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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의 무속성 마법사-9화 (9/175)

9화

나에겐 잠시 생각할 겨를이 필요했다.

달시 세이피어가 한 방에 나가떨어졌다.

게다가 벽에 부딪힌 이후 정신을 잃었는지, 고개를 숙인 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럴 리가 없잖아……?’

분명 그럴 리 없다.

아무리 방심했다 하더라도, 달시는 세이피어 가문의 당주다.

몸에 상시 강화 마법을 두르고 있는 저 달시 세이피어가 한 방에 나가떨어지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혼절한 것은 더더욱 말이 되지 않는다.

벽에 처박혀 고개를 떨구고 있는 달시의 모습을 나는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었다.

당황한 나보다 먼저 몸을 움직인 것은 루비였다.

“달시! 괜찮아?!”

루비는 쓰러진 달시에게 빠르게 뛰어가더니 그녀의 상태를 살폈다. 다행히 루비의 반응으로 보아 달시는 그저 기절한 것일 뿐, 치명적인 상태는 아닌 걸로 보였다.

쿵!

육중한 소리와 함께, 스켈레톤 킹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느새 조립된 뼈다귀들은 거의 5m가 넘는 거구의 형상을 이루고 있었고, 한 발자국 내디딜 때마다 지면이 떨리는 진동이 느껴졌다.

다행인 건 그리 빠르지 않다는 점이었다.

루비는 다가오는 스켈레톤 킹을 보자 재빠르게 주문을 속삭였다.

「그라비타스 폰데라티(grávĭtas ponderátĭ)」

그러나 어떻게 된 일인지, 그녀의 마법은 발동하지 않았다.

루비는 계속되는 마법의 불발에 당황하며 재차 주문을 반복했다. 그러나 마법은커녕 몸에서 흘러나오는 마나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도망쳐!”

가만히 있는 루비에게 소리를 질러 봤지만 틀렸다. 이미 루비는 당황한 나머지 패닉 상태에 빠진 것으로 보였다.

“젠장…….”

쿵―!

쿵―!

한 발, 한 발 다가가던 스켈레톤 킹의 거대한 그림자가 어느새 루비의 얼굴에 드리웠다. 그리고 스켈레톤 킹은 이내 몽둥이를 크게 휘둘렀다.

그 순간,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루비 쪽을 향해 달렸다. 그러곤 멍하니 스켈레톤 킹을 올려다보고 있는 그녀를 있는 힘껏 밀쳐 냈다.

콰아아아앙!

“아아아아악!!”

입에서 참을 수 없는 비명이 새어 나왔다.

다행히도 팔이 떨어져 나가거나 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몽둥이에 스친 오른팔의 피부가 싹 쓸려 나갔고, 고깃덩어리처럼 피로 붉게 물들었다.

오른팔을 움직이려 해 봤지만, 뚝뚝 피를 흘리고 있는 손끝이 미세하게 떨릴 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상처를 본 루비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괘, 괜찮아?!”

“죽고 싶어?! 빨리 도망쳐!”

나는 그 와중에 이를 꽉 깨물며 고통을 참은 뒤, 루비를 피신시켰다. 루비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는지 달시를 업고는 보스 방 입구 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오른팔에서 느껴지는 미칠 정도의 통증 속에서도, 루비에게 먼저 도망치라고 한 이유는 왜였을까.

그녀가 여자라서? 아니, 여자고 남자고는 지금 상황에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아직 이곳이 현실이 아닌 게임 속이라고 여겨져서? 그렇기엔 오른팔에 느껴지는 고통이 너무나도 생생하다. 이건 틀림없이 현실이다.

책임감.

그래. 책임감이었던 거 같다.

이 던전에 데려왔다는 책임감.

스르르륵.

스켈레톤 킹은 바닥에 박힌 몽둥이를 가볍게 뽑아내고는 또다시 휘두를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원래도 느린 스켈레톤 킹의 몸놀림이 더더욱 느리게 보였다.

사람이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높은 곳에서 떨어질 때 등등, 죽을 위기에 처하면 그 장면이 느리게 보인다고 들었다. 이게 아마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이미 여러 번 경험해 본 게임이니까, 모든 상황에 잘 대처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은 더 이상 게임이 아닌, 지극히 냉엄한 현실이었다.

‘잠깐만, 게임?’

갑자기 번뜩 스쳐 가는 생각에서 활로가 보였다.

그래. 생과 사의 경계에 선 순간,

이제는 게임이고 현실이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가 활용할 수 있는 걸 모두 활용하는 게 중요하지.

눈앞의 현실이 아무리 생생해도, 결국 이건 플레이어와 보스의 전투라는 거다. 게임의 형식을 띠고 있으면, 공략법은 반드시 존재한다.

내가 생각에 잠겨 있는 와중, 이어서 몽둥이를 내리치는 스켈레톤 킹.

나는 그에 반응하여 침착하게 몸을 뒤로 던졌다.

콰아아아아앙!

몽둥이의 공격 범위는 아슬아슬하게 발밑에서 멈췄다. 아마도 10cm만 더 앞에 있었더라면 분명 저 몽둥이에 가루가 됐을 것이다.

‘방법은… 있을 거야.’

오른팔에 느껴지는 미친듯한 통증에도 나는 이를 악물고 이내 머리를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첫째, 도망친다.’

나는 루비 쪽을 흘깃 쳐다보았다.

루비는 보스 방의 입구에서 달시를 끌어안고 있었다.

보아하니 역시 보스 방의 입구는 닫혀 있는 듯싶었다. 아마도 저 문은 이 스켈레톤 킹을 처리하거나 던전의 불청객인 우리가 죽거나, 둘 중 하나가 아니면 열리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이곳 보스 방은 도망치기에 그다지 넓은 공간도 아니었다. 저 스켈레톤 킹이 아무리 느려 터졌다 하더라도, 계속해서 공격을 회피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슈우우우우욱!

또다시 스켈레톤 킹이 몽둥이를 휘둘렀다. 이번에는 그저 휘두르기만 했을 뿐인데 그 풍압이 멀리 떨어진 나에게까지 느껴진다. 오히려 그 상쾌함 덕분에 나는 다시금 머리를 회전할 수 있게 되었다.

‘둘째, 약점을 찾아 싸운다…….’

그때, 문득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어라? 잠시만……!’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저 스켈레톤 킹의 움직임에, 묘하게 거슬리는 포인트가 있었다.

아무리 느려터진 녀석이라도 제자리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은 채, 몽둥이를 휘두르고 내려찍기만 하는 게 어딘가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번뜩 떠오르는 게 있었다.

“설마… 마법진?”

그래, 마법진이다.

녀석은 마법진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나는 곧바로 벽면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내 말이 사실인 걸 증명이라도 하는 듯, 녀석은 내가 벽 쪽으로 딱 달라붙자 더 이상 다가오지 못했다.

“하하… 한시름 놨네…….”

마법진 안에서 발버둥 치는 스켈레톤 킹을 보자, 뭔가 허탈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살짝 긴장이 풀리자, 그제야 오른팔의 통증이 강하게 느껴진다. 흘깃 상태를 확인해 보니 이미 걸레짝이 되어 처참한 몰골이었다. 그나마 아드레날린이 나오는 덕분에 상태에 비해 통증이 약하게 느껴지는 듯싶었다.

조금 여유가 생긴 나는 이제 상황을 되짚어 볼 수 있었다.

‘왜 루비는 마법을 사용하지 못한 거지?’

분명 그녀는 마법을 시도했다. 그런데 마법은커녕, 물질계 마법을 사용할 때 나오는 붉은 마나조차 보이지 않았다.

저 녀석이 마법 면역일 리는 없다.

물질계 마법은 애초에 마나를 물리적인 힘으로 바꾸는 것. 게다가 루비 버밀리온의 고유 마법은 중력이다. 마법에 면역이라고 자연의 법칙인 중력을 거스를 수는 없는 법이다.

‘잠깐만, 달시는 왜 한 방에 날아갔던 거지?’

달시는 상시 적용되는 강화계 마법을 온몸에 두르고 있다. 게다가 그것은 영웅의 가문에서 내려오는 고유 마법. 아무리 상대의 스켈레톤 킹이 강할지라도, 한 방에 나가떨어져 기절할 만한 급은 절대 아니었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 낸 나는 답을 도출할 수 있었다.

‘설마…….’

머릿속에 드는 의문과 함께 나는 곧바로 매직 미사일의 주문을 읊었다.

「마지아 미실레(magía míssĭle)」

그리고 내 왼손에 소환되는 백색 구체.

하얀색 기운이 내 몸을 감쌌다.

“…이게 아닌가?”

내가 기대했던 결과와는 조금 달랐다.

내가 생각했던 건, 이 던전의 트릭은 마나 흡수가 아닐까였으니까.

그래서 달시의 상시 적용 마법이 깨져 한 방에 나가떨어진 것일 테고, 루비의 마법도 시전되지 않았던 거라고 생각했다.

이 던전이 마나 흡수의 기믹을 가지고 있어야 이 모든 상황이 설명된다. 그런데 내 생각과는 다르게, 나는 매직 미사일을 태평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설마…….”

가장 근본적인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의 내가 일반적인 마법사들보다도 마나 보유량이 많다는 사실을.

그래서 이렇게 아무 저항 없이 마나를 사용할 수 있는 거였다. 영웅의 가문 출신이라 해 봐야, 고작 1학년 수준의 마나를 보유하고 있는 루비와 달시가 마법을 사용하지 못했던 이유가 바로 그거였고.

게다가 내가 이러한 종류의 기믹을 모르고 있었던 건, 마찬가지로 게임에서 플레이하는 제이드도 마나 보유량이 월등히 높기 때문에 영향을 느끼지 못했던 거였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 루비와 달시가 마법을 사용하지 못할 정도면, 이 던전의 난이도도 원작과는 다르잖아?’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나는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쿵!

녀석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켈레톤 킹은 공격 범위 밖으로 나간 나를 포기하고는, 보스 방의 입구에 있는 루비와 달시 쪽으로 타깃을 바꿨다.

비좁은 보스 방의 입구에는 스켈레톤 킹을 피해 달아날 길이 딱히 보이지 않는다. 루비는 그저 입구 쪽에 주저앉아, 기절한 달시를 꼭 껴안고 있을 뿐이었다.

“어딜 가려고.”

나는 곧바로 매직 미사일 여러 개를 시전했다.

주문서의 영향으로 두 개씩 생성되는 매직 미사일들.

그리고 그 백색 구체들은 순식간에 날아가 스켈레톤 킹의 뼈다귀 이음새에 직격했다.

콰앙!

애초에 마력이 해제된 달시의 주먹에도 한 방에 으스러진 녀석이다. 고작 매직 미사일을 맞았을 뿐임에도, 스켈레톤 킹은 뼛조각으로 우수수 분해되고 있었다.

마력 기믹이 존재하는 만큼, 저 해골 뼈다귀 녀석의 내구력은 최하위인 듯싶었다. 다만 이대로면 다시 아까처럼 재조립된다는 게 문제였다.

“보통, 이런 상대면 핵이 있을 텐데.”

아니나 다를까, 우수수 떨어지는 뼈다귀들 사이에서 붉은빛을 내뿜는 무언가가 보인다. 마력 핵의 존재를 확인하자, 나는 그곳을 정확히 조준해 매직 미사일을 시전했다.

「마지아 미실레(magía míssĭle)」

주문과 함께 우아하게 날아가는 백색 구체.

퍼어어어엉!

붉은빛을 뿜어 대는 마력의 핵은 그 구체와 닿자마자 산산조각 나 버렸다.

그리고 이내 스켈레톤 킹의 으스러진 뼈들이 던전의 클리어를 알리는 듯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모든 것이 끝났기에 나는 루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살짝 울먹이는 표정을 하며 걱정스레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그런 그녀에게 오른팔을 들어 손을 흔들어 주려 했다. 그런데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

“아… 아아악!!”

전투에 집중하느라 나도 모르게 오른팔의 부상을 잊고 있던 것이다. 오른팔을 들려고 하자마자 엄청난 고통이 쏠려 왔다. 이젠 전투도 끝나서 그 통증이 온전히 느껴지기에 더더욱 아프게 느껴졌다.

“풉…….”

루비가 짧은 웃음을 내뱉었다.

울먹이는 눈가가 어느새 싱긋 웃고 있었다.

머쓱해진 나는 왼손으로 머리를 긁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괜찮아?”

“응, 덕분에.”

그녀의 입가에 어린 미소에 나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때. 뒤의 마법진 쪽에서 기이한 소리가 들려왔다.

우우우우우웅!

생사를 넘는 싸움에 몰두한 나머지, 가장 중요한 보상을 잊고 있었다. 그것이 애초에 여기 온 목적이었는데 말이다.

나는 곧바로 마법진 한가운데에서 빛을 내고 있는 아이템을 확인하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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