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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독일은 총통이 필요해요-87화 (87/103)

잿더미 속에서 (4)

한 시대를 풍미한 권력자이자 일국의 장군 부부가 허망한 최후를 맞이했다.

때마침 슐라이허의 집 주변에선 나치 잔당이 난동을 피웠고, 이들을 추적하기 위해 경찰과 형제단 모두가 움직여야 했고, 이들 부부의 시신이 발견된 것도 한참 시간이 지난 이후였다.

조사 끝에 슐라이허는 <총기 오발 사고>로 인해 죽은 것으로 결론 났으며, 슐라이허 부인은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충격을 받아 뇌출혈로 죽은 듯하다는 오묘한 결론이 나왔다.

공식적인 조서가 눈 가리고 아웅인 것은 모두가 알았고, 비공식적으로는 ‘나치와 싸우다 자중지란이 일어나 총에 맞아 죽음’으로 알음알음 소문이 퍼졌다.

하지만 군에 몸을 둔 모두는 총기 오발이든 나치의 살해든 전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폰 젝트.

쫓겨났다가 돌아온 군부의 옛 수장.

그는 자존심과 긍지에 흉한 상처를 입은 맹수였고, 그 맹수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찢어발길 기세였다. 사람 한둘을 찢는다고 그 상처가 낫는 것도 아니지만 결코 참을 수 없기에.

슐라이허는 그중 가장 악질이었기에 본보기로서 온몸이 벌집이 되는 최후를 맞이했을 뿐. 그는 시작일 뿐이라는 걸 모두가 다 알았다.

하지만 그 서슬 퍼런 기세에도 불구하고 군의 그 누구도 입 한 번 벙긋하지 못했다.

“슐라이허의 자택을 압수수색한 결과, 나치 돌격대와 결탁해 국가를 전복하려 했던 정황이 뚜렷하게 밝혀졌습니다.”

“나치 돌격대와 정규군을 하나로 합쳐 본인이 수장이 되려 했던 것이 명백합니다.”

일단 슐라이허가 SA와 붙어먹으려 한 것은 너무나도 명명백백했다.

그 SA가 지금 바로 국가의 내전을 일으킨 놈들이니, 도저히 슐라이허를 옹호하기는 힘들었다.

“지랄들 하는군. 쫓겨난 노인네의 노욕에 군이 흔들려야 하나? 애꿎은 장성들 목숨을 바쳐 가면서?”

한 명 빼고.

“하머슈타인 총장. 지금 반역도를 두둔하는가?”

“군의 일은 군에서 끝내야지요.”

“그렇지. 뭔가 착각하는데, 슐라이허가 죽지 않았다면 반역죄로 기소되어 법원으로 끌려갔을 걸세. 절대 군 내부에서 끝나지는 않았겠지.”

하머슈타인의 반항을 감지한 젝트는 곧장 대통령 관저로 달려가 참모총장을 교체하자고 제안했다.

“하머슈타인은 슐라이허와 친분이 깊었던 만큼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릅니다. 대통령 각하. 그를 교체하고 고분고분한 놈을 박아 넣으면 군의 장악이 끝날 겁니다.”

“하지만 우린 지금 내전 중이지요.”

“내전이라는 건 말장난에 불과하잖습니까?”

“그래도 안 됩니다. 하머슈타인은 유임하겠습니다.”

그러나 로젠바움은 단호하게 이를 거부했다.

- 이래서 사람은 화장실 들어갈 때랑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고 하는구만.

“정치하는 놈들이 다 그렇지. 오히려 저렇게 정직하게 움직여주니 얼마나 좋아.”

젝트의 의도는 너무나도 뻔했다.

친나치 반역도 딱지를 붙여 참모총장까지 끌어내린 뒤, 그 빈자리에 자신에게 충성하는 딸랑이들을 싹 임명해 군을 완전히 장악하겠다.

의도를 빤히 아는데 어울려줄 필요는 없다.

무엇보다도, 가야 할 길이 앞으로 구만리.

그는 하머슈타인을 자르긴커녕 오히려 총장을 별도로 불러 독대를 가졌다.

“참모총장.”

“예, 대통령 각하.”

“슐라이허 장군의 비참한 최후에 관해서는 나 개인적으로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합니다. 하지만, 그가 반역자로 지목되어 공개적으로 심판받는 것보단 이게 더 낫다는 젝트 장군의 말에 내가 설득되었다는 것 또한 말할 수밖에 없군요.”

로젠바움은 그렇게 넌지시 이번 일이 젝트의 소행임을 밝히면서도 ‘이게 너희들에게도 더 좋지 않느냐’라는 시그널을 보냈다.

그리고 하머슈타인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각하께선 군의 독립을 유지시켜주실 요량이십니까?”

“아니오. 그럴 순 없습니다.”

“어째서입니까?”

“내가 원하는 독일군은 국토 방위만을 위한 나약한 조직이 아닌, 독일을 유럽의 패권 국가로 끌어올려줄 전쟁의 선봉이기 때문입니다.”

“···!!”

하머슈타인은 순간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그는 머리와 입이 따로 놀지 않는 정직한 인물이었다.

“지금 맨정신으로 하는 말씀이십니까?”

“내가 전쟁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바깥에 나가 떠들 생각이시오?”

“···그건 아닙니다만.”

“우리 독일이 짓밟히고 약탈당한 지가 어언 10년이 넘었습니다. 나는 전쟁보다 평화를 사랑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세상엔 참고 살면 상대의 자비에 감탄하기보단 호구로 여기는 버러지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로젠바움은 무덤덤하게 자신의 소견을 밝혔다. 평화, 안전, 복지, 우애를 외치던 이는 온데간데없었다.

“이탈리아는 오스트리아, 헝가리를 자신들의 영향권에 넣고 싶어 합니다. 나는 이탈리아의 검은 손길을 부수고 오스트리아의 게르만 동포를 우리의 품 안에 넣어야 한다고 봅니다.”

“폴란드는 무너져야 합니다. 그들은 동유럽의 평화를 해치는 악의 축입니다. 리투아니아인, 에스토니아인, 라트비아인, 체코인, 슬로바키아인, 러시아인 모두가 증오하는 폴란드를 무너뜨린다면 우리는 동유럽에 평화와 안정, 그리고 독일이 주도하는 질서를 성립시킬 수 있습니다.”

“중유럽과 동유럽에서 승리한다면, 그다음엔 무엇이 남겠습니까?”

“프랑스.”

하머슈타인은 무의식적으로 증오스러운 단어를 입 밖으로 흘리고 말았다.

로젠바움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자리에서 분명하게 말하겠습니다. 우리 독일이 두 번째 세계대전을 일으킨다면, 우리에게 닥칠 미래는 오직 하나. 패망뿐입니다. 독일이란 나라는 전 세계를 상대로 싸워 승리할 국력도, 자연환경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원하는 건 오직 하나. 두 번째 보불전쟁입니다. 이 길만이 우리의 패권 확립, 그리고 승리를 보장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더더욱 군부에 힘을 실어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옛 프로이센군의 영광을 되살려야만!”

“그래서 당신들이 이끈 세계대전에서 패망했잖습니까. 이미 한 번 패배해본 당신들에게 전쟁 같은 막중한 일을 맡길 순 없습니다. 내 일이지.”

로젠바움은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작은 거울을 탁 덮어버리곤 시가에 불을 붙였다.

“그러니 나는 내가 휘두르는 대로 움직일 칼이 필요합니다. 혼자 멋대로 생각하고 반항하다가 꼴리는 대로 주인을 찔러댈 마검은 필요 없습니다.”

“······.”

“선택하세요. 독일 민족의 영광을 위한 선봉이 될지, 아니면 특정한 집단의 이익을 위한 선봉이 될지.”

“대통령 각하의 흉중에 품은 큰 뜻이 정녕 지금 밝힌 바와 같다면, 그것은 모든 프로이센 군인의 꿈이자 희망입니다. 우리는 기꺼이 따를 것입니다.”

담배 연기가 천천히, 하지만 확실히 밀폐된 방을 가득 메웠다.

“그럼 그 증표로, 가장 먼저 친나치 파벌을 모조리 도려내십시오.”

“군복을 벗겨야만 합니까?”

“죄의 경중에 따라 한직으로 처박기만 해도 됩니다.”

“그다음은 무엇을 할까요.”

“패배하십시오. 가능한 한 비참하고도 처참하게.”

하머슈타인은 활짝 웃었다.

무슨 뜻인지 이해했기 때문이다.

***

독일은 언제나 전 유럽의 관심사였다.

그리고 독일 대선에서부터 총선, 내전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무수한 사람들에게 센세이션한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로젠바움? 아르민 로젠바움이 대통령 출마라고?”

“노조 출신 혁명가. 늙은 장군. 이젠 자본가?”

“로젠바움을 자본가라고 말한다면 너무 무식한 행보 아닌가. 발명가-전쟁영웅-빨갱이-자본가라고, 그는.”

“독일이 대체 어찌 될는지.”

“보헤미아 상병 대 빨갱이 자본가라.”

가진 게 많은 사람들일수록 로젠바움을 대개 부정적으로 바라보았다.

독일이 적화되지는 않을까?

로젠바움 대통령은 과연 어떠한 정책을 취할까?

물론 다른 의견도 있었다.

“어차피 독일 대통령은 의자만 데우는 자리인데 뭘 고민하나.”

“그렇지. 오히려 나치당의 성장세에 주목해야지.”

하지만 취임사와 함께 모든 것이 뒤바뀌었다.

로젠바움의 당선.

그리고 의회 해산과 총선.

“저게 당이라고? 정당이라고 하기엔 주장이 아무것도 없잖아?”

“독일민족혁명당 강령은 성경 말씀과 무슨 차이가 있나? 좋은 말만 늘어놓는 게 그냥 성경인데?”

“오직 집권에만 의의를 둔 기이한 정당이다. 그들은 공유하는 가치도, 추구하는 미래상도 없다.”

“하지만 확실한 건, 독일인이 원하는 바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 이상 싸우지 않는 것!”

그리고 민족혁명당의 총선 승리와 내전 개시까지.

1년 전의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역사의 급류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전 세계의 정치가와 외교관, 자본가와 군인들이 독일을 지켜보았다.

그러는 와중, 내전의 진행 상황은 숨 가쁘게 돌아갔다.

“우리 독일군은 남부 바이에른 지역을 제외한 국토 전역을 탈환하였습니다. 공산당이 주도한 총파업은 종료되었으며, 지하로 은신한 간부와 조직원들을 체포하는 중입니다. 하지만 남부 바이에른에서의 반란군 진압 시도는 강력한 저항에 직면했습니다.”

그리고 런던에 있던 주영 독일 대사는 그야말로 대성통곡을 했다.

“이탈리아입니다!!”

“글쎄, 꼭 그렇다는 증거는-”

“증거가 나왔습니다! 이탈리아제 총기! 이탈리아인! 이 이상의 증거가 대체 어디 있습니까?!”

이탈리아의 내전 개입.

두체는 이미 밤낮으로 ‘파시스트 동지애’니 뭐니 하며 어마어마한 어그로를 끌어모으고 있었고,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검은 셔츠단원 중 의협심 넘치는 이들이 국경을 건넜을지도 모른다’ 같은 소릴 해대고 있었다.

“우리 군부는 최소 1개 연대급의 정규군이 독일 국토에 침입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건 전쟁입니다, 전쟁!!”

“그러니까. 우리도 국제 연맹에서 이탈리아를 규탄하는 성명에 찬성해주겠다 이겁니다.”

“프랑스가 반대하고 있잖습니까! 더 이상 못 참습니다. 우리는 베르사유 조약을 전면 파기하고 재무장을 하겠습니다!”

“이봐요!”

“지금 조국이 침략당하는 상황인데, 우리더러 그럼 나라를 내주란 말입니까!”

국제연맹은 만장일치가 기본 원칙.

아무튼 독일이 좆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좋아하는 프랑스가 있는 이상, 로젠바움이 아니라 무덤에 있는 프리드리히 대왕이 살아 돌아와 연맹 회의장에서 연설을 하더라도 국제연맹이 개입할 가능성은 희박했다.

“우리 영국군 장성들 중 일부는 오히려 귀국에서 고의적으로 진압을 태만히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소.”

“예?”

“사실이 그렇잖소? 고작해야 깡패와 폭도 무리가 어떻게 정규군을 막고 있소?”

“그러니 이탈리아군이 개입했다는 확고한 심증이 있는 거지요.”

독일 외교관들은 총력전 체제에 들어갔다.

온 세계에 남의 나라 반란을 선동한 이탈리아를 격렬히 비난하면서, 베르사유 조약의 군비 관련 제한이 ‘국가를 스스로 지킬 역량’에 현저히 미달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도 뮌헨 시민들은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나치의 폭정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돌격대가 뮌헨 시내에 있는 상점을 무자비하게 약탈하고 있습니다. 가게 주인이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유리창을 깨고 살인과 약탈을 서슴지 않습니다···.]

마침내 균형의 수호자 대영제국은 결단을 내렸다.

저 멍청한 국제연맹이 아니라, 자신들이 직접 <명예로운 중재>를 진행하기로.

“친애하는 로젠바움 대통령 각하. 이탈리아의 두체가 이번 사태를 원만히 해결하길 희망하고 있습니다.”

“원만한 해결이라니요? 무슨 개좆같은 소릴 하고 있는 겝니까?”

“제게 그러진 말아 주십시오. 두체는 지난 대선 선거전 때부터 내전에 이르기까지 이탈리아의 개입 자체가 모두 사실무근이라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요구 조건.

남티롤 영유권을 영구적으로 포기할 것.

오스트리아와의 합병 주장을 영구적으로 포기할 것.

아돌프 히틀러와 그 일당을 국외추방하는 선에서 이번 일을 끝낼 것.

이 모든 것을 가만히 듣고 있던 아르민이 중얼거리듯 입을 열었다.

“말도 안 되는 주장들은 못 들은 것으로 치겠습니다. 저더러 다음 선거에서 낙선하라는 것과 마찬가지니까요. 반역자 히틀러의 모가지를 포기하는 대가는 무엇입니까?”

“대영제국이 독일에 큰 투자를 하겠습니다.”

“베르사유 조약 파기와 재무장은 상수입니다. 영국 정부는 이에 동의하십니까?”

“해군 육성에 제한을 건다면, 육군 강화에 대해서는 영국도 동의할 의사가 있습니다. 이번 내전으로 독일의 자위권이 훼손되었단 사실이 입증되었으니까요.”

아르민은 애써 웃음을 참았다.

‘히틀러를 오스트리아에 둔다면.’

- 안슐루스.

살아 움직이는 전쟁 명분이 오스트리아에 간다.

무솔리니의 기대와 달리, 오스트리아는 독일의 품에 들어올 수밖에 없으리. 히틀러란 인간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으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왜곡과 날조로만 이루어진 내전이 그렇게 종식되어 갔다.

베르사유 조약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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