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 * *
“오른쪽!”
“앗…….”
그 말과 함께, 순식간에 내 오른쪽 허리로 파고드는 아텔라의 죽도.
다만 이상하게도 아텔라의 빠른 타격은 가속도의 법칙을 무시하고, 나에게 닿는 순간 그 힘이 줄어든다.
아마도 내가 아프지 않게끔 조절하는 모양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아텔라의 검격을 단 한 번도 피할 수 없었다.
“그럼, 이번에는 알고도 못 막는 왼쪽으로 간다!”
“으윽…….”
이번에도 예고한 대로 왼쪽으로 파고드는 죽도의 검신.
당연하게도 나는 또다시 허리를 내주고 말았다.
“뭐 해, 좀 막아 봐!”
단 한 번을 막아 내지 못하는 나를 아텔라는 마음껏 유린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첫 제자를 가르치다 보니, 제대로 신난 모양이다.
그러나 내 쪽은 슬슬 체력의 한계가 찾아왔다.
그렇게 검을 잔뜩 휘두른 나는 10분도 안 돼서 도장 바닥에 드러누웠다.
“헤엑… 헥… 쉬, 쉬었다 해요.”
“뭐? 벌써? 얼마나 됐다고?”
“이미 한계라서…….”
아텔라는 나를 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그런데 나도 억울한 부분이 있었다.
‘평소에 운동을 안 했다고는 하지만, 애초에 지금은 내 몸이 아니잖아?’
나는 애꿎은 몸 주인을 탓했다.
물론 현재의 운동 신경 부족과 체력 부족은 내 탓인지 아니면 몸의 주인인 ‘제로’의 탓인지, 정확한 책임의 비율은 따질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지금 나에게 검술은 매우 무리라는 점이었다.
“아무래도 검을 드는 건 무리가 있겠네. 다음부터는 기초 트레이닝부터 시작하자.”
“기초 트레이닝이요?”
“너, 너무 체력이 저질이야.”
“…네.”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아텔라는 내 풀이 죽은 모습을 보며 위로했다.
“괜찮아. 원래 처음은 다 그런 거지 뭐. 나도 처음부터 잘했던 건 아니니까.”
“언젠가는 능숙하게 검을 쓰겠죠?”
“그럼.”
사실 이 검술 강의를 수강했던 가장 큰 이유는 이왕 판타지 세계에 온 김에 검 한번 휘둘러 보자는 취지였다.
그야 검은 남자의 로망이니까.
그런데 이렇게까지 재능이 없을 줄은 몰랐다.
아텔라는 이런 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검술은 강화계뿐만 아니라 다른 계열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어. 나부터가 강화계가 아니라 물질계거든.”
“물질계요?”
당연히 검술 교수이니까 강화계인 줄 알았다.
하다못해 변신계라든가.
“물질계 마법사인데 검술 교수라고요?”
“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
물질계 마법은 마법으로 물리적인 힘을 발생시키는 마법이다.
억지로 검술과 엮으려면 엮을 수야 있겠지만, 상상이 가지 않았다.
게다가 저렇게 젊은 나이에 이 칼루스 아카데미의 교수가 될 정도라면 상당한 실력자라는 소린데, 검을 사용하는 실력 있는 물질계 마법사라니… 조금 신기했다.
“물질계이신데 왜 검을 쓰게 된 건데요?”
나는 그 점이 매우 궁금했다.
왜 굳이 검을?
내 말에 아텔라의 볼이 살짝 붉어졌다.
“내가 아카데미 다닐 때, 담당 검술 교수가 너무 멋있었거든.”
나는 그녀의 말에 단번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동경하는 사람이 하는 걸 좇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니까.
그녀는 살짝 쑥스러워졌는지 황급히 화제를 돌렸다.
“아, 아무튼 너도 고유 마법이 어떻든 간에 검술은 활용할 수 있을 거야. 그러고 보니 넌 어느 계열이야?”
“…저요?”
나는 순간 사실대로 말할지 고민했다.
그런데 딱히 그녀의 인상이 나쁘지 않았고, 아까 교감에게서 구해 준 몫도 있어서 반은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저는 고유 마법을 아직 못 써요.”
“뭐? 고유 마법을 못 쓴다고? 너 수석이잖아.”
역시 아텔라는 내 말을 듣자마자 놀란 기색이었다.
내가 ‘아직’ 못 쓰는 게 아니라 평생 못 쓴다는 걸 알게 된다면 더더욱 놀랄 것이다.
그래도 아텔라는 사람이 좋아서 그런지, 단번에 이해해 주는 눈치였다.
“그럴 수 있지. 원래 늦게도 발현하는 법이니까. 그래도 조금 불안하겠네. 아마 고유 마법을 계속 사용 못 하게 되면 퇴학 조치를 당하지?”
“네…….”
“너무 걱정하지 마. 너라면 언젠가 할 수 있을 거야. 그야 넌 이 칼루스 아카데미의 자랑스러운 수석이잖아? 내 소중한 첫 제자기도 하고.”
아무래도 그녀는 내가 첫 제자라서 그런지 단단히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그래도 검술은 소홀히 하면 안 된다? 고유 마법과는 별개로, 졸업할 때까지 내가 어엿한 검사로 만들어 줄게.”
“하하… 네.”
그녀의 호언장담에 나는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잠깐의 대화와 휴식 이후, 그녀는 누워 있는 나의 손에 있던 죽검을 회수해 갔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다행이네요…….”
“대신 숙제로 하루에 운동장 열 바퀴씩 뛰고 와.”
“……열 바퀴나 뛰라고요?!”
“아무래도 아직은 검을 잡을 체력이 안 되는 거 같으니까 기초 체력부터 기르는 게 맞는 거 같아. 꼭 해야 한다?”
칼루스 아카데미의 운동장 한 바퀴는 거의 1km가 넘는 거리다.
그런데 열 바퀴라니……. 나에게 바라는 게 너무 큰 듯싶었다. 그래도 나는 일단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텔라는 창고에 죽도를 넣고 온 뒤 무언가를 손에 들고 왔다.
“자, 이건 선물.”
그녀가 내미는 건 다름 아닌 박스로 포장된 초콜릿케이크였다.
“이건 왜요?”
“아카데미 부임 선물로 받았는데, 나는 단 거는 싫어해서. 근 손실 나잖아.”
근 손실이라니……. 어지간히 검술에 대한 열정이 큰 사람이다.
“그런가요……? 그래도 선물로 받은 걸 제가 받아도 돼요?”
“그럼. 넌 내 처음이자 유일한 제자잖아. 받을 자격은 충분하지.”
아무튼 공짜로 준다니, 나는 감사히 받았다.
“그럼 다음 주에 보자.”
“네.”
그렇게 검술 수업은 일찍 종료되었다.
강의가 일찍 끝나게 돼서 중간에 시간이 붕 떠 버린 나는 일단 기숙사로 들어왔다.
그러고는 곧바로 침대에 털썩 누웠다.
“아직도 강의가 두 개나 더 남았다니…….”
뒤이어 들을 강의를 생각하면 조금 끔찍하다.
역시 하루에 네 강의는 너무 살인적인 스케줄이었다.
“당이나 충전해야겠다.”
나는 몸을 벌떡 일으켜 세운 뒤 책상 위에 올려놓은 초콜릿케이크의 포장을 개봉했다.
안에 들어 있는 초콜릿케이크는 화려한 장식으로 꾸며져 있었고, 옆면에는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알록달록한 초콜릿들이 박혀 있었다.
“되게 비쌀 거 같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케이크를 한 스푼 떠서 입에 넣었다. 그런데.
- 잠깐!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언노운이었다.
얼떨떨해진 나는 입에 넣은 케이크를 채 씹지도 못하고 그대로 멈춰 섰다.
- 기다려라.
또다시 머릿속에서 울려 퍼지는 언노운의 목소리.
그리고 순간 방 안을 가득 채운 번쩍하는 빛에, 나는 눈이 부셔서 손으로 시야를 가렸다.
그리고 손을 걷자 보이는 것은… 다름 아닌 인간의 모습으로 실체화한 언노운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눈앞에 나타난 150cm도 안 돼 보이는 작은 소녀의 모습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 케이크. 나도 먹고 싶다.”
언노운은 내가 들고 있는 케이크가 담긴 접시를 빤히 올려다봤다. 마주친 그녀의 눈동자는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한참 동안 멀뚱히 언노운을 쳐다보고 있던 나는, 케이크 타령에 그제야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어떻게 나왔어요? 원래 나올 수 있는 거였어요?”
‘아카마’에서는 이런 경우가 단 한 번도 없었다.
애초에 언노운이 실체화가 가능하다는 것은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다.
“물론. 마나를 사용하면 일시적으로 실체화할 수 있다.”
“…그거 제 마나 아닌가요.”
“뭐, 어떠냐 닳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쓸 데도 없지 않더냐.”
물론 맞는 말이긴 했다.
굉장히 당당한 언노운의 말에 나는 또다시 할 말을 잃었다.
그나저나 케이크를 먹고 싶어서 실체화하는 검이라니, 웃기는 녀석이다.
“진짜 고작 이 케이크 하나 먹겠다고 실체화한 거예요?”
“고작 케이크라니! 그건 누블랑 제과의 케이크다!!”
내 발언에 살짝 화난 듯, 언노운은 갑자기 아우성을 쳤다.
그런데 누블랑 제과라니?
“누블랑 제과가 뭔데요? 비싼 브랜드예요?”
“비싸다마다.”
“얼만데요?”
“200다트.”
“200다트요?”
나는 머릿속으로 셈을 시작했다.
1다트가 만 원.
그렇다면 200다트는…….
“200만 원이라고? 고작 이 초콜릿케이크가 200만 원이나 한다고……?!”
나는 매우 놀라 입을 벌렸다.
200만 원짜리 케이크가 존재한다는 건 원래 세계에서도 들어 본 적 없었다.
이렇게 비싼 케이크를 순전히 근 손실 온다고 나한테 준 아텔라가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어째서 장비 상점에 처박혀 있던 언노운이 케이크 가격이랑 브랜드를 아는 거야?’
정말 이상한 마검 님이다.
언노운은 빨리 초콜릿케이크를 먹고 싶다는 듯 눈을 반짝이며 나를 재촉했다.
“그럼, 어서 내놓거라.”
나는 그 묘하게 귀여운 모습에 순순히 케이크를 하나 썰어서 주려고 했다. 그러다가 문득 머릿속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런데 있잖아요.”
“응? 뭐더냐.”
“어서 내놓으라고요?”
“으응……?”
나는 순간 케이크를 내 쪽으로 휙 잡아당겼다.
“맨입으로요?”
“매, 맨입? 치사하다!”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지.
언노운은 내 태도에 무척이나 흥분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슬슬 얘기를 꺼냈다.
“저희 계약을 안 했잖아요, 그죠?”
“그, 그렇지?”
“그럼 아직은 저희, 남인 거잖아요.”
내 말에 언노운은 시무룩해하며 입을 다물었다.
나는 그 모습에 씨익 웃으며 본론을 꺼냈다.
“이거 다 줄게요. 대신 저랑 계약해요.”
그러자 언노운은 잠시 고민에 빠진 듯 보였다.
그러고는 이내 내 제안을 거절했다.
“그건 안 된다.”
“왜요? 이 누블랑 케이크가 먹고 싶지 않으세요?”
“그, 그건 그렇지만…….”
“그럼 계약하자니까요?”
“넌 아직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네 스스로를 증명하지 못했잖느냐.”
저 나태한 귀차니스트 마검 님이 굳이 실체화를 할 정도라면, 어지간히 이 케이크가 먹고 싶었던 걸 텐데……. 계약 얘기가 나오자 조금 단호해진 언노운이다.
그 단호함에 나는 이내 계약을 포기하고는, 어떻게 딜을 할까 생각에 잠겼다.
그런데 언노운이 먼저 조건을 제시했다.
“딱 한 번.”
“네?”
“계약을 하기 전까지, 딱 한 번은 부르면 도와주겠다.”
딱 한 번이라… 조금은 아쉬운 제안이었다.
그렇지만 어차피 이 케이크도 공짜로 선물 받은 거였고, 일단은 이 정도로 넘어가기로 했다.
“좋아요. 그럼 꼭 도와주시는 거예요?”
나는 케이크를 조각내어 접시에 담아 언노운에게 주었다.
그러자 언노운은 곧바로 케이크를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말하는 건 많이 늙어 보이고 실제로도 오랜 세월을 존재해 온 녀석이지만, 이렇게 보니 영락없는 소녀 같았다.
그런 언노운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아빠 미소가 지어졌다.
‘그러고 보니…….’
당장 내일 있을 수업에 언노운의 힘이 필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야 내일 있을 수업 중 하나가 바로 전공 필수 과목인, 대마물 수업.
그곳에서 초반부 이벤트 중 하나인 던전 토벌이 기다리고 있으니까.