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 독일은 총통이 필요해요-101화 (101/103)

제국의 아침 (1)

독일 전역이 피로 물들었다.

다만 1919년부터 계속된 지난 유혈극과는 조금 결이 달랐다.

이번만큼은 국가를 전복하려는 세력이 아닌, 국가가 음모자들을 모조리 뿌리 뽑는 과정이었으니까.

가장 꼭대기부터 가장 아래까지, 날이면 날마다 새로운 음모자 명단이 추가되었고 쉴 새 없이 누군가가 끌려가고 또 사라졌다.

“하머슈타인 총장님. 어쩐 일이십니까.”

“총통··· 각하.”

대통령궁이 수리 중이고 총리 관저가 피로 물든 지금, 나는 내 개인 사저에 머무르고 있었다.

이곳까지 찾아온 하머슈타인은 잠시 고민하다 경례를 올렸다.

“굳이 이토록 짓밟지 않으셔도, 군의 충성심은 확고부동합니다. 각하. 부디 자비를-”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제가 당선된 지 고작 2년인데 반란만 두 번입니다. 이건 모두, 군이 위험하다. 독일의 적은 바로 군부였다는 뜻이겠지요.”

“각하!”

“이제 군이 선택해야 할 시간입니다. 매달리든가, 아니면 국민에게 복종하세요. 더 이상 당신들의 특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군의, 독립은.”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니까요. 처음부터 잘못되었던 겁니다. 국가의 의지에 따라 복종해야 할 군이 제멋대로 판단하고 제멋대로 행동한 결과가 지난 십여 년의 참극입니다. 어찌하시겠습니까?”

“군은··· 오직 총통 각하를 따르겠습니다.”

“그럼 증명하십시오. 여러분의 손으로.”

“알겠습니다.”

그는 내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하일 로젠바움!”

“하일 로젠바움!!”

“우리 독일 국방군은 로젠바움 총통 각하를 결사옹위하기 위해 존재하며, 총통 각하께 충성을 맹세하는 바입니다!”

마침내 독일 군부는 완전히 굴복했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체면이고 권력이고 모조리 내려놓았다.

“나는 군인으로서는 이름을 세웠지만, 국가의 적들을 제압하는 덴 실패했었다. 나, 파울 폰 힌덴부르크는 마침내 나라를 바로 세우는 데 성공한 아르민 로젠바움 총통의 결단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짐작할 수 있다.”

“그동안 독일군은 귀족 계층의 군대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 마침내 독일군은 진정한 국가의 군대로 거듭났다!”

“프로메테우스가 인류에게 불을 가져다주었듯, 게르만 민족은 로젠바움이라는 불멸의 태양을 하사받았다. 그분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우리는 외국의 노예가 되어 있었음이 틀림없을진저!”

“2천 년 전, 게르만의 위대한 영웅 아르미니우스(Arminius)는 토이토부르크 숲에서 바루스의 로마 군단을 전멸시키고 외세의 손에서 자유를 지켜냈습니다. 그리고 2천 년이 지난 지금! 다시 한번 그분께서 재림하사 우리 독일 민족을 외세의 손에서 지켜주고 계십니다! 하일 로젠바움!”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알 법한 원로 장성들이 매일같이 신문지면이나 라디오 방송을 빌어 통렬한 자아비판과 낯간지러운 충성맹세를 선언했고, 그러기를 거부하는 자들은 축축한 슈타지 지하실을 방문해야만 했다.

이 열렬한 충성 맹세는 루덴도르프의 재판을 기점으로 정점에 달했다.

“피고 에리히 루덴도르프는 1916년 이후 독일의 실권을 잡아 국가와 민족을 파멸시키는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이후로도 나치당을 지원하며 지속적으로 독일 민족의 멸망을 위해 암약해 왔다.”

“죽여라!!”

“죽여라!!”

“사지를 찢어 죽여라!!”

“-피고에게 사형을 언도하는 바이다.”

“와아아아!!!”

무수한 이들이 교수대에 대롱대롱 매달려 최후를 맞이했다.

“제 옆집 사람이 아무래도 반역도인 것 같아요.”

“뒷집 아저씨가 사민당원이었는데 로젠바움 각하께서 다 본인 이득을 생각해서 직원들에게 베푼 것뿐이래요. 이거 반역자 맞죠?”

“경찰이죠? 아빠가 잠꼬대하면서 로젠바움을 타도하자고 했어요. 수상해요.”

그리고 숙청은 단기간에 끝나지 않았다.

독일 전국은 거의 히스테리 반응에 시달리듯 ‘외국 스파이’와 ‘매국노’를 색출하기 위해 광분했고, 정부에 반대하는 모든 이들은 이 광풍을 버티지 못하고 휩쓸렸다.

마침내 독일은 하나로 뭉쳤다.

마침내.

***

바이마르 공화국의 종말.

개헌을 놓고 나는 다시 한번 국민투표를 열었고, 어김없이 독일 국민들은 압도적인 지지율로 내게 보답했다.

- 그래, 이제 독재자가 돼서 좀 만족스럽냐?

당연하지.

한평생 이 자리를 거머쥐기 위해 기나긴 인고의 세월을 보냈다.

하지만 뭐라고 해야 할까.

기쁨보다는 어깨가 참으로 묵직해지기만 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앞으로의 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는가?

이 나라를 패망의 길에서 벗어나게 한다는 게 가능은 한 일일까?

- 아니, 뭐, 아방궁을 짓는다거나, 기쁨조를 만든다거나, 틀니 딱딱대던 꼰대 군바리 영감들을 끌고 와서 우스꽝스러운 춤을 추게 한다거나, 대머리를 범죄로 규정한다거나, 연재를 게을리하는 작가들을 잡아다 지하실에 넣는다거나··· 그런 거 안 해?

왜 해, 그딴 걸? 내가 네로야? 칼리굴라야? 그보다 너무 상상력이 일차원적이잖아. 나보다 본인이 더 신난 것 같은데.

- ···저런.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하던 범석이는 내 경멸 어린 시선을 받고 움츠러들었다.

독재라는 건 기본적으로 굉장히 불합리하고 비효율적인 체제다. 이런 체제를 돌리려면 꼭대기에 있는 전제 독재자가 죽는 순간까지 갈려나가도 이상하지 않다.

- 야!!!

부활한 조스비가 고함을 버럭 질렀다.

- 그걸 아는 놈이! 그걸 아는 놈이 왜 이랬어? 그 많은 사람들을 죽여가면서 왜!

몇 번이고 말하지 않았냐.

민주정의 지도자는 설득해야만 하는데, 네놈이 준 미래 지식이라는 건 설득이 불가능한 범주기 때문이지.

그러니까 결론만 요약하자면.

나는 내가 세운 이 정부 체제를 전혀 오래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총통>, <민족최고지도자>의 직책에 오르고 싶은 놈은··· 미래에서 온 귀신 하나쯤은 달고 있어야 한다.

신에게 선택받은 초인인 내 자리를 이어받으려면 당연히 그에 걸맞은 초인이어야 하는 법. 그런 인물이 없다면 다시 민주공화국으로 회귀해야지.

- 좀··· 많이 돌아버렸구만.

돌다니. 지극히 나는 이성적이라고.

어차피 나쯤 되는 인물이라면 공화국이 다시 자리 잡더라도 금방 제2대 총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못 하면 뭐, 능력 부족이고.

***

발터 폰 브라우히치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가 살아남은 건 학연빨이란 생각을 떨치기 어려웠다.

물론 그가 납작 엎드린 건 맞다. 이미 그는 예전부터 군부 내에서 친-로젠바움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하지만 거기서 아주 약간 억울한 점이 있다면, 학교 몇 년 같이 다닌, 그것도 학년이 달라 같은 반인 적도 없는데 어느 순간 제멋대로 ‘브라우히치 장군은 로젠바움과 불알친구다’라는 소문이 퍼지고 그가 거기에 손을 대지도 못했단 것.

그는 그 소문을 듣고 딱히 부정하지 않았고, 그러자 어느 순간 브라우히치는 뿅 하고 로젠바움파의 좌장이 되어 있었다. 호트가 브라우히치를 도저히 못 이길 것 같아 공화국 수비대로 전출을 신청했다는 괴담을 들었을 땐 정신이 아득해질 것만 같았다.

“당신이 이제 군을 맡아야겠소.”

“제가, 말씀이십니까?”

“그럼 누가 더 있겠소?”

하머슈타인 총장까지 멋대로 시대의 흐름이네 뭐네 하면서 정해진 결과처럼 그의 후임 참모총장 취임을 확정지어버리니.

브라우히치는 그냥 얌전히 이 빅 웨이브에 올라타기로 결심했다. 그러자 속쓰림과 두통과 과민성 대장이 모두 싹 사라지고 강 같은 평화가 찾아왔다.

신임 참모총장에 취임한 브라우히치를 기다리는 것은 경애하는 총통 각하와의 독대였다.

“잘 오셨습니다.”

“총통 각하의 은혜로 이 자리에 취임하게 되어 무한한 광영입니다!”

“선배님. 제발 그러지 말아 주십시오. 그런 걸 원했으면 훨씬 더 딸랑딸랑대는 사람을 뽑았을 겁니다.”

“그, 그런가?”

“예. 저는 존중할 만한 사람을 좋아하거든요.”

그의 선임들을 수두룩하게 사형대로 보내거나, 이등병으로 만들어버린 뒤 군복을 벗기거나, 부패 사범으로 낙인찍거나, 전 재산을 몰수한 뒤 추방해버린 사람이 저렇게 말하니 참으로 살 떨리는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라우히치의 가슴속엔 프로이센 군인으로서 가져야 할 용기, 한마디로 압축해 <꼬우면 죽이든가 시발> 정신이 맹렬히 용솟음쳤다. 천하의 나폴레옹을 상대로 끝없이 대가리가 깨져가면서도 싸움을 걸던 프로이센 정신은 결코 후퇴하지 않는다!

“여기 리스트에 있는 인사들을 중용하셨으면 합니다.”

“시작부터 군의 인사에 개입하려고 하십니까?”

“오해가 있군요. 개입이 아닙니다. 인사권자의 명령이지요.”

오늘치 용기-포인트가 바닥을 드러냈다. 그의 용기는 여기까지였다.

“만슈타인, 구데리안, 롬멜, 모델, 보크, 케셀링, 클루게, 클라이스트··· 혹시 별도로 인사평정도 진행하셨습니까?”

“문제 있습니까?”

“아니오. 반대입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굳이 이렇게 저를 직접 불러 명령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으셔도 당연히 중용했을 듯합니다.”

말도 안 되는 무능한 놈들을 위로 끌어 올리라는 것도 아니고, 이미 그 능력을 인정받아 중임을 맡고 있는 이들 아니면 향후 국방군의 미래로 거론되던 사람들 아닌가.

“군의 기강이 바로잡히는 대로, 본격적인 재무장에 착수할 겁니다.”

“예!”

“하지만, 새로운 육군은 이제 자신들만이 군대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4개 군종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국방군은 결코 국가와 동격이 아닙니다. 해군, 공군, 공화국 수비대와 어깨를 나란히 해야 합니다.”

가볍게 현실을 인지시킨 로젠바움 총통은 벽에 걸린 대형 유럽 지도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최대한 빨리 어수선해진 군을 수습하고, 4개 군의 합동 역량을 강화해야 합니다.”

“그, 렇습니까?”

“예. <합동참모본부>를 신설해 총통인 저를 군사적으로 보좌하는 기관으로 삼고, 육군 또한 합참을 거친 제 명을 받들어야 할 것입니다.”

육군의 위상이 이 정도로 추락하는가. 브라우히치는 갑자기 자괴감이 드는 듯했다.

“너무 걱정 마십시오. 이는 육군을 보호하는 수단 또한 될 테니.”

“보호라고 하셨습니까.”

“결국 독일이 전시에 진입한다면 전장의 주역은 어디가 되겠습니까. 다른 군종의 협조를 얻기 훨씬 수월해지리라 믿습니다.”

물론 총통의 군에 대한 영향력 또한 훨씬 압도적으로 강해지겠지만, 이는 당연한 일.

다만 로젠바움의 군사적 역량에 관해서는 아무래도 물음표 부호를 떠올릴 수밖에 없지만, 그건 육군에서 합동참모본부로 넘어갈 사람들이 잘 보좌하는 수밖에 없으리라. 괜히 빌헬름 2세처럼 물개 놈들의 헛소리에 넘어가 근본도 없는 이상한 군사 정책을 취하면 정말 큰일이지 않겠는가.

“앞으로 군사 분야에 대해, 제가 훈수를 두는 부분이 제법 많을 겁니다.”

“···최대한 각하의 명을 따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좋군요. 그럼 먼저 개인화기부터 시작해 볼까요.”

“······네?”

독일 전 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받는 총통이 무슨 괴이막측한 대전략을 떠들까 궁금해하던 그는, 모눈이 그려진 설계도면을 꺼내 드는 로젠바움을 보며 할 말을 잃었다.

“어차피 군의 규모를 몇 배로 부풀려야 하니, 지금이 바로 신무기를 도입하기 가장 적기겠지요. 어차피 소총 하나조차 그놈의 베르사유 조약 때문에 제대로 개발 못 했으니.”

“그, 그렇습니다.”

“그러니 소화기(小火器)부터. 기관단총과 소총을 결합해 원거리 사격전에서도 쓸 수 있으면서 수십 발의 총알을 날릴 수 있는-”

“혹시 이런, 그, 각하의 신묘한 아이디어가, 더 있으십니까?”

“물론이지요. 전부 다 꺼낼까요?”

브라우히치는 눈앞의 이 사람이 총통이기 이전엔 사업가였고, 그 한참 전엔 전설적인 발명가였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매드 사이언티스트다. 개발에 미친 공돌이가 여기에 있었다!

“저희 육군은, 각하의 신묘한 혜안이 그 어떠한 것이든 이 세상에 완벽하게 구현해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확실한 건.

그 미친 공돌이가 총통인 이상 예산이 마를 일이 없다는 사실.

<돌격소총> 프로젝트가 발족하는 순간이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