.

프랑스군은 필사적으로 퇴각하며 파리 코앞 마른(Marne)강에 최후 방어선을 펼쳤다.

독일군은 파리까지 최후의 단 한 발짝만을 앞뒀지만, 프랑스인들은 도로를 굴러다니던 택시까지 모조리 끌어모아 최전방으로 병력을 수송하는 악바리 근성으로 기어이 버티는 데 성공했다. <슐리펜 계획>은 무너졌고, 물자가 바닥난 최전방 독일군은 끝내 퇴각해야만 했다.

슐리펜 계획이 종말로 막을 내리는 것과 동시에 몰트케는 졸장으로 낙인찍혀 군생활을 접어야 했지만.

반면 저 머나먼 동부전선에선 새로운 전쟁영웅이 탄생했다.

“대승! 압승입니다!”

“탄넨베르크에서 러시아군 격파! 압도적 숫자의 적군을 섬멸했습니다!”

“폰 힌덴부르크와 루덴도르프! 두 영웅이 합심해 제국을 지켰습니다!!”

힌덴부르크의 등장.

조국을 지킨 위대한 영웅으로 급부상한 이 노장은 단숨에 슈퍼스타가 되었고, 어찌나 그 명성이 어마어마해졌는지 카이저 빌헬름 2세가 위협을 느낄 정도였다.

“폐하. 힌덴부르크를 참모총장으로 임명해 전쟁을 맡겨야 합니다.”

“그럴 순 없소.”

“폐하!”

“그보다 로젠바움 이야기를 듣고 싶구나. 비열한 해적 놈들이 우리 국토를 불태우려 했는데, 젊은 데다 군인도 아니었던 그가 조국을 지키다니 참으로 대견스럽지 않은가?”

압도적인 권위와 군부의 지지, 거기에 국민적 인망까지 얻은 힌덴부르크가 육군참모총장에 부임하는 순간 카이저는 병풍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비록 아가리가 제멋대로 튀긴 하지만 머리굴림 하나는 빠른 카이저는 그 사실을 꿰뚫고 있었고, 아득바득 그 대항마가 될 만한 인물들을 밀어주려 했다.

“열한 척의 비행선단에 맞서기 위해 작디작은 날틀 한 대만을 믿고 용맹무쌍하게 적진에 뛰어들다니! 롤랑의 재림이 아닌가! 실로 대단하도다!”

“폐하···.”

“설마 그의 공훈이 작다고 폄하하는 것이오? 그대들이?”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팔켄하인 총장을 부르시오. 다음 작전에 대해 논의할 테니.”

빌헬름은 신하들의 시선을 외면한 채 제 할 말만 하고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버렸다.

이 나라는 그의 것이었다.

융커들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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