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5화 (75/103)

대공황 (2)

1925년 선거에서 당선된 이후, 힌덴부르크 대통령은 바지사장치고는 바람 잘 날 없었다.

[77세 노인의 대통령 당선?]

[힘과 명예가 넘치는 사람이 나라를 이끌어야 하지 않을까?]

[독일인은 패배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전직 총사령관을 대통령으로 추대했다]

[힌덴부르크 당선이 베르사유 조약 위반? 농담인가 진담인가?]

그의 당선이 확정된 순간부터 연합국 언론들은 연일 이를 뉴스로 보도했고, 특히 프랑스에선 반독 감정에 불을 지피려는 목적에서 독일이 아직 반성을 덜 했다는 요지의 기사도 계속해서 나왔다.

하지만 바지는 거꾸로 입어도 바지.

틀림없이 별 이야기가 없어야 정상인데.

<독일의 국기는 흑-적-금인가, 흑-백-적인가?>

국기에서 시작된 정통성 논쟁.

<베르사유 조약에 굴종할 것인가? 거부할 것인가?>

조약을 두고 벌어지는 아가리 파이팅.

<나라를 버리고 도망친 카이저와 호엔촐레른 일가의 모든 자산을 압류하자!>

한때 제국의 전 황제였던 미스터 팔병신의 막대한 재산 압류 문제. 

철천지원수인 공산당과 사민당이 손을 잡고 내민 이 안건은 왕당파이자 충신을 자처하지만 공화국을 지키겠다고 맹세한 힌덴부르크에게 이 논제는 너무나도 가혹한 일이었다. 

“우리 사민당은 정의가 실현되길 원합니다! 카이저는 망국의 책임을 져야 합니다!”

“무상몰수! 무상분배! 카이저가 어떻게 그 막대한 재산을 모았습니까? 모두 국민을 착취해 모은 것입니다!”

하지만 국회에서 황족 재산 압류법을 통과시키려던 이들의 모든 시도는 좌절되었다. 왕당파도 왕당파지만, 사유 재산을 침해하려는 빨갱이의 음모로 보는 시선도 제법 컸기 때문이다.

바이마르 공화국 법률은 국민 3만 명의 청원이 모이면 국민투표를 할 수 있고, 국민투표 결과 무려 96%의 압도적인 찬성표.

하지만 반대자들은 애초에 투표소 자체에 가질 않았다.

투표율은 고작 39.2%에 불과했고, 국민투표는 부결되어 카이저는 자신의 재산을 보존받았다.

참고로 말하자면, 힌덴부르크보다 더한 만고의 충신인 이몸 아르민 로젠바움은 이 주제로 불이 붙기 시작하자 즉시 애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출국했다. 대통령궁의 중력에 속박된 나약한 늙은이는 이런 신속한 기동을 할 수 없는 법. 핫핫핫.

힌각하께선 내게 어떤 동질감이라도 느끼고 있었는지 내게 연락을 취해 ‘저 빨갱이들 개같은데 나 사임한다고 공갈 쳐볼까?’라는 제안을 했었고, 나는 그걸 뜯어말렸다. 그런 짓 안 해도 절대 국민투표 통과될 리 없으니 힘 쓰지 마시라고.

빨갱이 주도의 대공세를 막아내자, 그다음엔 군부에서 난리가 터졌다.

<빌헬름의 손자, 군사 훈련 참관!>

<폰 젝트 참모총장, 사임 선언!>

빌헬름 2세의 장남이었던 빌헬름 황태자의 맏아들 빌헬름.

이름이 참으로 어렵지만, 아무튼 제국이 계속되었다면 언젠가 카이저가 되었을 이 친구가 공화국군 기동훈련에 참관했다. 그것도 민간인 자격도 아니고, 구 제국군 제복을 차려입고 갔었다.

뱀 몇 마리라도 고아 먹은 것 같은 음흉한 정치군인 슐라이허는 바로 이 건을 몰래 뿌려서 자신을 키워준 젝트의 정치생명을 끝장냈다. 

“이봐, 젝트.”

“예, 각하. 저는 억울-”

“지금 군의 명예에 흠집이 났잖나! 황손을 모셔놓고 이 사달을 내다니, 자네가 그러고도 정녕 충신인가! 누구 좋으라고 이 사달을 냈냔 말이야!!”

제아무리 문민통제를 개좆으로 여기고 꼴리는대로 사람을 쏴 죽여대며 쿠데타가 일어나도 군의 명예가 어쩌고 하며 수수방관하던 젝트라 할지라도.

감히 황족이 천한 놈들 입에 오르내리게 한 데다가 그 문민정부의 수장이 독일군의 최고존엄, 힌덴부르크라면 결코 까불 수 없었다. 

제압당한 젝트는 피눈물을 흘리며 예편했고, 힌덴부르크는 군에 대한 통제력을 회복했다.

하지만 젝트가 군복 벗는다고 해서 상황이 끝나진 않았다.

슐라이허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이윽고 폭로에 폭로로 이어지는 개난장판이 되었고.

“사실 독일군은 의회에 보고도 안 한 채 소련과 멋대로 붙어먹고 있었습니다!”

“뭐라고?!?!”

독소 밀약까지 들통나 한바탕 대혼란이 벌어졌다.

고작 여기까지였으면 힌각하가 아니다.

“우리는 순수하게 조국을 위해 전쟁에 뛰어들었으며, 독일군의 손은 결코 더럽혀지지 않은 깨끗함 그 자체였습니다. 이 세상은 적들로 가득 차 있었고-”

1927년 9월.

힌덴부르크는 자신의 인생 최대 업적인 탄넨부르크 전투 기념관 봉헌식 겸 본인의 80세 생일 기념식에서 <사실 독일은 1차대전 터진 데 대해서 죄가 없어!>라는 요지의 기념사를 남겼다.

이 발언의 충격파는 대충 광복절에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에서 ‘한일 합병은 조선에 축복’ 발언을 한 것보다 조금 더 강했고, 천하의 루덴도르프조차 기념식에 참여했는데도 불구하고 힌덴부르크를 쌩까고 무시했다. 각하께선 격노하셨다.

한편 힌각하를 사모하는 전국의 팬들은 무려 100만 마르크라는 거금을 모아 그에게 농장을 사주었는데, 각하께선 상속세가 아까우셨는지 이번에도 아들 명의로 등기를 쳤다. 

의회는 ‘아니 100만 마르크짜리 선물을 받아 처먹어놓고 세금이 아까우셨어요? 양심 어디 갔어요?’라고 그를 몰아세웠고 각하께선 단단히 삐졌다. 

이후 조사 결과 그 <전국의 팬>들이라는 게 사실 융커들과 기업가였음이 밝혀지자 이 선물 사건은 뇌물 스캔들로 진화해버렸다.

그리고.

대공황이 왔다.

***

지난 10년간.

미국과 유럽에서 펼쳐진 로젠바움사의 포트폴리오는 참으로 다종다양했다.

로젠바움 영화사는 미국과 유럽 각국으로 지속적으로 영화를 수출했는데, 독일의 임금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점을 이용해 대규모 엑스트라와 인력을 동원한 작품을 턱턱 찍어내곤 했다.

어떤 대머리 미래 귀신이 표절이라고 고함을 고래고래 지르긴 했지만, <금발 백인 자유민들이 동방의 사악한 군주와 무지성 괴물들의 침공에서 자신들의 나라를 지킨다>는 플롯의 삼부작 영화는 말 그대로 어마어마한 히트를 치며 세계 영화 시장을 씹어먹었다.

로젠바움사가 투자한 영화나 배우들 상당수가 곧장 대박을 치기 일쑤였으니 할리우드 또한 이들의 ‘간택’을 기다리는 입장이 되었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로젠바움사의 명성은 고꾸라지긴커녕 오히려 훨씬 더 공고해져, 로젠바움사의 픽을 받았는지 여부에 따라 제작 단가와 배우들의 퀄리티 자체가 출렁거리는 수준이 되었다.

“축하드립니다. 회장님께서 이번 영화에 투자하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정말입니까? 정말로, 회장님께서 직접 결정하셨는지요?”

“그렇습니다, 히치콕 선생님. 틀림없이 크게 될 분이라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답니다.”

물론 여기엔 불편한 비밀이 숨어 있었다.

제아무리 독약 먹고 죽은 물귀신이 미래인이라 한들, 대관절 1920년대 영화를 뭐 얼마나 많이 알겠는가? 당연히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첫 끗발이 딱딱 잘 맞아떨어져 한번 작두 잘 탄다는 명성을 얻게 된 이후엔, 로젠바움사와 그 협력자 케네디는 어지간한 작품은 어거지로라도 흥행시킬 만한 힘과 재력, 명성을 갖추고 있었다.

<로젠바움이 극찬한 바로 그 영화!>

<‘신대륙의 신이 될 감독’ 아르민 로젠바움, 기립박수>

같은 뻔뻔스러운 홍보 문구만으로도 일단 티켓 파워가 확보된다.

그래도 미국 내 흥행에 실패하면 유럽에 갖다 판다.

유럽에서도 실패하면 이 악물고 아시아에 내다 팔든, 그것도 아니면 몰래 소련에다 팔아버린다.

그래도 망할 것 같다? 

편집을 하든 번역이란 핑계로 대사를 싹 다 고치든 날조를 해서라도 팔리게 바꾼다. 심지어는 전혀 다른 영화 2개 이상을 짜깁기해서 키메라 프랑켄슈타인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어떤 식으로라든 아무튼 소화는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수익 실적은 고스란히 다시금 할리우드에 반영되어 그들이 신으로 군림하게끔 도와주었다.

항공 분야의 WR사는 루즈벨트 추락으로 온갖 홍역을 겪었지만, 가성비에서의 압도적 이점과 미래 지식이 첨가된 노하우로 항공기 시장, 그리고 여객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합을 벌였다.

“라이트-로젠바움사는 결코 독일사가 아닙니다. 이들은 미국에 본사를 두고 미국인을 고용하는 자랑스러운 미국 기업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항공대 군용기를 발주하기엔 좀 그렇지 않겠소? 베르사유 조약은 독일의 공군 보유를 금하고 있소.”

“미국인이 미국의 군용기를 만드는 겁니다. 독일과는 아무 관계 없습니다!”

어차피 다들 안다.

최고의 항공기는 결국 로젠바움의 손끝에서 나오고, 이 시대 최고의 성능을 얻고 싶다면 로젠바움을 거치는 게 맞다.

로젠바움사는 교묘하게 각국의 지사들을 이용해 세일즈에 나섰고, 영국도 프랑스도 미국도 최소한 신형 전투기 발주 사업에선 은근히 로젠바움사의 영향이 닿은 제품을 고를 수밖에 없었다.

성능 차가 조금만 난다면 그냥 국산을 고르기라도 하겠는데, 그게 아니잖은가?

다른 독일 기업들은 따땃한 불공정무역과 관세장벽 앞에서 통곡의 눈물이라도 흘리련만, 로젠바움사의 가장 핵심적인 제품들은 도저히 후려칠 여지가 없다. ‘꼬우면 사지 마’를 외칠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업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벌리는 수익금은 다시 투자된다.

20년대 초반부터 미국 불장의 달달한 꿀을 빨다가, 점차 주식의 비중을 낮추고 부동산 비중을 높이기 시작했다.

알짜 회사를 사들이고.

경쟁자가 될 법한 기업은 돈으로 합병하고.

정치인과 고관들에게 기름칠을 닦아 놓고.

세상은 평화로웠다.

모두가 행복해했다.

모두가 흥청망청 돈과 평화에 취해 있었고, 경제는 영원히 성장할 것만 같았다.

이제 이 세상에 불경기란 없다!

아아, 인류는 마침내 빈곤을 벗어나 끝없는 발전의 길에 접어든 것이다!

끝없는 장밋빛 미래만이 펼쳐질 것이고, 세계는 영원히 진보하리라!

“다들 미쳐 돌아가고 있어.”

몇몇 사람들을 빼면.

“한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소년이 제 구두를 닦아줬었는데 그 애도 주식 투자를 한다더군요. 이게 제정신인 나라로 보이면 그놈은 죽어도 쌉니다. 당장 주식시장에서 엑시트해야 합니다.”

“어째서 그게 엑시트의 징조요? 모두가 이 황금빛 비전을 공유한다는 증거지!”

로젠바움의 친구이자 야수의 심장, 사자심왕의 후계자 케네디야말로 바로 그 대표적인 케이스였다.

이미 월스트리트에서 이름깨나 날리던 케네디는 로젠바움 펀드의 운용 담당이 되면서 그 명성에 반중력 엔진이라도 부착한 듯 순식간에 화성으로 날아가버렸다.

원 역사보다 훨씬 빨리 월가의 중심으로 도약한 그는 어떠한 통제도 제대로 듣지 않는 자본주의 정글의 포식자가 되었다.

내부자 거래, 공매도, 이너서클 형성 후 작전주, 허위 찌라시 유포, 주총 깽판치기 등 남들 하는 것들을 다 하기 시작했고 그의 수익률은 나로호처럼 힘차게 우주를 향해 도약했다.

그리고 지금.

“어? 어?”

“떨어진다?”

“이거 팔아주시오!”

“나, 나 먼저! 내가 팔겠소!”

“잠시!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닥치고 내 주문 빨리 넣으란 말이야!”

“매도! 매도하라고!!”

마침내 끝없이 쌓아 올린 미국 경제의 바벨탑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창문 깨지는 소리와 함께 월스트리트 곳곳에서 인간이 새로 진화하는 다이내믹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대공황의 시작이었다.

“지금 주가가 떨어지면 멍청이들이 저점 잡을 수 있는 기회라며 있는 돈 없는 돈 모조리 끌어모아 투기를 시도할 텐데··· 우린 공매도를 칩시다.”

그리고 케네디는 숏에 걸었다.

황금의 신이 되는 순간이었다.

***

아르민 로젠바움이란 사람을 알고 있나?

- 혼자서 월가를 통째로 먹겠다고 설치다 패배한 바보 같은 놈이지.

무슨 소리냐. 패배라니. 조범석 네 이놈! 

미국 출장을 나왔던 나는 케네디와 함께 어마어마한 공매도와 멋진 내부자 거래를 진행한 이후 즉시 귀국을 택했다. 더 있다간 살해당할 게 확실하단 직감이 왔기 때문이다.

조금 심하게 빨아먹었나.

- 시시각각으로 사람들 뛰어내리는 거 봤지? 니가 죽였어, 이 자식아.

솔직히 내가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어차피 다른 놈들도 다 수익률 높이려고 숏 쳤다. 나는 순전히 외국인이기 때문에 더 밉상으로 찍혔을 뿐이고. 절대 내 탓이 아니다. 

이번 투자는 나의 Masterpiece다. 이는 내 JP모건 계좌가 증명한다. 하지만 American 개미들 불만이 매일 있어요? 만약 내 탓이라고 생각하면 Berlin으로 와라. 옥수수를 만들어줄 수 있으니.

미국은 당분간 끝났다.

검은 목요일의 충격이 독일까지 전해지려면 최소 반년, 길면 1년쯤은 걸릴 터.

하지만 독일에 투자한 미국 자본이 모조리 빠져나간다면 독일이 멀쩡할 순 없다. 

독일 또한 대공황의 이름으로 초토화될 것이고, 하이퍼인플레에서 탈출한 지 5년 만에 다시 국가 경제가 곱창나는 걸 목도한 국민들은 철과 피만이 해답이라고 깨달은 훌륭한 아리아인으로 거듭나리라.

베를린에 도착한 나는 즉각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을 소집했다.

“회장님, 무사히 다녀오셨습니까?”

“회사를 위해 분골쇄신하는 여러분들이 있어 안심하고 출장을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다들 고생들 많으셨습니다.”

로젠바움사의 대들보들.

체펠린 백작이 호숫바닥에 비행선 꼬라박던 시절, 내가 창고에서 기름밥 처먹던 시절부터 나와 함께했던 이들.

그들의 가족과 자식마저 기꺼이 로젠바움사 입사를 택해 죽어도 함께 죽겠단 결의를 다진 이들.

수십 년에 걸쳐 내가 다졌던 나의 친위세력.

내 사람.

내 가족.

우리집 가장 깊숙한 곳의 내 작은 서재는 이들 개국 공신 수십 명으로 들어차 숨쉬기도 버거워졌지만, 바로 이 압박감이야말로 내 기분을 최고로 행복하게 해주고 있었다.

- 그냥 브레스 컨트롤 취향의 변태성욕 같은데.

좀 닥쳐 보라고. 산통 깨고 있어.

“그동안 우리는 기업의 사회적 책무를 다했고, 나아가 그 어떤 기업도 하지 않았던 사회 환원과 시민단체 활동을 위해 이 나라가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

“······.”

“하지만, 이제 끔찍한 시련이 도래할 것입니다. 독일 경제는 몇 년 전과 마찬가지로 처참하게 붕괴될 것이고, 여러분들은 오늘부터 다시 끝없는 빈곤과 실업의 파고를 헤쳐넘어야 할 것입니다.”

나는 무덤덤하게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는 대공황이란 폭풍에 대해 언급했다.

누구도 내게 되묻지 않았다.

이미 이들에게 나는 신앙의 영역이었으니까.

“나는 깨달았습니다. 더 이상 일개 기업인, 경영자로서는 이 나라를 좀먹고 있는 거대한 암을 치료할 수 없습니다. 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선 직접 주치의가 되어야만 합니다.”

“회장님!!”

“저흰 따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만약 당리당략에만 얽매인 정치인들이 다가오는 32년까지 국가를 잘 통치하지 못하고 다시 한번 이 나라를 끔찍한 경제 위기의 암초에 좌초시킨다면, 나는 다음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이 나라를 근본적으로 바꾸겠습니다!

사랑하는 사우 여러분! 나를 도와주십시오! 이 아르민 로젠바움이! 이 나라를 바꾸고! 모든 독일인을 구원하겠습니다!!”

“로젠바움 만세!”

“하일 로젠바움!!”

“하일 로젠바움!!”

이제 뒤로 물러날 수 없다.

모두가 내 적. 중립 따위 없다.

하지만 자신은 없었다.

질 자신이.

연(9)

피이이잇!

'크으읍!'

어마어마한 압력이 무형검을 압박해온다.

수많은 색채와 빛살이 우리를 스쳤다.

나는 이를 악물고 버티며, 더욱 더 정순지력을 짜내어 무형검에 공급하였다.

얼마나 죽을 둥 살둥 무형검을 유지하며 버텨냈을까.

번쩍!

파아아앗!

무형검에 가해지던 압력이 사라지고, 나는 어느덧 내가 웬 전송진의 위쪽에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봉명성 안쪽의 공기와는 다른 공기가 맴돈다.

피시싯...

발 아래쪽의 전송진은 그대로 꺼져 버렸다.

아무래도 이 전송진 역시 주변 영맥을 끌어모아 충전되는 충전식 전송진인 듯 했다.

'이곳은 어디지?'

내가 주변을 둘러볼 때였다.

꼬물꼬물

"아! 미안합니다 소저."

나는 품 속에서 꿈틀대던 북향화를 놓아주었다.

"푸하! 어, 어떻게 잘 나왔네요."

한참동안 내 품 속에 있느라 더웠던 건지, 아니면 공간 전송의 압력 때문에 머리에 열이 뻗친 건지.

그녀의 얼굴은 발그스름했다.

"그나저나 방금 보여줬던 그건 뭐죠? 뭔가 투명한 막 같은 게 우리를 덮었는데..."

"음, 그건..."

나는 말을 돌리려 하다, 그녀의 얼굴이 아직도 빨간 것을 눈치챘다.

"그나저나 소저. 아직도 얼굴이 붉군요. 혹시 어디 안 좋으십니까? 전 의원이기도 해서 진맥해드릴 수 있습니다."

"아, 아니! 제 말에 먼저 대답이나 하세요! 그건 뭐였는지 설명부터 해 주시죠?"

어쩐지 북향화는 평소와 달리 흥분해서 내게 소리를 쳤다.

'하긴 너무 갑작스러운 일들이 많았으니 심신이 피로해진 탓이겠지.'

나는 납득을 하며 무형검에 대해 설명하는 대신 주위를 돌리기로 했다.

"험험, 그나저나 이곳이 어디인지부터 알아봐야겠군요."

주변은 동굴 안쪽이었다.

동굴의 구조를 보니, 사방에 길이 뚫려 있었고, 미로같은 구조였다.

"아니, 말 돌리지 마시고 그게 뭔지 설명 좀 해 주시면 안 되나요? 그건 분명 결단기급의 기세를 뿜어댔다고요!"

"소저, 일단 우리가 있는 동굴을 빠져나가고 말해드리겠습니다."

그제야 북향화는 조금 진정하는 듯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녀와 함께 동굴을 돌며 빠져나갈 길을 살폈다.

하지만 미로처럼 꼬인 탓인지, 어느 길로 가도 다시 전송진이 있던 자리로 돌아올 뿐이었다.

"흐음, 이 동굴.,. 진법(陣法)인 것 같습니다."

"그러네요. 그런데, 그런 진법인 것 치고는 상당히... 인위적인 티가 나지 않는 걸요?"

나는 미로를 노려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파훼하기가 제일 까다롭다는 천연진법인 것 같군요."

간혹, 나무들의 배열이나, 동굴의 형상, 혹은 지형 자체가 자체적으로 진법을 형성하는 경우가 있다.

인간이 세운 진법은 규칙과 법리가 있기에, 파악만 할 수 있다면 파훼하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천연적으로 세워진 이런 진법의 경우, 그 규칙과 논리가 인간의 것이 아닌 자연의 것이기에, 파훼의 난이도가 극악해지는 것이 특징이었다.

"저는 토 속성의 공법을 익혔으니, 토둔술로 그냥 땅을 파고 나가죠?"

"저도 역시 토 속성 공법은 익혔습니다. 함께 땅을 파 보지요."

나와 북향화는 법결을 맺으며, 동굴 벽을 향해 동시에 토둔술을 사용하였다.

쿠구구국!

그러나.

구국, 구구국...

"자, 잠깐..."

토둔술은 어째선지 잘 먹히지 않았고, 북향화는 뭔가를 알아챘는지 안색이 어두워졌다.

"이 암석, 영기를 흡수하는 재질을 지닌 괴흡석(乖吸石)이에요! 영기를 흡수한 후 어그러뜨려 분산시키기에, 법술이 잘 안 통하는 암석인데..."

"......"

나는 잠시 침묵하다가, 깊은 한숨을 쉬었다.

"후우..."

방법이 없다.

결국, 이 방법을 또 시도해야 할 것 같았다.

"...어쩔 수 없군요. 소저, 잠시 뒤로 물러나 주시지요."

"아, 아까 사용했던 그걸 또 사용하시려 하는군요!"

그녀는 눈을 빛내며 몇 걸음 떨어져, 품에서 수첩과 붓을 꺼냈다.

"...그건 또 왜 꺼내는 겁니까?"

"말씀드렸잖아요. 서 수사께 가장 어울리는 법기를 만들어보이겠다고요. 서 수사에 대해 잘 알수록 최적화된 법기를 만들어드릴 수 있죠."

"아직도 안 포기하셨습니까?"

"어머, 포기가 뭐죠?"

나는 옅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말했듯이, 이건 청문세가에는 비밀로 부탁드리겠습니다."

"알겠어요. 맹세까지 했는걸요."

"그럼..."

쿠구국!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