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즘 발호 (1)
1920년대.
피로 피를 덧칠하는 광기의 전간기 속에서, 가장 극심한 혼란에 휩싸여 있던 이탈리아에서 전혀 새로운 사상이 용틀임하기 시작했다.
승전국인데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연합국에게 이용만 당했다고 굳게 믿던 이탈리아인들은 극좌와 극우로 크게 찢어졌고.
“세상을 엎어버리자!!”
“임금을 인상하라!!”
당장이라도 왕정이 붕괴되고 소련에 이어 두 번째 소비에트 공화국이 건국될 것만 같은 붉은 물결.
권력자들과 자본가들은 손잡고 이 파업과 혁명의 물결을 분쇄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들이 부릴 하수인 중 하나로 <검은 셔츠단>이라는 깡패 조직을 간택했다.
하지만 검은 셔츠단의 두목, 베니토 무솔리니는 고작 사냥개 역할에서 만족하지 않았다.
“우리가 원하는 게 뭐냐고? 우린 이 나라를 다스리길 원한다!”
무솔리니는 새로운 비전과 희망을 제시했다.
로마 제국의 부활!
강대한 이탈리아 건설!
열차가 제 시간에 오고, 지긋지긋한 파업이 사라지는 나라!
무솔리니가 새롭게 건설한 <국가 파시스트당>은 날로 그 세를 불렸고, 공산 세력의 궐기를 무력으로 찍어누르는 데 성공한 그들은 마침내 일제히 로마로 상경하기에 이른다.
1922년 10월.
역사에 길이 남을 로마 진군이 일어났다.
“명령만 내려주시면 저 얼치기 깡패들을 싹 쓸어버릴 수 있습니다.”
“기찻길을 모두 끊었습니다. 폐하, 명령만 내려주소서.”
당시 이탈리아 내각은 무솔리니의 당돌하고 기가 막힌 도전을 단숨에 때려잡을 수 있다고 판단했고, 이는 결코 틀린 생각이 아니었다.
“거절하지.”
“폐하?”
“어명이다. 그들을 막지 말라.”
하지만 이탈리아 국왕은 헌법에 의거해 거부권을 행사했고, 수만 명의 검은 셔츠단은 그 어떠한 제지도 받지 않고 위풍당당하게 로마에 입성했다.
국왕에게 거부당한 총리는 사임했고.
“베니토 무솔리니.”
“예, 폐하.”
“그대에게 내각을 수립할 권한을 부여하겠노라.”
마침내 무솔리니는 총리에 취임했다.
파시즘 국가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
이탈리아가 시꺼멓게 변색되어 가고 있을 무렵.
패전국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상황 또한 묘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1919년 말. 1달러는 48마르크였다.
1921년 초. 1달러는 90마르크였다.
영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나라들이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던 중, 환율로 반사이익을 얻은 독일은 오히려 프랑스보다도 더 빨리 경제를 재건할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는 독일 전체의 경제 이야기일 뿐, 공화국 정부는 돈이 무척 쪼들렸다.
“죄송하지만, 지금 저희의 사정으로서는 도저히 그만한 배상금을 갚을 수 없습니다.”
“웃기는 소리 하지 마! 우린 너희들 때문에 나라가 거덜났다고!”
“배상금 지불이 반년째 체불되고 있잖소. 당장 갚아!”
“모··· 못 갚습니다! 정말로 못 갚는다고요!”
“배를 짼다고? 그래, 알았다. 진짜 째주마.”
독일 정부가 채무불이행을 선언하자 프랑스와 벨기에는 이를 천재일우의 호기로 여겼다.
“저놈들이 순순히 회복하게 둬선 안 됩니다.”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짓밟아 버립시다.”
1923년 1월.
프랑스군 10만 명이 국경을 건너 독일의 가장 핵심적인 석탄 공급처이자 공업지대인 루르에 쳐들어가 그대로 군정을 선포했다.
<루르 점령>이 시작되었다.
“지금 저 새끼들 뭐 하는 겁니까?”
“아무리 우리가 승전국이고 독일이 패전국이라지만 그건 선을 넘었습니다!”
“닥쳐! 너희들이 돈 줄 거야?!”
영국과 미국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는 우악스럽게 점령을 단행해 이 지역을 수탈했다. 프랑스군은 사보타주를 하다 체포된 이들을 군법에 의거해 처형했고, 이는 점령지를 안정시키긴커녕 오히려 기름만 끼얹었다.
제아무리 식민지인 죽이고 수탈하기를 레저 스포츠처럼 즐기는 유럽인들이라 할지라도, 문명의 한가운데 영역인 독일에서 벌어지는 식민지식 통치는 모두를 경악시켰다.
전 독일이 이 전무후무한 폭거에 분노했고, 민심을 등에 업은 공화국 정부는 루르의 독일인들을 향해 은밀하게 파업과 사보타주를 독려했다.
“프랑스는 물러나라!”
“여긴 우리의 땅이다!!”
“다 죽여버려!”
하지만 파업을 하면 임금을 못 받는다.
독일 정부는 파업 참여자들에게 금전적 보상을 약속했고, 돈이 없는데 돈 나갈 일이 생기니 또 윤전기를 돌렸다.
돈 없는 거지가 빙글빙글 카드 돌려막기로 대출금을 막으려 해봤자 결국 빚만 불어날 뿐.
윤전기를 퉁구스카 운석만큼 뜨끈뜨끈해지도록 신명나게 돌렸으니, 당연히 마르크화의 가치는 휴지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1922년 초. 1달러는 320마르크였다.
22년 12월엔 1달러 7,400마르크를 달성했다.
그리고.
1923년 11월의 1달러는 4조 2천 1백억 마르크.
23년 11월의 빵 한 덩이는 2천억 마르크.
23년 12월 금 1온스는 86조 8천억 마르크.
23년 12월 평균 독일 주가지수는 26조 9천억 포인트.
이제 독일은 인류가 한 번도 맛보지 못했던 새로운 미지의 영역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광기의 인플레이션이 독일 경제를 통째로 집어삼켰다.
“이게 나라냐!!”
“너흰 병신들이야! 썩 꺼져!”
“흐흐. 내 돈. 내 평생 모은 돈이. 흐흐흐흐!!”
“내 평생 땀 흘려 저축한 돈이, 휴지라고? 휴지? 아니지, 휴지 한 장을 못 산다고?!”
하이퍼인플레이션은 독일 경제와 대다수 시민들의 삶을 확실하게 멸망시켰다.
비스마르크가 만든 국민연금을 노후 대책으로 삼았던 이들은 굶어 죽거나 거지가 되어야만 했다.
채권에 투자해 이자수익으로 먹고살던 중산층은 목을 매달고 싶어도 밧줄을 살 돈이 모자르다는 걸 깨달았다.
저축을 미덕으로 여겼던 평범한 노동자들은 모두 망했다. 놀랍게도 길바닥에 나뒹구는 술에 쩐 주정뱅이가 가진 빈 병만 모아도 그들의 은행 계좌보다 수억 배는 더 부유했다.
독일의 거의 모든 일터는 이제 직원들에게 일당을 지급했다. 그것도 하루 두 번. 점심시간 쉬고 나면 그 일당의 가치조차 쪼그라들었기 때문이다.
빚을 진 자들은 승리했고, 돈을 빌려준 자들은 모두 망했다.
이건 누가봐도 공화국 정부의 파탄이자 자본주의 질서의 종말 그 자체.
“지금이야말로 혁명의 시간입니다.”
“우린 자본주의의 종말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동지들이여, 일어납시다!”
1923년 8월.
350만 명의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섰다.
공산주의자들은 이 파업이 혁명의 불길로 이어지리라 기대했지만, 총리가 책임을 지고 사임하는 선에서 8월의 봉기는 끝났다.
23년 9월.
슐라이허가 몸담은 조직 <흑색군>이 쿠데타를 일으켰지만 실패했다. 주모자들 대부분은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았다.
23년 10월.
“모스크바에서 결정을 내렸소. 지금이 바로 혁명의 적기요!”
“레닌 동지 만세! 프롤레타리아 독재 만세!!”
공산당은 약 5만, 가장 희망적으론 25만 명의 민병대를 동원하고 충분한 무기와 탄약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다시 한번 대대적인 무장 봉기를 준비했다.
작센, 함부르크, 튀링겐에서 공산당은 봉기했지만 군은 즉각 이들을 진압했다.
“거, 나는 반대했잖소. 이럴 줄 알았지.”
“우린 속았소! 독일공산당이 의도적으로 잘못된 정보를 보냈단 말이오!”
“독일의 혁명 동지들 내에 ‘우익’이 숨어 있는 게 틀림없소.”
“이게 다 트로츠키 때문이지.”
10월 봉기의 대실패는 뜬금없이 모스크바에서 어떤 염소수염에게 심대한 타격을 주었다.
공산당이 처절한 타격을 입고 다시 한번 혁명의 꿈을 접을 시기, 프랑스는 이제 대놓고 독일을 찢어버리기 위해 본격적인 공작에 들어갔다.
프랑스의 조종을 받는 괴뢰국 <라인 공화국>과 <팔츠 자치령>이 건국을 선언했다.
하지만 이들 분리주의자들은 매국노라는 비난을 피하지 못했고, 이들의 반란 또한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그리고.
23년 11월.
“더 이상 베를린의 파멸적 행보에 우리 바이에른이 피해를 입어선 안 됩니다!”
“빨갱이들 하나도 제대로 막지 못해 쩔쩔매는 놈들! 머저리 같은 놈들!”
아돌프 히틀러가 맥주홀 봉기를 일으켰다.
이 또한 진압되었지만.
공화국은 누가 봐도 백척간두에 내몰려 있었다.
***
하이퍼인플레이션의 파도 앞에 부동산이나 실물자산 가지지 않은 모든 서민과 중산층의 가계가 파괴당할 무렵.
전혀 뜬금없는 곳에서부터 희망의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네, 고객님. 고객님께서 가입하신 <미래행복 도이치 드림 펀드>의 수익금이 다음과 같습니다.”
로젠바움의 대출을 받았던 이들.
학자금 대출이건 부업을 위한 대출이건, 이들 소액 채무자들은 자신들의 빚이 이 압도적 인플레의 힘 앞에서 휴짓조각으로 사라졌단 사실에 환호했다.
이 세상에 내가 지고 있던 빚이 0원이 되었다는데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위풍당당하게 동전 하나 챙겨서 ‘어이, 빚 갚으러 왔수다’ 하려고 <독일중흥민족각성운동>의 지부 문을 열고 들어온 이들은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안내를 들었다.
“그, 그. 제, 제, 제가, 이만큼 벌었다구요?”
“네. 맞습니다.”
“이게, 마르크가 아니라.”
“달러입니다. 펀드 자금의 대부분은 달러로 환전되어 투자되거나 혹은 금 매입에 투입되었으며-”
“일, 십, 백, 천, 만, 십만, 백만··· 힉! 히끅!”
이제 빚 몇 푼이 문제가 아니었다.
인생이 뒤집히고도 남을 어마어마한 로또에 당첨되었다는데 그깟 자전거 하나 값 따위가 무슨 대수랴?
“이거 지금 당장 인출해 주시오!”
“고객님, 펀드는 인출이 아니라 환매라고 부르는데요-”
“아 환매고 환장이고 아무튼 돈 달라니까?!”
“하지만 고객님. 이걸 마르크화로 출금하시면 금방 돈의 가치가 떨어지시게 됩니다.”
“어··· 음··· 달러로 받을 순 없겠습니까?”
“그리고 해당 펀드는 환매 가능 기간이 지정되어 있어 현금화하실 수 있는 금액은 전체가 아니라 일부입니다.”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떠하리.
아무튼 그들은 일부라고는 하지만 생계는 물론 어디 가서 제법 어깨 펴고 다닐 만한 거금을 손에 넣었다. 무수한 사람들이 길바닥에 주저앉고 있는 이 시국에!
“고객님.”
“네네!”
“저희들은 고객님과 같은 서민들의 버팀목이자 도우미가 될 수 있어 무척이나 기쁘답니다. 하지만 이번 인플레이션 때문에 그동안 빌려드린 기금이 모두 휴짓조각이 되어서, 당장 이 복지사업을 유지할 여력이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아···.”
“혹시 괜찮으시다면, 고객님 주변의 이웃들도 저희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응원의 손길을 건네주시면 어떠실지요?”
창구에서 역으로 기부 제안을 받은 이들은 고민했다.
하지만 여기서 대놓고 내가 잘나서 번 돈인데 왜 내가 기부를 해야 하냐고 큰소리를 치고 뛰쳐나갈 만큼 양심이 메마른 이들은 거의 없었다.
이곳의 대출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웃들이 신원보증을 서줘야만 했다.
요컨대, 서로 수저 개수까지 다 알고 있는 친밀한 이웃들이 그가 대출을 받았는데 그게 휴지가 되어 이득을 봤으리라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다는 뜻.
그리고 사람 사는 세상의 기본 법칙에 따라, 남들의 보증을 받아 대출을 받았으면 당연히 이번엔 그가 그 이웃들의 보증을 서줘야 할 차례였다.
“하하! 당연히 도와야지요! 서로 돕고 사는 것이 우리 독일 민족의 미덕 아니겠습니까!”
“정말 감사합니다! 이번에 우리 마을에서 새롭게 대출 캠페인을 시작할 땐 반드시 고객님의 함자를 새기도록 하겠습니다!”
“아유, 뭘 그런 것까지. 하하.”
이토록 냉철한 현실 인식까진 아니더라도, 적어도 서로 돕고 살아야 한다는 대명제 앞에서 자유로운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제가 여기 지부장입니다. 아이구 선생님, 저희에게 이토록 큰 돈을 기부해주시니 정말 감사드립니다.”
“별말씀을요.”
“여기, 소박하지만 기부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의미로 저희가 기념품을 제공해드리고 있습니다. 하나 받아 가시지요.”
“책··· 입니까?”
“그렇습니다. 책도 있고, 무료 영화 티켓도 있습니다. 가져가셔서 많이들 돌려 보십쇼.”
1923년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정점에 이르렀을 무렵.
아르민 로젠바움은 새로운 움직임을 선보였다.
[아르민 로젠바움 자서전, 시대의 거인을 직접 읽다!]
[로젠바움의 사상은 무엇인가? 혼란스러운 시대, 위대한 개척자인 로젠바움이 가리키는 길을 보다!]
[공산주의도, 자유주의도 아닌 제3의 길. 로젠바움은 어떠한 생각을 품고 있는가?]
[이 끔찍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로젠바움의 생각!]
[우리는 <로젠바움주의>의 시대를 살고 있다.]
[어째서 아르민 로젠바움은 출마를 하지 않는가? 독일은 그를 원한다!]
그가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아직 그 누구도 그의 의중을 헤아리진 못했지만.
조만간 알게 될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