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역시 수석인가? 대단해!!”
훈련실의 입구 쪽에서 들려오는 우렁찬 목소리에, 한창 매직 미사일을 만들고 있던 나는 흠칫 놀라 주문을 취소해 버렸다.
그와 동시에 주변에 날아다니던 수많은 백색 구체가 고블린 무리에 처박히며 시뮬레이터가 종료되었다.
짝짝짝―!
박수를 치며 들어온 큰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작은 키에 은색 단발머리를 하고 있는 달시 세이피어.
세이피어 가문의 당주이자, ‘아카마’의 여주인공 중 하나인 ‘루비 버밀리온’의 단짝 친구였다.
‘저 녀석이 왔다는 건, 루비도 왔다는 건데.’
아니나 다를까 달시의 뒤를 이어 훈련실로 들어오는 루비 버밀리온. 그녀는 뭔가 내키지 않는지 불편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온 달시 세이피어는 이내 히죽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안녕! 입학 첫날부터 훈련실에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네. 수석은 원래 그런 거야?”
“그러는 너네는…….”
나는 그러는 너네는 왜 여기 왔냐고 묻고 싶었다. 그러나 달시가 빠르게 내 말을 끊는다.
역시 마이 페이스인 여자다.
“달시 세이피어야. 그리고 이쪽은.”
“루비 버밀리온.”
나는 말을 씹힌 탓에 살짝 당황했지만, 이내 달시가 청한 악수를 받았다. 달시는 내가 손을 잡자 씨익 하며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었다.
“난 제로야.”
“네가 제로인 건 당연히 잘 알고 있지. 입학식 때는 확실히 대단했어!”
“그, 그건…….”
차마 내 의지가 아니었다고 말할 수 없는 나였다.
그래도 이 둘은 워낙 평민과 귀족 같은 걸 따지지 않는 성격이라 다행이다.
평민을 멸시하는 골드버그 가문 녀석들이었더라면, 분명 입학식 때의 일로 벌써 한바탕했을지도 모르겠다.
“이거 전투 시뮬레이션이지? 재밌겠다!”
이미 그녀는 나 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훑어보던 달시는 훈련장의 중앙에 있는 구슬을 발견한 뒤, 곧바로 그곳으로 달려가 시뮬레이터를 발동시켰다.
순식간에 주변을 가득 채운 고블린들. 아까 내가 소환했을 때보다도 훨씬 많은 수였다. 아마도 저 시뮬레이터의 조작법은 따로 있었던 모양이다.
수많은 고블린에 둘러싸여 있음에도 달시는 여유 있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내 망설임 없이 달려들어 주먹질을 해 댔다.
퍽!
퍼억!
순식간에 비명횡사하는 고블린들.
그녀의 주먹에 닿는 족족 한 방에 사라져 간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는 왠지 억울했다.
‘나는 열 방을 박아야 잡는데 고작 한 방이라고? 이거 밸런스가 안 맞잖아…….’
픽픽 쓰러지는 고블린 무리를 마치 장난감인 마냥 가지고 놀고 있는 달시 세이피어. 역시 세이피어 가문의 당주답다.
얼떨결에 나는 달시의 무예를 넋 놓고 감상하게 되었다. 그러자 옆에서 침묵하고 있던 루비가 말을 걸어왔다.
“미안해, 먼저 사용하고 있었는데. 달시가 워낙 눈치가 없어서…….”
아마도 처음의 불편했던 표정은 이 부분이 내키지 않아서 그랬나 보다. 그녀의 성격상 남에게 민폐를 끼치는 건 죽어도 싫겠지.
“괜찮아. 마침 가려던 참이었어.”
어차피 매직 미사일의 사용감은 전부 익힌 것 같았기에 더 이상 이곳에 볼일은 없었다.
물론 한계까지 사용하지 못한 건 아쉽긴 하다.
그러나 사실, 한계까지 사용할 정도면 이미 매직 미사일의 효율이 매우 떨어지니 별 의미 없을 것이다.
“그럼, 난 갈게.”
나는 어쩔 줄 몰라 하는 루비를 뒤로한 채 훈련실 문밖으로 향했다.
“어어, 가는 거야? 왜? 가지 마! 같이 놀자!”
아직 고블린을 가지고 놀고 있던 달시가 그제야 멈춰 서서 나를 불렀지만, 이미 문밖을 나선 나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 * *
“갔네.”
“그러게.”
달시는 이미 문밖을 나간 제로를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와 동시에 주먹을 오른쪽으로 힘껏 뻗자, 마지막 고블린이 사라지면서 시뮬레이션이 종료되었다.
루비는 아무래도 제로가 황급히 훈련실을 떠난 것이 자기네들 때문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반면 달시는 그런 거에 무신경한 편이었다.
그녀는 이내 시뮬레이션의 난이도를 높여서 다시금 전투를 시작했다.
이번에 생성된 것은 오크. 시뮬레이션 장치를 통해 그들의 머리 위에 200이라는 아까보다 높은 수치가 표시되었지만, 여전히 달시의 주먹 한 방에 사라지기는 마찬가지였다.
루비는 오크들과 한바탕하기 시작한 달시를 보며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말을 꺼냈다.
“근데 말이야, 동시에 몇 개까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해?”
“응? 뭐가?”
“매직 미사일 말이야.”
“매직 미사일?”
여유롭게 오크들의 공격을 피하면서 학살 중이던 달시는 갑작스러운 루비의 질문에 아까 제로의 모습을 떠올렸다.
“아까 수석 얘기야? 글쎄, 모르겠다. 나는 아마 다섯 개 정도는 하지 않을까 싶은데.”
“나도 열 개까진 가능할 거 같은데…….”
체술 쪽 외에는 영 마법에 관심 없는 달시와는 달리, 루비는 어느 정도 다양한 계열의 마법에 자신 있었다.
그럼에도 아까 잠깐 봤던 제로의 매직 미사일의 수는 도저히 따라 할 수 없는 경지였다.
그만한 수의 매직 미사일을 동시에 사용하려면 복잡한 술식과 고도의 연산력이 필요할 게 분명했다.
“그 정도면 현역 마법사도 따라 하기 힘들겠지?”
“으응, 그럴지도? 괜히 수석이겠어?”
괜히 수석이겠냐는 달시의 너스레에 루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제로는 평범한 학생이 아니었다.
다만, 입학식 때 봤던 거와는 다르게 그렇게까지 차갑고 거만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왠지 루비는 그런 제로에게 흥미가 생기게 되었다.
* * *
다음 날, 드디어 첫 수업을 받게 되었다.
칼루스 아카데미 수업의 진행 방식은 처음 일주일은 기숙사 단위로 기초 교육을 받게 되고, 그 이후에는 대학교의 수업 방식처럼 원하는 강의를 선택해서 수강하는 것으로 진행된다.
나는 강의실의 뒷자리에 앉은 뒤, 앞의 학생들을 쓰윽 훑어보았다.
원작의 주인공인 제이드는 물론이고 여주 3인방의 얼굴도 보였다. 다들 하나같이 익숙한 얼굴들. 역시 다들 같은 기숙사로 배정된 모양이다.
“조용.”
강의실의 앞문으로 들어오는 남자의 낮게 깔리는 목소리에 일순간 시끌벅적한 학생들이 조용해졌다. 검은 양복에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 남자는 이내 교탁을 두어 번 치더니 짧게 자기소개를 했다.
“케이든, 대인전 교수다. 너희들 아우레인의 기숙 사감이지.”
케이든의 소개에 몇몇 학생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아마도 케이든이 평민이기 때문일 테지.
이 세계에서 성은 오로지 귀족들만 가질 수 있다.
귀족의 지위는 가지고 있는 재력을 의미하기보다는, 마법사 가문 출신을 뜻한다. 애초에 이 세계는 마법사와 비마법사로 나뉜 세계이기에, 자연스레 마법사들이 권력을 잡았고 비마법사들이 평민이 된 것이다.
물론 요즘 들어서는 평민 출신 마법사들도 많이 있고, 또 뛰어난 인재들도 나타나기에 그 차별이 많이 줄어든 추세지만, 여전히 몇몇 권위 있는 귀족 가문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내 앞자리에 앉아 있는 한 귀족 녀석은, 그중에서도 특히 권위 의식에 찌든 녀석이었다. 녀석은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출했다.
“수석도 차석도, 심지어 교수까지 평민이라고? 칼루스 아카데미도 이젠 한물갔구나.”
비록 케이든에게는 들리지 않을 정도의 작은 중얼거림이지만, 바로 뒤에 있는 나에게는 분명하게 들린다.
놈의 이름은 제페토 골드버그.
‘아카마’에서 그 특유의 권위 의식으로 주인공과 자주 트러블을 일으키는 인물이었다.
“다들 알다시피 일주일간은 기초 교육을 진행한다.”
케이든은 그러한 학생들의 수군거림은 무시한 채 칠판에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물질계 〉정신계 〉소환계 〉변신계 〉강화계 〉방출계 〉원소계 〉]
“뭐, 잘나신 귀족 출신들은 다들 알고 있는 내용일 테지? 벌써 고유 마법을 사용하는 녀석도 있을 거고. 일주일간은 상당히 재미없을 거야. 나도 이런 걸 가르치는 건 재미 없거든.”
칠판에 적혀 있는 내용은 이 세계 마법의 근본적인 법칙. 7계였다.
“설명하기 귀찮으니까, 한 문장 정도로 짧게 요약할 수 있는 사람 있나?”
케이든은 매우 귀찮은 듯이 교탁에 턱을 괴고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케이든의 말마따나 칠판에 적혀 있는 내용은 이 세계의 사람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는 지극히 단순한 내용이었다.
내 옆자리에는 벌써부터 책상 위에 엎드려 자고 있는 사람도 보인다.
그 와중에 손을 든 것은 다름 아닌 루비 버밀리온.
케이든은 루비를 보자마자 턱짓으로 일어나라고 시늉했고,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 있는 목소리로 7계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7계는 일곱 가지의 유색 고유 마법을 의미합니다. 각각 무지개색 고유 마나를 사용하는 거죠. 마법의 상성은 칠판에 적혀 있는 부등호를 따릅니다.”
“그래, 앉아라. 7계의 특징을 잘 설명해 줬다. 한 문장은 아니었지만.”
케이든은 귀찮다는 듯이 다시금 턱짓으로 루비를 앉혔다.
루비의 설명처럼 이 ‘아카데미의 마법사’ 세계 속의 마법은 조금 특별하게 나뉘어 있다.
빨간색 마나를 사용하는 물질계.
마나를 물리적인 힘으로 변환하여 행사하는 고유 마법.
주황색 마나를 사용하는 정신계.
상대방을 정신적으로 간섭하는 고유 마법.
노란색 마나를 사용하는 소환계.
대상을 소환하여 사역하는 고유 마법.
초록색 마나를 사용하는 변신계.
마물 혹은 환수 혹은 그 무언가의 대상으로 변신하는 고유 마법.
파란색 마나를 사용하는 강화계.
신체를 강화하거나 물체를 강화하는 고유 마법.
남색 마나를 사용하는 방출계.
정제되지 않은 마나 그 자체를 직접적으로 사용하는 고유 마법.
마지막으로 보라색 마나를 사용하는 원소계.
4대 원소를 포함한 모든 원소를 다루는 고유 마법.
이렇게 고유 마법은 총 일곱 가지로 나뉘고, 그것을 7계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방금 일어나서 설명한 루비 버밀리온은 중력을 사용하는 물질계 마법사다. 또한 어제 훈련실에서 고블린을 무자비하게 패던 달시 세이피어는 강화계 마법사고.
이 세계는 특이하게 마법사라고 다 원거리에서 싸움만 하는 것은 아니다. 강화계나 변신계처럼 직접적으로 전투하는 물리형 마법사들도 존재한다.
뭐, 마나만 사용하면 마법사인 거니까.
그리고 고유 마법은 계열을 정하게 되면 마나가 하나의 색으로 물들기 때문에, 자연스레 다른 계열의 마법은 잘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칼루스 아카데미에 입학할 정도면 보통 입학하기 전부터 다들 고유 마법을 익히고 온다.
그래서 저 케이든 교수가 지금의 강의를 귀찮아하는 것이다. 지금의 강의는 혹시라도 있을, 아직 고유 마법을 정하지 못한 녀석들을 위한 강의일 뿐이니까.
아마 귀족 출신이 대부분인 여기 학생들은 다들 고유 마법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나다. 나는 7계의 고유 마법 중 그 어떤 것도 사용할 수 없다. 그야말로 적성 제로. 이름값 하는 캐릭터다.
그래서 이 캐릭터가 원작에서 맥거핀이라 불리는 것이다. 마나만 많으면 뭐 해? 정작 이 세계에서 중요한 고유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데.
“여기서 이론으로 강의해 봤자, 별로 와닿지도 않을 거고 관심도 없을 테지. 그래서 바로 실습이다. 따라와라, 애송이들아.”
케이든은 교탁 위에 기댄 몸을 일으켜 세운 뒤, 앞문으로 걸어 나갔다. 그러자 잠시 술렁이던 학생들도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뒤를 따라갔다.
실습 시작. 곧 ‘제로’의 밑천이 드러나게 될지도 모르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