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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의 무속성 마법사-7화 (7/175)

7화

보상을 확인하고 난 뒤, 그제야 나는 옥상에서 기절해 있을 제페토가 생각났다.

‘죽지는 않았겠지? 애초에 매직 미사일 몇 방 맞고 죽을 마법사는 없잖아? 아마도…….’

그래도 살짝 걱정이 된 나는 제페토의 상태를 확인하러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기숙사 안에는 사람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다들 어디 간 거지?”

분명 ‘아카마’에는 이런 이벤트가 없었던 게 분명했다.

옥상에 도착하자, 난간 밑에 제페토가 기절해 있었다.

다행히도 타박상 외에는 별다른 부상은 없는 듯 보였다.

“에이 뭐시기랑 비 뭐시기는 없네.”

원작에서의 제페토는 항상 따까리들을 데리고 다닌다.

그런데 지금은 보이지 않는 걸로 보아, 방금 전 습격은 이 녀석의 단독 행동인 듯싶다.

어쨌든 무슨 일인진 알 수 없으나 현재 기숙사에 남아 있는 사람은 없는 것 같고, 이 녀석은 사람이 없는 지금 시간을 노려 나를 공격한 것으로 보인다.

“뭐, 이 녀석이 나를 노릴 이유는 많긴 한데…….”

애초에 제페토는 지독한 귀족 우월주의였고, 원작의 메인 빌런 중 한 명이기도 했다. 그래서 수석이지만 평민 출신인 날 노릴 이유야 많았다.

“문제는 시기와 수위란 말이지.”

아직 뭔가의 트러블과 접점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수업 첫날부터 날 노리고 들어오는 것이며, 이렇게 학생들과 교수들이 없는 시기를 적절히 노려 날 공격한 것은 조금 이상했다.

“역시 뭔가가 잘못된 거 같네.”

이곳, 칼루스 아카데미는 이제 내가 알던 ‘아카마’의 내용과는 조금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결국 나는 부상을 입은 제페토를 업은 뒤 의무실로 향했다.

아직 학기 초인데 또 무언가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던 점도 있었고, 무엇보다 이 녀석은 앞으로 계속해서 이벤트를 퍼 주는 노다지 같은 녀석.

굳이 황금 고블린의 배를 지금 가를 필요는 없을 듯싶었다.

‘게다가 애초에 이 녀석, 살의도 없었으니까.’

아무리 학기 초라고 할지라도 도철은 도철이고 제페토는 제페토였다.

이 녀석이 진심을 다했더라면 나는 진작에 게임 오버였겠지.

“하필 도철이어서 다행이네.”

게임에서 제페토가 다루는 사역마는 총 넷.

그중에서도 도철은 명백한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자석’.

자석이 근처에 있으면 아예 움직이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운이 좋게도 자석은 널려 있었다. 바로 기숙사 뒤편 전체가 자력을 띠고 있는 영구적인 자석이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도철을 기숙사 뒤편으로 유인했던 거였고, 제페토를 이길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이런 식으로 제페토를 이기는 것은 원작에도 없는 내용이었다. 애초에 원작에서 제이드가 제페토와 붙게 되는 시점에서는 이러한 약점 같은 게 필요 없는 시점이니까.

만약, 도철의 공략법이 떠오르지 않았더라면 하마터면 끔찍한 꼴을 볼 뻔했다.

“울고불고 애원해? 정수리를 보여? 참 웃긴단 말이지.”

이곳의 선택지는 내 머리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게임에서도 이렇게까지 정신 나간 선택지를 주진 않았었다.

“뭐, 그래도 보상은 얻었으니까, 좋은 게 좋은 거려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가고 있던 와중, 어느새 의무실 앞에 도착해 있었다.

문 앞에서 ‘정숙’이라는 명패를 확인한 나는 살짝 노크를 했다.

똑똑―

“들어와.”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곳에는 매우 젊어 보이는, 또래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여자가 의사 가운을 입고 있었다. 아무리 마법의 세계라도 의사가 가운을 입는 것은 암묵적인 룰인 듯싶다.

가운의 가슴 부근에 적혀 있는 이름은 이올렛 테오니르.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무슨 일인데?”

그녀는 업혀 있는 제페토를 보더니, 빠르게 침대로 안내했다. 그리고 나는 녀석을 던지다시피 침대 위에 내동댕이쳤다.

이올렛은 쓰고 있는 안경을 치켜올리고는 제페토의 상태를 살펴보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단번에 제페토의 상태가 왜 이렇게 됐는지 알아맞혔다.

“매직 미사일이구나?”

“예, 뭐…….”

“어쩌다 이렇게 된 건데? 설마 네가 한 건 아니지?”

“그게…….”

내가 멋쩍은 미소를 짓자, 이올렛은 말 안 해도 된다는 듯 윙크했다.

“괜찮아. 한창 젊은 애들끼리 그럴 수 있지, 뭐.”

“하하… 그나저나 왜 기숙사에 사람이 없는 거죠? 다들 어디 갔어요?”

“그러고 보니 너넨 왜 여기 있는데? 다들 지금 강당에 집합 중이잖아.”

“집합이요? 왜요?”

“요즘 학교 주변에 사악한 마도구를 파는 안티 매지션들이 돌아다닌다나 봐. 그거 관련 교육인 듯싶은데.”

그렇구나.

그래서 기숙사가 텅 비어 있었던 것 같다.

제페토 녀석은 이 시기를 노려 나를 공격했던 거였고.

그나저나 전체 집합이면 적어도 인원수를 체크하거나 그래야 되는 거 아닌가? 어지간히 자유로운 아카데미다.

“이 녀석도 이 녀석인데, 너 볼에 피 흐른다.”

“어? 아, 네…….”

“잠깐 볼 이리 내밀어 봐.”

그러고 보니 맨 처음 도철에게 입었던 상처를 잊고 있었다. 내가 이올렛에게 볼을 내밀자 그녀는 내 볼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손에서는 남색 빛의 마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 세계의 의료직은 방출계 마법사들이 맡는다.

마나를 변환하지 않고 직접 사용하는 방출계 마법은 전투에서는 효율이 떨어지나, 대상의 회복력을 높여 주거나 정밀한 수술 작업 등에는 특화되어 있다.

물론 예외는 있지만.

“다 됐어.”

그녀는 내 볼을 어루만지던 손을 떼었다.

의무실 구석의 거울을 확인하자 놀랍게도 상처가 전부 아물어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니야? 볼이 빨갛다, 너.”

순간 부끄러움을 느낀 나는 시선을 피했다. 의식하지 않고 있었는데 이올렛이 저렇게 말하자 왠지 볼이 달아오른 느낌이었다.

“그, 그럼 전 이만 가 볼게요.”

“응, 그래.”

“저 녀석 깨어나면 뒤처리는 알아서 맡긴다고 전해 주세요. 아, 그리고 이번 일은 눈 감아 준다고도 말해 주세요.”

“알았어. 들어가.”

아마 저 녀석도 자기가 한 짓거리를 알기 때문에 별 대꾸 없이 알아서 처리할 것이다. 뒷말도 나오지 않을 테고.

나는 이올렛에게 살짝 목례를 한 뒤 의무실을 나와 기숙사로 복귀했다.

다음 날, 어김없이 지루한 기초 실습 수업이 시작되었다.

다행히 오늘의 제페토는 얌전해 보인다.

아까부터 나랑 시선이 맞을 때마다 눈을 내리까는 모습이 마냥 귀엽게도 느껴졌다.

그 ‘골드버그’ 가문의 장남이 고작 나 같은 평민한테 졌다니 꽤나 자존심이 상했겠지. 그것도 고유 마법도 아닌 평범한 ‘매직 미사일’ 따위한테 당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제페토 녀석이 꼬리를 내리자 새롭게 시비를 거는 녀석이 생겼다. 그것도 제페토와 연관이 매우 깊은, 제페토의 쌍둥이 여동생 캐서린 골드버그였다.

괜히 쌍둥이 아니랄까 봐 하는 꼬라지가 판박이다. 이 정도면 저 남을 깔보는 태도는 DNA에 각인된 게 아닐까 의심이 든다.

살짝 캐서린 쪽으로 시선을 향하자, 아니나 다를까 캐서린이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

“쳐다보지 말아 줄래요? 더러운 벌레가 보는 것 같아 기분 나쁘네요.”

아까부터 이런 식이다.

경어를 사용하는 건 아무래도 그저 말버릇으로 보이는데, 저 경어와 경멸이 섞인 말투가 묘하게 기분 나쁘다.

캐서린도 제페토와 마찬가지로 원작의 메인 빌런 축에 속했다.

다만 한 가지 다른 점은, 제페토는 노골적으로 제이드를 싫어한다면 캐서린은 오히려 제이드를 사랑한다. 저 노골적으로 평민을 까 내리는 여자가 어째서 평민 출신인 제이드를 좋아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나 애초에 캐서린은 악역으로 설정되어 있어서 제이드와 이어지는 루트는 없다.

제이드와 항상 붙어 다니는 히로인들을 질투하다가 나중에 가서는 그 정도가 심해져 폭주하는 나름대로 불쌍한 캐릭터라고도 볼 수 있다.

나는 황급히 캐서린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굳이 시비를 걸 이유도 없었고, 어차피 캐서린의 증오 대상은 내가 아니니까.

다만, 제페토의 타깃이 나였던 걸 보면 캐서린도 ‘아카마’와는 다르게 행동할 수도 있겠다.

나는 어제와 동일하게 또다시 그늘에 자리를 잡고 수업 열외를 했다. 제페토가 알아서 꺾인 이상, 이제는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는다.

“오늘의 마지막 실습은 방출계 마법이다.”

어느덧 오늘의 마지막 수업인 ‘방출계 수업’ 시간이 되었다.

수업의 내용은 그저 마나를 방출하여 나뭇잎을 떨어트리는 것. 애초에 방출계는 전투에 그리 적합한 고유 마법이 아니기 때문에 케이든은 다소 쉬운 과제를 내었다.

물론 그런 방출계에도 예외는 있어서, 가끔가다 어마어마한 마나량으로 마나를 뿜어내는 공격형 방출계가 나타난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아카마’의 주인공 제이드였다.

콰아아아앙!

엄청난 굉음과 풍압이 남색 오라와 함께 제이드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 뒤에 보이는 것은 마나가 지나간 자리에 일자로 뿌리 뽑힌 나무들이었다.

평소에 감정 표현을 잘 하지 않고, 항상 선글라스를 끼고 있기에 그 표정을 잘 읽을 수 없는 케이든 교수. 그 케이든이 입을 살짝 벌리고 있는 것만 봐도 제이드의 방출계 마법이 얼마나 대단한지 짐작할 수 있었다.

“놀랍군.”

케이든 교수가 짧게 감상평을 했다. 고작 1학년 새내기가 방출계 마법으로 이 정도의 퍼포먼스를 보여 준 것이다.

“뭐야, 저게 말이 돼? 방출계 마법을 저런 식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저 정도면 현역 마법사 수준을 뛰어넘는 거 아니야?”

“권좌 자리를 노린다는 게 빈말이 아니었네. 그냥 천재였잖아.”

나는 수군거리는 학생들의 표정을 훑어보았다.

역시 여학생들은 물론이고, 남학생들 또한 제이드를 보는 시선이 사뭇 달라졌음이 느껴졌다.

어제까지만 해도 제이드를 단지 잘생기고 마법에 재능이 있는 평민 정도로 봤다면, 지금은 차기 권좌 후보생을 보는 듯한 선망과 호감의 눈빛이다.

거기다 루비 버밀리온까지 약간 호감을 느낀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제이드 녀석, 설정으로도 실제로도 엄청난 미남이다. 게다가 성격까지 좋아서 여자들이 안 좋아하려야 안 좋아할 수가 없겠지.

결국 수업은 제이드의 훌륭한 퍼포먼스 이후로 종료되었다.

나 또한 제이드를 보면서 느낀 점이 있었다.

지금 시점에도 저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는 제이드에 비해 나는 터무니 없이 약하다. 거기다 어제의 일을 비롯해서 사건들과 이벤트들이 만만하지 않은 걸 느꼈기에 더더욱 힘이 필요했다.

‘서둘러 강해질 필요가 있겠어.’

아직 침공 이벤트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 여유가 있었지만, 어제 일을 생각하면 방심할 수 없었다.

‘문제는 고유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나로서 할 수 있는 거라곤 ‘템빨’밖에 없다는 거지.’

그러려면 자금이 필요했다.

그리하여 수업이 끝나고 내가 찾은 것은 달시 세이피어였다.

“달시!”

“응?”

수업이 끝나자마자 기숙사로 올라가고 있는 달시를 부르자, 그녀는 생긋 웃는 얼굴로 뒤돌아봤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짧은 손 인사를 하고는 바로 본론을 얘기했다.

“저기, 이번 주말에 뭐 해?”

“응? 주말에? 글쎄, 아무것도 안 할 거 같은데?”

“나랑…….”

살짝 긴장한 나머지 침을 삼켰다.

물론 지금부터 얘기할 것을 달시가 거절할 일은 없겠지만.

“…데이트하자.”

“그래!”

달시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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